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은 회장께서 1월 모임 시 사과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월 모임에서 회장님이 제게 하신 지적도 두 가지 들었습니다. 왜 글을 문학상 운영방에 안올리고 단체 대화방에 올렸냐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호칭을 ‘윤 회장님’이라 하지 아니하고 ‘윤 회장’이라고 칭하냐는 것입니다. 이방과 그방의 차이점과 실효성을 못 느꼈습니다. 또한 비단 문학상과 관련된 사안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칭 문제는 어처구니가 없어 언급을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후다닥 널어놓은 푸념 가운데 ‘낙인찍기’란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얼핏 대단히 부적절한 용어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악마화’라든가 ‘마녀사냥’이란 말과는 다릅니다.
그냥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찍혔다’는 뜻이고 내 보기엔 사례를 든 정수연 회원뿐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도 그렇고 다른 회원 몇몇도 그렇게 낙인이 찍혀버린 걸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중징계 할 것처럼 비장감을 보이다가 너른고을문학의 지난 역사를 들먹이며 정통성 수호 차원의 결기를 보이면서 ‘분회’ 운운하며 일부 회원을 불순세력 혹은 이질적인 회원들로 규정짓고 내몰아내려는 기가 막힌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고 물론 어떠한 회칙이나 규정에도 없으며, 백번 양보해 회원을 내칠만한 어떤 사유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절차조차 깡그리 무시한 무도한 폭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냥 대다수 회원들의 생각도 그러하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이후 하나 둘 이곳 단톡방을 나가더니 따로 방을 만들었다는 소문만 듣습니다. 방을 나가신 회원님들께 여쭙니다. 다들 등 따시고 편안하신지요. 여기 남은 낙인찍힌 몇몇이 진정 윤 회장과 박지부장에게만 찍힌 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찍힌 겁니까. 참으로 기이하고 괴이한 일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떤 못된 이가 말했지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지난번 이근배 회원께서 냉각기를 좀 가져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주시고 해서 한 달여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행여 회원들의 집단 양심과 지성이 발휘되어 비정상을 돌려놓고 새롭게 화합의 방안이 모색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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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난망한 기대였습니다. “작가는 그 시대의 부조리를 앞장서서 쓰고 말하여 내일을 열어갈 소명이 있습니다.” 이는 오래전 실존주의 작가들이 즐겨 쓴 말이기도 한데 ‘너른고을문학27집’에서 윤일균 회장님의 발간사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뒤이어 ‘문학회 동지들의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한 가열한 글쓰기를 희망’하며 ‘임은정 검사의 무죄진술서로 발간사를 대신’한다고 다음과 같이 발간사의 절반이 넘는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빍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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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좋아 인용문을 끝까지 옮겼습니다. 문학지에서 검사의 논고를 절반 이상 인용하며 발간사로 대신하는 경우는 참 이례적이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누구에게나 발간사 하나 쓰는 것도 사실 큰 부담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 글을 윤 회장께 다시 읽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유신시절 박형규 목사의 심정으로 이입되어서가 아니라, 법이나 규칙도 아닌 기껏 사소한 푸념이나 문제제기(일체의 답변조차 없는)로 인해 한 지방도시 작은 문학단체장의 비위를 거스르게 해 회원들을 묶어 찍어내기 하는 행태를 회원들이 보시기에 진심으로 온당하다고 생각하겠는지요.
다시 여기서 윤회장께 심려를 끼친 제 ‘죄’를 이실직고하자면 전화를 서너 번 받지 않은 점이라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때가 응모원고 접수에 온 신경을 쓰고 있었던 7월 하순이었습니다. 순암연구소 김종철 출판국장으로부터 비용계획서와 공연 프로그램 순서지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은 윤회장님이 제가 그 업무를 처리해줄 것을 알고(물론 기획업무 전반을 한다고 약속한 상태였음) 독촉하는 전화였습니다. 시상식과 문화제는 3달 이상 남아 전혀 급할 게 없는 시점임에도 계속되는 독촉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개인적인 근심(후일 그 사유까지도 회장과 지부장에게 설명)이 돌발 상황으로 발생해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급한 일도 아닌데 그 정도는 회장께서 조정 커버해주실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물론 그로인해 빚이진 업무차질은 전혀 없었으며 추후 차근차근 제 자신이 하기로 한 업무처리는 다 했습니다. 참고로 제반업무를 위임한 순암연구소 소장님으로부터는 단 한번도 독촉을 받은 바 없었지만 인쇄물 관련은 김 국장 소관이고 자기 이익과 연관 있는 사업부분이라 일찌감치 서둘러 재촉했던 것입니다. 그가 일머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시상식 행사 때 경과보고를 20분 넘게 하면서 경과보고서에 합당하지도 않게 제가 작성한 ‘수상자 발표 보도자료’를 그대로 다 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전화 수신 불통 이후 윤 회장의 못마땅한 시선을 수시로 느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죄인 셈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 건으로 다른 사람들께 얼마나 씹고 과장 왜곡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구나 그 전후 사정 특히 제 개인적 상황은 송두리째 도려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