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획재정부가 말 그대로 '기획'하여 KDI가 수주받아 연구중인 전문자격사 개편방안과
대한변협에서 추진중인 일련의 법률시장 개혁조치들이 양축을 이루면서 경합되는 형국입니다.
먼저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우선 저 개인적으로는 국내 법대학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보다 재학중에 사업에 뜻이 있어 시작한,
하지만 그 분야가 법률시장에 관한 것이고, 같은 이유로 서울변회에 논문을 제출하는 등,
법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지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IT회사에서 법무담당자로 일을 하고 있고,
입사 전에는 집단소송을 일으켜 1년 반정도 소송을 위해 투신(?)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법무법인의 클라이언트로서 상시적으로 자문과 협업을 하는 가운데 느끼는 것은 클라이언트와 법무법인간 협업 비중의 변화입니다.
예전같으면 돈을 주는 갑이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법무법인 또는 변호사는 클라이언트를 지도하고 길을 알려주는 모종의 '멘토'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략 10년 전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사전영장 기각이나, 양형의 재량을 이유로 하는 형사재판과 누구나 할 수 있는 전통적인 민사신청사건, 본안
예컨데 제조물 상사채권에 얽힌 몇 가지 쟁점을 내포한 손해배상 청구의 건 등을 제외한,
준비기일과 사실심에서 팩트 자체의 진위여부 검증과 업계의 사정 및 관행의 숙지, 기술적 분석이 필요한 분야들
그리고 그 것이 주문을 쓰는데 Critical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예컨데 OSP(Online Service Provider)의 경우에는 단순한 저작권법과 그와 관련한 판례의 숙지 뿐 아니라
콘텐츠의 유통 경로, 위임의 관례, 언더마케팅의 양태, 현실적인 통계 및 IT기술의 구현방식의 이해(Web) 등..
해킹사건에 관하여 웹과 서버가 구현하는 보안기술의 방식과 비교, 각 기술의 리스크에 대한 분석
기타 검찰과 경찰(사이버수사)의 수사자료에서 유리한 자료를 취합하고 이를 변론에 활용하는 능력 등..
이는 물론 IT관련 자문, 송무에 국한된, 단적인 예일 뿐이지만 클라이언트가 이러한 사건에 대해 수임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
몇 번만 얘기를 나눠보면 변호사에게 클라이언트로서 해줘야할 일이 많겠구나 적겠구나가 직감적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내 법무담당자로서 돈을 주고 위임을 한 사안에 대해, 변론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주고, 기술적 배경과 업계의 여러 구석을 설명해줘야 한다면 차라리 한 번이라도 동종의 소송을 해본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업계의 자명한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그 변호사, 로펌 수가 워낙 소수였고, 회사의 법무팀 자체의 역량 또한 낮은 편이어서,
사실 법무법인은 수임만 하면 일은 클라이언트가 해주는 다소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는 더더욱 로펌이 클라이언트에 대해 자신의 전문성을 어필해야할 것으로 저는 과감히 전망해 봅니다.
물론 아직은 프랙티스가 적은 편이고, 백화점식 수임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알려지지 않게 부티끄 로펌을 표방하는 곳도 꽤 많다고 보여집니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의 특수성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채권가압류, 지급명령, 대여금 반환, 전세금 반환..
소소하게 일어나는 신청사건 및 민사 사건들은 항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신청서 및 소장을 만들어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근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문장을 쓰는 것이 적어도 리걸마인드를 제대로 갖춘 법대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민사소송 실무예와 주문을 쓰는 방식은 이미 소위 말하는 '와꾸'가 다 나와있고,
정형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연수원 실무에서 많이 쓰고 연습하게 됩니다.
그 바탕위에 창조적으로 쓰여지는 것은 '팩트'에 기인하여 공격 방어에 유효한 것으로 쓰는 문장들입니다.
이런 지식을 비변호사인, 그러나 법을 좀 아는 사람이 습득하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나홀로 소송의 비중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무엇이 유리한 것인지를 알고, 그에 초점을 맞추어서 '팩트'에 기인한 문장을 쓸 수만 있다면,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비변호사가 직접 소송을 수행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의 소장을 쓸 수가 있게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연수원은 사실 판, 검사 교육에 포커스가 맞춰진 경향이 있습니다.
법정의 공방은 변호사-변호사 또는 변호사-검사가 열심히 풀어서 설명해주면 판사가 판단할 때에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소송법은 물론이고 헌민형에 상법, 행정법도 골고루 공부를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변호사들도 결국 같은 공부를 하고 나온다는데 있습니다.
