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동락은 임금이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으로 『맹자』에서 유래한 말이다. 통치자의 자세를 말 하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으로 쓴다. 2019년 새해를 맞아 국립부산국악원은 연악당의 신년음악회 기획공연을 주관했다. ‘시민과 함께 국악과 춤’이 주제다. 동래학춤 전수자들이 공연에 초대되었다. 동래지방의 토속 춤, 동래학춤을 전수하면서 전통예술에 대한 안목을 조금 터득한 인연으로 함께 이 공연을 감상하러 왔다.
국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픔과 한이 밴 우리 음악이다. 피지배 민족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굴하지 않고 전통예술혼을 이어왔다. 오늘은 여민동락을 염원하는 예술로 자리매김하여 우리에게 유락과 감동을 전한다.
첫 마당은 궁중 아악이다. 찰가닥 하는 집박(執拍)의 신호음으로 대금을 비롯한 국악단과 성악 단이 장중하고 청아한 음률을 뿜어낸다. 마치 달빛 품은 윤슬처럼 관람석으로 스미듯 다가온다. 연초록 조명을 받은 무대는 온 국민이 동락을 누리기를 염원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부산 국악원 예술감독이자 대금연주 명인의 연주가 이어진다. 83cm 정도의 대에서 높은 소리를 맑고도 아름답게 뽑아낸다. 중국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처럼 나라의 평온과 백성의 기쁨을 바라는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다. 대금이 품어내는 소리를 젓대 소리라 한다. 어느 시인은 이 소리를 두고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이라 비유했다. 강한 소리에서 잔잔한 음으로 소리 죽여 선(仙)의 세계로 이끄는 듯하다.
대금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아버지를 따라 산사에서 하룻밤 유숙할 때였다. 아버지의 증조부 뻘 되는 분이 승려로 출가하였는데, 그분에게 속가의 먼 혈육이 아버지였다. 해마다 증손자뻘 주지 스님이 제사를 모셨다. 아버지는 해마다. 나를 데리고 제사에 참여했다. 어느 해 제사가 끝날 무렵, 집중호우가 쏟아져 하룻밤을 유숙할 처지가 됐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사는 풍경소리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어울려 정적을 깨고 을씨년스러웠다. 이때 마루에 정좌한 스님이 부는 가냘프고 구성진 악기 소리가 들렸다.
“스님, 통수 참 잘 분다.”
아버지가 툭 한마디 던지셨다. 평소 무뚝뚝한 표정에 정감 없는 아버지가 적막한 산사의 통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마침 두견새 소리가 섞이니 산사의 밤이 그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통수 소리가 어쩐지 슬피 들렸고 무서웠다. 그때의 통수가 대금인 것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사물놀이패 차례다. 꽹과리, 장구, 북, 징, 네 가지 타악기가 신명을 자극하여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꽹과리와 징이 천둥 같은 큰소리를 낸다. 후드득 빗소리 같은 장구 소리에 귀를 모은다. 둔탁하면서 멋을 부르는 북소리에 관객들이 앉은 채로 덩실덩실 신명을 푼다. 여민동락의 멋과 맛으로 흠뻑 젖는다.
네 개의 악기를 두 사람씩 나누어 신들린 사람처럼 연주해도 가락에 흥이 물씬 풍긴다. 빠른 두드림이어도 꽹과리는 그 풍류를 잃지 않고 가락을 이어간다. 네 종류의 악기로 세계인을 감동케 한 김덕수사물놀이패를 가까이서 만나니 감동이 열 배 더한다. 온 힘을 다해 몰아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사물놀이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신명 나는 우리 음악에 흥과 격조를 높였다.
명창 김춘희와 문하생들이 경기민요를 함께 부른다. 노랫가락에 선율의 굴곡과 장식음이 잘 다듬어져 듣기에 걸림이 없다. 정선아리랑, 매화타령, 창부타령을 차례로 불러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널리 알려진 민요라 명창과 관객이 합창으로 흥이 돋았다.
예쁜 용모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사회를 맡아 진행하는 소리꾼이 판소리를 한다. 심청가 중에서 심 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부른다. 효심을 도덕의 제일로 삼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애절하고 구성진 소리로 장내를 숙연케 한다. 나는 심청전과 춘향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딸을 팔아 눈을 뜨려는 심 봉사의 부성애 없는 이기심이 싫다. 춘향전에는 관직을 얻어 첫 공무랍시고 정인의 연적을 응징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즈음 같았으면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마지막 공연마당은 동래학춤이다. 학은 우리말로 두루미라 한다. 겨울 철새로 이른 봄까지 머물다 북쪽으로 돌아간다. 늪이나 연못가에 서성이는 학의 동작을 덧배기춤사위와 가락을 바탕으로 선비와 한량들의 신명을 담아낸 토속 춤이다.
나의 사부(師父)이자 동래학춤 예능 보유자인 이성훈 명무(名舞)가 이끄는 춤이 대미를 장식한다. 두 패의 학 무리가 들무리, 날무리로 훨훨 비상의 날개를 편다. 두 패로 나눈 연출이 이채롭다. 연출기획과 안무가 참신하여 학춤을 더 배우고 싶어진다. 근육의 긴장을 완화한 춤사위는 건강에 이롭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더 그런 마음이 든다. 마음으로는 무대 위의 무수들과 같이 뛰고 비상하고 싶다. 누대(樓臺) 위에서 춤을 이끄는 이승훈 명무에게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기립 박수를 보낸다.
알찬 공연을 관람하며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된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음악은 듣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한다. 춤도 마찬가지다. 여민동락이 온 국민에게 일상으로 확대되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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