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15:21-28, 요절:28)
서 론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를 즉시 응답하지 않고 시험해 보는 일도 있다. 이것은 믿음이 크냐, 적으냐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이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하여 크게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1대지: 부르짖어도 대답을 아니하심 (21-23)
응답이라는 것은 그 즉시에 없다고 기도를 중지한다든지 낙심을 한다는 것은 참된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응답이 없을 때에 더 간절히 구하는 것은 가장 주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무엇을 요청할때에 빨리 주지를 못했다 하드래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줄줄 믿는 것은 자기를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이와같이 주님께서도 큰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받을 사람이 끝까지 변치않고 나가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사 30:18를 보면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응답지 않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 끝까지 참는 것을 보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2대지: 시험을 해 보심 (24-27)
이 시험은 겸손한 자를 찾기 위한 시험이다. 주께서 택한 자를 시험해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변함이 있나, 없나 보자는 거요, 둘째: 겸손하나, 겸손하지 않나보자는 것이요, 셋째: 낙심하지 않나 보자는 것이요 또는 큰 기대를 가졌나, 가지지않았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이 있는 자는 변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낙심하지도 않고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대로 맏는 다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또는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서는 감사할 것 뿐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3대지: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심 (28)
주님께서 어느 사도에게도 네 믿음이 적다고 하셨지만 이 여자에게는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다. 믿음의 위대성은 주께서 체험할때에 오히려 감사하는 자라면 큰 믿음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다 주께서 시럼을 해보고 그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되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신앙에는 시험을 거친 다음에 가서야 큰 믿음이 되는 것이다. 믿음에는 적은 믿음이 있고 큰 믿음이 있는 것이니 적은 믿음은 주께서 시험을 해볼때에 마음이 크다는 것은 아무리 시험을 해보아도 오히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다.
결 론
믿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믿음이다. 많고 많은 사람이 거룩한 옷을 입고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지만 그 무리는 다 책망을 받고 버림을 받았는데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받은 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일이라고 본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의식이나 도덕이나 교리나 신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와도 믿음으로 이기고 나가는 자가 될 때에 이것이 주앞에 설수 있는 믿음이라고 본다. 가나안 여인이 주님앞에 나와서 이 삼차나 시험을 해 보아도 주여 옳소이다 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위대한 신앙의 본질이 된다. 왜냐하면 죄를 진 인간이죽어야 마땅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불평도 둘수가 없다. 무조건 주여 옳소이다 하는 신앙이라야 주님은 그 믿음위에 축복하시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의 믿음
(마16:16-20,요절:16)
서 론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베드로의 믿음을 비롯하여 시작된 교회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은 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수 있을 것이다. 이제 베드로의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다.
1대지: 하나님께로 받은 믿음 (16-17)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준 믿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복있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르친 것도 아니요 스스로 연구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알게 해 주므로 믿는 것이 산 믿음이라는 것이다.(마 13:11) 믿음은 택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신의 역사로 만이 믿게 된다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완전한 표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큰 회석이 있을 적에 입장권이 있어야만 들어가는데는 그 입장권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준 믿음의 표를 가진 자라야 들어갈수 있게 될 것이다. (마 11:27)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잃은 양을 찾는 역사에 한 표적이 되는 것이니 택한 자외에는 믿을수가 없다는 것이 사도저인 신앙이다. (행 13:48)
2대지: 마귀를 이기는 믿음 (18)
믿음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약 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의 권세아래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이기고 벗어나도록 하는 동시에 완전히 이땅에서 마귀 권세를 이기므로써 그리스도ㅢ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승리라는 것이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받게 되므로 사망의 권세를 벗어나는 것이요,둘째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므로 이땅에 마귀 세력을 완전히 없애고 성도로 만이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겠다는 예언을 믿고 순종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베드로를 들어 쓰므로 시작된 교회가 세계적인 대 확장을 보았고 예수님의 완전 계시인 계시록의 말씀으로써 종말의 역사가 있으므로 완전승리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죽은 영이 살아나므로써 교회가 서게 되고 죽은 몸의부활과 산 몸의 변화가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대지: 천국의 열쇠를 줌 (19)
이것은 믿음으로 만이 천국에 들어가되 베드로에게 천국 복음의 총 책임자로 세운 것이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진리 운동의 열쇠를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는 역사를 개척할 때에 베드로에게 묵시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행 10:14-16) 이방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는 일을 베드로를 통하여 시작했다.(행 10:44-48) 하나님은 언제나 시대적인 역사를 할적에 대표적인 사람에게 주권을 맡기는 것이다. 이 주권이라는 것은 복음의 주권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총을 받고 천국에 가는 복음 운동이다. 그러므로 예수행적을 기록하는 자들은 목적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요 20:30-3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다 영생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영생하는 말씀이라고 한다 (요 6:68) 이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눅 24:47-48)
