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아라메길 1구간 종주를 마쳤다.
완전한 종주라고는 할 수는 없었으나 상왕산을 완주하고 개심사로 내려왔을 때 오후 4시가 갓 넘었다.
아스팔트 길을 걷고 역천 제방을 유유자적하며 산천을 유람하듯 걸었으며 고풍 터널을 지나기도 하였다.
강댕이미륵불과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살펴보고 세월의 흐름을 간과하려다가도 과거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남겼던 자취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과거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 세대들이 살고있는 시대하고는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사상이나 생활 양식이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내가 지났던 지역의 산천이나 초목은 물론 사람들의 따뜻한 가슴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지나친 욕심이나 탐욕을 채우려하지 않았고 밭 한뙈기를 경작하고 살더라도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사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았다.
이들은 공자가 말한 과유불급이라는 말과 같이 지나치지 않고 약간 가난하게 살면서도 거기서 행복을 찾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여치 주차장
선조들이 소박하게 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을 가까운 주변에서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이나 욕심, 탐욕은 한 낱 물거품에 불과하다.
신분에 구애받을 것도 없었다.
삼국시대는 신분적으로 왕족이나 귀족, 평민, 천민이 각기 존재하였으나 역할만 달랐을 뿐 지체가 높은 신분이라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산행시작
당시 내로라하는 신분들도 현재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삶의 허무함과 지혜를 여기서 보았다.
무소유의 마음으로 세상을 해쳐나가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인생이란 일장춘몽일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일인가?
욕심이나 탐욕이 없다면 인간은 허수아비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분을 추월하여 많은 사람들은 불교 사찰을 찾았을 것이다.
현세 구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더위때문에 몸은 지쳐가고
불교는 현세 구복신앙으로 전향한 것이다.
과거 삼국시대 사람들도 오늘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탐욕을 추구하기 위하여 사찰을 찾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을 비우지 못하여 가슴앓이를 하는 것 때문인 경우도 있었겠으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인간 본연의 탐욕에 대한 고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서 삶이 엇갈렸다고는 하나 행복이란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감태나무
줄기: 하록(夏綠) 및 반상록의 관목 또는 아교목(亞喬木)으로 암수딴그루(雌雄異株)다. 수형(樹型)은 윗부분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가지는 가늘지만 강건해 딱딱 부러진다. 수피는 엷은 갈색이며, 줄기, 가지, 잎 등에 상처를 내면 독특한 향이 난다.
잎: 일정한 간격으로 어긋나며(互生), 어린잎에 면모(綿毛)가 있다. 가장자리가 밋밋한 물결모양이며, 앞면은 녹색으로 약간 윤기가 있고, 뒷면은 회녹색이다. 등갈색 갈잎 상태로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많이 남아 있다.
꽃: 4~5월에 잎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황색으로 피며, 우산모양꽃차례(散形花序)다.
열매: 구형(球型)의 물열매(液果)로 8~9월에 흑색으로 익으며, 약간 매운 맛이 있다.
고로쇠나무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무환자나무목
분포지 : 한국(전남·경남·강원)·일본·사할린섬
분포지 : 산지 숲속
크기 : 높이 약 20m
특징
고로쇠·고로실나무·오각풍·수색수·색목이라고도 한다. 산지 숲속에서 자란다. 높이 약 20m이다. 나무껍질은 회색이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잔가지에 털이 없다. 잎은 마주나고 둥글며 대부분 손바닥처럼 5갈래로 갈라진다. 잎 끝이 뾰족하고 톱니는 없다. 긴 잎자루가 있으며 뒷면 맥 위에 가는 털이 난다.
그래서 왕족이나 귀족 등 소수를 제외한 일반 평민들은 자신들의 구복을 위하여 서민적인 미륵불을 찾았는데 이것이 미륵사상이 사상이 유행하게 된 이유였다.
