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이 교과서이고, 성경이 기준입니다.
교회에서는 늘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은 믿음을 근거로 하는 행동입니다.
눈 게슴츠레하게 뜨고 흐느적거리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주실 줄로 믿습니다!”, “될 줄로 믿습니다!” 하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아서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일이면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경건하게 드리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는 예배 드릴 사람다워야 하고,
예배를 드린 다음에는 예배 드린 사람다워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벨론에서 어떤 일과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럼 상상해 보십시다.
그들은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집어넣는다는 위협 앞에서도
전혀 요동하지 않을 정도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믿음으로 평소에는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남보다 출세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편 자기 윗선에 뇌물도 제공하고,
또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중장부를 작성하면서 지냈겠습니까?
그렇게는 상상되지 않습니다.
풀무 불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은 평소 생활에도 올곧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풀무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맨 정신’으로는 차마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기 싫어도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는 줄 알면 하나님의 뜻에 맞춰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을 높이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한없이 인정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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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대의 일입니다.
러시아를 빛낸 최고의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기념상 도안을 공모했습니다.
수많은 응모작이 있었는데,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1등이 결정된 작품이 있었습니다.
스탈린이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심취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는 누가 뭐래도 스탈린이 기준입니다.
스탈린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처신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그런 믿음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만 나타납니다.
믿음과 사랑, 이 두 단어가 우리의 ‘등록상표’입니다.
- 강학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