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화요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진정 나다와질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몽테뉴, 1533~1592>
현암께 드리다(奉贈顯蓭)
李崇仁(이숭인)
吾友東溪老(오우동계로) : 우리 친구 동계 노인
逢人說顯蓭(봉인설현암) : 사람만 만나면 현암 이야기 한다
吟詩得妙趣(음시득묘취) : 시를 읊으면 묘한 멋이 풍기고
出定縱高談(출정종고담) : 공부를 마치면 수준 높은 이야기 한다
一澗通疏竹(일간통소죽) : 한 갈래 골짜기 물은 성긴 대숲을 지나고
千峰入翠嵐(천봉입취람) : 일 천 산봉우리는 푸른 산기운 속에 잠겨있다
何時謝簪緩(하시사잠완) : 어느 날 벼슬을 그만두고
香火共禪龕(향화공선감) : 향불 피워 선사와 함께 하리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樊遲問仁. 子曰: 「愛人. 」 問知. 子曰: 「知人. 」
번지문인. 재왈: “애인.” 문지. 재왈: “지인.”
번지가 어짊이 무엇인가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知)가 무엇인가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 조선시대 서울의 둘레 봉우리에는 봉화뚝들이 있었다. 남산 꼭대기에서는 남해안에서 오는 신호를 받고, 인왕산의 것은 서북 방면의 것을 받으며, 낙산 위에는 동북방의 것이 전달된다. 지금 수원의 것이 복원돼 있어서 옛날 제도를 볼 수 있는데 벽돌로 빈 굴뚝을 다섯 개 나란히 세운 구조다. 이것은 평소에도 하나는 켜두는 법이라, 서울 사람들은 밤에 뜰에 나와 보아 세 봉우리에 각각 하나씩 켜져 있으면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낮이면 외줄기 연기가 꼬약꼬약 피어 오르고...
왕십리로 시집 온 색시가 반찬으로 김을 굽는데, 시어머니가 “김은 먼 불에 구워라” 했더니, 남산 봉화불에 비추고 섰더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적군의 동태가 미심쩍으면 이 한 가닥 불길이 두 개로 는다. 행동이 드러나면 세 줄기, 공격해오면 네 개, 접전이 시작되면 다섯 개. 이것은 정부에서 깔아뭉갤 수도 없다. 만 백성이 다 보니까.
김재찬이라고 유명한 재상이 서울역 뒤에 살았는데 거기 지명을 따 약(藥)현(峴) 대신이라고들 불렀다. 그 약현 대신이 영의정으로 재직 중에 홍경래 난이 터져서 인왕산 횃불이 다섯으로 늘었다. 조정에서는 영의정 들라고 급보가 빗발치듯 하는데, 이 양반이 말을 젖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평교자라고 땅에 끌릴 정도로 낮고 편하게 꾸며 넷이 메는 가마를 타고 장안 대로를 “에 비켰거라 물렀거라...” 길라잡이를 시키며 마냥 노라리조로 예궐을 했다.
“뭘 하기에 이렇게 늦게 나오는가?”
약현 대신은 당시 임금 순조를 위시해 온 조정의 책망을 웃음으로 받으며 느물거렸다.
“오면서 한 가지 일을 하느라고 그랬습니다.”
“저것 보게. 약현 대신이 저렇게 느릿느릿 놀이조로 들어갈 적에는, 다 그만한 마련이 있어서 그러는 걸세. 피난 집어치우고 우리는 도로 들어가세.”
백성들의 예측대로 난리는 오래 안 가 진압되었다.
이괄의 난 때는 뒤쫓아 오던 정충신이 맨 먼저 봉화대부터 점령하였다. 이괄도 전략가로 봉화망을 튼튼히 하고 이었던 터인데, 이것이 끊긴 때문에 길마재(무악재 고개)에서 접전이 났을 때에야 비로소 알았고, 그리하여 그의 야심도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삼국지에서 관운장이 오나라의 애송이 대장 여몽에게 최후를 마친 것도 모처럼 깔아놓았던 봉화 연락을 빼앗긴 것이 근본 원인이다. 지금도 ‘봉우재’라는 지명과 함께 봉화대의 유적은 각 처에 있는데, 모두 낮은 산봉우릴 찾아 해안선으로 연결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하늘이 노상 개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얕은 비구름이 내리깔렸을 때에도 봉화는 보여야 제 구실을 하였기 때문이다.
9월 29일 월요일
정치의 첫째 과제는 교육이요, 둘째 과제도 교육이며, 셋째 과제도 역시 교육이다. <미슐레, 1798~1874, 프랑스의 역사가>
스스로 헌수하며
李崇仁(이숭인)
今朝吾以降(금조오이강) : 오늘 아침 태어나
二十六靑春(이십육청춘) : 이십육 세 청춘이라.
父母樂無恚(부모락무에) : 부모님 걱정 없어 즐겁고
兄弟心更親(형제심갱친) : 형제간 마음은 더욱 친하오.
願修天爵貴(원수천작귀) : 천작의 귀함을 수양하는 것을 바라니
不怕世間貧(불파세간빈) : 세상 가난 두렵지 않소.
滿酌一杯酒(만작일배주) : 가득 채운 한 잔 술로
還將慶此身(환장경차신) : 도리어 이 몸 경축하려오.
천작(天爵) 하늘에서 받은 벼슬이라는 뜻으로, 남에게서 존경을 받을 만한 선천적인 덕행을 이르는 말.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이숭인(李崇仁 1349~1392(충정왕 1~태조 1))
고려 말 학자.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 본관은 성주(星州). 경산부(京山府) 출신. 고려시대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숙옹부승(肅雍府丞)이 되었고, 이어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가 되었다. 이어 예의산랑 등을 지내고, 우왕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이 되어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북원(北元;몽고)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귀양을 갔다. 그 뒤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어 정당문학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실록을 편찬하였고,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원나라에 가서 신정(新政)을 축하하였다. 그 후에는 친명파와 친원파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옥사를 겪었다. 조선개국 때에는 정몽주일파로 몰려 남평(南平;羅州市)으로 귀양갔다가 황거정(黃居正)에게 살해되었다. 시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도은시집》이 있다.
樊遲從遊於舞雩之下, 曰: 「敢問崇德, 脩慝, 辨惑. 」
번지종유어무우지하, 왈: “감문숭덕, 수특, 변혹.”
번지가 공자님을 따라 무 우라는 곳을 거닐면서 여쭈었다. “감히 묻습니다.
덕을 높이고, 마음 속의 사특함을 쫓고, 미혹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子曰: 「善哉問! 재왈: “선재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질문이다.
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脩慝與?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
선사후득, 비숭덕여? 공기악, 무공인지악, 비수특여? 일조지분, 망기신, 이급기친, 비혹여?
먼저 일하고 대가를 나중에 받는 것, 그것이 덕을 높이는 길이 아니겠느냐?
자신의 악을 공격하고 남의 악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자기의 사특함을 쫓는 길이다.
한 때의 분함을 참지 못하여 자기 몸을 망치고 그 화를 부모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미혹이 아니겠느냐?“
* 동아일보의 '책의 향기' - 2003년 9월 27일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386쪽, 예지, 15000원>
여기서 알파벳이란 로마문자와 그리스문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알파벳은 모든 종류의 음소문자(音素文字, 각각의 기호가 발음을 지시하는 문자)를 일컫는다. ...