우리가 걸어가는 아라메길 양쪽에는 융성했던 당시의 사찰인 보현사지와 암자, 이름 없는 미륵불들이 쓸쓸하게 과거를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심사였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곰의말채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산형목
분포지 : 한국·일본·타이완·중국 등지
서식장소 : 산기슭, 숲 가장자리
크기 : 높이 15m 이상
특징
웅수목(熊水木)이라고도 한다. 산기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높이 15m 이상이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불규칙하게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길이 8∼18cm로 녹색이며 마주나고 타원형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이다. 잎 앞면에는 누운 잔털이 나고 뒷면에는 희고 억센 털이 많이 난다. 잎자루는 길이 1∼3cm로 털이 없다.
굴참나무
줄기: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직립하고, 수피에는 두터운 코르크가 발달한다.
잎: 어긋나며(互生), 뒷면에 방사상의 털이 밀생해 회백색이다.(비교: 상수리나무는 뒷면 털은 곧 없어진다.)
꽃: 4~5월에 잎이 나기 전에 피며(상수리나무보다는 약간 늦게 핌), 암수한그루(雌雄同株)다. 수꽃차례(雄花序)는 새 가지 밑으로 쳐지고, 암꽃차례(雌花序)는 보통 1개씩 위에 달린다.
열매: 견과(堅果)로 꽃 핀 후 그 다음해 가을에 종자가 성숙하며, 참나무 가운데 도토리가 가장 크고, 반구형 깍지(殼斗) 윗부분에 가늘고 긴 비늘조각(鱗片)이 꼬여 있다.
나도밤나무
계 : 식물계
속 : Meliosma
크기 : 10m
수확시기 : 9월~10월
원산지 : 한국
분포지 : 한국, 일본, 중국
특징
수고 10m 정도로 곧게 자라며 수피는 회색 또는 흑회색으로 부푼 껍질눈이 있다. 어린가지에는 선모가 밀생한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장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가시 같은 잔톱니가 있다. 양면에 털이 있으며 측맥이 뚜렷한 편이다. 새가지 끝에 황백색의 꽃이 원추화서를 이루며 모여 달린다. 5개의 수술 중 3개는 헛수술이며 암술은 1개가 있다. 열매는 핵과로 9~10월에 초록색에서 붉은색으로 익는다. 꽃에서 구수한 꿀 향기가 나며 열매는 시큼한 맛이 난다.
개심사를 경유하여 주차장까지 내려왔는데 해미읍성행 마지막 버스가 간발의 차이로 출발하고 말았다.
허탈한 김에 간이 상점 앞에 앉아 더위를 식힌 후 택시를 불렀다.
개심사에서 해미읍성까지 택시 승차료는 기본료 12,000원과 콜비 1,000원을 합하여 모두 13,000원이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아주 싹싹하고 친절하였다.
우리가 등산복을 입고 승차를 하자 어느 산을 다녀오는지 물었다.
때죽나무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장미목
분포지 : 한국·일본·중국
크기 : 높이 약 15m
특징
물앵두나무·벌배나무·산매자나무·운향나무·물방치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15m 내외이고 작은가지에 피목이 뚜렷하며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서 타원형이며 잎자루가 있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겹톱니가 있다. 잎 표면은 녹색, 뒷면은 연한 녹색이다.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을 종주하다가 더위에 지쳐서 개심사에서 해미읍성까지의 구간을 포기하고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노라고 하니 개심사에서 해미읍성까지는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한데 안타깝다고 하였다.
자신도 백두대간 종주를 이미 마쳤고 안나푸르나 봉 베이스캠프까지도 다녀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라메길 1구간을 선정하는데 서산시에 많은 도움을 주었노라면서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완주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면서 아쉽다고 하였다.
태시 기사와 택시 안에서 짧은 대화였으나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도하였다.
해미읍성 주차장에서 승용차를타고 다시 전라북도 NH농협변산수련원으로 이동하였다.