결 론
베드로의 신앙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니 이 믿음을 비롯하여 겨자씨 한 알이 온 밭을 덮는 나무가 되듯이 베드로의 마음속에 시작된 믿음의 씨가 금일에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룬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한 번 한 사람에게 오므로 그가 믿고 나가 증거할때에 그대로 믿으면 꼭같이 죄 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통하여 이루는 회개 운동은 온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중생의 은혜를 받으므로 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십자가를 강조하심
(마16:21-28, 요절:24)
<서 론>
주님께서는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때에 이것을 면키 위하여 말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십자가를 강조하였다. 십자가가 없이는 영광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십자가를 통하므로 만이 내 제자가 되리라고 십자가를 강조하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대지: 베드로를 책망하심 (21-23)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해서 제 삼일에 살아야 될 것을 제자들에게 강하게 말씀할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이런 일이 결코 주님께미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청을 했다. 주님은 베드로를 보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을 하시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사는 것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인데 이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넘어지는 것 같지만 십자가를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은 넘어지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볼때에 실패같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인간들은 일시 자기 안락을 위하여 간사한 계획을 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볼 때 어리석은 사람같으나 자기가 십자가에 죽으므로 하나님이 일을 성취하는 것을 말할 때에 제자들은 크게 근심하게 되었다. (마 17:22-23)
2대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심 (24)
십자가라는 것은 형벌중에 가장 무서운 형벌이다. 손과 발에 못박혀 애를 쓰리만큼 쓰고 피가 빠지리 만큼 빠져서 죽는 것이 십자가이다. 이것을 지고 가신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너희도 이것을 지라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라야 왕권을 받기 때문이요 둘째는 목숨을 바치고 싸우지 않고는 진리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요 셋째는 목숨을 바치는 자가 아니고는 참된 사람이라고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성을 하여도 또는 충성을 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왕권을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3대지: 재림시에 행한대로 갚아주기 때문이다. (25-28)
주님께서 초림의 주로 오셔서는 만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놓으신 것은 누구든지 그 일을 위하여 싸우라는 것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이요, 다시 오실 때는 끝까지 싸워서 승리한 자에게 일한대로 갚아 주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단의 세력을 들어서 종들을 대적케 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나,지지 않나, 보자는 모략적인 방법이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요 누구든지 십자가를 진대로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므로 왕권을 받는 동시에 누구든지 그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었고, 십자가를 증거하는 종들이 주기까지 충성을 다하므로 그 종들은 왕권을 받는 동시에 그 전도를 받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 동시에 희생의 종교요 희생의 종교인 동시에 세계통일의 왕국을 이룰 종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자기만 지신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라고 강조하신 것은 참된 사랑은 목숨을 바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요 목숨을 바치는 것이 없이는 아무런 것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택한 자를 위한 천사의 역사
(마18: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소자라도 택한 자라면 저희 천사가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역사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은 세상에서 사는 생활의 전체를 하늘에서 천사가 맡아서 도와 주기도 하고, 그의 되어지는 모든 일을 간섭하되 상받을 일이나 책망받을 일을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택한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서 일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앞에 가서 쌓여지는데 이것을 위하여 천사는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인간들이 볼 때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택한 자녀라면 하늘에서는 그를 위하여 천사들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정부가 아무리 세밀하게 국민들을 다스린다고 하여도 하늘 보좌 앞에서 택한 자를 위하여 다스리는 것 처럼 세밀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아무리 강한 나라의 정부라도 시민 한 사람에 경찰 하나씩 두고 살피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 한 사람에 천사를 하나씩 세워서 보살피게 하신다. 이제 택한 자를 위하여 천사가 역사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1. 진리의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역사함 (행 10:3-6)
택한자를 위하여 역사하는 천사는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 그 시대의 진리를 따라 가도록 지시하고 인도한다 구약시대에 한 민족적인 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확장시키고자 했을 때에 몽매한 인간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고도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전했었다. 그러므로 하늘의 천사는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 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역사했던 것이다. 만일 천사의 역사가 없었다면 이방의 전도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사가 고넬료의 가정에 나타나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하는 시몬을 청하여 생명의 말씀을 받으라고 지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받게 되고 그 때부터 이방 땅에 전도의 문이 열려 오늘날 세계 열방에 복음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사도요한에게 시대적인 비밀을 알려 주기 위하여 천사가 지시한 일도 있다. (계 1:1, 22:6)
2. 말씀 전하는 종을 도와주기 위하여 역사함 (행5:19)
하늘의 천사들은 각각 자기가 맡아 보호하고 있는 종이 있는데, 그 종이 위험한 일을 당할 때에는 와서 도와주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이다. 소위 대제사장들이 사도들을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옥에 가두었을 때에 천사가 와서 옥문을 열고 이끌어 내어,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사는 하늘에서 마귀와 싸우는 일도 하고 있다 (계12:7).