단지 그 성적에 따라 변호사로 나오게 되면, 말 그대로 사회 각 분야의 여러 실정에는 밝지 못한 변호사들이
클라이언트를 곧바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변호사 선택권이 넓어질 것입니다.
지난 100년동안 배출된 변호사 수는 이제 10년이면 차게 되니까요.
유사법조직역에서는 각자의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하고 있고, 협업의 필요성은 이미 실무에서 그 필요성이 대두된지 오래입니다.
변협에서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고, 물론 시행예정인 전문분야등록제가 오로지 전문성 강화에만 오리엔트된 것만은 아니지만,
분명 변호사 업계도 양극화는 있고, 그 것이 저의 눈에는 보여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분이 쓰신 글처럼 지금 로스쿨 학제로, 변호사시험 합격이 급선무인 환경에서 절대 프랙티스 못합니다.
실무는 필드에서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면서 습득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개인정보 관련하여 원고를 모아서 집단소송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변호사 주도가 아닌 원고가 카페를 만들고 진행했던 몇 안되는 케이스 였다고 생각되는데요. 3년이 가까운 시간이 걸려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기각되어 내려와 항소심 판결이 지난 봄께에 확정이 되어 종결되었습니다.
금액은 인당 30만원이지만, 개인정보 유출 관련 본안판결 금액은 현재까지 최고의 금액입니다.
얼마 안된다 생각될지 모르지만, 원고가 10000명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10만원과 30만원의 차이가 말입니다. 소가에서 20억이 차이가 나니 변호사 보수도 그에 비례하게 될테니까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최초에는 다른 개인정보보다 더 가치가 없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손해배상액이 줄어드는 근거가 되겠죠. 하지만 금액이 높아진 것은 유출가능성의 대비에 대한 과실,
즉 불법행위 책임으로서 그 과실의 정도에 대한 소명, 그 것은 결국 IT기술에 대한 팩트로 수렴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 IT분야의 전문성은 결국 소송의 승패 보다 자신의 몸값을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둘러본 결과 여기 계신분들의 현실인식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경험의 폭도 넓고, 정보 공유도 그렇구요.
다만 '실무'와 '전문성'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논할 때에 조금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려보고자 적었습니다.
아무쪼록 클라이언트에 인정받는 그런 변호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간만에 좋은 글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문장력 있게 써 주섰습니다. 특히 "수임만 하면 일은 클라이언트가 해주는 다소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라는 부분은 더욱 공감이 가는군요. 결국 법률가는 정보와 관련 지식, 그리고 수집 분석력과 성실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쓴님의 지적이 현실적인 문제을 잘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문분야에 법조인력을 양성하고자 도입된 로스쿨의 취지가 로스쿨 3년 과정에서 잘 구현되기를 희망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을 구현하지 못할 것이라 우려를 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기본법 체계에 대한 확고한 법리습득만이라도 현시스템에서 3년내에 잘 할 수 있을것인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지식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 법정의 공방에서 지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대형로펌에서는 자문만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으나 다수의 중소형 로펌에서는 송무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 연수원 갓 나온 변호사랑 함께(데리고) 일하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어요ㅎㅎㅎ아는게 별로 없어서-.-; / 로스쿨 들어오니 제가 그런 사람이 되는 듯 하네요-.-;;;
윗 글에 대략 동감...정보유출 사건에서는, 업체 측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 입증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 경우 경찰이 수사를 해 주면 대단히 쉽게 입증이 됩니다. 실제로 한 사건에서는 해킹이었다는 회사 측의 반응과 (즉 타인의 불법행위로 정보가 유출되었으며 회사는 그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는) 해킹이 아니라는 주장이 맞섰는 바, 경찰이 이른바 '해커' 를 검거함으로써 '해킹' 이 아니라 심각한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하여 줌으로써 민사소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전문분야에서는 사회경험이 없으면 알 수 없는 그 놈의 사실관계가 대단히 성패에 중요한 바,
(제가 예전에 언급한 바 있는데,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장승수 변호사는 막노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 소송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깼다고 하더군요. '현장 사진을 보건대 이 때는 이 공정을 할 때가 아니다. 내가 해 봐서 잘 안다. -_-') 이 점을 무기로 삼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직장경험 있는 출신들이 그러하겠죠) 하긴 회사에서 소송할 때 보면 그 일 많이 해 봤다는 변호사도 정말 일 잘 모르더이다. (참고로 그 변호사는 부장급 이상) 사실관계 장악이 덜 돼 있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오죽하면 이 쪽에서 일일이 서면을 써 주다시피해야 거기에 조문하고 판례 조립해서 낼까요? ㅎㅎ. 옛날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