NH농협변산수련원은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사람주나무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쥐손이풀목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서식장소 : 숲속
크기 : 높이 6m
특징
숲속에 흔히 자란다. 수피는 녹색빛과 회색빛을 띤 흰색이며 오래된 줄기는 얇게 갈라진다. 높이는 6m이다. 잎은 어긋나고 자르면 하얀 즙액이 나오며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의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빛을 띤 흰색으로 길이 6∼12cm이다. 잎자루 끝에 2개의 선점(腺點)이 있고 잎자루는 흔히 어린 가지와 더불어 붉은빛이 돈다.
와우! 시원하다.
사위와 딸 그리고 어린 외손주와 함께 방문하여 1박을 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던 것 때문에 전라북도를 방문할 때마다 의당 NH농협변산수련원을 예약하곤 하였다.
주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것도 있었지만 우선 실내가 청결하고 직원들이 친절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번 내변산 산행을 앞두고 집사람이 15일 전에 NH농협변산수련원을 예약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메르스가 창궐하여 여행을 긴장하게 하였다.
본래 6명이 아라메길 1구간과 내변산 산행을 약속하고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메르스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였다.
월명사 대웅전
월명사 삽살개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여행 당일이 점점 가까워지자 한 팀이 해외 여행을 예약했던 것과 겹쳐서 아라메길 1구간과 내변산 산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하여 4명이 출발하였다.
서산 아라메길 1구간 트래킹을 마치면 숙박지인 NH농협변산수련원을 들르기 전에 예전에 융숭하게 대접을 받았던 서해안식당을 들러 장어를 푸짐하게 먹어보려 하였다.
서산 아라메길 1구간 트래킹을 마치고 해미읍성 주차장에서 다시 유기방가옥까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였다.
승용차 한대가 유기방가옥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딸나무
계 : 식물계(Plantae)
과 : 층층나무과
크기 : 7~12m
용도 : 관상용
개화시기 : 6월
분포지 : 한국
특징
산딸나무는 황해도 이남 산지의 나무숲 속에 자라는 낙엽교목이다.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들어오고, 토양의 부엽질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7~12m이고, 잎은 달걀 또는 둥근 모양으로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의 굴곡으로 되어 있다. 꽃은 꽃자루가 없으며, 작은 가지 끝에 20~30개가 하늘을 향해 피고, 길이는 3~8㎝, 나비는 2~3㎝로 백색이며 꽃잎처럼 보인다. 열매는 10월에 적색으로 익으며 둥글고, 종자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육질이 달고 식용이 가능하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식용, 약용으로 쓰인다.
산초나무
크기 : 3m
개화시기 : 7월~9월
수확시기 : 10월
원산지 : 한국
분포지 : 한국, 일본, 중국
특징
수고 3m 정도에 달하며 수피는 회갈색으로 어긋나게 돋아난 가시가 있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기수1회 우상복엽으로 13~23개의 작은잎으로 구성된다. 작은잎은 장타원형 또는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으며 뒷면에 기름점이 있다. 엽축에 잔가시가 달리며 잎에서 산초 특유의 향기가 난다.
상산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무환자나무목
분포지 : 한국·중국·일본 등지
분포지 : 산지
크기 : 높이 1.5∼3m
특징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1.5∼3m에 달하고, 나무 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어린 가지에 털이 약간 있다. 잎은 어긋나고 한쪽에 2개씩 달리며 길이 5∼13cm의 타원 모양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며 밑 부분이 둥글고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 표면은 노란 색을 띤 녹색이고 광택이 있으며 독특한 냄새가 나고, 잎자루는 짧다.
애초에 아라메길 1구간 트래킹을 마치고 유기방가옥에서 다시 돌아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에 있는 서해안식당으로 출발한다 할 지라도 저녁 식사가 가능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라메길 1구간 트래킹을 마치고 유기방가옥에 도착해보니 오후 5시가 가까워졌다.
유기방가옥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에 있는 서해안식당까지는 대략 2시간 40분 거리여서 오후 8시가 가까워서야 도착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서해안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마감시간을 알아보았더니 오후 8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약간 아쉽기는 하였으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에 있는 서해안식당으로 가는 계획을 포기하고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으로 이동하였다.
