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鄭 廣 薰
1. 들어가는 말
2. 기존 연구 검토
3. 돈황 변문 속 상업 요소: 인신의 매매를 통한 인물 관계 설정
4. 돈황 변문 속 상인의 모습과 문학적 작용
4.1 <舜子變>: 상인 형상의 의도적 설정
4.2 <廬山遠公話>: 전생과 현생에 걸친 상인의 인연
4.3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 상인을 통한 새로운 주제 제시
4.4 解座文: 상인으로서의 講經人
5. <父母恩重經講經文>: 장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
6. 나오는 말
국문제요
變文은 唐代에 유행한 講唱 형식의 공연 서사 문학이다. 본 논문에서는 공연 문학으로서
돈황 변문에 보이는 상업적 요소와 상인의 형상을 분석하고, 이러한 요소가 문학적으로 어
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변문은 그것이 필사된 바로 그 시기에도 민간에서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임(NRF-2007-361-AL0013). 본고는 2015년 6월 19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과 한국중
국소설학회가 ‘동아시아 문학 속 상인의 형상: 상인을 통해 인간을 묻다’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
한 학술대회의 발표문을 수정ㆍ보완한 것임.
**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HK硏究敎授
2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공연의 형태로 유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작품들 곳곳에서 구술문학에서 흔히 보이
는 ‘현재성’이 감지되곤 한다. 즉, 고사의 배경이나 성격은 다를지라도 그것의 향유에 있어서
는 동시대적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문의 내용이나 형식이 다양할지라도 우리는
작품들에 보이는 특정 인물군의 형상이나 요소들에 나름의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먼저 <捉季布傳文>과 <董永變文>을 통해서 인신의 매매라는 상업적 요소
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변문 작품 속 상인
의 형상에 관한 논의에서는 <舜子變>, <廬山遠公話>,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을 예로 들어
이 형상들이 어떤 문학적 작용을 하는지 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父母恩重經講經文>의
‘장사’에 대한 언급을 분석하여 ‘장사’라는 직업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추정해보고자
한다.
중심어: 變文, 상인 형상, 상업 요소, 捉季布傳文, 廬山遠公話, 大目乾連冥間救母
變文, 父母恩重經講經文
1. 들어가는 말
주지하듯이 돈황 변문은 唐代에 유행한 講唱 공연 문학이다. ‘공연 문학’이라고 하는 이유
는 변문이 공연의 직접적인 저본은 아닐지라도 특정 형식의 공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문학작품처럼 읽기 위한 독본용으로 쓰였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1) 그리고 ‘講
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공연의 형식이 ‘講’과 ‘唱’을 번갈아 반복하거나 전체가 ‘講’ 혹은
‘唱’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변문의 정의와 분류에 관한 논의는 변문이 중국문학사
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1920~30년대부터 이미 활발히 진행되어 왔고, 그 논쟁
은 여전히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돈황에서 발견된 소위 ‘변문’에 해당되는
1) 현존하는 다양한 형식의 변문이 연행이 아닌 독서용이었는지는 변문 작품 자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흔히 공연용 저본의 판단근거가 되는 ‘구술성’은 사실 절대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독서용
작품에도 구술성은 얼마든지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돈황 변문 중 구술성이 농후한 작품으로
판단되는 <韓擒虎話本>은 그 온전한 형식과 서사방식을 보면 오히려 독서용이었을 가능성이 크
며, 현장의 연행을 직접 옮긴 증거들이 보이는 각종 講經文은 구술성이 여타 작품보다 농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관련 논문으로, 鄭廣薰,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번역 어투를
중심으로>, 《中國小說論叢》, 第42輯, 2014년 4월, 51-79쪽 참고.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3
작품 80여 편이 내용과 형식 모두 온전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명해줄 만한 방계자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작품의 수량, 완전한 귀납과 분
류가 불가능한 작품들 자체의 특성, 유행한 시대의 단절로 인한 자료부족 때문에 거의 비슷
한 논쟁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돈황에서 발견된
이 작품들을 어떤 이름으로 통칭하고 분류할 것인가라는 다소 소모적인 초기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1990년대부터 작품들 각각의 공연 문학적 성격을 고려하여 그 형식에 맞는 이름과
분류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각된 것은 문제의식이 더욱 확장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2)
이처럼 변문은 그 독특한 모습과 장르적 특성 때문에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많은 연구
가 이루어져왔다. 宋代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편 통속서사의 원형을 당대 변문에서 찾
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중국문학사 연구의 자연스러운 과
정이자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주로 변문 내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기보다는 다른 문학 장르들에 보이는 동일한 고사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
었다. 따라서 돈황 변문 작품 전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상인의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을
살펴보고자 하는 본 논문은 기존의 변문 연구방식과 차이가 있다. 사실 이런 인물 형상에
관한 연구는 동일한 시대 혹은 동일한 장르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공통적인 요소를 뽑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물 형상에 시대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되지 않은 시대 배경과 장르적 특성 때문에 변문이 과연 이러한 연구방
식에 적합한 대상인지는 먼저 재고할 필요가 있겠다. 변문은 종잡을 수 없는 형식만큼이나
그 내용도 여러 가지 성격으로 나뉜다. 그중에降魔變文> 등의 불교고사, 그리고 기존 불경을 상세히 풀이하면서도 이야기적 성격을 가미한 講經文이다. 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伍子胥, 王昭
君, 李陵을 비롯한 당대 이전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담은 역사고사와 <廬山遠公話>,
<雙恩記>, <그 외에 동물 우언, 당대 당시의 時事, 사물을 의인화한 고사,
남편과 아내, 아내와 시어머니가 말다툼을 하는 집안 이야기 등도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2) 변문의 정의와 분류 방식 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국내외 많은 학자들이 논의를 진행해 왔고,
이에 대한 정리와 소개 역시 여러 저서와 논문들에 보인다. 따라서 본 발표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 소개는 생략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다음의 성과들을 참고할 만하다. Victor H. Mair
저, 정광훈ㆍ전홍철ㆍ정병윤 역,《당대 변문(T’ang Transformation Texts)》, 소명출판, 2012;
조명화, 《佛敎와 敦煌의 講唱文學》, 이회, 2003; 전홍철,《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소명출판,
2011; 王小盾, <돈황문학과 당대 강창예술(敦煌文學與唐代講唱藝術)>, 《中國社會科學》, 1994
년 제3기. 이 논문은 王小盾 교수가 필명 王昆吾로 출판한 《중국 초기 예술과 종교(中國早期藝
術與宗敎)》, 上海: 東方出版文化中心, 1998에도 실렸다.
4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내용이 통일성을 보이지 않는 작품들 속에서 특정한 문학 형
상이나 요소를 찾는 연구의 방식과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는 변문 작품들이 갖는 동시대
적 성격과 현실 반영의 특징 때문이다. 변문은 그것이 필사된 바로 그 시기에도 민간에서
공연의 형태로 유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작품들 곳곳에서 구술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현재성’이 드러나곤 한다. 현장에서 청자에게 직접 건네는 듯한 말투, 수백 년 전의 이야기
를 하면서도 그것을 현재의 상황과 연관 짓는 부분, 이야기의 시대 배경과 맞지 않는 의도된
오류, 객관화된 서술이 아닌 화자가 1인칭으로 이야기 속에 개입하여 청자와의 거리를 더욱
가까이 하는 서술방식 등이 이러한 ‘현재성’의 증거가 된다. 즉, 고사의 배경이나 성격은 다
를지라도 그것의 향유와 소비에 있어서는 동시대적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문의
내용이나 형식이 다양할지라도 우리는 작품들에 보이는 특정 인물군의 형상이나 요소들에
나름의 시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이야기가 변문으로 변용되는 과
정에서 원래 이야기에는 없던 소재나 문학적 형상이 더해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도 한다. 이러한 점을 전제하면서 아래에서는 변문 속 상업요소와 상인의 형상을 소개하고,
아울러 이러한 요소가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어떤 문학적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
다.
