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카페 들어와서 이것 저것 질문만 하려니 미안해서 모처럼 글 하나 투척합니다.
존댓말로 하면 줄줄 써지지가 않아 부득이 반말로 편하게 쓰니 가볍게 읽어 주세요.
그저께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이었어.
팔은 아프고 인생은 무료하고....
어딘가 답답한 상자 안에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누가 그 속에 가둬 둔 것도 아닌데 내가 이게 제일 안전한 줄 알고 여기 자리잡고 앉은 거지.
그게 느껴지니까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구.
“죽기 전에 진정한 사랑 한 번은 해 보고 죽어야지....”
이 나이에 이런 소리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본다는 것쯤은 알지.
그 정도로 사회적 지능이 떨어지지는 않아.
하지만, 내 깊은 마음 속엔 이런 소망이 자리하고 있지.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 거의 체념 상태가 되긴 했지만 말야.
그런데 사랑은 꼭 해 보고 싶다면서 남자는 안 만나는 게 말이 돼?
이 부분에서는 내 지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을 찾겠다면서 외식은 절대 안 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구?
주말인데 만날 남자 하나 없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현타도 오고 해서 헬스나 가려고 막 나가려는 참이었어.
작년부터 오른 쪽 팔이 많이 아파서 트레이딩도 못하고 있는 판이거든.
사실 주식하다 내 팔이 이렇게 작살이 났어.
뭐 하나에 꽂히면 멈출 줄을 모르는 성격 탓에 차트 보랴 뉴스 보랴 회사 연구하랴
하루종일 광클릭을 해댔으니 팔이 이 지경이 된거야.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픈 다음에야 병원을 찾았다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별 진전은 없고,
그 사이 스키장 다니다 갈비뼈 골절까지 입었네.
누가 와서 부딪히지 않는 한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한 쪽 팔도 못 쓰는 주제에
일주일에 반 이상을 스키장에서 살았는데,
결국 사단이 나고 말더라구.
팔을 못 짚은 대신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져 버린거야.
이러니 운동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겠어?
그래서 뼈가 붙자마자 헬스를 가기 시작했지.
그런데 정말 나는 헬스 체질이 아닌가봐.
이 재미없는 일을 매일매일 꼬박꼬박 하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존경스럽더라구.
그렇다고 정말 못 하겠다 하고 과감하게 때려 치우지도 못했어.
가서 하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때우다 오기는 했는데
이럴 바에야 몽마르뜨 공원 가서 팔 운동 기구나 돌릴 걸 싶더라구.
헬스장 가기 싫어서 한숨을 폭 쉬며 그래도 억지로 신발장을 열었지.
그런데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댄스화들이 눈에 띄더라구.
헐. 내가 이걸 왜 생각 못했지?
몇 년 전, 목디스크로 침대에서 혼자 잘 일어나지도 못하던 때,
아는 언니가 춤을 춰 보라고 권했었지.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인데, 수많은 운동 중에서 하필 춤을 권하더라구.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원에 갔는데 왈츠만 배우겠다는 내게 뜬금없이 사교부터 배워 보라는 거야.
어이가 없더라구. 일단 음악부터가 싫었으니까. 그랬더니 음악을 팝송으로 틀어 주겠다네.
소개해 준 언니 얼굴도 있고 해서 그냥 시작했어.
처음엔 스텝 옮길 때마다 몸이 쿵쿵 울리면서 방사통이 더 심해졌어. 눈물이 날 정도였지.
집에 가면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어서 일상 생활조차도 불가능했어.
그래도 그 다음 날이면 또 우리집에 와서 목을 버텨 주며 나를 일으켜 주는 그 언니 덕분에
단 하루도 안 빠지고 학원에 나갔어.
그랬더니..... !!!!
믿을 수 있어? 디스크가 사라진 거야!
우리나라 최고 전문의도 그냥 지켜 볼 수 밖에 없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편타성 손상장애 같은 건 아예 병으로 취급도 안하고 수술도 할 수 없대.