자연적으로 깍인 자연의 절묘한 모습
직소보
변산 격포항은 여러차례 다녀왔던 곳이고 군산식당은 익히 알고 있는 식당이었다.
군산식당에 들어가 가정식 백반을 시켜놓고 넷이서 앉아 오늘 일정을 회상해보면서 술과 안주를 거하게 먹고 있었는데 NH농협변산수련원에서 전화가 왔다.
몇 시쯤 입실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아침이다.
날씨가 화창하고 바닷가라서인지 기온이 별로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정오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린다고하여 오늘 내변산 산행이 약간 힘들것 같았다.
등산 일정은 남여치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쌍선봉, 낙조대, 월명암, 봉래구곡, 직소폭포, 재백이재, 관음봉, 세봉, 내소사로 내려가는 종주코스였다.
직소보가 환상적이다.
직소폭포
산행시간은 여성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평균 산행 예상시간인 6시간보다 더 소요될 것이라 생각하고 넉넉잡아 7시간으로 잡았으나 상황에 따라서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여치 주차장은 인가로부터 깊숙히 들어간 계곡에 위치하고 있었고 왕래하는 차량도 드물었다.
그래서 인지 남여치 주차장은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요하고 적막감마져 들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쌍선봉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쌍선봉의 높이가 서울 청계산 높이만도 못한 낮은 산이어서 무시하고 얕잡아 보았으나 더위 때문인지 이미 등에서는 촉촉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쪽동백
계 : 식물계(Plantae)
과 : 때죽나무과
크기 : 2~10m
용도 : 관상용
개화시기 : 5월~6월
분포지 : 한국
특징
쪽동백나무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 숲에서 나는 낙엽교목이다. 생육환경은 양지 혹은 반음지의 물 빠짐이 좋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란다. 키는 2~10m이고, 잎은 길이가 7~20㎝, 폭이 8~20㎝로 표면은 녹색이며 맥 위에 털이 있고, 뒷면은 흰빛이 돌며 큰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다. 꽃은 백색이고 지름이 약 2㎝이며 새로 자란 가지에 하얀 통꽃 20송이 정도가 처져서 달린다. 열매는 7~10월경에 길이가 약 2㎝ 정도이고 회록색이며 타원형으로 달린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약용으로 쓰인다.
철쭉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졸참나무
강 : 쌍떡잎식물
목 : 진달래목
분포지역 : 한국 ·중국 ·우수리
서식장소 : 산지
크기 : 높이 2∼5m
특징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2∼5m이고 어린 가지에 선모(腺毛)가 있으나 점차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서는 돌려난 것 같이 보이고 거꾸로 선 달걀 모양으로 끝은 둥글거나 다소 파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은 녹색으로 처음에는 털이 있으나 차츰 없어지며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잎맥 위에 털이 있다.
팥배나무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장미목
분포지 : 한국·일본·중국
크기 : 높이 약 15m
특징
물앵두나무·벌배나무·산매자나무·운향나무·물방치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15m 내외이고 작은가지에 피목이 뚜렷하며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서 타원형이며 잎자루가 있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겹톱니가 있다. 잎 표면은 녹색, 뒷면은 연한 녹색이다.
예전부터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자주 찾았던 나는 꼬불꼬불 굽이 진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한다 든지 바다의 경관을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내륙의 절경을 간혹 놓치곤 하였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백미를 꼽는다면 단연 바다와 어우러지는 해안도로와 내소사, 곰소만 등을 들 수 있겠으나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외변산과 내변산의 절경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껏 외변산과 내변산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때를 기다리다가 이번에서야 비로소 내변산 산행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합다리나무
문 : 현화식물문(Magnoliophyta)
강 : 목련강(Magnoliopsida)
목 : 무환자나무목(Sapindales)
과 : 나도밤나무과(Sabiaceae)
속 : 나도밤나무속(Meliosma)
특징
바닷가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큰키나무이다. 줄기는 높이 8-15m이다. 어린 가지에 갈색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며, 작은잎 9-15장으로 된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 길이 5-10cm, 폭 2-3cm이다. 잎 질은 조금 가죽질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50여분이 지나서야 해발 459.1m인 쌍선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변에에서는 쌍선봉이 꽤 높은 봉우리여서 사방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이 얼굴을 간지럽게 하였다.