저자가 11개의 장(章) 중 한 장을 온통 한글 설명에 할애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나아가 한글을 ‘알파벳의 꿈’, 즉 가장 이상적인 음소문자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고도로 세련된 사회의 뛰어난 산물인 한글은 어느 알파벳보다도 완벽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 알파벳이고, 단순하고 효율적이고 세련되었으며,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으로, 알파벳이 어느 정도까지 발달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증이 정밀하지는 않지만 외국인의 글에서 이런 찬사를 듣는 일은 분명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 조금 나이 든 학생이 그때까지 쓰던 분판을 치우고, 한지를 사다가 글씨 연습하는 것을 보았다. 분판이란 호분(胡粉)을 들기름에 개어서 먹이고, 표면을 요즘 아크릴 판처럼 매끈하게 만든 나무 판이다. 거기에 붓글씨를 쓰고 물걸레로 닦아내는 것을 되풀이하므로, 글방걸레는 항상 새까맣다. 거기에 쓰던 것을 그만두고 이제 종이에 쓰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 종이에 쓰기 때문이요 이렇게 종이에 쓰는 것을 익힌 학생은 그해 겨울을 고비로 글방을 마쳤다. 제삿날 축문을 쓸 수 있는 정도로 앞가림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전이라는 중인 계층에서는 글자를 익히고, 글줄이나 읽게 되면 곧장 ‘전등신화(剪燈新話)’를 가르쳤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쓴 바탕이 된 중국의 민담집이다. 양반처럼 고매한 사서삼경의 경전을 읽기 보다는 이쪽이 실용적으로는 훨씬 첩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일명 ‘이전(吏典)’이라고도 하였다.
고장마다 몽학 선생보다도 윗길되는 선생이 있었다. 이런 어른쯤 되면 조무래기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 초라하더라도 별당 하나를 치우고 옛날 책 속에 묻혀 지내는데, 그 댁에는 초보 과정을 마친 학생이 기식을 했다.
사랑에 거처하면서 새벽같이 선생께 들어가 과제를 받는다. 그리고는 조반 후 어린이들에게 자기네가 받던 대로의 과정을 가르치고(그러자니 복습이 톡톡히 된다) 글씨 본을 내준 뒤에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과제를 한다.
시, 부를 짓거나 대책(對策)이라고 논문을 쓰는 등 수준 높은 공부였다.
저녁에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나면 선생께 들어가 과제를 제출하고 강평을 듣는다. 이런 때는 분판이 아니고 분첩(粉貼)을 썼다. 한지를 겹치고 앞뒤로 분을 먹여 병풍 모양으로 앨범을 만든 것이다. 선생의 교시로 많은 수정을 거친 답안은 혼자 있을 때 책으로 옮겨 써서 간직했다.
이런 대선생쯤 되면 그야말로 손에 돈을 쥐지 않고, 쌀값을 묻는 법이 없었다(手無執錢 不問米價). 기식하는 학생들이 조무래기들에게서 받아내는 강미(講米)와 자신들이 가져온 것으로 안살림을 꾸렸다. 그러자니 자연히 남남끼리건만 내외를 무시하고 안채에까지 드나들어야 했고, 선생 부인에게는 사모님이라는 존칭을 썼다(요즘은 사장 부인더러 사모님이라니 웃기는 얘기다). 잘 되면 그 집 사위가 되어 선생의 학통을 잇기도 하였다.
선생께 다른 학자가 찾아오면 기식생들이 시중을 드는데, 술상 곁에 앉아 대화를 받아쓰기도 하고, 참고가 될 책을 찾아서는 즉시 대령했다. 손님이 떠나면, 그 사이 주고받은 글을 정리해 다음 날에 대비했다.
이런 선생께는 봄이면 자기 집에서 연구하던 학생들이 모여들어 합숙하면서 수련을 했다. 토론과 경쟁으로 많은 진전을 얻은 학생들은 한여름 더위를 앞두고 이 모임 곧 접(接)을 헤친다. 일종의 사은회요 해산식이다. 음식을 풍성하게 차리고 그날 나온 시제(詩題)로 모의 과거를 치러 성적을 겨뤘다.
이러한 대선생 문하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는 이가 나온다. 그런데 얄팍한 풍조는 여기에서도 나타나 과거 때 시험관이었던 분은 은문(恩門)이라 하여 평생을 사사(師事)하였다 하니 정작 가르쳐준 선생을 볼일 다했다 하는 식이라, 염량세태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오성 부원군 이항복은 1품 재상으로 모든 관원의 절을 앉아서 받았는데, 하루는 신 훈도(訓導)가 오셨다고 하니 버선발로 뛰어나가 모셔와서 절하고 예우가 극진하였다는 미담이 전한다. 훈도라면 만년 9품의 미관 말직이지만 그가 어렸을 때 배운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6일 금요일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의 길을 간다. <하머링, 1830~1889, 오스트리아 시인>
시골에 살면서
申欽(신흠)
柴門臨水稻花香(시문임수도화향) : 사립문 물에 닿고 벼꽃 향기로워
始覺村居氣味長(시각촌거기미장) : 시골 사는 멋이 짙음을 이제야 알겠네.
偶與老農談野事(우여로농담야사) : 우연히 늙은 농부와 들일을 얘기하다가
不知山日已嚑黃(부지산일이훈황) : 산에 해지는 줄도 몰랐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 자장문: 사하여사가위지달의?
자장이 질문하였다. “선비는 어떻게 해야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 재왈: 하재, 이소위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소위 ‘달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냐?”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 자장대왈: “재방필문, 재가필문.”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 안에서도 이름이 거론되고, 집에 있어도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입니다.”
子曰: 「是聞也, 非達也. 재왈: “시문야, 비달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명성이라는 것이고 ‘달인’은 아니다.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부달야자, 질직이호의, 찰언이관색, 려이하인. 재방필달, 재가필달
달인이라는 것은 본질이 곧으며 정의를 사랑하고, 남의 말을 잘 살피고 남의 얼굴 표정을 관찰할 줄 알며, 아래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안다면, 나라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달인이 되는 것이다.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
부문야자, 색취인이행위, 거지불의. 재방필문, 재가필문.”
그러나 명성을 따르는 사람은 얼굴빛으로는 어진 것 같으나 행동을 보면 그렇지 않으며, 사는데 스스로 뉘우침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 안에나 집안에 이름은 퍼지게 마련이다.“
* 학교 밭을 직원들에게 나눠주어 배추씨를 심게 했더니, 젊은 선생 한 분이 수확할 때 가족들을 데리고 와 배추 포기를 덥석 안아 뽑으려 들기에 웃었다.
“예로부터 김장배추는 딴다고 하지 뽑는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렇게 뽑았다가 옆의 포기로 튀어 들어간 흙은 어떻게 주체하시려오?”
그러고는 그 선생 자당이 갖고 오신 칼을 달라 해서 배추 포기를 감싸 눕히며 포기 밑둥에다 칼집을 내었다. 뚝 소리가 나며 나동그라지기에 이것이 따는 동작이 아니냐고 하여서 모두가 웃었다.
* 옛날의 면무식은 축문 쓸 정도로 기준을 삼았다. 참고서를 뒤적이면서라도 제 손으로 그것을 써낼 수 있다면 면무식으로 쳤다.
꽤 글자를 알게 되면 ‘자모듬’이라는 것을 한다. 책을 펼쳐놓고 거기서 찾거나, 아니면 그냥 ‘신’으로 발음나는 글자를 누가 많이 찾아 쓰나 보는 식이다. 다 써서 내놓은 것을 채점할 적에는 ‘일불살육통(一不殺六通)’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하나를 빠뜨린 것은 괜찮아도 잘못 짚은 것은 여섯 점이 깎이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서 쓰는 기준을 원용한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돌려가며 내는데, 장난삼아 ‘흥’ 하는 글자를 대라면 재미있다. 모두가 ‘흥(興)’ 자부터 써 놓고는 ‘더 없나?’ 하고 머리를 썼다. 그런데 흥으로 소리나는 글자는 하나뿐이다.
[임성삼; 흥(馫) 향기 흥]
덕은 고작 ‘덕(德)’과 ‘덕(悳)’뿐이고, 득도 ‘득(得)’자 한 자뿐이다. ‘덕흥서림(德興書林)’처럼 이런 것으로 이름을 지으면 혼동하지 않아서 좋다.
선생은 곁에 앉아 구경하면서 아이들의 지능을 가늠한다.
‘오’자를 쓰라는데 五, 吳, 惡, 烏, 吾... 하는 식으로 썼다면 이것은 머리가 정리 안된 증좌다.
‘五’ 자를 쓰고는 吾, 梧, 悟(깨달을 오)...