2. 기존 연구 검토
상업적 측면에서의 중국 고대문학에 대한 분석이나 중국 고대문학 속의 상인 형상에 대해
서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 연구들 속에는 唐代라는 특정 시대의 문학과
상업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물론 포함된다. 이 분야의 가장 선구적 연구인 邵毅平의 《중국
문학 속 상인 세계(中國文學中的商人世界)》3)에서는 先秦 때부터 淸代까지 시가, 소설, 산
문을 포함한 중국 고대문학에서 상인이 어떤 형상으로 표현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았다. 邵毅平의 또 다른 저작 《문학과 상인―전통 중국 상인의 문학적
3) 邵毅平, 《中國文學中的商人世界》, 復旦大學出版社, 2005.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 《중국문학
에서 상인을 표현한 역사에 대한 연구(中國文學表現商人的歷史的硏究)》, 復旦大學, 1994를 수
정ㆍ보완한 것이다.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5
표현(文學與商人―傳統中國商人的文學呈現)》4)에서는 중국문학 속 상인의 형상을 士商 관
계, 여성과 상인, 상인의 사회적 처지, 이상적인 상업 원칙 등의 여러 주제로 나누어 관련
작품을 다수 소개하고 분석하였다. 邱紹雄의 《중국상인소설사(中國商賈小說史)》5)에서는
중국 상인소설의 발전 단계를 맹아, 형성, 번영, 새로운 변화의 시기로 나누어 先秦 작품부
터 근대의 白話小說까지 시대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葛永海는 박사논문 《고대소설과 도
시문화(古代小說與城市文化)》6)에서 먼저 고대소설과 도시에 대한 문제를 개략적으로 살펴
본 후, 당대부터 중화민국 건립 전까지 중국 고대문학 속에 표현된 도시에 대해 고찰하였다.
여기에는 상업 중심 도시의 성격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시대를 당대로 한정하면, 昌慶志의
《당대 상업 문명과 문학(唐代商業文明與文學)》7)을 비교적 최근의 대표 연구 성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제1장에서 당대 이전의 상업 문명과 문학에 대해 소개하고, 2장부터 당
대 상업 문명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한다. 특히 작품 속에 반영된 상인 형상이
나 상업 문명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문학의 생산과 소비, 상업화된 문학, 문학과 경영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姜革文의 《상인ㆍ상업ㆍ당시
(商人ㆍ商業ㆍ唐詩)》8)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당시를 대상으로 하여 상업 문학과의 관계,
당대 상인의 종교와 사상, 시인과 상업의 관계 등을 논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상인을 당
시 전파의 주체로서 논한 부분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 중국 문학 속 상인의 형상이
나 상업 요소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이나 학술지 논문은 대단히 많으며, 특히 상인의 형상이
빈번하게 출현하는 명대 이후의 소설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가 더욱 풍부하다.
그러나 위의 연구저작들 중에 돈황 변문의 고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없다. 昌慶志
가 위 저서의 제4장에서 몇몇 돈황 변문 작품을 예로 들어 당대 속문학 작품의 상업화에
대해 논하였으나, 이는 작품 자체의 고사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상업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었는지에 대한 논의이다. 즉, 작품 속 상업 요소나 상인 형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상업적 관점에서 속문학 자체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당대 문학이 상
업 문명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논한 제3장에는 오히려 돈황 문학에 대한 언급이 없
다. 이처럼 기존의 관련 연구들이 돈황 변문을 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이유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돈황 변문이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
4) 邵毅平, 《文學與商人―傳統中國商人的文學呈現》, 上海古籍出版社, 2010.
5) 邱紹雄, 《中國商賈小說史》, 北京大學出版社, 2004.
6) 葛永海, 《古代小說與城市文化》, 上海師範大學 博士學位論文, 2003.
7) 昌慶志, 《唐代商業文明與文學》, 黃山書社, 2010.
8) 姜革文, 《商人ㆍ商業ㆍ唐詩》, 復旦大學出版社, 2007.
6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만, 그 내용의 풍부함이나 다양성, 작품의 수준이 다른 정통문학이나 후대 통속문학에 미치
지 못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앞의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던 문제이다. 즉,
현존하는 변문의 장르적 특성 자체가 이러한 연구 방법에 맞지 않다고 여겼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실제로 돈황 변문 자체에 상업 요소나 상인의 형상이 매우 드물어서 하나의 연구
성과로 만들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돈황 변문을 대상으로
당대 상업 활동이나 상인 형상을 논한 연구는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3. 돈황 변문 속 상업 요소:
인신의 매매를 통한 인물 관계 설정
돈황 변문 중에 이윤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활동이 고사 전체의 소재인 작품은
없다. 아울러 주인공이 상인의 형상으로 고사를 이끌어가는 작품도 없다. 이는 비단 돈황
변문에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샤오이핑 교수는 당대 소설 속의 상인 형상
을 논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당대 문언소설의 명편 중에서 상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은 한 편도 없다. 혹은 바꿔 말하면, 상인을 주인공으로 한 당오대 문언소설 중 인구에 회자
된 명편은 하나도 없다.”9)라고 밝혔다. 이전 시대보다 상인이 자주 등장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들이 유명 소설의 주인공인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10)
그러나 돈황 변문 중에는 전문적인 상업 활동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종의 매매 과정이 이
야기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노예를 사고파는 인신의 매매 장면이
그렇다. 먼저 <捉季布傳文>을 보자. 이 작품은 楚漢 전쟁 당시 초나라 장수 계포에 관한 이
야기이다. 작품 속에서 項羽의 신하였던 계포는 양군이 대치하는 중에 심한 욕설을 퍼부어
면전에서 劉邦에게 모욕을 준다.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지난날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전
국에 계포를 잡아들이라는 수배령을 내리고 朱解라는 신하에게 이 임무를 맡긴다. 그런데
9) 邵毅平, 《中國文學中的商人世界》, 復旦大學出版社, 2005, 100쪽.
