221018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종을 또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겸손히 그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두가 은혜 받고 자기영혼을 준비 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자녀가 받는 영광과 권리가 아주 크다.
옛날 광야 교회에서는 자기들의 어려움을 모세에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모세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드렸다.
또, 그 기도의 응답을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아가지고, 내려와서 전해주었다.
이와 같이 기도의 중재를 모세가 했다.
개별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친히 찾아뵙고, 각각 기도한다.
예를 들면, 집안에 많은 종들이 있어도, 각각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거기서 가장 중한 직분을 맡은 청지기에게 부탁하면, 청지기가 주인에게 그 사정을 아뢰고, 명령을 받아, 종들을 가르치고 지시한다.
그러나 아들은 여럿이라도, 누구를 통해서 아버지께 가지 않고, 각각 아버지께 간다.
이것이 자녀와 종의 신분의 차이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 구하라 하였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는 이방인같이 구하지 말라 하셨다.
이방인들은 누가 봐도, 지성을 드리고 있다.
그들은 밤새 빌고,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것은 종들이 하는 것이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말하노니 하셨고, 우리도 주여, 주여 한다.
같은 뜻이라도, 이방인의 중언부언은 나무아비타불 하듯이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께 하는 것이므로, 이방인같이 들어주지 않는 이에게 중언부언하듯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마디만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들으시고, 우리는 상달시킬 수 있는 자녀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말씀이 생명이요, 생명은 우리에게 비추는 빛이요,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빛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가 어떻게 자녀의 권세가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고 있다.
우리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아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므로, 그가 하나님이시듯, 우리가 그 말씀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계약, 약속이다.
그 말씀의 약속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의 권세를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는 자다.
권세를 가진 자녀와 종의 차이는 어떤가.
집안에 종들이 많다.
종들은 부지런히 땀 흘려 주인을 위해 일한다. 주인의 일을 해서, 주인에게 품삯을 받는다.
이익을 많이 남기면, 보너스를 받는다.
종은 주인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휴일을 얻으면, 쉬기도 한다.
자기 휴일을 다 찾아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휴일에 일을 하면, 거기에 대한 품값을 다시 계산해서 추가 수당을 받으려 한다.
종은 주인의 일이 자기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히 대가를 요구하고, 철저히 계산한다.
그래서 잘 하다가도 품삯에 불만이 생기면, 원망하고, 파업을 일으킨다.
요즘 노사분쟁이 그렇다.
주인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자기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종들은 자기 불만을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을 상속할 후사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이것은 남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후사이므로, 자기 일을 한 것이다.
신앙생활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일꾼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 태풍이 와서 수확이 적어도, 종들은 상관없이 계약대로 품값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인의 아들은 주인이기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한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다. 원망할 주인이 없다.
자녀의 권세는 후사로서 주인이라는 뜻이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금했지만, 왜 하나님이 나를 안 도와주시는가 하는 것은 의심이 들어간 것이다.
원망은 의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죽도록 교회를 위해 봉사했는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생활이 펴지지도 않고, 힘들까.
종이니까, 대가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일하면, 추가수당으로 일한 것만큼 더 받기 원하고, 안주면 원망한다.
같은 신앙생활하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 내내 매달린 사람은 미련하게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리하게 보인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종들은 휴가가기 위해 밭의 일을 놓고 가도, 아들은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므로, 종이 나간 빈자리를 채운다.
내가 개척한 이후에 명절이 되면, 전도사도 부목사도 직원들도 다 교회에 안 나오고, 고향에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즐겼어도, 나는 어디 갈 곳이 없었다. 교회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문단속 다했다. 나는 명절이라도,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종들은 휴가를 가도, 주인은 휴가를 갈 수 없다.
벌써 그들의 생활에서도 정체가 드러난다.
후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주인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아버지는 후사된 자기 아들의 사정을 안다.
종들은 다 휴가 가서, 텅텅 비어있어도, 아들은 혼자 밭에 나가서 살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수고하고, 고민하는지 다 안다.
후사는 주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이 자기 일이요, 자기 일이 아버지 일이다.
그래서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할 주인이 없다.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 아버지 일이 자기 일이요, 자기 일은 아버지 일이요, 아버지와 그는 함께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후사가 된 자의 기도는 간단하다.
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오직 아버지만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라이 임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다 아버지께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나라(내 것)와 권세(주인)와 영광이다.
우리기도 전부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셋집이 아니라, 자기 집을 구하는 것, 자기 나라다.
내가 기둥을 세울 나라와 주인이 되는 권세, 그래서, 주인이 누리는 영광을 구한다.
기도는 우리의 아쉬움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고, 그 아쉬움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충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자는 자기 소유가 있고, 자기가 주인이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영광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는 집안에 계시고, 아들은 밭에 나가 있어도, 아버지는 아들이 나가 있는 밭에 관심이 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 땅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 욕심이 있어도, 자기 욕심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대로 머물고, 뜻대로 돌아간다.
내가 이 땅에 있을 날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날을 아시므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굶지 않게 하소서.