마귀는 종들이 일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권리를 가졌고, 천사는 일하는 종들을 도와줄 권리를 가졌다. ㄱ러므로 누구든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라면 주의 천사가 도와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누구든지 천사의 보호가 없이는 마귀와 싸우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3. 영혼을 잘 받들어 주기 위하여 역사함 (눅16:22)
천사는 택한 자가 죽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도 있고, 죽을 때에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받들어 갈 책임도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택한 자는 세상을 떠날 때에 그의 천사가 와서 그 영혼을 잘 받들어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사에게 달렸다고 본다. 천사가 보호하면 위험한 곳에서라도 죽지 않는 것이요, 천사가 그 영혼을 데리고 가면 어디서든지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죽고, 사는 것을 문제시 할 필요가 없고 날마다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할 것 뿐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택한 자를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4. 행하는 일을 하늘에 쌓아두기 위하여 역사함 (마18:10)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과거에 자기가 했던 일을 다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택한 자를 맡은 천사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일을 모두 간섭하며, 그 상을 하나도 잃지 않도록 하늘에 쌓아두는 역사를 하고 있다. 택한 사람이 날마다 하는 일이 자기 이름이 있는 생명 책에 기록되는 것은 택한 자를 맡은 천사의 활동이 있으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가 매일 같이 사는 생활의 전부는 하늘에 상급으로 쌓여지게 된다. 그리고 천사는 자기가 맡은 사람의 계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더욱 기뻐하는 것이다. 슥3:1-5에 하나님의 종에게 사단의 피해가 있었지만 정한 관을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가 같이 했다는 것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종에게는 천사가 항상 받들어 섬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한 말이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 시험을 이긴 다음에 가서야 천사가 수종 들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시험을 통과해야만 천사가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4:11).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사는데 있어서 택한 사람에게는 천사의 역사가 항상 같이하므로 바른 길을 가게 되고, 원수를 이기게 되고, 완전한 왕권을 받는데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늘의 천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택한 자를 꾀어 보는 마귀도 허락하고 도와주는 천사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택한 자를 꾀어보는 일도 하시고,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도 있게 하셔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마귀가 시험하는 것도 다 상급을 받는 조건이 되게 하며, 천사가 수종드는 일을 하게 해서 영광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땅위에서 합심할 일과 하늘의 응답
(마18:15-20)
기독교는 하늘의 응답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모든일이 좌우되는 것이다. 응답이 있으므로 승리요 응답이 없으므로 부패를 가져 오는 것이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요 죽을 죄인들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사명이니 하늘에서 응답을 나리는 교회가 될려면 어떠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수 있다.
1. 권고가 있어야 한다 (15)
우리는 죄를 용납하는 것도 불법이요 죄를 범하는 자를 무조건 버리는 것도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싸우는 것이 합법적인 교회이다. 그러면 죄를 용납하지도 말고 또는 범죄자를 멸시하지도 말고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속죄의 법이 없다면 권고할 필요가 없겠지만 얼마든지 죄를 사해 주는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는 항상 권고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형제가 실수가 있을 적에 그 사람을 조용히 권고하지 않고 그 죄과를 폭로시키어서 악선전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마귀 편에서 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교회에 들어 올 때에 이것을 막는 방법은 은밀히 들어오는 죄를 은밀히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은밀히 들어오는 죄의 역사를 은밀히 말살시켜 없애는 방침을 하지 않고 떠들며 광포하는 것은 마귀를 더 청해 들이는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할때에 마귀는 언제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눈물겨운 권고가 없이 남의 죄과를 함부로 대중앞에 폭로한다는 그 자체가 책임을 질 일이 된다. 왜냐하면 교회를 소란케 한 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죄, 형제의 믿음을 손상케 한 죄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합심된 교회가 될려면 죄를 두려워 하는 동시에 죄의 세력이 발동을 못 하도록 하는 방침은 개인 방문으로 간곡히 권고해서 교회으 덕이 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인 방문의 권고를 힘써야만 될 것이다.
