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자녀 교육 (에베소서 6:4)/ 김창규목사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가정의 달 어린이 주일을 맞았습니다. 마땅히 축복받으며 기뻐해야 할 이때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실명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부모의 마음이 언제 가장 아픕니까? 아이들이 갖고 싶다고 졸라대는데 돈이 없어서 못해 줄 때입니다. 그러면 가장 기쁠 때가 언제입니까? 작은 선물 하나 받고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기뻐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쁩니다. 행복해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그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9-11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주었는데 자식에게 정작 큰 불행을 갖다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실패합니까? 그것은 부모 된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왜 실패합니까? 오늘은 교회적으로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을 좀 더 생각하며 행복한 가정, 복 받는 가정에 대해서 생각하는 달입니다. 그중에서도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어린이들에게 각 기관별로 연합하여 선물하는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자녀들입니다. 시편 127:3에 보면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어떤 재산이나 명예도 자녀들만큼 귀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고 애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부모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무조건 공부만 잘하라고 종용합니다. 어려서부터 사교육비를 지불하면서 여기저기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열심히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주어도 그것이 참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영성을 개발하지 아니하고는 참다운 인격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가정이나 국가나 자녀들이 너무 귀합니다. 어떤 기업에서는 자녀 낳으면 1억을 주고, 셋 나으면 주택까지 해결해 준다고 합니다. 또 어떤 기업에서는 대학까지 등록금을 대준다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자녀를 어떻게 교육하고 있습니까? 1. 모세 부모의 자녀 교육에서 바람직한 교육을 배워야 합니다. (출애굽기 2:1-10)
과거 우리 조상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해 해마다 죽음의 문턱까지 오가는 보릿고개 속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의술은 발달하지 못했고 그나마 그 혜택마저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때 포항에서 원유가 나왔다고 떠들썩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은 영양이 충분하지 못한 어머니의 젖을 빨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생후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름을 호적에 뒤늦게 올리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백일 정도만 무사히 잘 넘기면 웬만하면 살아남았기에 돈이 없어도 백일 잔치를 크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백일 잔치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삶에서 죽음으로 버려지는 백일이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없는, 더이상 생명이 보전될지도 알 수 없는 백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잘 차려진 음식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친지들은 고사하고 어머니조차 같이 할 수 없는 황량한 하숫가 갈대숲에 갈 상자에 담겨진 채 버려졌습니다. 울어도 젖을 물려줄 사람이 없었고 아무리 울어 봐야 손잡아 줄 사람조차 없었던 것이 모세의 백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처참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행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석 달을 숨겨 길렀지만 자라면서 커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 요게벳은 견디기 힘든 아픔을 안고 아이 모세를 태어난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갈 상자에 넣어 하숫가 갈대숲 사이에 두게 됩니다.
모세의 인생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모세 되는 해법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의미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의 전폭적인 의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슬하에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 계획에 내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그것을 석 달 만에 깨달았습니다. 대개의 경우 내가 키우려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기준대로, 내 방법, 내 감정대로 키우려고 합니다. 어떤 부모는 만사 OK로 기르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는 우리 마음대로 키우라고 주신 아이가 아닙니다. 여러분,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부모들의 만족과 기쁨을 위함이 아닙니다. 심심풀이 놀이개도 아니며, 부모가 못하고 누리지 못한 것들을 대신 해주는 대리인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만 맡겨 주신 임무가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부모의 만족을 위해 부모가 하지 못한 일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죽음의 상자에 담아 나일강 가에 가져다 놓은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아마도 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숨 걸고 석 달을 숨긴 것만 보아도 모세를 향한 모정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한 번만 더 안아 볼 수 있다면, 한 번만 젖을 물릴 수 있다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 모세는 그날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의 동생에 대한 사랑과 재치로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갈대숲에서 발견한 애굽 공주의 요청에 의해 모세의 유모가 되어 젖을 물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모세에게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교육, 민족에 대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여호와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책임지십니다.