그리고 줄을 바꿔 ‘吳’에 잇달아 娛, 誤,
‘烏’에 이어 嗚(탄식소리 오)를 썼다면, 이 학동을 유망하게 보았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5일 목요일
거짓말쟁이가 받는 벌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과,
이제 자기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버나드 쇼, 1856~1950>
맑은 밤에 물을 긷다
金三宜堂(김삼의당)
淸夜汲淸水(청야급청수) : 맑은 달밤에 맑은 물을 긷노라니
明月湧金井(명월용금정) : 밝은 달이 우물에서 솟아오른다.
無語立欄干(무어립난간) : 말없이 난간에 서있노라니
風動梧葉影(풍동오엽영) : 바람은 오동나무 그림자를 흔든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
계강자문정어공자왈: “여살무도, 이취유도, 하여?”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공자대왈: “자위정, 언용살? 자욕선, 이민선의.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초상지풍, 필언.”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물었다.
“무도한 사람들을 죽여서 올바른 도를 이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정치에서 어찌 사형제도를 사용하려 하십니까? 당신이 착하게 되고 싶으시면, 백성들도 착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이 바람이라면 소인들은 풀과 같습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게 마련입니다.”
[임성삼; 이런 말씀을 하신 공자님도, 권력을 잡은 후에 못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셨습니다.]
* 어떤 여자대학의 학장님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는 일년 사철 꽃이 핀다는 말을 듣고 그랬더란다.
“여기 와서 양봉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랬더니 모두들 웃으면서
“여기 벌은 꿀을 모을 줄 모른답니다.”
하여서 무안을 당했다고 쓴 글을 읽은 것이 있다.
“그놈 겨울 춥지 좀 말았으면 좋겠네”하는 푸념이 나오나, 현재 지구상에서 내노라 하는 문명은 모두 온대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편할 대로 편한 열대지방에서는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데 비해, 사계절이 분명한 온대에서 싹텄다는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가 그 바탕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역시 우리 국토가 누리는 고마운 조건이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4일 수요일
유언(流言)은 지자(智者)에게서 멈춘다. <순자, 기원전 315~230>
산골 물
鄭齊斗(정제두, 1649∼1736(인조 27∼영조 12))
歷盡千巖萬壑艱(역진천암만학간) : 수천 바위와 골짜기의 험한 곳 다 지나도
如何日夜不曾閑(여하일야불증한) : 어찌하여 밤낮으로 한가하지 못 한가
滔滔萬里奔歸意(도도만리분귀의) : 도도히 수 만 리를 흘러가는 뜻은
只在滄波大海間(지재창파대해간) : 푸른 파도 일렁이는 큰 바다에 있고 싶어서라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 진실로 구, 훔칠 절
계강자환도, 문어공자. 공자대왈: “구자지불욕, 수상지불절.”
계강자가 도둑떼로 인해 고통을 받다가 공자에게 해결 방법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탐욕을 버린다면, 백성들은 비록 상을 준다고 해도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주석; 계강자는 노나라 왕실의 재산을 절반이나 빼앗을 정도의 큰 도둑이었다.]
* “송편이 아주 동그랗게 생기지 않는 것은 보름달이 될 희망을 나타내는 거란다.”
* 우리말의 “고맙습니다”만큼 세상에 좋은 말은 없다. 오래간만에 만나면 서로 소상하게 안부를 묻는다. 그리하여 모두가 무고하다는 답을 듣고는 으레 하는 인사가 있다.
“고맙습니다.”
이 ‘고맙다’의 본래 모습을 나는 ‘없다’로 보는데, ‘감’이라면 ‘신령’이라는 뜻의 오랜 우리 말이다. 단군 할아버지가 곰(감) 할머니 몸에서 나셨다는 말은 신성한 여인이라는 뜻이요, 일본인이 신(神)을 가미라고 하는 것도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없습니다’하는 말이 ‘실없는 소리’라고 할 때는 그냥 ‘없다’는 뜻이지만, ‘시름없이 앉아 있다’하면 시름에 잠겨 있어 오히려 시름에 겨운 것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감없습니다’ 하는 말은 ‘신령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하는 뜻이 된다. 온 집안이 무고한 것도, 또 바람났던 아들이 마음을 잡은 것도, 모두 인간 이상의 어떤 거룩한 어른의 힘을 입었노라는 감사의 표현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3일 화요일
양서는 인류 불멸의 정신이다. <존 밀턴, 1608~1674>
산골 물
鄭齊斗(정제두)
涓涓流出愛無情(연연유출애무정) : 졸졸 새어나오니 무정함이 좋아
好看纖源一脈淸(호간섬원일맥청) : 보기 좋아라, 실낱같은 근원에서 한 줄기 맑은 물
去會江湖千萬里(거회강호천만리) : 흘러 강호 천만리로 모이나니
洪波誰識此中生(홍파수식차중생) : 누가 알겠는가, 큰 물결도 여기에서 생긴 것을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
계강자문정어공자. 공자대왈: “정자, 정야. 자수이정, 숙감부정?”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정치란 것은 바른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당신이 바르게 행하면 감히 누가 부정(不正)을 행하겠습니까?”
* 밤은 강변의 돌이 많이 섞인 지질에서 잘되는데, 딸 때가 되어 밑의 풀을 말끔히 깎는 것은 밤알을 찾기 쉬우라는 것이다. 그리곤 진흙과 돌을 섞어 야트막한 집을 짓고, 바닥은 온돌로 꾸민다.
밤알을 개울가에 하룻밤 펼처 놓아두면, 일교차가 심한 때라 물가에서 생기는 안개기운을 머금어 껍질이 물기에 통통 붓는다. 그것을 온돌 바닥에 서너 켜 되게 깔고 밤송이란 긁어다 사정없이 불을 때면 밤껍질이 말라 뒤틀어지면서 옷을 홀랑 벗고 뛰쳐나온다. 이튿날 문을 열고 긁어내는데 첫날 껍질 벗은 것이 일등품으로 값도 나간다.
다시 강가에서 밤을 지내 다음날 뛰쳐나온 것이 2등품, 그 나머지는 등외품이라 절구에 넣고 찧어 까서 자가용으로나 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2일 월요일
독서는 단순히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로크, 1632~1704, 영국 정치학자>
관아를 나서며 (退衙)
徐居正(서거정)
公事無多早退衙(공사무다조퇴아) : 공무가 많지 않아 일찍 관아를 나서니
西風吹顔鬢邊絲(서풍취안빈변사) : 서풍이 귀밑머리에 불어오는구나.
曲闌閑立無人見(곡란한립무인견) : 굽은 난간에 한가히 서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獨對東籬黃菊花(독대동리황국화) : 동쪽 울타리 아래 노란 국화꽃을 홀로 바라보노라.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曰:「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
재왈: “군자성인지미, 불성인자악. 소인반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사람의 좋은 점을 이루게 하고,
사람의 나쁜 점이 이루어지지 않게 한다.
소인은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
[계명원 역;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점을 칭찬하여 조장해도, 남의 결점을 입에 담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 명(明)나라 '모원의'는 "무비지(武備志)"에서 당시의 검에 대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모원의가 활약했던 때에는 검이라는 무기가 있기는 하였지만, 실제 전투에서 쓰이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결과 중국에 검의 사용법이 거의 전수가 되지 않아 당시 조선에 남아 있던 검법(劍法)이 중국으로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무기와 방어구 중국편, 시노다 고이치 지음, 신동기 옮김, 들녘, 2001>
* 어느 일터에서 본 일이다. 논 매는 일을 마쳤는데, 나이는 어려도 다 큰 총각을 부르더니 팔을 뻗어 자신의 호미를 날이 위로 오게 들라고 한다. 연장자에서부터 차례로 거기다 호미를 걸어주면 소년은 그때마다 한바퀴씩 돈다. 그렇게 해서 20명 전원의 호미를 다 걸고도 떨어뜨리지 않자, 영좌님은 그를 앞으로 불러서 꿇게 하였다. 그리곤 식기에 막걸리를 그득히 부어서 준다.
“고개를 돌이키지 말고 마셔라.”
그로부터 소년은 어른들과 맞품앗이를 하게 되었다. 일종의 성년식이다.