10) 이 말이 당대 문언소설 중 상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한 편도 없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당대의 대표적 문언소설집인 《太平廣記》를 보면 상인을 주요 인물로 삼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異人’편의 <杜魯賓>, ‘報應’편의 <沈申>, ‘懲應’편의 <齊州民>, ‘鬼’편의 <陳導> 등이 이에 해당한
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주요 인물이 상인이긴 하지만, 그들의 상업 활동이 고사의 주된 내용은
아니며, 주제 역시 상인으로서의 형상이나 상업적 측면에 있지는 않다.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7
계포는 오히려 이 주해를 이용해서 유방을 만나겠다는 계책을 세우고, 典倉으로 이름을 바
꾼 다음 스스로 노예가 되어 주해에게 팔려간다. 전창은 천한 노비임에도 부구하고 물 흐르
듯 매끄러운 필치로 스스로 계약서를 써서 주해를 놀라게 한다. 주해는 백금을 주고 그를
사들여 한의 땅으로 데리고 온다. 이후 계포는 한의 공신인 夏侯嬰과 蕭何를 설득하여, 백성
들이 계포를 잡는 일에 혈안이 되어 본업에 충실하지 않으니 수배령을 해제해 달라고 황제
에게 청을 올리도록 한다. 게다가 천금을 주고 유능한 계포를 불러들여야 한다고 황제를 설
득토록 한다. 황제는 신하들의 말을 따라 천금을 주고 계포를 불러들일 뿐 아니라 그에게
높은 관직까지 하사한다. 이 모든 과정이 계포 한 사람의 계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계포의 남다른 담력과 기지를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모두 《漢書》를 수정하여 개작한 것이
니, 詞人이 진실 아닌 것을 노래했다고 말하진 말라”(具說漢書修製了, 莫道詞人唱不眞)는
당부로 끝난다. 이는 작품의 연행자가 직접 청중에게 건네는 말이다. 전체가 7언 운문의 노
래라 ‘唱’이라 하고, 그 가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詞人’이라 한 것이다. 계포의 기지가 본
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은 바로 스스로 노예가 되어 주해의 환심을 사는 장면이
다. 한낱 노예의 값으로 백만금을 달라 하면서 주해의 관심을 끌고, 그 정도 값어치의 재주
를 실제로 보여준 후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계포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史記》
<季布欒布列傳>과 《漢書》<季布傳>의 관련 고사를 보면 <착계포전문>의 이야기와 전체적인
구성이 거의 같다. 따라서 《한서》를 수정해서 만든 것이라는 연행자의 마지막 언급이 의미
없는 말은 아니다. 다만 <착계포전문>은 기존 사서의 압축된 고사를 훨씬 길고 생동감 있게
부연한 것이며, 사서에서는 계포를 숨겨준 주해가 결정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반면, <착계포
전문>에서는 시종일관 계포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이는 주
인공 한 사람에게 집중함으로써 이야기의 관심도를 높이는 공연 문학의 성격이 반영된 것으
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인신의 매매 장면은 바로 이러한 부연의 과정에서 문학적 역할을
한다. 사서에서는 계포를 사들여 밭일을 맡기는 내용만 짧게 언급하지만, <착계포전문>에서
는 계포가 실제로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며 값을 흥정하는 장면까지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
되고 있기 때문이다.
<董永變文>에서도 스스로의 몸을 팔아 노비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효자 동영은 부모님의
장례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판다. <착계포전문>보다는 훨씬 단편적이지만, 이 작품
에서도 인신의 매매를 위한 짧은 흥정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동영은 선불로 자신의 몸값을
받아 부모님의 장례를 치른 다음 종노릇을 하며 몸값을 갚아나간다. 동영의 이야기는 중국
에서 효자 고사로 광범위하게 전해져 왔는데,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소개된 劉向의 <孝子
傳>(《法苑珠林》 권62)에는 “스스로를 부자에게 팔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했다”(自賣於富
8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公以供喪事) 정도의 간단한 기록만 있다. <동영변문>에서는 여기에 거래 과정까지 넣음으로
써 이야기 자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위 두 작품에서는 스스로의 몸을 파는 인신의 매매를 통해 새로운 인물 관계가 설정되고,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갈등을 해결하거나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
을 한다. 특히 <착계포전문>에서 주해는 계포를 잡아들여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계포의
재주에 반하여 그를 노비로 사들일 뿐 아니라, 계포가 결국 한나라의 중신이 되기까지의 과
정에서도 중요한 매개가 된다. 물론 이는 사서에는 없는 설정이다. <동영변문>에서도 동영
을 사들인 부자는 궁극적으로는 동영이 부모님의 장사를 치르게 해 준 인물일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동영과 天女가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옷감을 짜는 천녀의 남다른 재주를 이용하여
동영이 빚을 갚을 수 있게 해준 인물이기도 한다. 즉, 인신의 매매라는 상업적 요소와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고사를 더욱 생동감 있게 전개할 뿐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역
할까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4. 돈황 변문 속 상인의 모습과 문학적 작용
4.1 <舜子變>: 상인 형상의 의도적 설정
돈황 변문의 몇몇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상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상인으로서의 인물
특징이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문학적 작용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 전체에서 상업이나
상인의 요소가 주가 되진 않지만, 작품 속 인물이 보여주는 상인으로서의 특징이 이야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이끌고, 원래의 고사를 길게 늘이면서 필연적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는 개
연성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해준다. 즉, 상인이라는 형상을 더함으로써 청중이나 독자들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먼저 <舜子變>을 보자. <순자변>은 요임금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순임금의 이야기를 길
게 풀어놓은 것이다. 황제가 되기 이전 舜이 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모습을 주로 이야기
하며, 황제가 된 이후는 끝부분에 간략히 언급된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순의 아버지로서
순과 갈등 관계에 있는 瞽叟는 사실 전형적인 상인으로 봐도 무방하며, 순 역시 단편적이나
마 상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수는 순의 계모에게 새장가를 들고 얼마 후 장사하러 집을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9
떠나는데, 그때 순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요양성이 전쟁 중이라 금년에 장사하기가 매우 좋단다. 이 애비는 잠시 요양으
로 가면서 그 길에 여기저기 이문을 좀 찾아보려 하니, 집안일은 너한테 맡겨야겠구
나.”(寮[遼]陽城兵馬下, 今年大好經記[紀]. 阿耶暫到遼楊[陽], 沿路覓些些宜利, 遣
我子勾當家事.)11)
고수의 이 말은 이윤이 많이 남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상인의 모습을 묘사하
고 있다. 실제로 고수는 요양으로 장사를 떠나 3년이 훨씬 지나 돌아온다. 그리고 고수가
곧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계모는 먼저 아버지가 순을 불신하도록 계략을 짜는 것부터 시
작하여 본격적으로 순에게 해코지를 가한다. 그리고 훗날 계모와 아버지를 피해 다른 고장
에서 농사를 짓던 순이 가족들의 안부를 알게 된 것도 지나가는 상인들을 통해서이다. 순이
떠난 후 아버지 고수는 눈이 멀고, 계모는 시장에서 땔감을 팔고, 동생은 문전걸식을 하며
다닌다는 소식을 이 상인들이 전해준 것이다. 이후 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시장에서 계모에
게 자주 쌀을 팔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는 순도 일종의 상인이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순자변>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상인의 형상과 상업적 요소가 곳곳에 퍼져 있
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원래 이곳저곳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고, 순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계기도 상인을 통해서였으며, 아버지처럼 순 자신도 상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
다. 상인으로서의 순의 모습은 사서에서도 이미 보인다. 《史記》<五帝本紀>의 순임금 부분을
보면, 순이 가족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내용들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다른 점은 <순자
변>에서는 철저히 계모가 계략을 꾸미고 고수를 설득하여 순자를 죽이려 하는 반면, 《사기》
에서는 계모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 고수가 계모를 아껴서 자기 아들을 여
러 차례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순의 상인으로서의 면모와 관련하여 《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순은 기주 사람이다. 순은 역산에서 농사짓고, 뇌택에서 고기를 잡고, 하의 물가
에서 그릇을 굽고, 수구에서 여러 기물을 만들고, 부하에서 적당한 시기를 따랐다.
(舜, 冀州之人也. 舜耕歷山, 漁雷澤, 陶河濱, 作什器於壽丘, 就時於負夏.)12)
11) 변문의 원문과 교정은 黃征ㆍ張涌泉 校注, 《敦煌變文校注》, 中華書局, 1997에 근거하였으며, 위
인용문은 이 책의 200쪽을 참고하였다. 아래의 변문 인용문은 모두 이 책을 따른다.
12) 《史記》<五帝本紀>, 中華書局 點校本, 中華書局, 1982년판, 1책, 32쪽.
