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늑대란 단어에 집어 든, 소설이다. 늑대는 나에게는 어릴 적,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호랑이나 범이란 말도 있지만, 구슬치기하고 놀 때나 범이 되는 규칙이 있다. 범이 되어 남의 구슬을 마구 잡아가는 형들이 미웠다. 호랑이는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50-90m 정도 구릉지의 농촌 마을에는 상상이 안 되는 단어이지만, 늑대는 작은 고개를 넘어 와, 우는 아이를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공갈에 맑은 콧물이 흘러나오는 꼬마인 나에게는 한없이 무섭던 단어다. 토담집 툇마루에서 졸다 보면 바깥마당에 늘, 늑대가 와서 날 물어가려고 넘실넘실 노리고 본다. 놀라 소리치며 방으로 넘어가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다리는 꼼짝달싹, 못 하다 늑떼다! 외마디로 잠꼬대하면 늘, 아가! 아가! 하고 깨우던 할머니의 목소리에 아, 내가 꿈을 꿨구나! 안도감에 방으로 들어간 무서운 단어가 늑대다.
늑대!, 늑대! 소리에 “늑대란 말에 놀란 모양”이라고? 청심환을 수저에 개어 먹이고 잠을 재우면서, 이제 늑대가 물어간다는 “말을 삼가야겠다고” 어른들이 두런두런하는 말이 들린다. 그다음에, 말 안듣고 제맘대로 하는 나를 겁주는 단어는 “말을 안 들으면, 붉은 장삼을 두른 빨간 중이 바랑에 넣어 간다”로 바뀌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인지라 스님들도 탁발이 많았다. 이 빨간 중이 바랑에 넣어간다는 공갈은 약발이 크지 않았는지, 계속 어겨대는 “미운 다섯”에서 여섯 살로 넘어 들어갔고, 그다음부터는 동네 고샅으로 뒷산으로 앞 구례, 도랑으로 놀이 걸이가 너무 많아서 밥 먹으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심리를 다룬 책으로 참으로 책장이 넘어가질 않아서 몇 주를 가지고 통근 기차간에서 읽다, 넘기기를 반복한 책이다. 무대는 2차대전이 끝난 발트해가 접한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지금은 소련 땅인 ‘칼린그라드’란 땅이 있다. 이 ‘칼린그라드’는 독일 땅이었는데 전승국 소련이 폴란드에서 떼어 가, 소련의 항구로 쓰는 섬, 같은 땅이다. 본래 이름은 ‘동프로이센인’데, 1차대전이 끝나고 섬 같은 월경지 독일 딸이었다. 1차대전은 우리는 ‘발발 원인’을 자세히 알일 도 없었고, 그냥 대충 짐작했지만, 최근에 읽고 있는 ‘Henry Kissinger’의 diplomacy에 의하면 4국의 황실 간의 전쟁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독일 황제, 러시아 황제는 모두 소멸하거나, 타도되었고, 영국 황제만 현재 존립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승전국 러시아가 이 ‘동프로이션’을 점령할 당시의 핍박을 받는 독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아무리 전쟁 통이라도 아이에겐 반듯이 가르칠 교훈이 있다. 너의 조국은 어디이고, 너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이 무엇이고, 조부모와 형제의 이름은 무엇이며, 너는 몇 형제의 몇째라는 말과 너의 고향 주소는 어디인가이다. 그러면 전쟁이 끝나고 반듯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굶어서 죽어가는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이 말이 내게는 가장 남는 말이다. 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먹을 것을, 찾으려 집을 나서고 감자 껍질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와 물에 물켜서 말리어, 죽을 쒸어 우는 자식을 먹이는 대목은 감동이었다.
수많은 쪽글의 조합이 된 책이라서 이야깃거리 전개가 짜증이 난다. 그때그때의 전쟁 참상과 필자의 감정을 그린 책으로 전쟁이 여자와 어린이에게 추위와 기아에 얼마나, 고생하는가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게다가 독일어를 하는 소년·소녀들이 인근 리투아니아로 탈출해서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과정은 히틀러의 만행으로 독일인 임을 숨기고 러시아인, 리투아니아인 척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가는 과정은 눈물 연속이다. 숲과 들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독일 아이 ‘레나테’? 혹은 리투아니아 아이 ‘마리테’? 나는 잘 모르겠다.
동프로이센은 칸트가 즐겨 산책하던 유적‘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하나밖에 남은 것이 없다. 이제 동프로이센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여기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억도 모두 먼지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그곳에 살았던 독일인은 죽거나 독일로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가까운 리투아니아로 떠나야 했다. 지금 이곳은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땅이 되어 유럽연합 내에 덩그러니 주저앉아서 군사적 위협 거리로 여겨질 뿐이다.
동프로이센에서 잊힌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백린탄이 쓰였다는 제2차대전 ‘쾨니히스베르크’ 전투 중 많은 사람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고 그중에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어린아이도 있었다. 전쟁은 흔히 전장에 나가서 싸운 어른들만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전쟁으로 희생당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총을 들고 싸우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들도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이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내 이름은 마리테’이다. 독일 소녀 ‘마리테’가 생존을 위해 ‘마리테’라는 리투아니아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 책은 암울하고 슬프고 위태롭다. 소설의 겨울 풍경처럼 주인공들은 눈 덮인 나뭇가지에서 언제라도 떨어질 듯 달려드는 눈송이처럼 위태위태하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고 만다. 그들이 과연 다시 만사 기쁨의 포옹을 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하지만, 작가는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참으로 불친절한 사람이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필자 ‘슐레피카스’는 시와 같은 언어로 그 당시의 암울하고 불행한 시절을 그려 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전체가 시이자 소설이다.
번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펭귄 인형 하나를 들고 울면서 국경을 넘던 아이가 생각난단다.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위로가 될까? 다만 더 이상 아이들이 그런 고통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번역자는 쓰고 있다. (동족상잔인 ‘육이오 사변’으로 내가 유소년 시절엔 우리 동네, 주변에 고아가 넘쳤다. 고아원이 3개나 들어섰다. 고아원 아이들은 나이가 몇 살인지도 부모가 누구인지도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나보다 둬-세 살은 위인데 국민핵교 같은 반이고, 사납고 나이가 들어 보이고, 떼로 덤비기 때문에 여간 고약하지 않아서, 그들을 피해서 다니거나 우리도 동네 아이끼리 떼로 다녀야 했다. 우리나라도 불과 얼마 전에, 전쟁고아들이 득실대던 나라였다) 번역자 ‘서진석’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에스토니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소설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24.01.15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암비다스 슐레피카스 지음
서진석 옮김
양철북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