또 동네마다 들돌이 있어서 드는 데도 등급이 있어 땅뜨기, 무릎까지 올리기, 허리 펴기 등등, 미성년이라도 그 시험에 통과하면 한 사람분의 장정으로 처우받았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9일 금요일
우리는 여행할 수 있는 덕분에 확인할 수 있다. 민족 사이에 국경이 있으나,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낙천가용 소사전, 프레보, 1697~1763>
덕상스님에게
任叔英(임숙영)
儒言實理釋言空(유언실리석언공) : 유학은 실리를 말하고 불교는 공을 말하니
氷炭難成一器中(빙탄난성일기중) : 얼음과 재는 한 그릇에 담기 어렵도다.
惟有秋山綠蘿月(유유추산록라월) : 오직 푸른 담쟁이덩굴 사이의 달이 가을산에 있어
上人淸興與吾同(상인청흥여오동) : 스님이 맑은 흥취를 나와 함께 한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曰:「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 묶을 약; 다발짓다, 따르다. 두둑 반; 경계
재왈: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넓게 배우고, 예절로 요약한다.
그래야 학문의 도에 위배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계명원 역; 널리 전적(典籍)을 배워서 견식을 풍부히 하는 동시에, 실천의 기준을 예에서 구하여 그 식견에 마무리를 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학문의 도(道)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 농사짓는 이는 깐깐유월이라고 하여 하루하루를 바쁜 일에 쪼들리며, 이놈의 날이 언제나 지나가느냐고 지겹게 여긴다. 한편 이 달에는 특별히 꼽을 만한 명절도 없는데, 그것은 하 몹시 더운 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단 행사에는 음식이 따르기 마련인데, 자칫 변질되어 식중독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이라 잔치에는 꼭 차일(遮日)을 치게 마련이다.
잔치 행사에는 손쉬운 육류로 돼지고기가 있어, 자칫하면 변질되기 때문에 그늘을 지어 시원하게 진행하기 위한 조치다. 가정에서도 부엌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둡게 하고 지냈는데, 이젠 집집마다 냉장고를 갖추지 않은 집이 없으니 좀 개방하여 환하게 차려놓고 살고 싶다.
왕이나 세자의 생일 같은 것이 이달에 들었으면, 달리 시원한 시기로 축하일을 정하고, 이 시기에 집회는 피하는 것이 옛날의 제도였다.
우리나라 명절로 중국에 없는 것은 유두(流頭)뿐이라고들 한다.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 가 머리도 감고, 폭포수와 확에 들어가 쏟아지는 물도 맞고 하는 행사인데, 날짜와 흐르는 물 방향에 구애없이 더운 여름철 행사로 인기가 높았다.
몹시 더운 계절을 삼복더위라고 하는데
하지 후의 제3의 경일(庚日) 소서(小暑) 후로는 제1을 초복,
다시 열흘 뒤의 경일을 중복이라고 하고,
입추 뒤의 첫 경일을 말복이라고 하는데,
입추가 늦게 들어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이를 월복했다 하여 그렇게 된 해는 복 기간이 20일에서 30일로 늘어나 몹시 더운 해로 치부한다.
경(庚)은 금(金)에 해당하는 데, 금은 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불볕더위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라고들 설명한다. 금기는 가을 기운이라, 하지가 지난 지 20일 이상이나 되면 한번 고개를 쳐들어 봄직하다. 그러다가 도로 엎드리기를 세 번 하고라야 옳은 가을 기운이 터진다고 한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8일 목요일
자기와 다른 사람을 개선하려는 생각으로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은 철학자이다. 호기심이라는 맹목적인 충동에 의해 다른 나라를 헤매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시민, 골드스미스, 1728~1774, 영국 시인, 작가>
비로봉에 올라
任叔英(임숙영)
皆骨山頭望八垠(개골산두망팔은) : 개골산 머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大千超遞隔風塵(대천초체격풍진) : 대천세계 초월하여 세상풍진 멀리했네.
欲傾東海添春酒(욕경동해첨춘주) : 동해의 물 기우려 청명주를 담아
醉盡寰中億萬人(취진환중억만인) : 천하의 온 백성 모두를 취하게 하고 싶소.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임숙영(任叔英, 1576∼1623(선조 9∼인조 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무숙(茂淑), 호는 소암(疎庵). 본관은 풍천(豊川). 1601년(선조 34) 진사시에 합격,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응시하여 대책문(對策文)에서 척족(戚族)의 횡포와 이이첨(李爾瞻)의 무도함을 공박하여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무마로 병과에 급제, 승문원정자·박사를 거쳐 주서(注書)가 되었다. 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정청(庭請)에 참가하지 않아 파직되었다. 23년 인조반정 때 복직되어 검열·사관·정자·부수찬·검토관 등을 지내고 지평에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나고 중국 육조(六朝)의 사륙문(四六文)에 능했으며 경사(經史)에 밝았다. 부제학에 추증되고, 광주(廣州)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소암집》 《통군정서(統軍亭序)》 등이 있다.
子張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 」 자장문정. 재왈: “거지무권, 행지이충”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게으르지 말며, 실행을 할 때는 모든 힘을 다하라.”
[임성삼; 이 공자님의 말씀에 의하면 정치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 광주 땅에 순암 안정복의 고택이 있는데, 정자가에 좋은 느티나무가 있기에 그네 맸으면 좋겠다 했더니 종손이 웃는다.
“저 삭은 가지는 그네를 매서 그런 거여요.”
살아 있는 나무에 그네 매는 건 멋은 있을지 모르나 알고는 못할 노릇이다.
*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갈잎은 넓은 잎을 가진 중에 대표격으로 떡갈잎이라고도 한다. 우리도 갈잎에 싼 떡을 해먹었다.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반반 정도로 꺼풀을 해 팥을 속에 두어(흡사 일본인의 찹쌀떡 같다) 가랑잎으로 싸서 차곡차곡 찜통에 넣고 쪄내놓으면, 개구쟁이들이 흙장난을 하다 들어와서도 그냥 먹을 수 있어 십상이다. 이파리 양끝을 쥐고 쪼옥 벌려 안의 것을 입으로 똑 떼어서 먹으면 되니까, 손이 더럽더라도 문제가 아니다.
잎을 따다 두면 누렇게 가랑잎이 지니까, 두었다가 해먹고 싶으면 중조(중탄산나트륨) 푼 물에 담가 건져서 말려두면 파란빛이 그대로 보존된다. 시절이 지난 뒤에도 재생해 만들 수 있으니 한번 시험해볼 일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7일 수요일
타국을 보면 볼수록 나는 나의 조국을 더 사랑하게 된다. <스탈 부인, 1788~1817>
숲 정자에서 산 위 사람의 운을 빌어 저녁에 시를 읊다
徐居正(서거정)
城市那無隱者家(성시나무은자가) : 도시엔들 어찌 은자의 집이 없으랴
林亭幽絶隔鹿譁(임정유절격록화) : 숲 속 정자가 고요하여 세상의 어지러움 없다.
年年爲種幾多樹(년년위종기다수) : 해마다 심은 나무 얼마나 되는지
續續自開無數花(속속자개무수화) : 저절로 피는 무수한 꽃들
白蟻戰酣山雨至(백의전감산우지) : 흰 개미 싸움이 한참인데 산에는 비 내리고
黃蜂衙罷溪日斜(황봉아파계일사) : 누런 벌 떼들 일을 마치니 개울물에 석양이 진다
移時軟共高僧話(이시연공고승화) : 시간이 지나 한가히 고승과 대화를 나누려니
石鼎松聲送煮茶(석정송성송자다) : 돌솥에 솔바람 일어 차를 다리게 한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 재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재판을 하는 능력은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하겠다!”
[임성삼; 많이 인용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정치하는 대통령이 재판을 요구하는 시절입니다.]
* 남의 경사에 인사차 금품을 보내면서, 겉에 뭐라 써야 할지 난처할 때가 많다.