10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인용문의 ‘적당한 시기를 따랐다(就時)’에 대해 《史記索隱》에서는 “就時는 逐時와 같으며,
시기를 보고 이윤을 취한다는 말과 같다”(就時猶逐時, 若言乘時射利也)13)라고 했다. 다시
말해, 순은 부하라는 지역에서 시세를 봐가며 장사를 했다는 말이다. 《순자변》과는 달리 《사
기》에는 순자의 아버지 고수의 직업에 대해서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변문보다는 훨씬 짧고
간략한 사서의 기록에서 아버지 고수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반
면 이야기를 길게 늘인 <순자변>에서는 고수의 직업이 전형적인 상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장사를 하러 떠나 있는 동안 계모가 계략을 꾸미고 장사에서 돌아온 후 함께 순을 죽이
려고 하는 고사의 전개를 위한 일종의 서사 장치로 볼 수 있다. 사서와 달리 변문에서는 아
버지보다 계모에게 악인의 면모를 더욱 분명히 부여하고, 이를 위해 아버지를 상인으로 설
정하여 일정 기간 자리를 비우게 한 것이다. 그리고 순에게 상인의 측면이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 아버지가 상인으로 설정된 것 역시 이야기의 전개상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다. 결국 <순자변>은 원래 고사인 《사기》의 내용보다 상인과 상업의 요소가 더욱 분명하게
가미되어 있으며, 이런 의도적인 설정을 통해 이야기 전체가 더욱 개연성 있게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4.2 <廬山遠公話>: 전생과 현생에 걸친 상인의 인연
<여산원공화>는 東晉 때 실존했던 승려 惠遠의 이야기로 변문 작품들 중에서도 편폭이
매우 긴 편에 속한다. 이 작품은 승려 遠公(즉, 혜원)의 파란만장한 운명과 함께 독송, 설법,
불교 교리 논쟁의 장면들이 곳곳에 섞여 있는 전형적인 불교 고사이며, 따라서 상인 형상이
명백하게 드러나거나 상업적인 요소가 이야기의 주가 되진 않는다. 그러나 원공의 전생 그
리고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 등에서 상업적 요소와 상인의 형상이 중요한
문학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여산에서 독송을 하다가 도적떼 두목 白莊의 노예가 된 원공은 꿈에서 阿閦如來를 만나
자신이 전생에 갚지 않은 빚이 있고 그 債主가 바로 조정의 재상임을 알게 된다. 백장이 원
공을 강제로 사로잡아 노예로 부려왔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계약서가 없었다. 그래서 원공
은 노예 계약서가 없어도 되는 백장의 가복 자식으로 꾸며 중매인을 통해 재상인 최상공에
게 정식 계약서를 쓰고 팔려간다. 이때 원공은 직접 賣身의 계약서를 기막히게 써내려가 최
상공을 흡족하게 한다.14) 이후 이름을 善慶으로 바꾼 원공은 강경의 장소에서 교리 논쟁으
13) 앞의 책, 33쪽.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11
로 승려 道安을 굴복시키고, 주인인 상공도 그의 강경에 크게 감화된다. 원공이 전생의 채무
자로서 이제야 빚을 갚게 되었다고 밝히자, 상공은 그에 대해 더욱 자세히 말해줄 것을 청한
다. 이때 원공은 이렇게 답한다.
“상공께서는 전생에 상인이었고 그 백장 역시 상인이었는데, 상공께서 백장으로
부터 오백 관문의 돈을 빌렸었지요. 이때 소승은 보증인이었는데, 얼마 후 상공께서
돌아가심에 따라 소승이 그 빚을 갚으려 했는데 불행히도 저 역시 죽게 되었습니다.
수차례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 인연으로 보증한 빚을 갚
을 수 있었습니다.”(相公前世作一個商人, 他家白莊也是一個商人, 相公遂於白莊邊
借錢五[百]貫文. 是時貧道作保, 後乃相公身亡, 貧道欲擬塡還, 不幸亦死. 輪迴數遍,
不愚(遇)相逢, 已(以)是因緣, 保債得債.)15)
이처럼 원공은 전생의 신분과 인연을 모두 상인, 상업과 관련짓고 있다. 전생의 빚을 갚지
않았으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걱정하는 상공에게 원공은 자신을 통해 빚은 다 갚게 된
것임을 알려주고, 아울러 문도들에게도 자기처럼 노비가 되지 않으려면 지고 있는 빚을 반
드시 갚아야 한다고 깨우쳐준다. 원공, 백장, 상공의 인연은 상인들 사이의 채무 관계를 통
해 맺어진 것이었다. 빚을 갚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윤회가 거듭한 후에 세 사람이 다시 만
나면서 결국 전생의 빚을 갚게 되는 것이다. <여산원공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고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위와 같은 전생의 인연을 밝힘으로써 전체 이야
기의 구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원공이 전생에 상인들 사이의 거래에서 빚을 지게 되었
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것이 곧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심 구조가 된다. 이
작품은 불법의 교리를 설명하거나 강경의 시비를 놓고 논쟁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지만, 그
배후가 되는 이야기의 틀은 곧 상인과 보증인 사이의 채무와 그것을 갚는 과정이었던 것이
다.
사실 상인과 금전관계는 불교의 인연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현세의 인연
이 전생의 업보에 의한 것이고, 금전적 채무가 이러한 업보를 만들어내는 대표적 원인 중
하나이고, 또 이 채무와 가장 관련이 깊을 수 있는 계층이 바로 상인들인 것이다. 부처의
14)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착계포전문>에서 계포가 주해의 노비가 되면서 계약서를 스스로 쓰고
이를 주해가 매우 만족해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전혀 다른 내용과 성격의 두 작품에서 흡사
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은 당시 이야기의 수용자들에게 이러한 설정이 환영을 받았다는 증거가
된다.
15) 《敦煌變文校注》, 267-268쪽.
12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전생 이야기인 《本生經》에서 상인은 자주 등장하는 인물 형상 중 하나이다. ‘탐욕스런 상인
의 전생 이야기’, ‘간사한 상인의 전생 이야기’, ‘채소 장수의 전생 이야기’ 등이 그런 예들이
다.16) 또 불교의 ‘五戒’ 중 두 번째 ‘도둑질하지 말라’에 대한 교리를 설명할 때도 상인과 채
무의 소재가 등장한다. 돈황 강경문인 <佛說阿彌陀經講經文>(二)의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
율 부분을 보면, 한 상인이 여래에게 과거의 業因에 대해 묻자 여래는 과거에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금세에 노비가 되어 배상을 하게 된다고 설명해준다. <여산원공화>에서 주요 인물들
의 전생이 모두 상인이었고, 전생에 돈을 갚지 않은 원공이 현생에서 노비가 되어 빚을 갚는
과정은 모두 이러한 불교적 계율과 인연의 요소를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 구도 속에 배치하
여 이야기 속에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3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 상인을 통한 새로운 주제 제시
돈황 변문 중 <目連緣起>와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은 목련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다는 내용으로, 西晉 竺法護가 번역한 <佛說盂蘭盆經>을 근거로 변문의 형식에 맞게
이야기를 늘린 것이다. 도입 부분은 <목련연기>의 서술이 자세한 편이나, 지옥에서 본격적
으로 어머니를 찾아나서는 부분부터는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의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
돈황에서 출토된 사본 중에 거의 같은 내용의 목련구모 고사가 한 편 더 있는데, 이 사본은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러 지옥으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끝나고 그 이하는 남아 있지 않다.17)
<불설우란분경>은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을 비롯한 변문 목련고사보다 편폭이 훨씬 짧다.
내용도 목련의 모친 靑提夫人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경위와 지옥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면들은 나오지 않고, 신통력을 얻은 대목건련이 아귀가 된 모친을 보고 슬퍼하는 장면부
터 시작된다. 즉, 변문이 <불설우란분경>의 내용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길게 늘였을 뿐 아니
라, 원래 경전에는 없는 내용들까지 고사의 주요 부분으로 더했다는 것이다.