내일 염려는 내일 염려하라 하셨다.
그날 하루만 해결할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오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
나에게 죄 지은 자(빚진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저를 사하여주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기도는 그것뿐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께만 있다.
종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아버지께 구할 수 없다.
후사는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종으로서 기도하는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자녀와 종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인의 아들도 땀을 흘리며 일하고, 종도 땀을 흘리며 일한다.
종들이 쉬고 있는 동안에도, 다음 일할 수 있도록 아들은 준비하느라 바쁘다.
교회에서 같이 일하지만, 품값을 요구하지 않고, 원망 없이 일하는 사람.
예수 믿고나서, 더 어렵게 되어, 남들 보기에 불쌍할 정도라도 하나님에 대한 불만없이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목회하면서, 그런 사람 많이 보았다.
반면, 자기 하는 일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한다.
모든 사람이 교회의 일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손 털고 나가면 그만이다.
목사 안수할 때마다, 나는 여기서 일하다가 죽으라고 말한다.
그 교회 목사 되기로 작정하지만, 몇 년 지나면 개척한다고 훌훌 떠난다.
교회에서 훈련이 되어, 필요한 사람이 되었는데, 훅 나간다.
그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받는 대가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을 때, 불만을 품거나 나가버린다.
그래서 감독은 여럿이 있을 수 없다.
레위 인들은 열한지파로부터 받는 십일조로 살도록 하시고, 땅을 따로 주지 않으셨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금했으면, 자기 손을 떠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 땅을 드리겠다고 하기 전에는 자기 소유였다.
그가 땅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으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헌금하면, 자기 것이 아니다.
포도원주인이 소출을 받으러 농부에게 청지기를 보냈는데, 죽였고, 아들도 보냈는데, 죽였다.
청지기를 죽이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도 죽이는 자다.
함부로라도 거룩하다 한 후에, 돌이키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다.
나는 90년대까지 즐거움으로 일했다.
난리가 난 후에, 나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교인들에게 간절히 구하는 것은 헌금하고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심판은 주인이 하는 것이다.
주인이 돌아오면, 종이 일을 잘했는지 알아보신다고 하셨다.
청지기는 주인의 처분만 바라는 것이다.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다섯 달란트를 더 주어, 열 달란트가 그의 분깃이 되게 하셨다.
므나의 비유에서는 열성을 주었다고 하셨다. 나라를 주었다는 말이다.
주님이 가까이 오실 때를 준비하자.
내가 늙어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은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이다.
헌금한 것을 자기가 감시해야 한다는 것은 주님을 감시해야 한다, 하나님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과 똑같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네가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시험한다고 하였다.
모든 죄와 허물은 사함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말로라도 훼방하면, 금세도 내세도 사함 받지 못한다.
나는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60년간 신앙생활 했다.
악한 자들이 우리를 세상법정에 끌고 가기 위해서, 묘하게 올가미를 만들었다.
이번 난리를 통해, 우리 교회가 타작마당에서 어느 정도 추수가 된 것 같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인인가.
공산주의는 평등을 말한다. 자유주의는 평등이 없다.
능력이 있으면, 더 하는 것이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그만큼 못사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자유는 빈부의 격차가 아주 많이 있다.
사람마다 품삯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자의 것을 빼앗아서, 평등하게 나누자고 하면, 이성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다.
저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지난주부터는 굉장히 나약해졌다.
이럴수록 심판받지 않으려고, 짐짓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송죽암에도 간절히 당부한 것이다.
자녀의 권세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과 종이 구하는 것은 다르다.
옛날에는 비렁뱅이라는 말이 있었다.
거지를 비렁뱅이라고 했다. 어디가서 주시오, 주시오, 비렁댄다는 것이다.
종은 비렁뱅이마냥 중언부언한다.
주세요, 네? 주세요 네?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개도 주인의 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비렁뱅이는 그렇게 한다.
기도는 권세 있는 자가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안다.
하나님 너희 아버지가 네 쓸 것을 아신다.
종들의 사정을 주인이 알 필요가 없다. 일한만큼만 주면 된다.
열 식구를 혼자 먹이는 종도 있지만, 월급을 더 주지 않는다.
자기 사정은 자기가 해결할 일이지, 주인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후사는 아버지가 다 아신다.
기도는 후사된 자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 사람들이 철야도 하고, 금식도 하면서 기도는 많이 한다.
그런데, 기도하러 들어가기 전에 마음이 허 했던 대로, 하고나서도 허하다.
간구했는데,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해하고, 교통할 수 있는 권리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들으신 줄로 알고, 들으신 줄 알았으면 이미 받은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준다고 따로 안 해도, 알았다고만 해도 된다.
십 만원 달라고 해도 알았다 하고, 이십 만원도 줄 수도 있다. 후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한 즉, 하나님이 들으신 줄 알고, 들으신 줄 안 즉, 또 받은 줄 아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물질과 육체의 모든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을 하나님 앞에 기도드린다.
기도하는 전부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다.