그럼 나만 죽도록 괴롭지 평생 고칠 수도 없는 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남들은 병 취급도 안 하는 그 불치병이 몇 달만에 나아 버린거야.
그래서 신나서 춤을 추러 다녔어. 콜라텍도 가고 캬바레도 가고 심지어 제주도 원정까지 갔어.
하와이에 댄스학원을 차려서 거기서 여생을 보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니까.
상상만 해도 신나더라구. 훌라가 최고인줄 아는 애들에게 지터박을 가르치고 라틴,
모던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해변 무도회 같은 것도 기획해 보면서 정말 즐거웠어.
그래서 자이브, 룸바, 왈츠, 탱고를 한꺼번에 다 끊었는데, 왜 이렇게 진전이 없는거야?
나 몸치인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만날 헷갈리더라구.
이게 저거 같고 저게 이거 같고 말이야. 몇 달 다니다 코로나가 더 극성을 부리기도 하고,
잘 못추니까 재미도 점점 없고 해서 그만 둬 버렸어.
현관 신발장 앞에서 그 몇 초 사이에 그동안 일어난 일들이 영화 스크린처럼 펼쳐 지더라구.
난 운동 가는 거 포기하고 콜라텍 검색을 시작했어. 사즐모 카페에 문의도 하고 말야.
자주 다녀야 하니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찾아야 했어. 검색 결과로는 모 콜라텍이 가장 가까웠지만
사즐모 회원들은 더 가까운 데도 알고 있을 것 같더라구.
그래서 질문을 두 번이나 했는데 한 시간 째 답글이 안 달리는 거야. 아마 없나봐.
결국 내가 검색한 콜라텍으로 출동했어. 춤을 권한 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어.
얼른 갔다가 얼른 오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싶어 총알같이 튀어 나갔어. 댄스복도 안 챙겨 나갔어.
춤도 못 추는 게 옷만 알레마나 입으면 뭐 하겠어?
평소에 잘 입는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입고 그냥 냅다 달려갔지.
아담한 콜라텍이었지만 다행히 사람은 꽤 있더라구.
처음 춤을 청하는 분께 몇 년만에 와서 잘 못출 건데 괜찮으시냐고 여쭤 봤어.
그랬더니 그냥 가 버리는 거야. 헐. 약간 황당했어.
그런데 이번엔 키도 크고 호남형의 멀끔한 분이 오시더라구.
또 몇 년만이다 괜찮으시냐 양해를 구했는데 괜찮다며 플로어로 에스코트를 하시더라구.
근데 나가 보니 처음 그 분이 기다리고 계시네. 순간 너무 당황했어.
가타부타 말도 없이 플로어로 나가 버리시면 어떡해? 난 누구 아는 사람 발견해서 가시는 줄 알았잖아.
다행히 처음 그 분이 둘이 추라고 제스처를 하시는 바람에 미스터 멀끔과 스텝을 밟기 시작했어.
블루스라서 그냥 리드에 따르기만 하면 됐어.
지루박도 나왔는데 처음엔 버벅댔지만 어느 정도 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듬이 타지더라구.
미스터 멀끔과 한 한 시간 정도 추다 보니 정말 운동이 되는 거야.
그런데 사람 맘이 정말 간사한 게 이왕이면 호감이 좀 가는 사람이랑 춰 봤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구.
그래서 이 곡까지만 출게요. 하고 말씀 드렸지.
운동은 이만하면 충분히 한 거 같고 이왕 온 김에 설렘도 살짝 느끼고 싶다는 앙큼한 생각이 들더라구.
미스터 멀끔은 댄스 강사나 제비가 아닐까 싶게 비주얼도 준수하고 춤도 잘 가르쳐 줬어.
나이도 젊은 편이고 말야. 그런데 전혀 내 스탈이 아닌거야. 아무 느낌도 없어.
본인은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너무 가르치려고 드니 살짝 짜증도 나더라구.
배우고 싶으면 학원 가서 배우면 되지 플로어에서 강습은 사실 좀 민망하거든.