16) 부처의 전생 고사 중에서도 보살이 대상을 이끌고 폐허를 지나가는 이야기는 특히 상인이 응당
갖추어야할 덕목이 잘 드러나 있다. 앞서 간 대상들이 야차의 속임수에 넘어가 물을 모두 버리고
잡아먹힌 후, 보살은 똑같은 야차의 속임수에 이렇게 답한다. “그대들은 물러가라. 우리는 상인
이다. 달리 물을 발견하지 않고는 가지고 있던 물을 버리지 않는다. 물을 발견한 곳에서 수레를
가볍게 할 것이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대가를 분명하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가지고 있는 물건
을 함부로 내놓지 않는 상인의 덕목을 상인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말해주고 있다. 《본생경》,
이미령 옮김, 민족사, 2001 중 ‘확실하고 올바른 길’ 이야기 참고.
17) 이 사본은 중국국가도서관 소장이며 사본번호는 北京成字96호이다. 원본에 제목이 없는 관계로
흔히 <目連變文>이라는 가제로 불린다.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13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 중 하나는 <목련연기>와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 모두 초
반에 주인공 羅卜이 장사를 하러 타지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나복은 목련의 출가 전 이름이
다. 관련 부분은 각각 아래와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장사를 하러 [타지로] 나가고자 함에 먼저 당 앞에 이르러
모친에게 아뢰었다. “소자 외지로 나가 장사를 해서 재물을 모아 어머니를 시봉하고
자 합니다. 집안의 모든 재물을 이제 삼분하여 하나는 제가 가지고 가고 하나는 어
머니께서 사용토록 하시고 하나는 집안에 두고서 빈궁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모친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흡족하여 외지로 나가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였다.(偶因一日, 欲往經營, 先至堂前, 白於慈母. “兒擬外州, 經營求財, 侍奉
尊親. 家內所有錢財, 今擬分爲三分. 一分兒今將去, 一分侍奉尊親, 一分留在家中,
將施貧乏之者.” 孃聞此語, 深愜本情, 許往外州, 經營求利.)
어느 날 그는 타국으로 장사를 떠나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재산을 모친에게 맡
기며 후원에서 齋會를 열어 불법승과 걸식자들에게 공양을 드리라고 당부하였다.
나복이 떠난 후 모친은 인색한 마음이 생겨 자식이 맡긴 재물 모두를 슬그머니 감추
어버렸다.([於一時間]欲往他國興易. 遂卽支分財寶, 令母在後設齋供[養諸佛法僧及
諸乞]來者. 及其羅卜去後, 母生慳恡之心, 所囑咐資財, 並私隱匿.)
첫 번째 인용문의 ‘經營’은 당연히 ‘장사하다’의 의미이고, 두 번째 인용문의 ‘興易’ 역시
‘장사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다’라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불설우란분경>에는 인용한 두
변문의 앞부분, 즉 목련의 모친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이유인 이승에서의 죄업에 대한 묘
사는 전혀 없다. 목련의 출가 전 모습인 나복이 장사를 위해 집을 잠시 떠나게 되고, 그 사이
에 모친이 지옥에 떨어질 죄를 짓게 되는데, 이에 대한 묘사 역시 <불설우란분경>에는 없다.
다시 말해 이 불경을 당대에 유행한 변문 이야기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목련의 형상을 상인
으로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18) <목련연기>의 끝부분에는 董永, 郭巨, 孟宗 등 중국의 대표
적인 효자 고사들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즉, 불경 고사임에도 이야기 자체가 이미 중국적
으로 변용되었고, 변용의 목적도 매우 분명하다는 것이다. 효도가 강조된 불경의 고사를 수
18) 사본번호 北京成字96호 <목련변문>의 해당 부분을 보면 다른 두 목련고사 변문과 달리 나복이
장사를 하러 간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른 지방으로 가고자 하였다. 그래서
집안의 재물을 삼등분하여 두 몫을 모친에게 남기며, 그 중 한 몫은 부친을 모시는 데 필요한
옷이며 양식을 사도록 하고, 나머지 한 몫은 齋를 마련하여 사방 멀리에서 온 스님들에게 보시토
록 하였다.”(忽於一日, 思往他方. 家財分作於三亭, 二分留與於慈母, 內之一分, 用充慈父之衣糧,
更分資財, 禜[營]齋布施於四遠.) 이 점을 보더라도 상인 나복은 이야기가 변형되는 과정에서 새
롭게 더해진 형상임을 알 수 있다.
14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용자에 맞게 현지화, 중국화한 것이다. 실제로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에는 지옥으로 간 어
머니의 생전 모습을 미남으로 유명한 중국 시인 潘岳에 비유하기도 하고, 주나라 太公이 했
다는 말이 인용되기도 한다. 이 역시 목련 고사가 수용자의 상황에 맞게 변용되었음을 증명
하는 대표적 예들이다.
목련고사 변문에서 나복을 상인으로 설정한 것은 이 고사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
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친의 악행을 듣고 그에 대해 물어보자,
나복의 모친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부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 때
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복은 출가를 결정하게 되고, 이후 제일의 신통력을 얻어 ‘목련’이
라는 명호를 하사받는다. 이처럼 목련의 모친이 지옥으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재산을 불
법승과 걸식자들에게 쓰라는 아들의 권유를 무시하고 날마다 가축을 삶아 먹거나 재산을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복전에 써야할 재산을 자신의 부귀영화에만 쓴 것이다. 이는 모든 사
람들에게 재산을 함부로 쓰지 말고 탐욕의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경계이기도 하며, 여기서 주
인공을 부유한 상인으로 설정한 것은 재물, 욕심, 탐욕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인물의
형상을 설정함으로써 그만큼 경계와 교훈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불설우란
분경>의 중심 주제는 효도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불교 의례, 즉 우란분재에 대한 강조이
다. 그런데 변문에서는 원래 주제 외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새로운 주제를 더하였
으며, 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목련을 장사하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그 집안 역시 매우
부유했음을 미리 밝혔다.
4.4 解座文: 상인으로서의 講經人
돈황 변문에는 강경의 시작을 알리는 押座文과 강경의 자리를 마치는 역할의 解座文이
포함된다. 압좌문은 마치 판소리의 단가처럼 본격적인 강경을 시작하기 전 공연자가 목을
풀고 청중을 집중시키는 노래이며, 해좌문은 본 공연이 끝난 후 전체 자리를 정리하면서 다
음 공연을 기약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압좌문과 해좌문 모두 불교 관련 내용이긴 하지
만, 강경에서 실제로 강의한 불경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주위를 환기시킬 목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변문 속에서도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강경을 시작하면서 부르는 압
좌문이 엄숙하면서 다소 무거운 특징을 보인다면, 해좌문은 전체 공연을 끝내며 청중에게
다음 공연에도 참여해 달라고 직접 당부하는 말에서 매우 친근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각자 염불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어, 늦게 왔다고 공연히 마나님 노하게 하진 마십시오.(各自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15
念佛歸舍去, 來遲莫遣阿婆嗔)”, “섬돌 앞에서 합장하고 게를 받으시고, 내일 종소리가 들리
면 일찍 들으러 오십시오(合掌階前領取偈, 明日聞鐘早聽來)”, “날이 늦어 염불하고 돌아가시
되, 꼭 친속들게 말씀을 전해 명심토록 하십시오.(日晩念佛皈舍去, 事須傳語親屬記)” 등이
전형적인 예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리를 마무리하는 말 중에는 강경인 스스로가 자신의
공연에 대한 금전적 대가, 즉 보시를 바라는 내용도 보인다. 아래의 예들이 그렇다.
더 말하려 해도 해가 서쪽으로 떨어져,
자리의 문도들께서는 각자 돌아가셔야겠습니다.
갑자기 또 쓰라린 부담을 느끼니,
50전이면 가지가 두 바구니랍니다.
(更擬說, 日西垂, 坐下門徒各要歸.
忽然逢着故醋擔, 五十茄子兩旁箕)
며칠 동안 또 강경을 하러 왔으나,
보시는 신통치가 않군요.
