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신다/레9:1-24
여러분은 오늘 여기서 드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며 교제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예배드리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미국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의 루이스 쉐릴이 1955년에 「만남의 기독교교육」(Gift of Power)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인간자아에 대하여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썼습니다. 그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과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할 수 있는 관계로 지음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분과의 만남이 인간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아를 발견하게 하고 자아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 믿음생활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 만남은 신비적이고 기쁨이 있고 역동적인 힘이 넘치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 중에 하나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방편인데,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신비한 방법으로 교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 가운데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설교가 가장 중요합니다. 루돌프 보렌이라는 설교학자는 「설교학 원론」이라는 책에서 "설교는 만남의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제 설교를 듣거나 제가 드리는 기도에 진심으로 '아멘'할 때 질병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거나 문제가 해결되거나 신비한 방법으로 기쁨과 위로를 주시는 것을 경험해 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고 예배를 받으시며 우리와 교제하신다는 것을 현상적으로 보여주신 증거가운데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성경에 말씀하신 것이고 과거 성경시대의 사람들이나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적으로 배운 일들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고 교제하신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레위기 문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레위기의 주제와 본문의 위치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방법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레위기의 주제를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출애굽기와 연관하여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25장부터 마지막 40장까지 성막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40장에는 성막이 완성되어 그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출40:34-38).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모세도 함부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에 완성된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레위기는 이 성막에 누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레위기는 제사 직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규례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레위기는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6:46에 보면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기록된 내용은 언약백성으로서 성막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언약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레위기를 잘 공부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언약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언약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제사제도입니다. 그 제사제도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와 속건제입니다. 두 번째로는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해서입니다. 세 번째로는 제사드리는 사람들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로 성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성막 바깥인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특히 레위기에서 제사제도의 내용에 관하여서는 레위기 1:1-6:7에서 다섯 가지의 제사제도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설명하였습니다. 6:8-7:38에서는 이러한 제사제도의 절차와 방법들을 설명하였습니다. 8장은 제사제도를 집행하는 제사장들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 처음으로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는 사람들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을 세울 때 이스라엘 온 회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로 씻기고 속옷을 입히고 그리고 에봇을 입히며 그 가슴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흉패와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우림과 둠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관을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도 죄를 용서받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속죄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으로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임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내용은 여러분들이 매일 우리 교회의 QT교재를 통하여 읽었거나,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은 머리에 연상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레위기 9장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해 제사법을 가르쳐 주시고 제사장을 세우신 일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가르쳐 주신 제사법과 세우신 제사장을 통하여 실제로 제사를 드리는 내용과 제사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평이한 용어로 바꾸면 앞에서 성막에 임해해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원리와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면 레위기 9장은 그 원리와 방법대로 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제사법과 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하여 성막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실까요? 만약에 그 방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에서 보여주신 제사법과 제사장의 중보사역은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2. 제사법대로 제사를 드리게 함
하나님께서 실제 가르쳐 주신 원리와 방법에 따라 드리도록 모세에게 상세한 내용을 지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당시 처음으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레위기 9:1-4에 요약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팔일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아론에게 이르되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소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송아지와 어린양의 일년 되고 흠 없는 것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수양을 취하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매" 여기에 보면 앞에서 가르쳐주신 제사법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사에 드리는 제물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레위기 9:4 후반부에 하셨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여러분! 이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원리와 방법을 보여주신 대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고 그 영광과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 말을 들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은 제물을 다 준비하여 가져왔습니다. 레위기 9:5에 보면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제물을 가지고 와서 회막 앞에 섰습니다. 그 때에 다시 모세가 레위기 9:6에 흥미로운 말씀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이 제사제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이라고 하였고, 이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사장인 아론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레위기 9:7에 보면 "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를 드리는 순서도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레위기 9:8-11에 보면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을 위하여 먼저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 그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니라."