쌍선봉까지만 올라서면 등산로는 거의 평지나 다름 없는 능선길일 것 같았다.
쌍선봉을 우회하는 산 비탈길을 따라 걸어가니 쌍선봉 삼거리가 나왔다.
그런데 어인 까닭인지 쌍선봉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을 차단시켜 놓고 산행을 금지하였다.
쌍선봉에서 멀리 서해바다가 보일 것도 같아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었으나 아쉬운 가슴을 달래며 월명암으로 이동하였다.
작살나무
계 :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통화식물목
분포지 : 한국·일본·중국
분포지 : 산
크기 : 높이 2∼4m
특징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2∼4m이며 가지는 어느 것이나 원줄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 정확히 마주 보고 갈라져 있어 작살 모양으로 보인다. 어린 가지와 새 잎에 별 모양 털이 있다.
회색빛을 띤 갈색 가지에 달리는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으로 윗부분이 좀더 넓고, 잎 끝이 뾰족하여 더욱 길게 느껴진다. 잎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나 있고 잎을 만져보면 질감이 좋다.
월명암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 쌍선봉 정상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암자였다.
이 암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신라 신문왕 때 고승 부설거사가 창건한 곳으로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고찰이었다.
조선 선조 때의 고승 진묵이 중창하여 17년 동안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나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폐사가 되시피 하였던 암자를 1863년 철종 때 성암이 중건하였다.
이후 1908년에 불타버렸다가 다시 보수,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월명암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상도량으로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어느 사찰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월명암의 대웅전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108계단은 아니었으나 계단을 밟고 땀을 흘리고 나서서야 대웅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월명암은 아담하고 조그마한 암자였으나 쌍선봉이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 학 한 마리가 홀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고 있는 것처럼 도도하게 보였으며 대웅전 안에서는 세상 일에 초연한 선승이 목탁을 두드리며 세상 사람들을 깨유쳐 바르게 인도하고 있었다.
이 암자에서 들리는 것은 선승이 두드리는 은은한 목탁소리 뿐이었다.
암자의 넓은 앞 뜰에는 비구 승도 비구니 승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웅전 앞 뜰에는 어슬렁거리는 털북숭이 삽살개 두 마리가 있었다.
사람들을 별로 볼 수 없었던 탓인지 초조하게 암자를 서성이다가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주둥이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몸집이 크고 우람한 개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두렵기까지하였으나 알고보니 애교 만점의 순둥이었다.
내소사 전경
시골 농가에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비는 3년 가뭄을 해갈시켜줄 수 있었던 단비였다.
농부는 재빨리 삽을 들고 우장을 쓴 채 들로 나가고 있었다.
그 농부의 뒷 모습은 너무 기쁜 나머지 들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털 북숭이 삽살개 두 마리를 바라보니 문득 시골 그 농부가 생각났다.
주인 없는 넓은 뜰에서 쥐죽은 듯 눈을 감고 있다가 방문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면 동시에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니 가엾고 처연하게 보였다.
물론 개의 본성이 그러하겠으나 삼라만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것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졸참나무
계 :식물
문 : 속씨식물
강 : 쌍떡잎식물
목 : 진달래목
분포지역 : 한국 ·중국
서식장소 : 산지
크기 : 높이 2∼5m
특징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2∼5m이고 어린 가지에 선모(腺毛)가 있으나 점차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서는 돌려난 것 같이 보이고 거꾸로 선 달걀 모양으로 끝은 둥글거나 다소 파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은 녹색으로 처음에는 털이 있으나 차츰 없어지며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잎맥 위에 털이 있다.