염불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시고,
내일 다시 와서 함께 자리하시지요.
(還道講來數朝, 施利苦無大段.
念佛各自歸家, 明日却來相伴.)
첫 번째 인용문 마지막의 ‘旁箕’는 글자그대로는 의미가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項楚는 ‘旁’
을 ‘篣’으로 보고 ‘篣箕’는 대나무를 짜서 만든 용기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구는 “돈 50文이
면 가지를 두 바구니나 살 수 있다”는 의미의 우스갯소리라고 했다.19) 바로 앞 구에서 강경
인이 ‘쓰라린 부담’을 느낀다며 자신의 처지가 여의치 않음을 토로한 것을 보면, 項楚의 의견
은 매우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강경을 들은 청중들에게 보시
를 바란다는 말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해좌문은 해학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노골적으로 보시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項楚는 위 인용문에서 ‘大段’을 ‘大
量’의 의미로 보았고, 黃征과 張涌泉은 “施利苦無大段”이 “강경을 해서 얻은 보시가 많지 않
음을 의미한다”고 했다.20) 즉 강경의 대가로 더 많은 보시를 청중들에게 직접 요구하고 있
19) 項楚 著, 《敦煌變文選注》(下), <解座文集>, 中華書局, 2006年 增訂本, 1553쪽.
20) 項楚, 앞의 책, 1597쪽; 黃征ㆍ張涌泉 校注, 《敦煌變文校注》, <解座文匯抄>, 中華書局, 1997,
1190쪽.
16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는 것이다. 위의 예들에서 강경인은 자신의 재주를 팔아서 돈을 버는 ‘賣藝’의 상업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좌문에서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면서 친근한 말을 쓴 것은 매우
독특한 서술방식이다.
5. <父母恩重經講經文>: 장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
<父母恩重經>은 부모님의 은혜와 효도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설파한 불경이다. 불교가
원래 가족의 연에 얽매이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흔히 <부모은중경>은 중국적 효의 가
치관을 강조하기 위해 則天武后 시대에 처음으로 경전 목록에 포함된 僞經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 경전의 강경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은중경강경문>은 사실 <부모은중경>이
경전으로 포함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이미 민간에서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서로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강경문과 마찬가지로 <부모은중경강경문> 역
시 경전인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서사성이 더욱 가미된 작품이다. 경전에서는 간략하게 언
급되어 있는 부분을 강경문에서는 매우 핍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많은 사람
들의 환영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21)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변문 작품에도 특정 형상으
로 귀납할 수 있는 상인의 모습이나 상업적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
소위 ‘장사’라는 것을 간략히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이를 통해 직업으로서의 상인과 장사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먼저 아래의 내용을 보자.
친척들이 권면해도 들을 생각을 않고,
부모의 가르침은 듣는 둥 마는 둥이네.
벼슬이든 장사든 도무지 하려 하지 않고,
긴 세월 한가하게 보내며 멋대로 떠돈다네.
(親情勸着何曾聽, 父母敎招似不聞.
仕宦經營全不肯, 長時閑散恣因循.)
21) 돈황본 <부모은중경강경문>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사본번호 P.2418)과 중국국가도서관(사
본번호 北京河字12號)에 한 작품씩 소장되어 있으며, 두 사본은 같은 경전에 바탕을 두면서도
서술과 묘사 방식에 차이가 있어 일반적으로 <부모은중경강경문>(1)과 <부모은중경강경문>(2)
로 구별한다.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17
자식들이 성장한 이후에 각자 벼슬길에 나서고 장사를 위해 다른 지방으로 나가
면 어머니의 마음도 그를 쫓아간답니다. 삭방에 수자리 나가면 3년 동안 長城만 바
라보고, 劍嶺에 장사하러 가면 반 년 동안 혼은 錦水를 따라다닌답니다.(男女成長
已後, 各須仕宦經營, 纔出他州, 母心相逐. 朔方征戍, 三年而目斷長城, 劍嶺興生, 半
歲而魂隨錦水.)
모두 <부모은중경강경문>(1)에 나오는 내용이며, 둘 다 ‘經營’이라는 용어가 쓰였다. <目
連緣起> 설명 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서 ‘경영’은 당연히 ‘장사’를 의미한다. 앞의 인용
문은 낳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는 잊은 채 자식들이 불효와 나쁜 짓만 일삼는다고 나무라
는 부분이고, 뒤의 인용문은 장성한 후에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은 끊이지 않음을 묘
사한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장사’라는 직업 혹은 생계 수단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권장하는 혹은 희망하는 직업의 하나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벼슬과 마찬가지로 장사는 장성한 자식이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는 직업이었으며, 이
직업에 착실히 임하는 것이 곧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비록 말하고자 하는 바
는 다르지만, 두 번째 인용문에서도 장사는 벼슬길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대표적인 직업으
로 제시되고 있다. <부모은중경강경문>(1)에서는 이와 흡사한 묘사가 두 번 더 나온다. 모두
타향으로 떠난 자식을 어머니가 걱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장사는 벼슬살이와 함께 타향
살이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아울러 부모가 생각하는 자식의 생계수단으로서 장사가
언급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긍정적 인식이 작품 속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 나오는 말
이상으로 돈황 변문에 보이는 상업적 요소와 상인의 형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 논의에
서 보이듯이 돈황 변문 중에는 물건의 매매나 시세 차익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상업 요소는 찾을 수 없다. <순자변>에서 순의 아버지가 전쟁이라는 시기를 틈타 장사를 하
러 떠난다는 설정이 나오긴 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장면은 묘사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돈황 변문의 내용과 장르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
리고 변문에서의 상인 형상 역시 일반적인 상인으로서의 활동이 묘사되었다기보다는 상인
18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으로서 맺게 된 불교적 인연, 상인이라는 설정을 통한 도덕적 측면의 강조 등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돈황 변문의 한정된 내용을 통해 당대 사회의 상업적 측면이나
상인의 형상을 귀납해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돈황 변문 속 일부 상업적 요소와 상
인의 형상이 고사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때로는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
리가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즉, 공연 문학의 특징에 맞춰 이야기를 길게 늘이거
나 새롭게 구성하는 변문 작품에서 원래 이야기에는 없는 상인의 형상이나 상업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이야기 자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는 상인 형상과 상업 요소
들이 작품 내의 등장인물과 서사 장치로서 문학적 작용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도 하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상업적 측면이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착계포전문>과 <여산원공화>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이야기에서 노비의 매매 과정에 대한
묘사가 매우 흡사한 것을 보면, 당시 이야기의 수용자 입장에서도 이러한 상업적 요소는 매
우 익숙한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해좌문>에서 강경인이 자신의 재주를 파는 상
인으로서 사람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바란 것, <부모은중경강경문>에서 장사가 사람들이 으
레 선택하는 직업으로 설정된 것 역시 변문이 유행하던 당시에 이미 상인이라는 직업과 상
업 활동이 사람들에게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參考文獻>
[漢]司馬遷 著, 《史記》, 中華書局點校本, 1982년판.
[宋]李昉 등 편, 김장환ㆍ이민숙 외 옮김, 《태평광기》, 학고방, 2001.
黃征ㆍ張涌泉 校注, 《敦煌變文校注》, 中華書局, 1997.
項楚 著, 《敦煌變文選注》, 中華書局, 2006.
王昆吾, 《中國早期藝術與宗敎)》, 東方出版文化中心, 1998.
葛永海, 《古代小說與城市文化》, 上海師範大學 博士學位論文, 2003.
邱紹雄, 《中國商賈小說史》, 北京大學出版社, 2004.
邵毅平, 《中國文學中的商人世界》, 復旦大學出版社, 2005.