- 그래 혼인에 ‘근의(巹儀, 술잔 근)’라 썼더니 그게 무슨 뜻이냐고들 한다. 근(巹)은 박잔 근, 조그만 박을 반으로 쪼갠 술잔이다. 격식을 차리는 가문에서는, 혼인날 초례 때 그 잔으로 합환주를 교환한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을 합근(合巹)이라고 하는 것이니, 근의는 혼인에 보내는 예물이라는 뜻이 된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 데 비최고야
봄미나리 살진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리마는 내 못잊어 하노라
겨울에 양지바래기로 등이 따뜻한 맛과, 봄의 햇미나리를 높은 분에게 바쳤으면 하는 정성은 옛 기록에도 나온다. 위의 시조도 그것을 부연한 것이다. 그래 정성뿐이지 별거 아닌 예물이라는 뜻으로, ‘근의(芹儀, 미나리 근)’라는 용어를 써왔다.
또 ‘비(菲)’라는 나물은 순무 비슷하다고 나와 있을 뿐 정체를 모르겠으나, 그 글자에 얇다, 하잘것없다는 뜻이 있어, 이 역시 선물에 겸손한 뜻을 실어 ‘비의(菲儀)’라고 흔히 써왔다.
- 또 복숭아는 가장 생활력이 왕성한 나무요, 그 열매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유래가 있는 것이라, 어른의 생신이나 회갑 때 ‘도의(桃儀)’라고 쓰는 것은 권장하고 싶은 표현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6일 화요일
불만은 자신감의 결핍이고, 의지의 박약이다. <수필집, 에머슨, 1803~1882>
산에서 작설차를 대접받고
徐居正(서거정)
靑縢布幭拂我衣(청등포멸불아의) : 옷 벗어 푸른 끈으로 행전 동여매고
尋師去向山中歸(심사거향산중귀) : 스님 찾아 떠나 산 속을 간다.
瀟團淨几紙窓明(소단정궤지창명) : 조촐한 집 깨끗한 책상, 종이 바른 창은 밝은데
石鼎共廳松風聲(석정공청송풍성) : 돌솥 앞에서 같이 솔바람소리를 듣는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 재왈: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짧은 말로 형사 재판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계명원 역; 다만, 한 마디를 듣고도, 판결을 내려서 당사자 쌍방을 믿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子路無宿諾. 자로무숙락.
자로는 승낙할 일이면 유예하지 않았다.
[계명원 역; 자로는 본래 맡은 일은 곧 실행으로 옮겼다.]
* 장산(壯山: 우람하게 높고 큰 산) 밑에 사는 이들은 겨울철 멧돼지나 노루가 야산으로 몰려 내려오는 것을 보고 머지 않아 큰 눈이 올 것을 안다. 야생동물은 그런 것을 미리 아는 영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장산 큰 사냥꾼은 노루를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놈이 뛰쳐서 지나간 뒤로는 으레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 장구의 잘록한 부분을 조롱목이라 하듯이, 허리가 잘록한 것이 조롱이다. 그러니까 박 중에도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원래는 葫蘆甁, 마늘 호, 갈대 로, 병 병) 박은 그 생김새가 귀여워서 많이 심는데, 요것을 쪼개어 만든 조그만 바가지가 조롱박, 조금 힘들지만 꼭지에 구멍을 내서 만든 병이 호리병이고 허리가 잘록해서 조롱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5일 월요일
비열한 행위를 두려워하는 것은 용기다. 또 내키지 않는 행위를 강요받았을 때, 그것을 하지 않는 것도 용기다. <존슨, 1573~1637>
우연히 읊다
李穡(이색)
桑海眞朝暮(상해진조모) : 상전벽해도 아침저녁의 일
浮生況有涯(부생황유애) : 덧없는 인생 하물며 끝이 있음에야
陶潛方愛酒(도잠방애주) : 도잠은 술을 좋아했고
江摠未還家(강총미환가) : 강총은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네.
小雨山光活(소우산광활) : 가랑비 내려 산 빛은 살아나고
微風柳影斜(미풍류영사) : 미풍은 버들그림자를 쓸어내리네.
句回還遊意(구회환유의) : 마음을 굽혀 돌아와 놀고 싶어
獨坐賞年華(독좌상년화) : 홀로 앉아 한해의 화려한 풍경을 즐긴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
공왈: “선재! 신여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부자, 수유속, 오득이식제?”
제 경공이 말했다. “참으로 좋습니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며,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며,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어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주석(註釋); 이 경공이 다스리는 제나라는 인륜이 땅에 떨어져 있었으므로 공자님이 그 근본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 경공은 다만 지당한 말로 듣고 경의만 표했다고 한다.]
* 음력으로 3월 초사흘을 명절로 치고 삼짇날이라고 한다. 분명히 삼일인데 삼질이라니? 우리말에는 유성음 ㄴ, ㄹ, ㅁ, ㅇ 아래에 오는 ‘ㅣ’ 발음이 곧잘 ‘지’로 변한다. 누룽이-누룽지, 아궁이-아궁지, 겨레-결지, 팔굽이-팔구미-팔꿈치 등...
탈춤놀이를 산대라고 하는데, 그 방면에 한가닥 한다는 이들은 예외없이 산듸라고들 한다. 사자를 나타내는 산예가 그리 변했고, 이것을 관장하는 관청은 산대도감이라는 이름을 쓰게되었다.
* 요새 2홉들이 병 소주는 회사에서 보급시키는 잔으로 딱 일곱 잔이 난다. 둘이서는 석 잔씩 먹어도 한 잔이 남고, 셋이서 먹으면 두잔하고 한 잔, 넷이서는 두 잔씩에 하나가 무자라서 결국 한 병 더 시키게 되는 계산이라니 양수로 잔을 채우는 주당들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상술이 아닌가?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2일 금요일
용기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연대기, 타키투스, 55~120?>
동관역에서 양수하에 와 읊다
申緯(신위)
暖日恬風雨後天(난일념풍우후천) : 따뜻한 날, 바람 고요하고 비 갠 하늘
初秋那得此淸姸(초추나득차청연) : 초가을이 어찌 이렇게도 맑고 고울까
車音入滑泥爲海(거음입골니위해) : 수레소리 미끄러운 진흙길에 빠져 바다소리 같고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齊景公問政於孔子. 제경공문정어공자.
제 경공이 공자님께 정치에 대해 물었다.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 공자대왈: “군군, 신신, 부부, 자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 오강(五江)이나 이태원 왕십리 등 평소에도 국방이나 수도 경비에 임하는 고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편싸움을 벌였는데 필자가 들은 바로는 대강 이러하였다.
쌍방 합의하에 시일과 장소가 결정되면 양쪽에서 준비를 하고 진용을 짜는데 차림새가 야단스럽다. 무명 한 필을 비비 꼬아서 동앗줄 모양을 만들어가지고 머리를 감싸 양 귀를 가려 목 뒤에 동여매고 이것을 ‘벌벙거지’라고 하였다. 싸움에 앞서 양쪽 진영에서 일시에 함성을 지르는데 구호는 ‘자아’다.
사람마다 방망이 하나씩을 꽁무니에 차고 오른쪽 손목(왼손잡이면 왼손)에 폭좁은 천 한 끝을 매어 1m쯤 되게 해 늘어뜨리는데, 그 중간에 주먹만한 돌을 넣고 저 끝을 당겨서 손에 쥐면 끈은 돌이 들어서 디룽디룽하다. 그것을 머리 위로 휘두르다가 손에 쥔 한 끝을 놓으면 원심력이 작용해 돌은 멀리 날아가는데 이것을 줄팔매라 했다. 저 유명한 이스라엘 소년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맞춰 죽인 것이 이 줄팔매였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왼쪽 어깨에 매고 있는 것이 그 끈이다.
핑핑 나는 돌의 엄호를 받으며 나아간 장정들이 미리 거둬서 쌓아놓은 돌 무더기에 이르러 손팔매질을 하는데, 이것은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추기 때문에 옛날 군제에서는 석전군을 따로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 엄호를 받고 줄팔매꾼들이 돌격해 들어가면, 팔매꾼들도 뒤질세라 꽁무니의 방망이를 뽑아들고 일제히 쳐들어가 치고 막고 방망이는 뚝딱 뚝딱 서로 부딪치는 소리로 요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쪽 진이 뭉그러져 물러나면 승부가 저절로 나지만 방망이를 뺏고 빼앗기고 이제 태껸으로 차고 치고 박치기로 대결하게 되면, 양쪽 지휘관이 기를 흔들고 호각을 불어서 휴전이 되는데 양쪽에서 다시 자아, 외칠 적엔 그것을 길게 뽑아 곡조를 붙여서 지화자-가 된다. 그래서 지금도 윷판에서 모를 치고는 ‘지화자’ 하는 것이다.
