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35]“줬으면 그만이지” 북콘서트
전북 고창 방장산 아래 ‘책만 아는 바보’(간서치看書癡)가 운영하는 희한한 책방 ‘책이 있는 풍경’이 있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책을 아무리 좋아한대도, 도대체 일개 개인이 그 많은 책(7만여권)을 부여안은 채 ‘무슨 재미’로 한세상을 건너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촌구석에서 회원제로 운영한다는데 회원이 400명에 육박한다는 거다. 한 달에 한번 유명짜하거나 영양가 있는 작가들을 초대해 북콘서트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100명이 넘게 들어가는 인문강당이 꽉 찬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어제 17일(토) 오후 3시의 일이다. 정읍의 형님이 굿뉴스를 알려줬다. 전직 기자이자 ‘참 언론인’김주완 작가가 경남 진주에서 올라와 북토크를 한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많겠지만, 지난해 설 즈음 MBC에서 방영된 다큐 <어른 김장하>는 기억하시리라. 바로 그 어른을 글로써 만천하에 알린 분이다. 20대 중반부터 평생토록 이 사회에 어마무시한 선행善行을 해오신 남성당한약방 주인 김장하. 작가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내용들이 모두 일체 부풀리거나 과장이 없이 발로 뛰어 확인한 팩트라는데,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아니라 믿기조차 어렵다. 지극히 평범한 성자SAINT가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사신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감히 그 어른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리기도 삼갈 정도로,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성자聖者’라 확실하게 말하겠다. 익산 사돈에게 알리니 반색을 해 동행을 요구하니 무조건 오케이다.
2시반부터 작가 사인이 시작되었는데, 작가는 1991년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2022년 마침내 『줬으면 그만이지』(피플파워 펴냄, 359쪽, 2만원)라는 책을 펴낼 때까지 수행한 긴 세월의 취재 얘기를 두 시간 동안 담담히 들려줬다. 강의에 앞서 ‘현소의 명인’ 김성문 선생님의 공연은 청중들의 넋을 홀렸다. 게다가 김선생님은 진주 출신으로 그 어른을 잘 안다며, 그분의 인생을 노래 4곡으로 아우르는 게 아닌가. 귀까지 호사하게 만든, 처음 참가해본 북콘서트는 너무 좋았다. 작가는 오랫동안 취재해서 그런지 어느새 선생님을 닮은 듯 겸손했고 조용했으며, 선생님께 누가 될 것같다며 말을 아꼈다. 성자를 우리에게 알려준 그가 고마웠다. 그게 글쓰는 사람, 기자記者의 소명이거늘. 유식한 이들은 인프루언서Influencer라 할 터이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어른 김장하가 그렇고, 작가가 쓴 또다른 책 『풍운아 채현국』의 선생님이 그렇다. 그분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본받아야 할 ‘인생 거울’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가 뒤틀려 돌아가도 그분들이 계셔 가느다란 희망을 품게 되지 않던가.
작가에게만 들을 수 있었던, 말수조차 적은 어른 김장하의 유머 세 토막에 청중이 모두 웃었다. 사돈부부가 식사를 같이 했다. 하필이면 초대받은 바깥사돈이 밥을 먹다가 돌을 씹어 우지근 소리가 났으니 초대한 사돈이 얼마나 민망했을 것인가? 죄송해 어쩔 줄 모르는 사돈에게 즉석에서 “그래도 돌보다 쌀이 많다”고 해 어색한 분위기를 눙쳤다는 얘기다. 당연히 돌보다 쌀이 많아야 밥이 되듯,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들이 훨씬, 아니 몇 천배 많으니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것을 비유하는 것같지 않은가. 또 하나, 빌 게이츠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고 물어 아무 답변도 하지 못하자 “마이크로 소프트하게 부른다”고 하여 좌중을 웃게 했다한다. 세 번째, 머리를 감을 때 맨먼저 어디부터 감느냐고 묻고는 아무도 대답을 쉽게 못하니 “눈부터 감는다”고 했다던가. 이 정도면 하이 퀄리티 유머이지 않은가.
작가가 어른의 어록이나 선행, 덕행의 숱한 일화 그리고 무수한 사람의 증언들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혀 버렸을 수많은 일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소문없이 도와준 장학금이 1천여명에 30억이 넘는다는 작가의 추산인데도, 종이쪽지 한 장에도 기록하지 않아 영원한 수수께끼로 만들어버린 어르신. 선생님의 거듭된 고사固辭을 뿌리치고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반강제로 드린 명예문학박사 수여식에서 지역언론의 기자가 유일하게 기록해 남게 된 선생님의 즉석 어록語錄을 보라.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그 신문은 제목을 <돈은 똥, 쌓아두면 구린내, 흩으면 꽃>이라고 달았다고 한다. 선생님 어록의 특징은 띄엄띄엄, 조용조용, 도무지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외유내강外柔內剛, 빛나는 ‘진주정신晉州精神’의 화신이신 것을.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 참으로 존귀한 ‘참 어른’이 아니던가. 보시布施(베풂) 중의 으뜸인, 어떤 집착도 없이 한도끝도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한평생 진짜 말없이 실천궁행實踐躬行하시다, 비록 ‘진짜 기자’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졌으나, 결코 본의가 아니었음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일인 것을. 책과 다큐는 묵묵부답이었으나 <영화 김장하>는 몹시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한다. 주변에서 선생님을 지켜본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는 어른을 “한겨울에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몽롱할 때 정수리에 퍼붓는 한 바가지 찬물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한겨울 새벽에 정수리에 퍼붓는 한 바가지 찬물,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경청하는 청중, 누구라도 공감하는 짤막한 질문 몇 개, 간서치이자 ‘책풍’의 촌장 박영진의 “기름진 인문학적 삶을 같이 살자”는 말씀도 좋았다. 이런 북토크는 열 번이라도 참석하겠다. 진솔한 김주완 기자의 건필과 건강을 빕니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 이 나라의 참 언론인입니다. 또한 그 무엇보다 팔순의 나이(1944년생)에 처음으로 사모님과 아파트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김장하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강녕하시기만을 빌고 빕니다. 영원히 녹슬지 않을, 이 땅의 진정한 ‘빛과 소금’인 선생님, 알지 못하고 뵙지도 못했지만,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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