직장에 꼭 들어가기 원하는 것도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그 권리가 아버지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내 마음대로 주무르게 복을 주옵소서 하는 것도 아버지가 먼저 아신다.
여러분 헌금한 것을 은행에 저금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다.
혹시 내 것이라고, 억만 분의 일이라도 생각했으면, 하나님을 속인 자요, 성령을 시험한 자다.
하나님께 거짓말 한 자는 예수가 오셔서 심판하시고, 성령을 시험한 자는 이미 후사의 권세에서 떨어진 자다.
짐짓 죄를 범한 자로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기도를 많이 해도 회개케 할 수 있다.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하거나, 시험한 자를 회개케 하려면, 예수가 다시 죽으셔야 한다.
그러나 예수는 한번만 죽으신다.
두 번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일하지 않은 사람이나, 죽도록 일한 사람이나 다 똑같이 나누자고 한다.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백 프로 맞지 않는다.
하나님이 들으신 것은 그가 주실 것이요, 또한 받은 줄 안다.
이것이 믿음이다.
기도할 권리를 가지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권리가 없이 비렁뱅이처럼 구걸할 것인가.
권세 있는 자(후사)가 기도하고, 믿음으로 응답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비렁뱅이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주인이 아니어도, 아버지가 어느 날 위임하든지, 상속할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든, 늦게 오든 상속해준다.
후사는 자기가 주인이다.
기도할 때, 어떤 자격으로 기도하는가.
신약성경은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 너희 아버지께서 들으신다, 계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같은 권리가 있다.
여러분은 병 낫는 것, 물질(나라, 권세, 영광)을 구한다.
구하는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아버지가 들으셔야 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제치고, 예수가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들으시고, 아버지가 주신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부르지만, 아버지께 기도하지 않는다.
상달이 되지 않는다.
너희가 구해도 얻지 못함은 잘못구함이다.
기도는 후사의 권세다.
아버지께 기도하고, 아버지가 들으셔야, 얻는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오직 아버지께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라.
앞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실제 생활, 병 낫는 것부터 시작해서 배울 것이다.
지난주부터 잘 기억하라.
성막에 성소, 지성소가 있다.
번제단을 통해, 물두멍을 통해, 성소를 통해, 지성소로 들어간다.
휘장이 찢어지면,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로 통일된다.
성소는 성도들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지성소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아들만 들어간다.
대제사장은 아들의 직분을 대신한 비유다.
1년에 한번, 휘장이 열릴 때만 대제사장이 들어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휘장이 찢어졌다. 그 때 백부장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다.
히브리서에는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길이라고 표현했다.
예수께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길이 열렸다.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만 가지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버지가 들으시고, 아버지가 주신다.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가 막혔을 때는 못 들어갔다.
반드시 휘장을 통과해야 한다.
아버지께 들어가는데, 가로막힌 것이 있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원수 되게 한 원죄다.
가로막혀서 안 된 것이다.
누가 휘장을 여는가.
그래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
예수 이름에 무릎 꿇는다.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휘장을 열어주신 분이시다.
그로말미암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못 들어간다.
번제단의 양의 피를 갖고 지성소까지 들어간다.
낙원의 계단은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통해, 떡상, 향로 등 하나님께 들어가는 이치를 말한다.
자기가 어디까지 왔는지 자기가 진단할 수 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예수 이름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간다.
예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지만,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 사, 사람들이 아들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보려하신다.
아들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들을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 받으시듯, 사람들에게 아들이 영광 받는 것을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들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아버지께 나가기 위해서다.
예수 이름은 아버지께 나가는 길이요, 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주여, 예수여, 주시옵소서 한다.
아버지는 아들만 들으신다.
그래서 아들 안에 있는 자를 아들을 사랑하시듯 사랑하신다.
우리가 소원을 가지고, 예수께 와서, 예수여 내 소원을 들으소서 하면, 응답받지 못한다.
모든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가 그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버지께 나가는 열린 문이다.
아버지를 꼭 만나게 해 주는 분은 예수시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순종하되, 아버지께 순종하듯 하라는 것이다.
예수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가 영광 받으시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라하시면, 아들이 시행하신다.
아들이 시행할 수 있는데, 주신 이는 아버지시다.
절대 예수를 초월해서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예수를 중보자라 한다.
기도는 아버지께 하는 것이요, 아버지가 들으셔야 하는데, 아버지께 기도를 상달시키려면, 아들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죄는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이다. 휘장을 찢고 들어가야 한다.
여러분 기도를 생각해보라.
과연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를 했는가.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4절만 읽으면,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한다고 보이지만, 13절까지 보면 그것이 아니다.
죽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죽지만, 다시 살 때는 하나님 없이는 다시 살 수 없다.
그래서 예수로 인해 그를 살리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로 인해서 아버지가 영광 받으신다.
아들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면, 아들이 대신 기도해준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의 공로 의지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들으시면, 아들이 반드시 시행한다.
아들이 네 기도에 복종하여 시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영광 받으시고, 아버지가 허락하시면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께 기도하는지,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엉망진창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장 정상적인 신앙을 통해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