군관의 눈에 들면 군인으로 출세할 길도 열린다. 이렇게 한판 붙었다가도 끝나고 나면 서로 얼싸안아 위로하고 다친 사람을 위문하며 치료해주고 술판을 벌여 즐겁게 놀았다니 살벌하기는 하나 씩씩한 행사였기 때문에 신규식 선생도 그런 풍습이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이요, 이것이 매년 정월 보름에 장정들 놀이로 성행되었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1일 목요일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강하다. <군도, 실러, 1759~1805>
회령고개
申緯(신위)
匝地群峰忙自退(잡지군봉망자퇴) : 땅이 돌려 뭇 봉우리들 뿔뿔이 물러서고
全遼嶺阨此爲雄(전료령액차위웅) : 아득한 고개와 언덕 중 이 곳이 가장 웅장하다
天垂繚白縈靑外(천수료백영청외) : 하늘엔 흰 구름 드리워 푸른 공중 밖에 얽혀있고
秋入丹砂點漆中(추입단사점칠중) : 가을은 붉은 물감에 젖어 검붉은 물속에 박혀있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하고자 할 욕
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 개욕기생, 우욕기사, 시혹야.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이 오래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란다. 그가 오래 살기를 바라고, 혹은 죽기를 바라면 그곳에서 미혹이 생긴다.
‘誠不以富, 亦祗以異.’ 」 공경할 지
‘성불이부, 역지이이.’
시경에 ‘참으로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임성삼; 역주에 뜻이 안 통한다고 하였다. 아래의 정자의 주에도 다른 것의 말이 잘 못 편집된 것이라고 하였다.]
* 한국 사람은 천성이 아주 착한 민족이라 누구를 만나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을 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두루 무고하다는 대답을 듣고는 으레 “고맙습니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 없는 제3자 “아무개가 요새 살게 됐다데, 마음을 고쳐잡더니.....” 하면, “고마운 일이야” “고마우셔라” 하는 말로 응대를 한다.
이때의 “고맙습니다”는 아무래도 상대방에게 하는 “땡큐”는 아니다. 상대에게 고맙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상의 어떤 위대한 힘, 우리를 무사하게 보호해주는 거룩한 존재에 대해 고맙다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10일 수요일
혈기에 찬 분노는 있어서 안 된다. 그러나 이(理)와 의(義)에 찬 분노는 없어서는 안 된다. <주자, 1130~1200>
가재
李滉(이황)
負石穿沙自有家(부석천사자유가) : 돌을 지고 모래 파서 스스로 집을 짓고
前行卻走足偏多(전행각주족편다) : 앞으로 가다가 도리어 뒤로 달리니 다리는 더욱 많구나.
生涯一掬山泉裏(생애일국산천리) : 한평생 산 속 샘 한번 움켜잡고서는
不問江湖水幾何(불문강호수기하) : 강호의 물이 얼마나 되는가는 묻지도 않는구나.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張問崇德, 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분별할 변
자장문숭덕, 변혹. 재왈: “주충신, 사의, 숭덕야.
자장이 물었다. “덕을 높이고, 미혹에서 판별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실과 신의를 바탕으로 삼고, 정의를 따르면 덕을 높이게 된다.
* 별마저 얼어붙은 듯한 한밤중에 “또드락 또드락 똑딱” 장단 맞춰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는 이젠 듣기 힘들게 되었다. 옷을 뜯어 다시 꿰매지을라치면 옷감살이 펴지라고 차곡차곡 접어 다듬잇돌 위에 놓고, 한 쌍씩 방망이를 갈라 쥔 다음 마주 앉아서 두드린다.
어느 출판사 사전에 보니 ‘곁방망이’라는 단어에 주를 달고, “마주 앉아 두드리는 옆에서 도와주려고 치는 방망이질”이라고 했는데, 큰일 날 소리다. 마주 앉아 두드리더라도 장단이 잘 맞아야지 자칫 잘못하다간 방망이가 튀어오르며 이마가 터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런 상황에 누굴 죽이려고 끼어든단 말인가?
곁방망이는 장정들이 무거운 목도를 멜 때, 너무 무거우면 줄 중간에다 방망이를 하나 더 끼워 넷이 메는 것을 말하는데, 몰라서 그랬겠지만 너무했다.
* 홍두깨는 지름이 10cm쯤 되고 길이가 1m나 되게 원통형으로 깎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육중한 방망이라서, “홍두깨로 소를 몬다”하면 너무 무지하게 다룬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9일 화요일
긍지는 겸허함에 싸여 있을 때 더욱 성공을 거둔다. <격언, 멜레, 1607~1685, 프랑스 작가>
퇴계
李滉(이황)
身退安愚分(신퇴안우분) : 몸은 물러나 어리석은 분수에 편하지만
學退憂暮境(학퇴우모경) : 학문이 퇴보하니 늙어 근심이 되는구나.
溪上始定居(계상시정거) : 개울가에 집을 지어
臨溪日有省(임계일유성) : 개울물소리 들으며 날마다 성찰하며 사노라.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哀公問於有若曰: 「年饑, 用不足, 如之何? 」 애공문어유약왈: “년기, 용부족, 여지하?”
애공이 유약에게 물었다. “올해 기근이 들어 나라에서 사용할 비용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有若對曰: 「盍徹乎? 」 덮을 합; 어찌 -하지 않느냐, 통할 철
유약대왈: “합철호?”
유약이 대답했다. “왜 십분의 일을 걷는 세법을 시행하지 않으십니까?”
曰: 「二, 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 왈: “이, 오유부족, 여지하기철야?”
“십분의 2를 거두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어찌 10분의 1을 거두라고 하십니까?”
對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
대왈: “백성족, 군숙여부족? 백성부족, 군숙여족?”
유약이 대답하였다. “백성이 넉넉하면 임금이 왜 부족하시겠습니까?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께서는 누구와 함께 넉넉하게 여기시겠습니까?”
* 천연산의 꿀은 한자로 밀(蜜)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흔히 맑은 청(淸)자로 표현한다. 그래서 맑은 꿀을 백청(白淸), 겨울이면 뽀얗게 엉기는 토종꿀을 석청(石淸), 대용품으로 만들어낸 것이 조청(造淸)이다.
제사지낼 때 천연의 과일을 생과(生果)라 하는 데 비해 다식이나 산자, 강정같이 인공으로만든 과자를 조과(造果)라 하는 것과 같은 착상의 말이다.
* 지금은 텔레비전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지만 전에는 얘기판이라 하여, 사랑에 모인 사람끼리 들은 대로를 옮기는 자리가 곧잘 있었다. “옛날에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로 시작해 “성공해서 잘 살고, 내일 죽어서 어제 장사지냈다더라”로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것이 기본형이다.
여기에는 많은 금기가 있어서, 호랑이 얘기를 밤에 해도 안되고, 설을 쇠고 나서 해서도 안된다. 얘기의 주인공은 열이면 열 다,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색시에게 장가든다든지 한 재산 마련한다든지 등 성공하는 것으로 매듭짓는데,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기복 심리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8일 월요일
학문이 있는 바보는 무지한 바보보다 더 바보다. <여학자, 몰리에르, 1622~1673>
고구려 4
柳得恭(유득공)
遼海歸旌數片紅(료해귀정수편홍) : 요하로 돌아가는 깃발 몇 개 붉고
湯湯薩水捲沙蟲(탕탕살수권사충) : 세차게 흐르는 살수는 수나라 군사들 쓸어버렸네.
乙支文德眞才士(을지문덕진재사) : 을지문덕은 정말 재능 있는 장군이요
倡五言語冠大東(창오언어관대동) : 오언시를 처음 지어 우리나라 으뜸이 되었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 극자성왈: “군자질이이의, 하이문위?”
