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와 바람꽃. 6
1.
가도 가도 세상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하더라
가도 가도 세상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더라... 장시하 시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뭔가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시인이 암투병 중에 었어서 삶의 애착에서 나온 하나의 절규일수도 있고, 그의 지나온 삶을 반성하는 통곡일수도 있고, 아니면 찬란한 아름다움, 눈부신 아름다움이라는 수사에서 오는 아름다움의 무게때문에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의 본성은 좋은 것을 추구하며,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행복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선택한 파리스는 행복했을까, 파리스는 아름다운 헬레네를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했을까?
우리 인간의 삶은 순간 순간의 선택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선택의 기준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손익을 저울질하는 실용적 기준, 다른 하나는 그 선택이 정의로우며 합법적인가,즉 정의란 무엇인가? 셋째는 아름다운 선택인가 이다. 여기의 아름다움이란 미학적 아름다움뿐만아니라, 그 넘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눈부신 아름다움, 찬란한 아름다움 , 통쾌한 아름다움, 장렬한 아름다움..이러한 의미가 모두 포괄된 아름다움이다. 노량해전의 이순신장군의 아름다운 죽음, 나폴레옹을 격퇴한 영국 넬슨제독의 아름다운 최후, 일본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다가 죽은 한국 젊은 청년의 죽음도 우리는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말한다. 어쩌튼 아리스토텔레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최고의 선택으로 보았다. 그 스승 풀라톤은 향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에게 삶이 살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바라보고 살 때" 라고 했다.
여기에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삶, 그래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이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삶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장시하 시인이 말하는 눈부신 아름다움이 어떤 선택인지는 독자들 각자의 느낌에 맡겨야 할 것이다.또 파리스의 선택이 어떻했는지도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읽은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것이 현명할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그것을 위해 10년을 싸울줄 아는 사람, 그것을 위해 찬란히 죽울 줄 아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2.
역사속에 동양은 아름다운 여인을 어떻게 보았을까? 여색을 멀리하라, 여인은 소인과 비유되는 유가적 윤리 도덕을 중시하는 풍조속에 서양처럼 여신을 위해 신전을 세우고 숭앙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인을 후계자를 잇는 생산도구로 취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자식이 세자가 되면 그 어머니를 죽이는 제도도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식을 놓지 못하면 쫓겨나고 황후라해도 그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의 생산을 책임지는 칠성당 할매는 신전을 세우고 숭배되었던 것에서 알수 있다. 또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전쟁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미인계를 사용해서 공주를 시집보내고 국가를 보호하는데 여색을 이용하고 있었다. 왕소군이 그러하고 , 서시가 그러했지 않은가? 그러나 동양도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배격하지는 알았다. 우리는 중국 4대 미인을 침어, 낙안, 폐월. 수화 라 한다. 춘추시대 월나라 서시가 개울에서 손을 씻는데 물에 비친 서시의 얼굴을 보고 고기가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리고 죽었다는 것이다. 한나라 왕소군이 길을 가는데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날개짖 하는 것을 잊어버려 떨어져 죽었단다. 지나가던 달이 초선의 아름다움을 보고 부끄러워 자신의 얼굴을 가리윘답니다. 양귀비가 정원에 꽃구경을 하는데 뭇 꽃들이 귀비의 아름다움에 놀라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었다고 하네요 .
원래 중국인이 뻥이 심하지만 그 수사는 대단하고 절묘합니다
이러한 화려한 수사에서 보면 동양은 인간이 갖은 아름다움 자체는 궁정하는 것이고, 그것을 활용하거나 그것을 중용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용할것인가에 촛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가는 덕이라는 덕목을 숭상하는 정치사상이지요. 아름다움이 덕의 가치를 해치게 되면 배격하는 것입니다. 색을 가까이 하되 지나치지 말라는 "과이불급"의 중용지도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미인대회를 보면 진, 선, 미가 있지요
미가 3등이고 진이 1등입니다. 아름다움에 착함이 더해져야 선이 되는 것이요. 선에 현명함과 덕이 더해져야 진정한 최고의 미인이라는 관념입니다. 동양의 아름다움에는 항상 이렇게 유가적 덕목이 보테어 져야 최고의 미가 될수 있었던 것이지요. 동양에서 여인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항상 유가의 덕목에 종속되어있었다 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3.
우리가 서구적 관념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미" 라고 할때 그 번역이 과연 올바른 번역인지는 의문을 가질만 합니다. 예컨데 중국 고전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 형제치미"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의 미는 아낀다,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형제는 서로 지극히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부자유친, 여기의 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해야 한다는 의미보다 부자사이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 입니다. 고대에는 한자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하나의 글자에 수십가지의 뜻으로 사용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뜻을 세길 때는 문장의 전후를 살펴서 과연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불경에 나오는 말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도 같습니다. 반야심경을 번역할 때 현실적인 물질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색이라는 한자를 선택한 것이지요. 물질세계의 욕구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성적인 욕망이라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요. 교언영색의 색은 얼굴빛을 말하니까, 아름다움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중에 색즉시공 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청소년 입장불가 였지요. 불경이 말하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했다면 청소년은 꼭 보아야 할 영화가 아니었을까요?
요컨데 동양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미, 색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색은 미학적인 아름다움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기르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옥기나 옥문과 같이 성적인 용어와 더불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역시 아름다움을 내포한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춘추시대 제자백가 가운데 장자는 미와 색을 유가적 전통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장자는 자신을 비우고 생사를 초월하여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삶을 설파한 철학자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합시다. 그 여인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 여인은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와같이 만물은 인간이 어떻게 부르느냐에 상관없이 본성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꽃은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하나로 본성되로 존재하는 것이요. 똥은 더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대로 자연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이 그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을 담박하다, 소박하다, 질박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이 본성대로 소박하게 존재하는 것을 절대적 아름다움,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했습니다. 장자가 스스로 자기가 한 말은 아니지만..
장자의 이런 생각을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비시커보면 장자는 미학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자연에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기능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덕을 중시하는 유가적 여성관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람꽃을 어느 시인은 신화와 역사속에서 찾아 사랑을 노래한다 .
바람꽃
꽃잎에 총기를 숨기고
향기는 별빛에 감추어도
금지된 사랑은 아리어라
제우스
옷깃에 꽃바람 헤집으면
머언 하늘 뭉게구름을 보네
바람에 잠시 흔들렸을 뿐인데
아름다운 유배, 아네모네
심심계곡은 너로 인해
보라빛 베일에 숨었겠구나
은밀한 공작새의 날개짓
밤 하늘의 끝자락 별을 흔들고
암묵의 바다밑을 파헤칠지라도
심연의 숲에
조우한 역사 속 자태여!
흰소 풀을 뜯는 초원 그 너머
봄빛이 길게 우는 그 자리에
키프리스와 하희,
활짝 시공을 열어놓고 찬란한 아름다움
쑥덕쑥덕 속삭이고 있구나
첫댓글 고전에 취하게해주신 시유심 최 박사님 고맙습니다.
언제 보아도 감명 깊은 게 시공을 초월한 고전이지요. 문향 가득한 바람꽃이군요.
"심연의 숲에 / 조우한 역사 속 자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