_______, 《文學與商人―傳統中國商人的文學呈現》, 上海古籍出版社, 2010.
姜革文, 《商人ㆍ商業ㆍ唐詩》, 復旦大學出版社, 2007.
昌慶志, 《唐代商業文明與文學》, 黃山書社, 2010.
敦煌 變文 속 商人 형상과 그 문학적 작용 / 19
Victor H. Mair 저, 정광훈ㆍ전홍철ㆍ정병윤 역, 《당대 변문》(T’ang Transformation
Texts), 소명출판, 2012.
《본생경》, 이미령 옮김, 민족사, 2001.
조명화, 《佛敎와 敦煌의 講唱文學》, 이회, 2003.
전홍철,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소명출판, 2011.
王小盾, <敦煌文學與唐代講唱藝術>, 《中國社會科學》, 1994.4.
鄭廣薰,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번역 어투를 중심으로>, 《中國小說論叢》,
第42輯, 2014.4.
<Abstract>
The Merchant’s Figure In the Dunhuang Bian-wen
and Its Literary Functions
‘Bian-wen變文’ is the performing narrative literature accompanied by prosimetric
散韻組合 style in T’ang and Five Dynasties. This article examines commercial
factors and merchant’s figure in Dunhuang Bian-wen as a performing literature and
its literary function.
A number of materials proves that Bian-wen was very popular in that period
when it was transcript, so it has a considerable amount of ‘present aspect’ as the
feature of oral storytelling.
In other words, although the time background is different, but these stories have
contemporary features in terms of enjoyment and dissemination.
Therefore, we could give meaning of simultaneity to special character and factors
of Bian-wen, nevertheless it has various contents and forms. Considering this
aspect of Bian-wen, in the first part of this paper I will attempt to analyze how
human traffic as a commercial factor in Zhoujibu–chuanwen捉季布傳文 and
Dongyong-Bianwen董永變文 make the story more interesting.
In the second half, I will investigate merchant’s figure in Shunzi-bian舜子變,
20 / 中國小說論叢 (第 46 輯)
Lushan yuangong hua廬山遠公話, Mulian bianwen目連變文 and its literary function.
Keywords: Bian-wen, commercial factor, merchant’s feature,
Shunzi-bian, Lushan yuangong hua, Mulian bianwen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번역 어투를 중심으로1)
鄭 廣 薰**
1. 들어가는 말
2. 돈황 변문의 한국어와 영문 번역 현황
2.1 한국어 번역
2.2 영문 번역
3. 구술적 특징에 따른 번역 어투의 구분
3.1 구술연행의 특징이 농후한 작품: 이야기체, 판소리사설체
3.2 강의 중심의 강경문: 경어체, 강의체
4. 나오는 말: 번역 도구로서의 돈황사본 원본
1. 들어가는 말
주지하듯이 돈황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변문’은 여전히 논란이 되는 용어이다. 이유는 ‘변’
혹은 ‘변문’이라는 용어가 제목에 포함된 돈황 작품들이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통일되어 있
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용어가 제목에 쓰여 있지 않은 작품들이 오히려 형식적으로
일치하는 경우도 있어 혼란은 가중된다. 그래서 변문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이래로
이 문제는 크게 변문으로 통칭하자는 의견, 개별 작품의 형식을 존중하여 세분하자는 의견,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07-361-AL0013].
**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HK硏究敎授
52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연행 방식을 고려하여 ‘설창’ 혹은 ‘강창’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자는 의견 등으로 나뉘었다.1)
그러나 ‘변문’이라는 용어의 적합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돈황의 서사문학 작품들을 가리킬 때
‘변문’이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의 연구자들이 곤혹스러운
건 ‘변’ 혹은 ‘변문’이 유행하던 그 시기의 애매함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당시에 이 용어의
범주와 쓰임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후대에도 혼란이 생겼다는 말이다. <長恨歌>의 “上穷碧落
下黄泉,两处茫茫皆不见” 구절을 두고 白居易와 張祜가 <目連變>과 비슷한지 아닌지 옥신각
신하며 담소하는 장면2)은 당시 문인들이 ‘변문’이라는 장르에 상당히 익숙했음을 증명하는
한편, ‘변’ 혹은 ‘변문’이라는 형식에 대해 그들 역시 명확한 개념을 갖거나 일정한 범주로
설정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그때 사람들은 이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순
있을지언정 그것의 쓰임이나 분류를 두고 후대 연구자들처럼 심각한 고민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서두에 이런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연구가 목적이든 감상이 목적이든 변문 작품 자체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이다. ‘변’인지 ‘변문’인지, 변문의 범주에 어떤 작품들을 넣어
야 하는지를 놓고 근 1백 년 동안의 논쟁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 대신 개별 작품의
원래 모습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말이다. 이는 돈황 사본의 쓰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
한 논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돈황 藏經洞의 수많은 사본들이 西夏 군의 침공에 대비해
임시 보관한 장서들인지, 아니면 인쇄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차마 태워버리지 못한
두루마리 쓰레기더미에 불과한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3) 처음부터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
듯이, 돈황 사본이 혹여 버려진 자료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원래 무언가로 쓰였거나 쓰일
것들이었고 나름의 존재 가치가 분명한 것들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
는 ‘변문’으로 뭉뚱그린 여러 작품들이 억지로 분류된 모습이 아닌 작품 하나하나의 실제 모
습과 그것의 원래 가치가 아닐까 한다. 변문의 번역과 관련된 이 글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서 출발한다. ‘변문’은 그 모호한 정의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긴 세월을
1) 각 의견에 대한 정리와 논의는 전홍철,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4-71쪽을 참고. 서울: 소명출판,
2011년 6월.
2) [宋]李昉 編, 《太平廣記》, 권251, ‘張祜’ 조목 참고(中華書局 판, 제6책 1948쪽).
3) 송대 초에 西夏의 침략을 피해 불경들을 잠시 숨겨두었다고 주장하는 ‘피난설’은 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Paul Pelliot)가 제시한 이래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따른 의견이다. 반면 최근 중국국
가도서관의 사본 목록을 새롭게 정리한 方廣錩은, 장경동의 사본들이 이미 사용가치를 잃고 폐기
된 것이지만 종이를 귀하게 여기고 불경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전통에 따라 석굴 한 곳에 방치한
것일 뿐이라는 ‘폐기설’을 주장하였다. 方廣錩, 《敦煌遺書散論》, 上海古籍出版社, 2010년, 10-17
쪽 참고.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53
거치면서 새롭게 편집되고 고쳐져 온 여타의 수많은 작품들과 달리, 변문은 그 시절에 기록
된 날것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정보의 양이 풍부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은 한 언어의 원문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러나 너무나
뻔한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얕지 않다. 옮기기 위해서는 들춰내야 하고, 들춰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고전을 번역하든 현대의 작품을 번역하든, 동양의 작품을 번역하
든 서양의 작품을 번역하든 마찬가지이다. 작품의 텍스트가 말해주는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드러내어 번역해야 할 것이다. 돈황 변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은 화자의 어투, 서사성, 작품의 분위기 등이다. 어투는 경어체, 이야기체, 평어체로
크게 나뉘고, 서사성은 다시 소설서사와 희곡서사로 나뉘고, 분위기는 독서용과 연행용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같은 작품 속에서 이런 요소들이 섞여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
으며, 각 요소들이 서로를 보충해주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면 경어체-연행용, 평어체-독서
용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변문을 하나로 뭉뚱그려 범주화될 수 없듯이 그것을 번역하는
방식 역시 천편일률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이미 출판되거나 발표된
변문의 한국어, 영어 번역 성과와 그 특징을 목록과 함께 간략하게 소개한 후, 번역문의 어
투를 중심으로 하여 변문 번역의 과정에서 특수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살펴보고자 한
다.4)
2. 돈황 변문의 한국어와 영문 번역 현황
2.1 한국어 번역
다른 언어에 비하면 그동안 변문의 한국어 번역은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가시적
성과 역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돈황문학
연구자들이 집중 배출되면서 변문 작품의 한국어 번역이 자연스레 성과로 남은 이유도 있
고, 중국 고대 소설에 대한 연구와 작품 강독 활동이 중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문에까
지 미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비록 책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중국소설학회 작품읽기
4) 의역과 직역, 오역, 인명과 지명의 한국어 표기법 등 모든 중국어 번역 작업에 공통적으로 해당되
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 왔으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54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모임에서 1990년대에 이미 <伍子胥變文>, <李陵變文>, <王昭君變文> 등 돈황 변문의 대표작
품들을 번역하여 연구자들에게 자료로 제공한 적이 있고, 연구자 개인이 번역한 개별 자료
들이 학위논문이나 논문집 내의 원전 역주 형식으로 다수 발표되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집
은 전홍철과 정병윤이 변문 선집의 형태로 출판하였으며, 전홍철⋅정병윤⋅정광훈은 변문
작품이 모두 들어간 《敦煌變文校注》를 완역하여 곧 출판할 예정이다. 그동안 공식 출판되거
나 소개된 변문 작품의 한글 번역본 목록은 아래와 같다. 개별 작품 목록에서는 해당 작품
전문을 번역한 것만 소개하였으며, 논문이나 저서에 짧게 인용된 번역문들은 제외했다.