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그 본질이 되어 있으면 그만이다. 어찌 외형을 꾸며야만 하는가?”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아낄 석; 아깝다
자공왈: “석호! 부자지설, 군자야. 사불급설.
자공이 말했다. “당신의 군자에 대한 말씀이 애석합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로도 이미 한 말을 쫓아가 잡을 수는 없습니다.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吳猶犬羊之吳. 」 오히려 유; -와 같다
문유질야, 질유문야. 호표지오유견양지오.”
외형은 본질과 같으며, 본질은 외형과 같습니다. 호랑이나 표범 가죽에서 털을 뽑아버린 것은 개나 양의 가죽에서 털을 뽑아놓은 것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 조는 벼나 보리처럼 몽땅 베어서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여무는 대로 이삭을 잘라서 수확한다. 그것을 모아서 곡식알을 터는데, 이놈은 귀가 질겨서 큰 탈곡기에 대어도 잘 안 털어진다. 그래서 돌에다 놓고 비비고 문지르고, 때로는 연자매 판에 깔고 그 육중한 맷돌로 깔아 뭉개어 털기도 하였다. 몹시 초조해하는 것을 보고 “조바심한다”고 하는데 ‘바심’은 타작을 뜻하는 말이니 조 털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 시골길을 가자면 콩밭에는 으레 일정 간격으로 키 커다란 수숫대가 줄맞추어 서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콩을 거뒀을 때의 포장재로 미리 함께 심어놓는다. 수수는 일찍 익으나 여무는 시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대로 낫으로 이삭을 잘라서 수확한다. 그래서 콩을 거둘 때쯤이면 수수는 이삭을 달고 있는 것이 없다.
뿌리 부분을 쳐버린 수숫대를 연속해 펴고 그 위에다 뽑은 콩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은 후 돌돌 감아서 동여매기 위해 미리 수수를 사이사이 심어 놓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얽어맨다고 하지만, 얽는 것은 사이가 뜨게 그물처럼 겯는 것이고 매는 것은 빈틈없이 하는 것이다. 보리나 벼를 베어서 뭇을 짓는 것이 묶는 일이며, 큰 덩치로 만드는 것이 동이는 것이고, 그렇게 만든 것이 ‘동이’다.
수숫대로 감싸 동을 지은 것이 ‘콩동’이다. 그것을 져다가 마당에 펴서 너는데, 볕이 쨍쨍 쬐면 꼬두리가 뒤쳐지면서 저 혼자 튄다. 그래서 제 성미를 제가 못 이겨 팔팔 뛰는 사람을 두고 “콩 튀듯 팥 튀듯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일꾼들이 도리깨로 두드려대면 콩이 몽땅 쏟아지고, 나머지를 긁어 모든 것이 콩깍지, 즉 콩을 까고 남은 것이다. 이 콩깍지는 영양가가 높아서 동물의 먹이로 적합하지만 딱딱해 날로는 먹을 수 없어서 물렁하게 삶아낸 것이 쇠죽이다.
마당에 그러모은 깍지는 콩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부피가 준다. 그래서 깍지는 콘 두동분을 얼러모아서 하나로 묶게 된다. 그러므로 덩치가 큰 사람을 보고 “어리깍짓동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5일 금요일
천재? 그런 것은 절대로 없다. 다만 공부와 방법이 존재할 뿐이다. 끊임없이 계획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로댕, 1840~1917>
묵죽 그림에 글을 짓고
鄭敍(정서)
閑餘弄筆硯(한여농필연) : 한가한 시간에 붓을 놀려
寫作一竿竹(사작일간죽) : 한 줄기 대나무를 그렸다
時於壁上看(시어벽상간) : 때때로 벽 위에 걸고 바라보니
幽姿故不俗(유자고불속) : 그윽한 자태, 속되지 않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 曰: 「去兵. 」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삼자하선?” 왈: “거병.”
자공이 물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못하게 된다면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그만둘까요?”
말씀하셨다. “군대를 포기한다.”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이자하선?” 왈: “거식, 자고개유사, 민무신불립.”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어 한 가지를 더 제거한다면, 둘 중 어떤 것을 먼저 없앨까요?”
말씀하셨다.
“식량이다. 옛부터 죽음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가 없다.”
* “깐깐오월 건들팔월”이라더니, 여름 한철의 힘든 농사를 마치고 나서 최초로 거두는 것이 참깨 농사다. 밭에서 누릇누릇해지면 베어다가 주저리를 묶어 세워 말리는데, 활짝 갠 날을 가려 홑이불을 펼쳐놓고 그 위에서 턴다. 거꾸로 들고 막대로 톡톡 두드리면 솔솔솔 쏟아지는 그 대견한 맛이라니... 오죽해야 신혼살림에 맛을 들이든지, 얘기에 정신이 팔리든지 하면 “얼마나 깨가 쏟아지냐”고 인사를 할까.
“재미가 깨가 쏟아진다.” 참으로 실감나는 표현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4일 목요일
지혜는 샘물이다. 그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강해지고 끊임없이 샘솟아 오른다. <지레지우스, 1624~1677>
물가의 정자
任璜(임황)
濯足林泉間(탁족임천간) : 숲 속 샘물에 발 씻고
悠然臥白石(유연와백석) : 유연히 깨끗한 돌에 눕는다.
夢驚幽鳥聲(몽경유조성) : 그윽한 새소리에 꿈을 깨니
細雨前山多(세우전산다) : 눈앞의 많은 산엔 가랑비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 자공문정. 재왈: “족식, 족병, 민신지의.”
자공이 정치의 요점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배부르게 할 것.
군대를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
국민이 정부를 믿도록 만들 것.”
[임성삼; 중요한 문답입니다. 공자님도 정치의 첫번째 목적이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로 이어집니다.]
* 세상에 맛있기야 천렵(川獵)국만한 것이 있으랴만 요사이는 너무 맵기만 하고 이름까지도 민물고기 매운탕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는 명예롭지 못한 유래가 있다. 군용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빼낸 구멍을 내버려두어, 석유 냄새가 밴 고기가 공급되면서 뚜껑을 열어놓고 끓이는 것이 상식화되었고, 이를 감추기 위해 턱없이 맵게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임성삼; 바다 고기 매운탕은?]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 가을이 되어 하늘이 높아지면 공기 맑고 물고 맑아 모두가 개운하다. 산에 오르면 땅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적기 때문에 멀리까지 깨끗하게 잘 보인다.
평안북도 자성이라면 압록강 상류가 만주 쪽으로 깊숙이 휘어져 들어간 곳인데 그 고장에서 넘어온 분의 말씀이다.
가을이 되면 온 동네가 날을 택해 산에 오르는데, 깎아지른 듯한 험한 지형을 허위단심 기어 올라가면 북쪽으로 앞이 탁 트이며 끝없이 내다보이는 것은 물론 만주 땅이고, 그 너머로 백두산이 보인다고 한다. 직선으로 100km이니까, 서울서 천안을 지나 조치원 정도의 거리다. 다행히 별로 기복 없는 평원이 펼쳐진 그 위로 완경사의 산자락이 펼쳐졌고 새하얀 정상이 그냥 도도록이 보일 뿐인데, 첫 인상이 하얀 노인을 뵙는 것 같아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자기도 모르게 무릎 꿇고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할 숭고한 기분에 잠겨든다고 한다.
[임성삼;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200km 떨어진 스페인 국경의 피레네 산맥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3일 수요일
조심성 있는 혀는 최대의 보물이며, 사리 판단을 할 줄 아는 혀는 최대의 기쁨이다. <헤시오도스, 기원전 8세기 경>
길을 가면서
李晬光(이수광, 1563∼1628(명종 18∼인조 6))
岸柳迎人無(안류영인무) : 언덕의 버드나무 사람을 맞아 춤추고
林鶯和客吟(림앵화객음) : 숲 속의 사람에 화답하여 노래한다.
雨晴山活態(우청산활태) : 비가 개니, 산은 자태가 살아나고
風暖草生心(풍난초생심) : 바람이 따뜻하니, 풀이 생기가 난다.
