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일출봉 꿈을 꾸다 깼다. ㆀ
전날 식당에서 보았던 강렬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그냥 가보자.
그래서 정리한 오늘의 일정 : 일출봉-섭지코지-표선민속촌-성읍민속마을-산굼부리
(정말 현실감 없는 계획이었다.. 쿨럭.. ㅡ..ㅡ;;)
어제 미처 먹지 못한 도시락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저녁은 성읍에서 맛있는 거 먹기로 하고
MBC 아침드라마 <성녀와 마녀>도 안 보고(ㆀ)
서둘러 서귀포로 출발.
10시 성산 가는 버스에 올라 11시 20분경에 일출봉 입구에 도착했다.
어제 일을 교훈삼아 미리 기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길 앞에 세워 주셨다.
이정표에 일출봉까지 1.5km란다. ㆀ
뭐 까짓 어제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야.....라고는 했지만 쪼끔 떨리기는 했다. 으흐~
▶ 성산 일출봉
* 입장료 : 2200원(청소년 어린이 1100원, 65세이상 무료)
* 개장시간 : 일출 ~ 일몰
* 소요시간 : 40 ~ 60분
부지런히 걷다보니 어느새 거대한 일출봉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선다.
1.5km라더니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이제 걷는 것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가?!
몇몇 학교에서 수학여행단과
중국인 관광단, 일본인 관광단에 동남아 각 나라 말들이 섞이고
조선팔도 사투리들까지 어울려서 온통 북적북적..
꼭 무슨 잔치집에 온것처럼 괜히 들뜨는 기분이었다.
걸음걸음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봉우리들의 모습과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
억새와 유채가 만들어내는 풍취..
발밑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팝클래식까지..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본격적인 오르막 계단 전까지는..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 오르막 길을
"오메 죽겄네, 에구 힘들다, 으으으~~~" 등을 연발하며 씨름한 끝에 당도한 정상..
우와~~~!!!
이 좋은 걸 안 보고 갔으면 어쩔뻔 했으리~~~!!!
말로 표현 못 할 오묘한 색깔의 바다와 생크림처럼 몽글거리는 파도..
머얼리 햐안 등대, 빨간 등대, 유람선..
우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섬..
초록색 융단을 덮어 쓴 것 같은 아랫녘과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
어느쪽으로 눈을 돌려도 다 절경이다..!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재촉해 하봉(?!) 하는데
아저씨 두 분이 나무 사이를 한참 들여다보고 계셨다.
"뭐 있어요?"
"저기..."
앗! 새다!
난생 처음보는 희한하게 생긴 새였다.
"저거 보는 사람은 행운인거야"라며 지나가시는 아저씨들 말씀을
무슨 복권당첨인양 신나하며 기념으로(?!)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사서 맛있게 먹으며
봉우리 바깥쪽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바다까지 내려가서 손 한번 담그고 올라오는데
할머니 두 분이 커다란 판으로 된 쥐포 3장을 1만원에 팔고 계셨다.
한 할머니께 맛보기 쥐포 구워진 것 천원짜리랑 쥐포를 샀더니
다른 할머니께서 미역이라도 좀 팔아달라며 서운해 하셨지만
그 짐을 다 들고 걸어걸어 돌아다닐수는 없는 일..
매표소에 계신 분께 섭지코지 가는 길을 물었더니
버스는 없고 택시를 타면 4천원 정도 나올거라신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텐데" 하시다가,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살도 뺄겸 그냥 걸어가요" 하신다.
뭐 그닥 우리 오빠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걷기로 결정.
입구 왼쪽 길을 따라 쭈~~~욱 내려가 바닷가를 따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무지하게 멀고도 먼 길이었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 풍경하며
유료사진촬영지로 조성해 놓은 유채꽃밭등을 감상하느라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심 누군가가 차를 좀 태워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에고에고..
내가 제주도에 여행온건지 신혼부부들 사진 찍어주러 온건지 헛갈릴 정도로
도움을 요청하던 그 많은 "허" 번호판 차량들 다 그냥 지나간다.
도움을 요청 안 해서 그런가 싶어 히치 사인하다가 팔뚝 날아갈 뻔 하고나니
그냥 굵직한 내 다리 하나 믿을 수 밖에 없다. 어흑.. ㅡ_ㅜ
이정표를 따라 샛길로 접어 들었다.
이젠 정말 오가는 차도 많지 않아 히치도 어렵지 싶은터에
우헐.. 물 대신 계속 마시고 다니는 녹차가 하필 효능을 발휘할게 뭐람.. ㆀ
위 아래로 눈물이 찔끔찔끔, 죽고만 싶다.. ㆀㆀ
안면몰수하고 억새밭에 들어가 해결할 마음까지 먹었는데
자세히 보니 맨땅이 아니라 습지라 잘못 발 들였다간 그대로 황철길이겠다.