다시 하산하였더니 겸재 정선의 금강산 만폭동도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돌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조각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네모난 돌이 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신의 합작품이 아니면 자연의 조화였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내변산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늘과 산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자연은 거의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심산유곡에서 산새들의 노래 소리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는 청량감을 주었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부족하여 아쉬웠다.
계곡물이 콸콸콸 소리내며 계곡에서 세차게 흘러야 하였는데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새소리가 오히려 크게 들렸다.
바로 봉래구곡이었다.
조선왕조 초기는 신분을 양천제로 구분하고 있었다.
이것이 다시 세분화되어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누어졌고 천민으로는 백정이나 광대, 재인, 노비 등이 있었다.
노비는 다시 관노비와 사노비로 나누어졌으며 관노비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를 말하고 사노비는 개인이 소유하는 노비를 말한다.
소태나무
문 : 현화식물문(Magnoliophyta)
강 : 목련강(Magnoliopsida)
목 : 무환자나무목(Sapindales)
과 : 소태나무과(Simaroubaceae)
속 : 소태나무속(Picrasma)
특징
전국의 산에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작은키나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인디아(인도), 대만(타이완), 일본에 분포한다. 줄기는 높이 8-10m다. 껍질은 맛이 쓰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잎은 작은 잎 9-15장으로 된 깃꼴겹잎이며, 길이 20-30cm다. 작은 잎은 난상 피침형, 가장자리에 고르지 않은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암수딴그루 또는 잡성으로 피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산방꽃차례에 작은 꽃이 많이 달리고, 녹색이 도는 노란색이다. 꽃받침잎과 꽃잎은 각각 4-5장이다. 수꽃의 수술 숫자는 꽃잎의 2배다. 암꽃은 수꽃보다 작다. 열매는 핵과이며, 도란형 또는 타원형이다. 약용으로 쓰인다.
변산하면 이매창을 들먹이곤 하고 있는데 이매창은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딸로 태어났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는 관리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수령(守令)으로는 원칙적으로 부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피제도에 따라 타지방 사람을 수령에 임명하였는데 임기가 짧은 지방관은 임지(任地)의 사정에 어두워 그 지방의 사정에 밝은 아전들에게 행정실무를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아전들에게 급료가 없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전들은 지방관을 속이고 사복을 채우는 등 횡포가 아주 극심하였다.
때로는 아전의 기세가 등등하여 중앙정부가 임명한 지방관을 농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전 중에는 농민들로부터 착복하여 떵떵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아전들이 첩을 거느린 것은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는 당연시 되기도 하였다.
부안현 아전 이탕종도 이러한 경우였다.
조선시대 노비는 어머니 신분을 따르게 하는 종모법을 원칙으로 하였다.
어머니가 관노비였기 때문에 매창 역시 어머니 신분을 따라 관노비가 되었을 것이다.
이매창이 계유년(1573)에 태어나 경술년(1610])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 당시 나이가 서른여덟살이었다.
계유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계생이라고도 하였고 매창은 자신이 작명한 호였다.
허균이 이매창의 외모를 두고 불양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으로 보아 얼굴은 곱상하고 반반하지 못하였으나 노래와 시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매창은 평생토록 노래를 잘해서 지은 시 수백 편이 그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하니 이해가 될 것 같다.
당시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 평론가였던 허균과 서신을 교류하였다고 하는 것은 지방의 관노비인 이매창의 능력이 어는 정도 수준이었던 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안을 지날 때마다 이매창의 싯귀가 생각나곤 하였는데 오늘따라 더욱 간절한 느낌이 들었다.
매창의 가슴에 사랑이 싹튼 것은 꽃다운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자신보다 스물 여덟 살이나 많은 천민 출신 유희경이었는데 왜 하필이면 천민 출신 유희경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의아해 하여 유희경의 삶을 조사하여 보았더니 비록 신분은 천민이었으나 그는 학문을 좋아하고 조선왕조의 주류학문인 성리학에 출중하였다.
유희경은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다.