내가 전혀 교습을 안 받은 사람도 아니고 말야. 그래도 그 정도면 첫 출발치고는 아주 좋은 편이었어.
한 시간 쯤 풀로 달리고 나니 갈증이 좀 나더라구. 그래서 음료수를 마시러 식당에 들어갔지.
그랬더니 음료를 채 마시기도 전에 부킹언니가 따라 와서 가재. 춤을 아주 잘 추시는 분이라면서....
난 춤 거절 정말 왠만하면 안 해. 일단 세 곡은 춰. 신청한 사람 민망하잖아.
여자들이 자꾸 거절하고 그러면 얼마나 자신감 떨어지겠어?
정말 에지간하지 않은 이상 나는 다 추는 편이야. 딱 한 번 정말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거절한 적은 있었어.
눈빛이 너무 무서웠거든.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살인자의 눈빛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저런 눈빛이겠구나
싶을 정도였어. 너무 오래 춰서 쉬는 도중에 신청하는 경우도 어쩔 수 없이 거절은 해.
남 생각만 하다가 플로어에서 쓰러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부킹언니 통해서 신청을 했다?
백프로 오케이지. 그만큼 정성을 들여 신청을 했는데 거절을 할 이유가 없잖아.
부킹언니도 살아야 하구.
나가 보니 방금 전 미스터 멀끔보다는 최소 열 살 이상 많으시고 키도 그리 크지 않은 분이 서 계셨어
얼굴은 조명 아래서 봐도 하얗다기 보다는 구리빛에 가까운 것 같았고, 대머리는 아니지만
이마선이 살짝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보이더군. 춤은? 초보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몇 년 전 열심히 여기 저기 다닌 짠밥으로는 상당한 실력이신 것 같았어.
그리고 그 분은
오른 팔을 내 허리 밑으로 대는 동작을 할 때 뭔가 부자연스러운 걸 눈치채시더라구.
“사실은 팔을 좀 고치고 싶어서 왔어요. 오른 팔을 못 쓰거든요.”
했더니 측은한 마음이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 보시며
“신은 공평하다더니.... 이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고 게다가 젊기까지 한데 팔을 못쓰다니.... ”
하시는거야. 내가 장애인인줄 아신 건지, 아니면 그냥 하신 말씀인지는 나도 몰라.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느껴지더라구.
그 때부터야. 분명히 환갑은 넘겼을 그 분이 켈리맥주 선전하는 손석구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사실 많이 닮기도 했어. 눈치 못 채게 살짝 살짝 훔쳐 봤는데 젊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되더라구.
젊었을 때 딱 손석구처럼 생기셨겠구나 싶으니 괜히 서글프기까지 하더라구.
“아 왜 내 눈치를 봐요?”
하고 바로 돌직구를 던지시길래
“젊었을 때 배우 같으셨겠다 싶어서 좀 쳐다 봤어요.”
하고 나도 솔직히 말씀드렸지.
“지금은 아니고?”
헐. 욕심도 많으시네. 설마 그 때 그 시절의 비주얼과 같기를 바라시는 건지....
거짓말 못하는 내가 대답이 없자 그 분은 웃으시며
“배우는요.... 못생겼었어.”
하시는 거야.
뭐든지 곧이 곧대로 듣는 난 진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럼 나이 들면서 점점 멋있어진거네요.”
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았어.
손석구 판박이인데 젊은 시절이 찬란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워낙 잘 맞춰 주셔서 춤도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고, 약간의 설렘도 있어서 더 바랄게 없었지만,
팔이 아무래도 더는 못견딜 것 같아
이 곡까지만 출게요.
했어.
뭘 마시자 먹자 귀찮게 안 하시고, 내일 또 오라고 하시네.
올 수 있으면 올게요.
하고 얼른 나왔어.
두근두근 심장이 막 뛰더라구. 얼마만이야 내 심장이 뛰는 걸 마지막으로 느낀 날이?
콜드브루 많이 마셔서 심장 벌벌 떨린 날 말고 말이야.