딴 생각을 하면 좀 괜찮을까 싶어
묵주(천주교에서 기도할때 쓰는 것)를 꺼내들고 막 기도를 시작했을때
오, 마이 갓!
천사 날개처럼 하얀색(비록 조금 앞에 있었던 물구덩이를 지나느라 좀 거슥해졌지만)을 한
차 한 대가 옆에 와 서며 창문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BGM : 헨델의 메시아 중 <알렐루야>)
그리하야 무지 잘생긴 남편과 아주 예쁜 아내와
정말정말 귀여운 아기 정민이네 차를 얻어 타고도 제법 달려서
무사히(!)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남의 차에서 일 치를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그래도 기본 예의는 있는 인간이라.. ㆀ)
사정상, 서둘러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직행. 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니 괜한 심통이 났다.
나 모른척 지나간 신혼부부들 다 부부싸움해라!
착한 정민이네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라!
(ㅡ..ㅡ;;;)
▶ 섭지코지
* 전일개장, 완전무료(승용차 주차료 8백원)
* 소요시간 : 40 ~ 60분
1시경 일출봉을 출발, 1시간 만에 도착한 이곳 역시 수학여행단과 단체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올인" 세트장은 이미 다 철거하고 없고 억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유채꽃이 피어 있는 곳에서는 일출봉 전경이 예쁘게 보인다.
꿇어 앉아 자세를 낮게 하고 찍으면 유채꽃과 일출봉이 조화된 예쁜 사진을..
1시간 동안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쪽까지 골고루 발자국을 찍어 남기고서,
시간상으로도 어렵겠거니와 비교할수야 없겠지만 이곳에서 억새 많이 봤으니까
산굼부리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결정하고 표선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고 긴 섭지코지 입구를 벗어나와 지나가던 오토바이 아저씨께 물어
마을 한 켠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집 앞을 청소하던 아주머니께서 이 곳 버스는 1시간여 간격으로 다닌다시며
오래 기다리게 될까봐 걱정을 해주셨다.
가방 벗고 앉아 마음 편히 귤이랑 초코렛이랑 삼각김밥이랑 까 먹으며 기다렸더니
다행히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와서 1200원 내고 표선가는 버스에 올랐다.
표선에서 내려, 이제는 무지 만만하게 보이는 거리 800m를 걸어들어가니 민속촌이 나왔다.
▶ 제주 민속촌 박물관
* 입장료 : 6천원(청소년 4천, 어린이 노인 2천)
* 개장시간 : 9시 ~ 6시(5시면 입장마감하고 5시 30분이면 벌써 철수시작)
14% 할인쿠폰을 이용, 5200원을 내고 들어간 민속촌..
에고.. 근데 내겐 쫌 별로였다.
다들 비슷비슷한 집들과 물품들에
무엇보다 곳곳에 자리하고 앉은 색바래고 흐트러진 인형들의 기괴한 모습이.. 무서웠다.. ㆀ
해가 저물면서 어둑어둑하고 관람객도 많지 않아 훵한데
스산한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는 얼룩진 얼굴의 인형들이 정말 살아있는(?!) 귀신 같았다.. ㆀ
유일하게 좋았던 건 대장간에 널린 각종 풍경들.
풍경 모으는 취미를 가진터라 신나게 입김 불어 종소리 울리며 한참을 놀았다.
좀더 밝은 낮에, 사람들 많을 때, 그리고 민속 공연등으로 북적거릴 때 갔더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슬슬 남은 관람객들 빠져 나가고 이미 관리하시는 분들 돌아다니며
철수하는 시간까지도 혼자 그네도 타고 팽이도 돌려보며
남은 관람시간을 알뜰히 쓰고서 나왔다.
시간이 늦어 결국 가지 못했지만 성읍민속마을은 어떤지 모르겠다.
전통 가옥에 직접 주민들이 살고 있으니 생생한 모습에 무료라니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겐 더 낫지 않을까 싶긴 한데..
최근에 일명 "성읍양심선언"도 있고 했으니 악명높은 바가지 상흔도 이젠 좀 괜찮지 않을까..?
걷고 버스타고 또 버스타고 중문에 도착하고 보니 이날은 영 먹은게 부실했다.
맛있는 저녁 해먹기로 마음먹고 킹마트에 들렀다.
방어회를 8천원에 판다고 하는데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어 포기하고
삶은 문어 1마리(3천원)랑 흑돼지 반근(4천원) 사와서 저녁을 해 먹었다.
키야~! 쫄깃쫄깃하면서도 담백한 흑돼지는 정말 환상이었다!
서울서 한근에 1500원도 하는 삼겹살에 비하면 겁나게 비싸지만
그 식감과 맛이란 4천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첫댓글 캬~ 문어다리에 소주한잔~ 섭지코지 성당 철거한 후에 안가봤는데... 예전 모습을 빨리 되찾았음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