2. 성별이 있어야 한다 (16-18)
성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만 집결한 것을 가르친 것 보다도 거룩한 사랑으로 성별되어야 한다. 거룩한 사랑이라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를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형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짐짖 진리를 대적할 때는 성별시켜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회개할 일을 회개치 않고 덮어 놓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을 하데 섞는 것과 같으므로 교회를 망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죄를 위하여 피 흘린 십자가의 사랑이니 죄를 회개치 않는 자에게 그 사랑은 하 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랑해 준다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죄를 용납할 수 없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롼전 성결을 목적한 십자가이니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성결이요 적은 죄라도 회개치 않으면 정죄를 하는 것이다. 죄를 없이 하는 방법이 십자가의 승리며 완전 성결을 이루는 것이 십자가의 권능의 역사이다.
3. 합심 기도가 있어야 한다 (19-20)
기도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에서 합심이 될 때에 그 기도는 죽시로 응답이 나리는 것이요 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합심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주님 다시 올때가지 이루어진다. 이 땅에 합심 기도의 힘이 아니고는 하늘의 응답이 나릴수가 없다. 왜냐하면 합심이 없이는 응답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주고 저사람은 저렇게도 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를 이루는 것이 못되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라도 합심이 되면 응답이 나리는 것이다.
결 론
이 땅에서 사는 인간은 아무리 지렁이 같은 인간들이라도 하늘의 응답을 받을 때에는 새 타작기가 될 수 있다. 어리석어도 지혜를 응답하고 약해도 능력을 응답하고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같이 응답을 나리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중에 큰 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는 일이요 죄중에 큰 죄는 남의 죄를 용서할줄 모르고 남을 압박하는 죌 일 것이다.
합심된 교회가 되자
(마18:15-20)
서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의 피로산 교회에 대하여 요구한 바가 합심이라고 보게 된다. 만일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라도 합심이 없으면 주님은 떠나시고 두세사람이라도 합심된 교회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교회는 주님이 떠나면 아무 필요 없는 원두막같이 빈 깍지만 있는 교회일 것이다. 이제 합심된 교회가 될려면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범죄한 형제를 아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15)
주님은 범죄한 자녀를 위하여 은밀히 하늘에서 고요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주님이시니 땅에 있는 교회도 그와같은 방침을 위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없이 형제의 단점을 대중앞에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사탄을 청해드리는 연락이 될 것이다.
2. 불의한 자를 용납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17)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니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짐짓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니 교회에서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분자가 있음으로 합심된 교회가 되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3. 교회는 본부가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것이니 하늘에서 원하는 뜻은 땅에서도 행해야만 될 것이다(18)
만일 어떤교회가 하늘본부와 연락이 없는 결제가 된다면 이것은 사탄의 회가 될 것이다. 왜냐면 본부에 원치않는 것을 행하는 단체는 본부와 대적이 되기 대문이다.
4. 주의 이름으로만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20)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전부가 되는 것 뿐이다. 왜냐면 하나님앞에는 예수의 이름이 없이는 기도도 연보도 사업도 하 등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 너그러이 용서하는 교회가 되어야 될것(22)
교회는 죄의권세 잡은 마귀오 대결하여 싸우는 기관이니 너그러히 형제를 용서함이 없다면 교회는 이땅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운 목적은 완전한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은 아니다. 죄인을 부러 완전케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니 용서가 없이는 교회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세계인류가 한마음 뜻으로 살수 있는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교회를 세운것이니 합심이 없는 교회는 새시대와는 하 등에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심한 곳에 주님도 함께하시니 이런 교회는 새시대를 이루는 승리를 거둘 것이다.
위대한 인격은 섬기는 자이다
(마20:20-28)
주님을 따라 가던 제자들은 다 하나 같이 위대한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주님께 요청하기를 주의 나라에서 우리 두 아들이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던 것이다. 이것을 본 주님께서는 너의가 큰 자가 될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섬기는 자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아버지께서 예비한 자라야 위대한 자가 된다 (22-23)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위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하늘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경륜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택해 세울적에 대중을 위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는 그 사명을 알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도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누가 괴로워도 섬기는 자가 되느냐 하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과거의 선지들도 아무리 동족에게 압박을 당하고 동역자에게 억압을 당해도 끝까지 자기 민족을 위하여 눈믈 흘리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로 위대한 종을 만드는 모략적 방법이었다. 하늘에서 영원한 왕권을 예비하는 동시에 이 땅에는 당신의 종을 괴롭히는 마귀를 들어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하나같이 고난이 올 때에 더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간 것은 성신의 역사라고 본다.