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이 속죄제를 먼저 드렸는데, 속죄제물인 송아지를 잡고 제사장인 아론이 피를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희생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고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로 태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선 제사장이 먼저 죄가 용서받아야 하고 흠없고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도 드렸습니다. 번제는 그 삶을 주님께 헌신하고 드린다는 의미로 바친 것인데 제사장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장을 위하여 속죄제사와 번제제사를 드린 후에 백성들을 위하여 드렸습니다. 레위기 9:15-21을 보십시오. "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취하여 잡아 전과 같이 죄를 위하여 드리고 또 번제 희생을 드리되 규례대로 드리고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 희생의 수소와 수양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단 주위에 뿌리고 그들이 또 수소와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단위에 불사르고 가슴들과 우편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더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제사제도인 5대 제사를 어떤 순서로 드려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원리적으로 보여준 제사의 순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와 속건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속죄제사를 먼저 드리고 다음으로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려면 먼저 죄가 용서함을 받아야 하고, 더 큰 복을 누리기 위하여 옵션(option)으로 자신을 드리는 번제와 감사를 표현하는 소제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감사하며 드리는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3. 제사의 결과
그러면 이 제사를 드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레위기 9:23-24에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가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민수기 6:22-27에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 축도문구로 사용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축복의 내용을 보면 복을 주시어 지켜 달라는 것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 그리고 평강을 주시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말한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습니다. 이미 레위기 9:4에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시고, 9:6에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 대로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시(sign)로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번역에는 '사른지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로 '먹는다'는 동사인 '아카르'(࠘ࠊࠀ, 'akar)로 되어 있습니다. 불이 그 제물을 다 먹었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사음식을 조상들이나 귀신이 먹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원리와 방법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약의 제사제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고 엎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리지르다'는 단어는 단순히 외친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라난'(ࠐࠏ࠘, ranan)은 기뻐서 외친다는 뜻입니다. NIV 성경은 이 점을 잘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하심으로 제사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얼굴을 땅에 대로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은 현상은 여러 군데 나타납니다. 그 중에 북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아합과 아세벨이 다스리던 시대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과 대결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은 3년 6개월 동안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게 하여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합은 그 원인을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왕상18:17-18). 이 때에 아합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도전하였습니다. 그 도전은 제물인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로써 응답하는 신을 참 신으로 섬기자는 것이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종일 그들의 방법대로 기도하고, 심지어 몸을 자해하기도 하였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제단의 돌까지 다 태웠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외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제사법대로 제사를 드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그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완악하게 행동하면서 드리는 제사는, 그 제물이 아무리 많아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사야 1:13에 보면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에서 제사의 내용과 원리와 방법을 설명해 주시고 그 방법대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그 제사를 받으시고 만나시고 축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약제사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4.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
그런데 오늘날은 구약의 제사법대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오늘날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동물의 희생제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성막이나 성전에 제약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사장의 중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시고, 또한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어 자기 피를 가지고 성막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신약의 본문이 히브리서 10:1-7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제사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구약의 제사와 같이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이 예배는 우리의 생각이나 방식대로 드린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규칙(rule)이 있습니다. 그 기본모델이 구약의 제사이고, 이 제사가 발전하여 회당예배와 오늘의 예배가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없어진 이후에 회당예배와 신약의 예배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회당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4:16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말씀을 읽으시고 강해하셨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중심은 성경낭독과 성경을 강해하는 일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교회 예배에 성경이 주된 위치를 차지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성경을 봉독하고, 또한 봉독한 말씀을 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고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목회자요 신학자 가운데 한 분이신 폴 앵글은 "만약에 예배에 이 말씀을 없애버린다면 예배의 심장과 생명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배에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드리는 일과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예배의 일부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한 것처럼 목사님이 축복합니다. 이 축복이 전달되지 않을까요? 동일한 논리로 축복이 전달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심판을 선언하면 전달되지 않을까요? 신약시대의 목사님은 구약의 제사장과는 다르지만 동일한 권위와 특권과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17에 구약의 제사법을 성취하신 사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축복을 받는 방법으로 교회생활을 제시하며 의미있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날 구약의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하시고 교제하시는 것처럼 신약시대에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결코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성도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거나 낮 예배만 참석하고 오후 예배나 수요밤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모두가 예배활동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시고 과거 2000년의 교회 역사에서 변함없이 지켜온 예배는 단순히 의식이나 형식적인 절차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하고 놀라운 믿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power)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역동적인 힘이 넘쳐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빠지지 마십시오. 예배는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변화시키며 치료하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