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클라이머의 삶 김팔봉
작성자 한상섭 작성일 2005-06-08 14:32:03
내용
가슴이 따뜻한 사나이들
내가 아는 주변의 산사람들 중에서 속칭 사내들 사이에서 말하는 의리파인 사람들이 몇 있다.
그 중 꼽을 수 있는 것이 종로 디딤돌의 서명수사장이요, 또 한 명은 김팔봉이다.
이 글을 읽고 두 사람의 얼굴을 상기해보면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떠올려지지 않는가,
그렇다. 사람 속일 것같지 않는 순박한 시골사람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들 외에도 익스트림라이더의 영원한 형이자 지주인 최희준, 도봉산의 공재은 등이 있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계산적이지 않다.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그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이 제각각이고 복잡해서 쉽게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행동과 말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의 색깔을 한가지 색으로 규정지어 버렸다.
바로 화강암의 색깔인 회색이다.
회색인간!
1993년
우이산장 앞 뜰에서 정승권 등산학교 초단기 암벽등반(1일)을 배운 나는 그 후 산에 다닐 수 없었다.
회사 일로 허리가 삐끗했었고, 방치해둔 결과는 심각했고 디스크로 판정이 났다.
병명은 ‘추간판 탈출증’
신촌 세브란스에서는 수술을 종용했고,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는 순박한 생각에 두 달동안의 입원과 지루한 재활치료로 이어졌다.
1997년
등산학교 암벽반에서 만난 팔봉이는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겁많고 순수한 시골 청년의 모습
봉화대릿지를 머뭇거리며 오르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그 뒤 산악회에 입회하여 도봉산에서 함께 줄을 묶고 오르면서도 팔봉은 겁이 많아서인지 곧 잘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 팔봉은 조규복씨가 운영하는 부천의 암장에 등록하여 거기서 땀을 흘렸고
2년여가 지난 시점에 팔봉의 암벽실력은 일취월장해 있었다.
팔봉은 우리가 오를 수 없었던 루트를 하나 둘 씩 선등으로 올랐고
등반이 끝난후면 5~6인용 코펠을 끌어안고 밥을 퍼먹었다.
등반에의 갈증을 흡사 밥으로 메꾸려는듯…
그렇게 팔봉의 등반열정과 능력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난 회사일로 등반을 자주 쉬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2000년 알프스원정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씨제이 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던 난, 스스로 기획한 몽블랑과 마터호른 원정에 팔봉이를 대원으로 끼워넣었던 것이다.
기대대로 팔봉이는 몰입했고, 열정적으로 등반했다.
고소로 맥을 못추던 나와 달리 팔봉이는 고지대에서도 선인봉을 오르듯 가뿐하게 올랐다.
거기서도 밥만 많이 먹으면 다른 건 필요없이 해결되었다.
팔봉이는 몽븡랑 정상에 발을 디디며 감격스러운듯 돌아서서 나를 안았고, “형 고마워요.”라며 이야기 했다.
마터호른에서 루트파인딩 실수로 되돌아서 탈출을 할 때도 팔봉이는 내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알프스 원정에서 돌아온 나는 좌표를 잃은 배처럼 한동안 산에 다니지 못했고,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해야 했다.
원정에서 돌아온 후 팔봉과 나는 익스트림라이더에서 인공등반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나 그 해 팔봉의 아버님이 구강암으로 돌아가셨고, 난 팔봉과 함께 교육을 받기 위해
일년을 기다렸다.
2001년 익스트림라이더 9기 교육을 함께 받은 후
팔봉이에게는 매킨리원정의 기회가 찾아왔다.
알프스에서처럼 팔봉이는 가뿐하게 고소 한 번 먹지않고 매킨리 정상에 올랐다.
팔봉이는 아마 셀파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2004년 배핀 아일랜드 원정을 오랫동안 꿈꾸던 세준과 준호는 원정대원으로서 팔봉이 어떤지를 물었고, 나는 팔봉을 적극 추천했다.
경비문제로 정말로 어렵사리 출발한 배핀 팀은 한국최초로 신루트를 두 개 개척하는 쾌거를 이룬다.
팔봉이는 MBC TV 에 출연하는 기쁨도 누린다. 그 프로그램(공감)의 소제목(타이틀)이 “팔봉씨의 도전”이었다.
(공)재은 형이 도봉산에서 장비점을 할 때,
우리가 선인봉 등반을 위해 토요일 야영을 들어갈 때면 꼭 재은형의 장비점을 찾곤 했다.
재은 형은 가게안에 슬링과 로프를 이용해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가 가면, 꼭 팔봉에게 한 손 턱걸이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팔봉이는 배낭을 벗어놓고 한팔턱걸이에 도전하곤 했었다.
팔봉이는 재은형의 장비점에서 맘에 드는 신형 퀵드로우를 보며 입맛을 다셨고,
당시 들쑥날쑥한 일거리 때문에 수입이 일정치 않은 팔봉은 선뜻 그것을 살 수 없었다.