천민 출신이나 한시를 잘 지어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했으며 자기 집 뒤의 시냇가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침류대(枕流臺)’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유명 문인들과 시로써 화답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자자하였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또한 조선왕조 광해군 때 이이첨이 모후인 인목대비를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그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 협박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여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학문이 탁월하고 불의를 멀리하며 인품이 소탈한 유희경을 이매창은 은근히 사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오늘날 같으면야 남여관계가 자유분방하여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듯 싶으나 당시 이매창이 천민 유희경에게 유독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같은 천민이라는 신분 때문도 있었지만 세속에 떼가 묻지 않은 그의 고고한 학문과 성품태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남성에게 마음을 주었던 이매창은 서울로 올라간 연인 유희경을 잊을 수 없었다.
종모법이라는 실정법에 구속되어 관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나 노래와 시로서 신분을 초월하여 남여관계를 넘나들고 싶었다.
한가롭고 담담하여 당나라 시(唐詩)에 가깝다고 평가한 허균의 말대로 학문이 뛰어나 자유분방한 유희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오금이 저리곤 하였다.
사랑을 애타게 갈구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다.
한적하고 바람이 분 한 어느 날 이매창은 마음이 우울하여 침을해졌다.
그래서인지 덩달아 감슴도 안정되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쳐 놓고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낀 허공에서 한 쌍의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기러기도 사랑하는 님과 함께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는데 자신은 신분 때문에 자유분방하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러기처럼 훨훨 님을 찾아가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이매창은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유희경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하였으나 오늘따라 사랑하는 님이 몹씨도 그리웠다.
곁에 세워둔 가야금을 끌어 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구성지게 가야금을 뜯기 시작하였다.
청아하고 구슬픈 노래소리가 창밖에까지도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노래소리를 듣는 연작마져도 애간장이 녹아 행동거지를 추춤거리고 있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하여 가야금을 타면서 부르는 노래였다.
이매창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유희경 외에도 개경 유수 송경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과 인품과 풍류를 통해 고귀한 삶의 철학을 배우면서 한 떨기 도도한 장미처럼 부안에서 평생을 살다가 갔으나 그의 시는 전국의 풍류객들에게 오르내려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곳 봉래구곡을 걸어가고 있는데 이매창이 풍류객들과 함께 어우러져 앉아서 시작을 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였다.
직소보다리를 건너니 바로 직소보였다.
직소보는 산 중에 있었는데 선녀들만이 노니는 선계로 보였다.
부안군민의 비상 식수원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직소보는 직소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분옥담과 선녀탕을 지나 모이는 곳이었다.
하트형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직소보는 하늘을 품고 있었다.
바다물처럼 파란 물빛이 투명하게 반사되어 하늘이 아예 물 속에 잠겨있는 듯 하였으며 주위는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초목들이 우거져 있었다.
직소폭포로 이동하기 위하여 직소보 가장자리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는데 물위에 떠있는 나무토막 위에 거북이 한 마리가 앉아 두 눈을 굴리며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들이대며 촬영하려는 순간 거북이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거북이가 어디로 사라졌나 하고 보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은어처럼 투명한 작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배낭 속에서 과자부스러기를 꺼내 수면 위로 던져주렀는데 사방에서 물고기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경을 걷고 있노라니 한 없이 걷고 싶었을 뿐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와 내가 걸으면서 유흥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선녀탕과 분옥담, 직소폭포는 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었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가뭄탓인지 직소폭포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수량이 너무 적었다.
내변산의 신선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합류하여 직소폭포를 만들었다.
변산 팔경 중 제 2경으로 뽑힐만큼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으며 주변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높이는 대략 30m 정도였는데 물줄기가 곧바로 용소로 떨어지고 있어서 직소라고 하였다.
직소폭포의 계류가 제 2, 제 3의 폭포를 만들었으며 그 물줄기가 계속 흘러가서 분옥담과 선녀탕 등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자연경관을 창조하였다.
직소폭포에서 재백이재로 가는 길은 잡목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는데 시골 마을의 언덕을 걷는 느낌었다.