景入詩中畵(경입시중화) : 이 정경 시 속의 그림이요
泉鳴譜外琴(천명보외금) : 졸졸 흐르는 샘물은 악보 없는 거문고 소리로다
路長行不盡(노장행불진) : 길은 멀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고
西日破遙岒(서일파요겸) : 서산에 지는 해에, 먼 산봉우리 아물아물하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조선 중기 문신·실학자.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 본관은 전주(全州). 경기도 장단(長湍) 출신. 태종의 7세손으로 병조판서 희검(希儉)의 아들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85년 별시문과에 급제, 92년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종사관으로 출전했다가 패전하여 의주(義州)로 왕을 호종하고 부교리가 되었다. 그 뒤 선조와 광해군·인조의 3대에 걸쳐 이조·병조·공조 등의 판서와 대제학·대사헌 등을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인조를 공주(公州)로 호종하고 돌아와 12조의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시무책을 논하였다. 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다시 강화(江華)에 호종하였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등을 치르고 광해군 때부터 인조에 걸쳐 정치적 갈등과 어지러운 정국을 겪으면서도 강직하고 성실한 태도로 일관, 양식 있는 선비로서의 자세를 지켰다. 명(明)나라를 수차례 방문하여 사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 《속이담(續耳潭)》 등을 가지고 들어와 1614년(광해군 6) 《지봉유설(芝峰類說)》을 간행하여 한국에 천주교와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등 실학 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지봉유설》은 당시 주자학적 세계관을 지녔던 백성들에게 새로운 우주관과 인생관에 접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순천(順天) 청수서원(淸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지봉유설》 《채신잡록(采薪雜錄)》 《해경어잡편(解警語雜篇)》 《잉설여편(剩說餘篇)》 《승평지(昇平志)》 《병촉잡기(秉燭雜記)》 《찬록군서(纂錄群書)》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譖膚受之愬不行焉, 可謂遠也已矣. 」 하소연 소
자장문명. 재왈: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명야이의. 침윤지참부시지소불행언, 가위원야이의.”
자장이 총명이 어떤 것인가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이 차서 스며들 듯이 은근히 남을 헐뜯는 말이나, 상처를 다치듯이 끈질기게 호소해오는 말에도 넘어가지 않는다면 총명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총명 정도가 아니라 달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9월 2일에 일어났던 일:
- 1919년 9월 2일 64세의 강우규 의사(義士)가 신임 조선 총독에게 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짐.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그 중 경찰과 기자 2명이 이때의 부상으로 죽음. 강우규 의사는 9월 17일 친일 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심.
- 1945년 9월 2일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 호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함. 서명자는 일본 외무장관 시게마스 마로루[重光葵]. 이 사람은 1932년 윤봉길 의사에 의해 왼쪽 다리를 잃었었음.
* 옛날에는 농촌에서 집집마다 닭을 놓아 길렀다. 그들은 심심치 않을 만큼 알을 낳고 때를 알아 품에서 병아리를 까곤 하였다. 자연 그대로의 형태에서 20여 개의 알을 한꺼번에 품는데, 약 20일이면 병아리가 태어난다. 암탉을 바꾸어 두 배 안기면 약 40마리의 병아리 가족을 거느릴 수 있다.
흔히 가장 졸리운 때는 찔레꽃 필 무렵이고, 제일 고단하기는 햇병아리가 자라 볏이 나며 “삐삐이”하고 첫 울음 재울 때라고 하였다. 그 무렵부터 좀 애처롭기는 해도 그 어린 닭을 차례로 잡아서 고아먹는데, 이름하여 약병아리, 맹물에 익히기 때문에 영계백숙이라고 하며, 좀 고급으로 삼을 넣어서 고으면 삼계탕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 한식집에 가서 대구탕하고 육개장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대개는 대답을 못한다. 경상도에서는 쇠고기를 육이라 하니 육으로 개장처럼 조리한 것이 육개장, 대구탕은 개장을 대신한다는 뜻의 ‘대구탕(代狗湯)’이 본래 말이라니 결국은 같은 것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9월 2일 화요일
전쟁은 전쟁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그리고 호의는 호의를 낳고, 선행은 선행을 부른다. <평화의 호소, 에라스무스, 1466~1536>
그림에 부쳐
金得臣(김득신)
古木寒煙裏(고목한연이) : 찬 안개 속에 고목 서있고
秋山白雲邊(추산백운변) : 흰 구름 떠있는 곳에 가을 산이 있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 저무는 강에 풍랑이 일고
漁子急回航(어자급회항) : 어부는 급히 고깃배를 돌린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 사마우우왈: “인개유형제, 아독무.”
사마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은 없구나.”
子夏曰: 「商聞之矣:
자하왈: “상문지의:
자하가 말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들었다.
死生有命, 富貴在天. 사생유명, 부귀재천.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
군자경이무실, 여인공이유례. 사해지내, 개형제야. 군자하환호무형제야?”
군자가 서로 존경하며 실수가 없고,
사람들과 더불어 공손하되 예절을 지키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형제이리라.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는 것을 근심하겠는가.“
* 농촌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려 밭에 나갈 수 없으면, “게으른 놈 낮잠 자기 좋고, 부지런한 놈 일하기 좋은 날씨일세”라는 말을 한다. 사실 부지런한 사람이면 장마철에 많은 일을 한다.
절에서는 안거(安居)라 하여 여름, 겨울 한 철씩, 그 절에 적을 둔 승려들이 모두 넓은 판도방(判道房)에 모여 수련하는 모임이 있는데,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비가 올 때 외출하지 않고 정사(精舍)에 모여 수도를 하던 유풍이라고 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고 낮에 농사짓고 밤에 글 읽는 문사도 있지만, 청경우독(晴耕雨讀)이라 하여 비 안 올 때는 들일하고 장마철엔 들어앉아 글을 읽는 것이 착실한 선비의 행실로 꼽혔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
* 작년 우리나라 쌀 수확량; 3422만 섬
올해는 계속된 비로 일조량이 모자라 쌀의 수확량이 3.9% 감소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올해 예상 수확량: 3288만 섬
국내 연간 추정 소요량: 3400만 섬
UR 협상에 따라 한국이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양: 143만 섬
이 양으로 거의 수급 가능합니다.
또한 현재 누적되어 창고에 있는 재고가 842만 섬이 있다고 합니다.
9월 1일 월요일
사람은 인종이나 피부색에 의해서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다. 마음과 두뇌에 의해서 우열이 가려진다. <자유, 잉가솔, 1838~1899, 미국 법학자, 정치가>
약산동대
李惟泰(이유태)
藥石千年在(약석천년재) : 약산의 바위는 천년을 여기 있고
晴江萬里長(청강만리장) : 맑은 강은 만리 먼 길을 흘러간다.
出門一大笑(출문일대소) : 문을 나와 크게 한번 웃어보고
獨立倚斜陽(독립의사양) : 지는 해에 기대어 나 홀로 서있다
<오세주의 한시 감상실, http://osj1952.com.ne.kr/index.html>
司馬牛問君子. 子曰: 「君子不憂不懼.」 사마우문군자. 재왈: “군자불우불구.”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曰: 「不憂不懼, 斯謂之君子已乎? 」 子曰: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 (오랜 병 구; 마음 괴롭다)
왈: “불우불구, 사위지군자이호?” 재왈: “내성불구, 부하우하구?”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반성하여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데,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 새우젓, 조기젓은 없어서는 안될 조미료가 되는데, 조기 말린 굴비를 팔러 다니면서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도 모를 그것을 ‘영광굴비’라고 목청을 높여 외친다.
영광이면 전라남도 서해안이다. 조기떼는 영광에서 차차 북상하다가 연평도 근해에서 산란기를 맞아 대량으로 잡힌다. 모처럼 가정에서 사 말리려고 해도 파리가 문제라, 파리의 유충이 구더기요 꽁지벌레다. 그래서 모처럼 일을 그르쳐버리면 ‘꽁지벌레심사’라고 한다. 영광서 잡힐 무렵에는 아직 파리가 나오지 않아 깨끗하게 굴비를 말릴 수 있으므로 이렇게 말린 좋은 굴비라는게 본래 ‘영광굴비’의 뜻이다.
<오사리 잡놈들, 이종훈 지음, 한길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