나가야 되서 여기까지만 씁니다. 사즐모 카페 다시 돌아오니 정말 즐겁네요. 모두 즐댄하세요. ^^
@제주 철이 ㅎㅎㅎ
니 맞지 싶다
@잠 꾸러기( 부산고문) 고객님들 여기서 이러심 안됩니다 ㅋㅋㅋㅋ
@춤추는 별 제주 친구 둘중에
분명히 한명 이지 싶습니다
제주철이 아니면
한라팬더
@잠 꾸러기( 부산고문) 농담이신줄 알았는데 진짜인가봐요. 금성무와 우리나라 영화배우 고수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두 분 섞어서 나이든 모습 만들면 아마 그 제주도 영화배우 아저씨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라면 제주도 한 번 더 가 볼 옹의 있습니다. ^^
@춤추는 별 ㅎㅎㅎ
손석구가 누군가 싶어
검색 해 봤어요
연속극 거의 안 봐서그런지
잘 몰으는 인물 이던데
손석구가 연예인 이세요?
@잠 꾸러기( 부산고문) 네 이 분입니다.
이렇게 재미난 글을 읽고 댓글을 안 달고 추천도 안 누르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아 댓글을 달아 봅니다.
진짜 사즐모카페엔 숨고(숨은 고수)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점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구요,
불편하신 팔도 얼른 완쾌되셔서 좋아하시는 댄스도 맘껏 하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손석구씨가 누군지도 검색해서 알게 되었고, 또 몽마르뜨 공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었답니다.
재미있다고 해 주시니 계속 쓰고 싶네요. ^^ 쾌유를 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팔 나으면 몽마르뜨 공원 잔디에서 라틴 연습도 하고 잼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짜 손석구씨와 함께라면 더 할나위 없구요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니 중노년 웹소설을 써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요.
작가님 댄스입문 부터 즐댄하신 경험담 까지~
주욱 읽어나갔네요!! 누구나 손석구와 한춤을 꿈꾸지요
아마도~댄스 실력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마음에 남지요
잘보고 감사하며 별처럼 춤추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언제건..
맞습니다. 팔이 성치않다는 걸 알아채고 걱정해 주신 그 대목부터 상대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니 팔 아프거나 말거나 한다면 진짜 손석구라도 즐댄하기 어렵겠죠. 저도 그렇게 배려심있는 상대가 되고 싶네요.
최고
작가가 게시글을 올리고
회원 댓글이 많이 올라오면
신바람이 나지요.
춤추는별님 본문글도 재미나고
댓글들도 다들 유괘하네요.
댓글주신 우리님들 멋지세요~
네 너무 신나고 행복합니다. 댄스도 다시 시작하고 글도 쓰게 되어서요. 이 두 가지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가봐요. 오늘까지 만들어야 하는 영상이 있어서 지금 영상편집 중인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행복하고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그런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서 같이 댄스를 즐길 수 있다면 최고의 인생이 되겠네요. 사즐모 회원분들 정말 따뜻하고 유머감각 있으시고 멋지십니다. ^^ 등실이 방장님 감사합니다.
@춤추는 별 네에 시간날때 가끔씩
글 올려 주세요
별님 고마워요~~~
반갑구요~~~
그래서 주식은 수익보고 계신가요?
글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 같으셔요~
앞으로도 즐댄으로 건강하세요...^^
수익 본 건 다 매도했구요^^ 몇 종목 좀 물려 있어요. 10%자동매도 걸어 놓고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컬투님도 건강하시고 행운 가득하시길요.
와우! 제가 직접 현장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좋은 글입니다.
그렇지요.감성이 없는 춤은 햇빛 없는 대낮이요,와인 없는 이태리 점심식사 입니다.
맞아요. 이왕 추는 거 느낌도 좀 있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식사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와인이 곁들여지면 더 좋은 것처럼요.
글이 길어도 잼나게
읽게 되네요
춤추는 별님 팬이 되겠요.ㅎ
요즘 눈팅만 햇는데~~~ㅋ
다음에 또 봐요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신나고 힘이 납니다. 자주 뵀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