관음봉삼거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암봉을 따라 걸었다.
경사 40도 정도의 암릉길이 계속 이어졌는데 소나무 숲길 사이의 돌 계단길이었다.
이제 깔딱고개인 듯 철책계단이 나의 마지막 힘까지 고갈시키려 하고 있었다.
기온은 30도를 상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의 경쟁에서 나는 늘 투지와 지구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낙원인 관음봉(433m)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서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천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곰소만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듯 가까이 보였으며 직소보도 손에 잡힐 듯하였다.
조심스레 암봉을 따라 세봉으로 향하다가 세봉 정복을 후일로 미루고 내소사로 내려섰다.
그것은 애초에 산행시간을 7시간으로 예상하였으나 시간이 초과되고 피로가 누적되어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내소사는 좌청룡 부백호를 갖추고 있어서 아늑함 그 자체였다.
내소사 주차장에서 전라북도 NH농협변산수련원으로 이동하다가 전일처럼 다시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격포항으로 이동하였다.
격포항의 별미 백합 정식을 먹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격포항 수산시장으로 들어섰는데 전염병 메르스 때문에 우리들 스스로가 조심해야 하여서 음식 뿐 아니라 행동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술 몇 잔이 순회되면서 모든 것을 망각하고 취해가기 시작하였다.
이번 여행은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을 트래킹하고 내변산 산행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서해안식당에서 장어를 먹으면서 주도 삼매경에 입도해보려 하였다.
그러나 목표에 근접은 하였으나 개심사에서 해미읍성까지 트래킹은 더위와 피로 때문에 누락되고 내변산 산행에서 세봉 정상 정복은 시간 초과와 피로 때문에 취소해애야 하였다.
너무 아쉽고 서운하였으나 성취를 달성하지 못한 곳은 훗날을 기약하고 다음날 아침에 전라북도 NH농협변산수련원에서 군산으로 이동하였다.
몇 년 전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둘러보았던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 히로쓰가옥, 동국사, 진포해양테마공원 복성루 짬뽕집, 이성당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이 많이 모여 살았던 군산은 벚나무가 상징처럼 많았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인 전주-군산가도의 가로변에는 봄이면 하얗게 피어난 벚꽃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종점에는 월명공원이 있었다.
월명공원은 산책로의 오르내림이 많아 사람들이 수시로 체력단련을 위하여 찾고 있었다.
공원 안에는 해병대충혼탑과 개항기념탑, 채만식기념비, 삼일운동기념비 등 군산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비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렀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군산 시가지와 군산항의 풍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다.
월명공원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일제 때 지어진 동국사라는 사찰을 방문하였다.
동국사는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이 특이하여 관심을 더욱 끌게 하였다.
군산 동국사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 등은 절이라기보다 일본식 가정집 같다는 느낌이들었다.
동굴서 관람 후 이성당을 찾았다.
성당이라고 해서 가톨릭과 관계있는 곳이 아닌가 혼란스러웠으나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위치한 제과점이었다.
하도 요란하고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제과점에 들렸는데 제과점은 그져 평범하게 보였다.
그러면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얘기인데 대기업도 아닌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과연 해방 이후 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였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홀에 갑자기 사람들로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밖을 바라보니 50m가 넘게 사람들이 열을 서 있었다.
빵을 사들고 밖으로 나와서 시식을 해보았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빵을 사기 위하여 도로가에 사람들이 50m ~ 100m까지 늘어서 있었는데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빵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직원 또한 친절하기가 그지없었가 때문이다.
빵을 구입하는데는 30여분이 소요되었으나 후회나 회한이 전혀 없었다.
이성당은 1920년대에 일본인이 '이즈모야' 라는 화과자점으로 문을 열어 영업해오다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한국인이 이성당으로 상호명을 바꾸어 개점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빵집이었다.
서울특별시 서초동에도 '햇쌀마루'라는 상호를 가진 빵집이 있는데 같은 계열의 분점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