여러분, 어린이 주일에 부모 된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기도하는 무릎으로 하나님께 맡겨 키우는 것임을 기억하시고 기도로 키우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려서부터 기도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훌륭한 아버지였던 D.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 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 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 에게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 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부모 된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어릴적 모습에서 바람직한 자녀 교육을 배워야 합니다. (누가복음 2:40-52)
누가복음 2:52에 보면 예수님은 자라나시면서 하나님께 사랑스러워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도록 양육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영성을 개발시켜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일찍이 그 영성을 일깨워서 부모를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모들은 그 자식이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쉐마’ 교육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6:5인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워 하나님이 자기의 진정한 아버지이심을 아셨던 것입니다. 잠언 3:5-7에 보면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가르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자녀들을 꽃을 기르듯이 키워야 합니다. 꽃은 해를 보고 자라야 합니다. 응달에서 자라는 꽃은 잘 자랄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해를 보고 자라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햇빛은 무엇입니까? 그 햇빛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꽃은 물을 주어야 합니다. 화초를 키워보면 수돗물보다 빗물이 훨씬 좋더라고요. 요즈음 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컴퓨터물, 인터넷물, 핸드폰물, 돈물, 권력물, 명예물, 욕심물 등 갖가지 물들이 지금 이 사회에, 학원에, 심지어는 교회에도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생명이요, 소망이 되시며 힘이 되시고 능력 자체가 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 이 영생의 물인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 물을 먹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부모보다 먼저 사랑해야 할 분임을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을 일깨우는 교육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 눈을 뜸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습니다. 다른 어떤 관념과 지식이 자리 잡기 전에 영성을 일깨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순수할 때 영성은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육이야말로 조기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잉태함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 가운데 잉태한 성도들에게 잠언서와 시편을 계속 읽으라고 권유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조기 교육을 강조하는데 영적인 교육이야말로 조기에 아주 빨리 시켜야 합니다. 예배하는 일, 봉사하는 일, 십일조 하는 일, 기도하는 일, 섬기는 일 등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께 사랑스러워 가는 자녀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시고 키우시기 바랍니다.
3. 자녀들에게 도덕적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도덕적 교육이란 인간관계 교육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인 교육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육이라면 도덕 교육은 인간을 사랑하는 교육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경쟁 사회여서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갖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뛰어난 지능인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덕목들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아이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한 생활을 힘쓰게 하며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희생적이며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는 성경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도덕적 삶이란 신앙의 생활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0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 속에는 놀라운 지혜가 있습니다. 시편 111:10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올바르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힘입니다. 잠언 3:14에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고, 전도서 7:12에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8:1에는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5에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란 자기 인생을 바르게 운전해 갈 수 있도록 그 원리를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유대 격언에 “배고픈 자에게 생선 한 마리를 주는 대신에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지혜입니다. 부모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소원합니다.
5.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4)
교양이란 말은 ‘교육, 훈련, 징계’라는 말이 합성된 것으로 책벌을 통한 훈련을 의미합니다. 곧 의와 사랑을 통해서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당근과 채찍입니다. 잘했을 때는 복을 주시고 잘못했을 때는 엄격하게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는 엄청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멀리할 때는 징계하십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 징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5-6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랑의 차원에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13:24에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적절한 징계를 통한 양육은 자녀에게 지혜를 줍니다. 훈계로 하는 것입니다. 훈계라는 말은 ‘정신, 마음, 이성’을 의미하는 말과 ‘배치하다, 놓다’는 말이 어우러져 쓰여진 말로 ‘충고’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말로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잔소리가 아닌 진지함을 가진 말을 통해 양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양은 행위적인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위를 통하여 양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훈계는 진실되고 진지한 말로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키워야 잘 자랍니다. 꽃, 화초도 사랑으로 키워야 잘 되더라고요.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뢰받지 못하는 체벌과 훈계는 분노로 가게 됩니다. 잔소리가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훈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즉 나의 기준, 나의 마음이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 주님의 말씀, 주님의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아이들이 되게 키우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요, 또 어린이 주일입니다. 부모님들은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어떤 선물을 줄까?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신앙을, 믿음을, 인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꿈에 무엇을 줄까 하실 때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내 명령을 지키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
끝으로 사사기 13:8-14절에 보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부인이 삼손을 잉태했을 때 하나님, 이 애기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라고 육아 방법, 하나님의 교육 방법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14절)고 하셨습니다. 즉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부모의 자세를 똑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좋은 본을 보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교육 방법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