2. 섬길수 있는 사람이 되면 위대한 인격이다 (24-28)
이땅에 모든 사람들은 다 섬김을 받는 것을 위대한 자라 본다. 이것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종은 섬길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탄생하실 때에 섬길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이었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피를 받은 몸이라면 섬길수 없는 몸이겠지만 물과 피로 임한 몸이니 그 몸은 죄와 상광이 없으므로 죄인을 섬길수 있는 대속물이 될 수 있었다. 예수님의 귀한 몸 하나가 대속물이 되므로 수많은 사람이 살아 나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인격이다. 한 몸이 죽으므로 세계인류가 살아 난다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 가진 인격인 것이다. 그런데 섬기는 것도 두가지가 있다. 진리를 떠나 섬기는 일은 우상이 될 것이고 진리 안에서 섬기는 일은 큰 상급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계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섬기신 그 일은 예수님 한분 만으로 그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 다. 수많은 종들이 예수님께서 세계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속물이 되신 그 십자가를 증거해서 많은 사람을 살려 주고자 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섬기신 그 사람의 법을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대중을 섬기는 것이니 이것이 주의 종된 생활이다. 참된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물질을 아끼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대행자인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섬기는 법칙은 진리에 가감된 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진리를 위하여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이 진리이며 아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은혜시대의 진리라고 하고 환란과 재앙가운에서 모든 백성을 새시대로 인도하는 것을 인류 종말의 다림줄의 진리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는 것 보다도 진리 하나를 바로 전해주는 것이 참으로 섬기는 일이요 이것이 가장 위대한 인격을 가진 자의 섬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왕권이라는 것은 진리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자를 말한다. 가장 복있는 자는 진리로도 남을 살리고 물질을 가지고도 남을 살리고 자기 몸으로도 남을 살리는 사람이라고 본다ㅑ. 왜냐하면 영으로도 물질로도 남을 섬길 수 있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인격을 무엇으로든지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위대한 인격이라고 보며 이러한 자의 생활이라야 가치 있는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위대한 사람이 될려면 남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도 가치 있는 생활은 이러한 자의 생활이라고 본다.
겸손한 왕
(마21:1-10)
서 론
세계를 통일한 왕은 겸손한 왕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말씀했던 것이다. 세계를 통일할수 있는 인격은 초 인간적인 왕의 겸손이 없다면 벌레같은 인간과는 하등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왕은 자진적으로 겸손을 택했던 것이다.
1. 출생의 겸손 (눅 2:6)
만왕의 왕이 말구유에 탄생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겸손을 볼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출생의 겸손이 아니라면 그는 세계인류의 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극도로 낮은 인간을 극도로 높은데로 올리자는 목적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2. 장성의 겸손(눅 2:51)
그리스도는 어떤 학교나 훌륭한 선생의 교휸도 없는 빈촌인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의 생활을 하는 가정을 택하여 순종하며 받들어 봉사하는 일로 자라났던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인격이니 고등학문도 고등교육도 그에게는 필요가없고 오직 어려서부터 노동봉사를 하는 것으로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3. 사업의 겸손 (눅 5:31-320
주님께서 죄인을 부른다는 것이 그의 목적한 사업이니 그는 자기가 옳다는 바리새교인과는 하 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의인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의인이라는 교만을 가진자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를 택해도 낮은자를 택했고 주무실 때에도 죄인의 집을 택했고 음식을 잡수셔도 죄인의 집을 택했던 것이다.
4. 기도의 겸손 (눅 22:42)
주님은 겟세마네 기도에 자신이 있다는 기도는 없었고 자신이 십자가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완전하신분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라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만일 주님도 자신이 있다는 태도를 가졌다면 이것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십자가 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표시를 주기위한 것이다.
5. 죽음의 겸손 (눅 23:46)
주님은 임종시에 일언반구의 불평없는 태도에서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했던 것이다. 죄없이 고통을 당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임종시까지 겸손한 태도로 죄인을 불쌍히 보는 태도 어머니를 동정하는 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고 운명을 하셨다.
6. 부활의 겸손 (막 16:7)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