그러던 팔봉이가 하루는 용기를 내어
"재은형, 저 퀵드로 10개 사려구요. 대신... 돈은... 나중에 드리면 안될까요?..."
재은 형은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등반했던 기억이 절실했던 지라
그런 팔봉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선뜻 "그래, 가져가" 하는 것이다.
결국 그 장비값은 거의 일년이 다 되어서야 갚게 되었고,
사람좋은 이런 재은형의 장사 방법이야 말로 장비점을 빨리 문닫게 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산사람의 마음을 누가 욕할 수 있으랴,
장사가 잘 될리 없었던 마포와 용산에서의 장비점 시절에도 재은형은 후배들이 원정간다고 찾아오면 이런저런 장비들을 내놓곤 했다.
그런 후배들중에서도 재은형은 승철과 형진을 무척 아꼈고 자랑스러워했으니
승철과 형진이 트랑고타워 원정에서 돌아와 처음 인공등반 교육을 시작했을 때에도
장비점 입구에 '교육 안내 및 모집' 을 써붙이고 스스로 1기교육에 들어갔었다.
재은형이 선인派의 맹장(猛將)으로 한참 도봉산에서 날리고 있을 때 재은형의 눈에 비친 승철은, 어리고 등반이 서툰 후배였었다.
6월호 마운틴紙에 재식형이 게재한 "한국의 바위열전"에 소개된 '경송A' 루트와 '경송B'루트를 개척한 장본인이 바로 공재은이다.
수송전기공고 산악부에 입회하여 첫 바위를 선인봉 박쥐길에서 시작한 재은형은 그 때 암벽화도 아닌 당시 유행하던 흰색 농구화(비비화라고 했음)를 신고 박쥐길을 오르다가
결국 슬랩에서 버벅거리다 하강하고 만다.
텐트에 돌아온 재은형에게 산악회 선배는 미제 군용 숟가락으로 재은형의 이마를 때린다.
박쥐길을 똑바로 오르지 못해 산악회의 이미지를 구겼다는 죄로 100대를 때리기로 한 그 선배는 50대를 때릴 즈음 후배의 이마가 터져 피가 흐르자 나중에 때리기로 하고 50대를 저금해놓는다.
재은형의 2년 후배 상인이라는 친구가 있다.
상인이 역시 수송전기공고 후배로 산악회에 입회를 하는데,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인가 대대장인 상인은 방과후 교련복에 칼을 차고 도봉산으로 간다.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선배들은 텐트안에서 밥을 먹고, 상인은 텐트밖에서 비를 맞으며 빗물과 함께 밥을 먹는다.
어느 날 재은형은 상인에게 옆 텐트에 다녀올 테니 라면을 끓여놓으라고 지시를 한다.
재은형이 올 시간에 맞춰 라면을 끓여놓은 상인은 시간이 지나 라면이 불어 못먹게 되자 버리고 다시 끓인다.
그렇게 밤새워 라면을 끓이다 지쳐 잠이 든 상인은 새벽에 온 재은형에게 호되게 맞는다.
라면을 안 끓여 놓았다며...
2000년 봄 알프스 원정을 앞두고 간현암을 찾았었다.
그 때 팔봉은 비어있는 루트를 찾다가 한 코스를 발견하곤 이내 올랐는데, 팔봉은 처음 찾은 간현암에서 YS(5.12b)를 온사이트로 오른다.
그래서 당시의 팔봉의 등반속도라면 능히 5.14급 등반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네가 5.14 루트 등반을 해내면 내 딸을 주마"하고 약속을 했었다.
그 후 팔봉의 등반스타일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 것은
팔봉에겐 하드프리 스타일이 아닌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 맞는다는 것이었다.
여느 산악회가 겪는 일인것처럼,
우리 산악회에서도 어려운 코스를 선등할 톱쟁이가 부족했었다.
팔봉이는 그런 면에서 보면 남에게 주기 아까운 존재였으나
팔봉이가 한참 성장하던 시기에 나는 당시 등반대장이던 희상에게 제안을 했다.
그것은 팔봉이가 좀 더 큰 등반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산악회에서 떠나 보내야 한다는 의미였으나, 희상이도 그런 나의 제안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항상 순수하고 막냇동생같던 팔봉이가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줄 알았고 그러길 바랬었다.
눈깜박할 사이에 훌쩍 커버린 막내의 키에 놀라는 것처럼
이제는 팔봉이도 힘찬 날개짓을 하며 창공을 나르는 커다란 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산보다 거칠고 힘들 속세의 세상에서 팔봉이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며칠전 전화에서 팔봉은 어머니를 자신이 관리하는 암장근처로 모셨다고 한다.
자신의 위로 형들도 많은데…
이번 트랑고타워 원정에서 멋진 등반의 날개짓을 펼치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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