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온 거 같아. 예년보다는 당연히 못하지만 이정도 나온 것도 잘 된것이지. 이렇게만 된다면 2009년에도 희망이 있어 보이는데.”막 경매를 끝마친 천정섭 이슬작목반 부회장은 만족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에서 14년동안 배농사를 짓고 있는 천 부회장은 올해 9~10월 지난해보다 최대 40%까지 떨어진 가격 때문에 연일 편한 날이 없었지만 최근 어느 정도 가격이 형성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날 가락시장에서 천 부회장이 출하한 이슬배는 15kg 특품 경락가격이 3만5000원으로 다른 배들보다 1만~1만5000원 정도 비싸게 낙찰됐다.
‘좋은 품질, 소비자가 안다’ 믿음
이주명 작목반 회장과 천 부회장은 경매를 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품질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계속적으로 출하하면 이는 중도매인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신뢰로 이어져 결국 좋은 가격은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배들이라고 할지라도 2008년에는 맥을 못 췄다”며 “연말이 되니 그동안 고품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이제야 조금씩 보상을 받는 느낌”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날 경매 물량을 출하하기 위해서 천 부회장 부부는 아침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일주일을 쉴 틈없이 작업해 가락시장으로 출하한다. 경매 전날 천 부회장의 작업장을 찾았지만 가락시장 출하 물량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쁜 상태였다. 부회장은 다른 농가와는 달리 인부를 고용하지 않고 아내와 둘이서 하기 때문에 꽤 작업량도 많은 편이었다. 두 사람이 일주일에 120(1상자당 15kg) 상자를 출하하려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천 부회장은 “다른 사람을 쓰는 것은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인부를 고용하면 편하게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상품성을 보장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친환경 농법 등 최신 기술을 사용해 고품질을 생산했는데 수확과 선별과정에서 실수가 있으면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에 자식을 끝까지 거두는 마음으로 작업하기 위해 아내와 둘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같이 배값이 떨어진 시기에는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유통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 부분은 천 부회장도 같은 생각이다. 실제 작업장은 포장단계에서도 품질을 높이기 위해 동선을 짧게 만들어 배 상자를 옮기는 횟수를 줄이고 백열등을 오징어잡이 집어등처럼 설치해 배에 난 상처 등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곳곳에서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천 부회장은 작목반 생산에서부터 출하,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각종 정보수집 뿐만 아니라 최고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찾아가 기술을 배우고 이를 접목하려 애써왔다. 또한 가락시장에 꾸준히 찾아오는 몇 명 안되는 농민중 하나로 이날 역시 새벽에 직접 가락시장에 와서 다른 배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쉴새없이 수첩에 장단점을 적으며 정보를 수집한 뒤 경매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배에 난 상처 하나도 꼼꼼히 관리
새벽 경매를 지켜보면서 천 부회장은 “가락시장으로 출하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농민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이는 농가들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농민이 직접 와서 내 농산물이 왜 값을 적게 받았는지, 다른 농산물이 왜 비싸게 받았는지를 보고 의견 교환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일부 농가는 출하만 한 채 경매사 능력이 가격을 만들어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시장을 직접 찾아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경매를 지켜본 이 회장과 천 부회장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마지막 차에 올라타면서 이 회장은 “새해 소망은 간단하지. 농사 잘 짓고 또 그만큼 값도 올랐으면 하는 것이지. 곧 있으면 설날도 나가오는데 배 맛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으니 추석보다는 낫지 않겠어?” 라며 희망을 담았다. 또 천 부회장은 “오늘로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봤으니까 다행이야. 내 피붙이 뿐만 아니라 과수원에서 자라는 내 자식도 모두가 잘됐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고. 올해 이렇게 힘들 때 버틴 만큼 내년에는 해뜰날로 보답이 오겠지.”라고 말한 뒤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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