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은 기본, 밥도 줘야 고급”... 초고가 아파트 조식시장 ‘춘추전국시대’
밥 주는 서울 초고가 아파트 9곳
아파트 점유율 신세계푸드가 1위
新시장이라지만 ‘반짝 인기’ 우려도
연지연 기자
입력 2023.05.30 06:00
“일단 옆 단지 불만 사항은 다 접수했어요. 잘 준비해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지 설명을 해야죠.”
오는 11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개포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이 단지의 식당 사업권 수주하기 위해 한 식자재·단체급식 업체는 인근 아파트 단지를 아침마다 부지런히 찾고 있다. 주민들을 상대로 아침 제공 식사에 대한 불만 사항을 빼곡히 적어가기 위해서다.
급식업체 관계자는 “손꼽히는 대단지인 만큼 사업권만 따낸다면 좋은 평판을 쌓을 수 있고 앞으로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입주자 대표회의가 꾸려지고 공고가 나면 어느 곳보다 경쟁력 있는 입찰 제안서를 제시하려고 한다”고 했다.
수영장과 스카이라운지. 여기에 아침·점심을 즐길 수 있는 식당…. 고급 아파트의 3대 조건에 식사 제공 여부가 꼽히는 시대다. 최근 한 연예인의 배우자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파트 조식 서비스 사진을 올렸다가 많은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맞벌이 가정이나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집에서 조리하는 문화가 과거 대비 줄면서 일어나는 변화다.
이에 발맞춰 식자재·단체급식업체들도 새로운 시장 선점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 신세계푸드나 아워홈, 삼성웰스토리가 대표적이다. 3대 대형 식자재·단체급식업체가 아니더라도 호텔 케이터링 서비스를 오랜 기간 해왔던 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 강남3구·용산·성수 보니 아침 주는 아파트 단지 9곳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에서 아침·점심·저녁을 즐길 수 있는 고가 신축 아파트는 총 10곳 정도였다. 서초·강남·송파 등 강남 3구에서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신축 아파트 단지 5곳과 서초구의 신축 아파트 단지 2곳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개포동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신축 아파트 단지는 디에이치아너힐즈, 디에이치자이개포, 개포래미안포레스트, 개포래미안블레시티지,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등이다. 서초구에서는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 리더스원에서 식사를 주고 있다. 용산구와 성동구에서도 각각 한 곳씩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 성동구 트리마제가 대표적이다. 단지마다 가격은 다르지만 한 끼에 7000원 정도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건설사에서는 앞으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경우 커뮤니티에 식당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를 얼마나 잘 갖췄는지 여부에 따라 고급화를 판단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커뮤니티를 잘 갖추면 입주 후에 전셋값에 차이를 주고 궁극적으로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조합원들이 많았다”면서 “실제로도 중개를 해보면 그렇기도 하다”고 했다.
건설사에서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식당을 설치하는 추세가 점점 지방의 주요 대장 아파트로 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를 따내려면 재건축 조합원이나 시행사가 원하는 제안을 넣어야 한다”면서 “신경 좀 쓰는 단지라는 계산이 서면 최근 아파트 커뮤니티 내 식당 설치는 반드시 넣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개포 래미안블레스티지, 용산 효성해링턴플레스티지, 개포래미안포레스트, 성동 트리마제 조식사진/웹페이지 갈무리
◇ 춘추전국시대 조식시장, 신세계푸드 점유율 44%
아파트마다 식당이 설치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 식자재·대형 급식업체도 집중적으로 새 먹거리 공략에 나서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바로 신세계푸드(43,450원 ▼ 100 -0.23%)다.
식당이 커뮤니티에 설치된 아파트 9곳 중 가장 사업권을 많이 따낸 곳은 신세계푸드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성동구, 용산구 아파트의 식당 서비스를 한 곳씩 맡고 있었다. 전체 시장의 약 44%를 신세계푸드가 맡은 셈이다.
하지만 아직 아파트 조식시장이 시작 단계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평가가 많다. 아워홈이나 삼성웰스토리는 물론이고 푸디스트나 호텔 케이터링 전문업체도 속속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식사를 제공하는 주요 아파트 9곳 중 5곳을 하나씩 맡고 있었다.
아워홈과 삼성웰스토리는 각각 한 곳씩 사업을 맡고 있다. 아워홈은 오는 7월부터 개포자이프레지던스에서 아침식사 서비스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웰스토리는 개포래미안블레스티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위탁급식·식자재 유통사업(FC) 부문이었다가 2020년 VIG파트너스로 넘어간 푸디스트도 디에이치자이개포의 식사 제공을 도맡고 있다. 푸디스트는 ‘김해센텀두산위브더제니스’와 ‘광교더샵레이크파크’의 식음 서비스도 맡고 있다.
오랜기간 호텔 케이터링 서비스를 맡아온 회사도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아크로리버파크의 식사 서비스를 담당하는 메리버스트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스타트업 ‘프런트나인’도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커뮤니티에 일정 이상의 식당과 조리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아파트를 위해 당일 제조와 당일 발송을 해주는 조·중·석식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 리체나 경기도 과천시 과천푸르지오써밋이 대표적이다. 프런트나인은 오는 2025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신시장이다” 뛰어들지만 일부선 ‘반짝 인기’ 판단도
다만 식자재 업체들이 앞다퉈 열중하는 상황이지만 일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도 있다. 시공사가 식당을 짓는 방식으로 준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식당 운영이 녹록치 않다는 점에서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란 의견이다. 한 식자재·급식업체에서는 시장 대응을 하지 않을 순 없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사업권 획득에 나서지 말자는 의견이 회의에서 나온 적도 있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아직 시장 초기라 판단하긴 이르지만 시장 확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면서 “아파트 커뮤니티는 입주 초기에 반짝 이용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으면 수익 얻기가 어렵다”고 했다.
기본 의무식 두 끼를 부담하는 것에 대해 입주민들이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기본 의무식이란 아파트 입주가구 한 곳 당 하루 두 끼 정도의 식사를 무조건 먹는 것으로 계산하고 관리비를 부과하는 것이다. 급식업체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여기에 음식의 맛이나 질에 대한 불만 접수도 회사나 공공기관 등에 비해 많은 편이다.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이용률이 떨어지면 급식업체에서 수익에 문제가 생기면서 식사의 양이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실제로 경기도에 있는 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 조식서비스 이용률이 떨어지면서 상가로 용도를 전환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