1) 개별 작품
<葉淨能詩> 譯文, 권영애, 《敦煌寫本<葉淨能詩> 硏究》, 숙명여대 석사학위논문, 1985.6. 제
2장.
<韓擒虎話本> 譯文, 박현식, 《敦煌<韓擒虎話本> 硏究》, 단국대 석사학위논문, 1986년 6월.
제2장.
<季布罵陣詞文> 譯註, 이정화, 《敦煌本<季布罵陣詞文> 硏究: 演行論的 接近》, 이화여대 석
사학위논문, 1994년, 부록.
<廬山遠公話> 譯文, 정병윤, 《敦煌寫本<廬山遠公話> 硏究》, 한국외대 석사학위논문, 1994년
8월. 제3장.
<晏子賊」譯註, 전홍철, <敦煌本 <晏子賊> 硏究>, 《中國硏究》 제15집, 1994년 12월.
<伍子胥變文> 譯註, 신주리, 《中國小說硏究會報》, 제23호, 1995년 9월.
敦煌本 <韓朋賦> 譯註, 전홍철, 《中國小說硏究會報》, 제30호, 1997년 6월.
<공자가 소년 항탁과 논쟁하다―敦煌本<孔子項託相問書>> 譯註, 전홍철, 《中國小說硏究會
報》, 제31호, 1997년 9월.
<茶酒論>一卷幷序 註解, 전홍철, 《中國小說硏究會報》, 제34호, 1998년 6월.
<敦煌本韓擒虎話本> 譯註, 전홍철, 《中國小說硏究會報》, 제41호, 2000년 3월.
敦煌本 <舜子變> 譯註, 전홍철, 《東西文化交流硏究》 제3집, 2001년 2월.
敦煌本 <歡喜國王緣> 譯註, 정병윤, 《東西文化交流硏究》 제3집, 2001년 2월.
<降魔變文一卷>譯註, 임영숙, 《<降魔變文> 硏究》, 성균관대 석사학위논문, 2005년 2월,
<敦煌本<齖䶗新婦文>의 書誌的 考察과 譯註>, 전홍철, 《東西文化交流硏究》 제4집, 2002년
5월.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55
2) 작품집
《敦煌小說集》, 전홍철 역, 신성, 2007.5
《敦煌佛敎講唱集》, 전홍철⋅정병윤 역, 성신사, 2009.3.
《敦煌變文校注》, 전홍철⋅정병윤⋅정광훈 역, 소명출판, 근간.
2.2 영문 번역
돈황 변문의 영문 번역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0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당시에는 연
구대상이라기보다는 독특한 문체와 내용을 가진 중국문학 작품의 한 장르로서 번역 소개되
었다. 이는 한국의 연구자들이 일단 연구의 대상으로 변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동시에
자연스레 번역을 진행한 것과는 다른 특징이다. 변문의 영문 번역이 소개된 이후에는 서구
권 내에서도 변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변문 작품에 대한 번
역 역시 많은 역주가 더해진 학술적 측면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었다. 영미권에서는 비록 극
소수의 몇몇 학자들이 연구와 번역을 진행해왔지만, 그 수준은 돈황문학 연구 전체에 영향
을 줄 정도로 뛰어났고 그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빅터 메이어(Victor
H. Mair) 교수는 박사논문을 포함하여 수십 년 동안 변문 연구에 매진했을 뿐 아니라, 소위
‘변문’이라 불리는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변문의 전형적 형식에 가까운 네 편의 작품을
상세한 주석과 함께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돈황 변문의 대표적인 영문 번역
성과는 아래와 같다.
1)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돈황의 민가와 이야기: 선집(Ballads and Stories from
Tun-huang: An Anthology)》, George Allen and Unwin Ltd, London, 1960; New
York, Macmillan, 1960.
돈황 문학의 최초 영문번역 단행본이다. 서구에서 지금까지 가장 뛰어난 중국 문학 번역
가로 알려져 있는 아서 웨일리의 번역이고, 그만큼 문학작품으로 읽기 위한 목적으로 번역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王重民, 王慶菽 등이 편찬한 《敦煌變文集》5)을 주요 저본으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총 24편의 작품을 실었다. 영문 제목은 ‘변’ 혹은 ‘변문’이라는 용어
5) 人民文學出版社, 1957년 출판.
56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에 집착하지 않고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근거하여 역자가 새로 붙였다.6)
燕子賦 The Swallow and the Sparrow
伍子胥故事 Wu Tzu-hsü
前漢劉家太子傳 The Crown Prince
韓朋賦 Han P’eng
舜子變 The Story of Shun
韓擒虎話本 The Story of Catch-Tiger
孔子項託相問書 Confucius and the Boy Hsiang T‘o
盧山遠公話 The Story of Hui-Yüan
葉淨能詩 The Wizard Yeh Ching-neng
孟姜女故事 Meng Chiang-nü
田崑崙(《搜神記》) T‘ien K‘un-lun
董永故事 The Ballad of Tung Yung
秦緩(《搜神記》) The Doctor
唐太宗入冥記 T’ai Tsung in Hell
管輅(《搜神記》) Kuan Lo
侯霍(《搜神記》) Hou Hao
王子珍(《搜神記》) Wang Tzu-chen
段子京(《搜神記》) Tuan Tzu-ching
下女夫詞Marriage Songs
太子成道變文Buddha’s Marriage
太子成道經 Buddha’s Son
難陀出家緣起Ananda
破魔變 The Devil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幷圖一卷 Mu-lien Rescues His Mother
6) 아서 웨일리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의 이러한 제목 명명 방식은 그간 반복되어 온 변문
연구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변’ 혹은 ‘변문’이라는 용어의 정의와 작품의 분류에 집착하여
작품 본연이 갖는 내용과 형식을 억지로 장르에 맞추는 연구 방식이 이루어져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서 웨일리는 사본에 명시되어 있는 원래의 제목이 아닌 작품의 내용에 따라 매우 간략하
게 제목을 정한 것이다.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57
2) 유진 오양(Eugene Eoyang)의 박사논문: 《입말: 변문의 구술 스토리텔링(Word of
Mouth: Oral Storytelling in the Pien-wen)》, PhD dissertation, Indiana
University, 1971.
유진 오양의 이 논문은 입으로 연행된 형식으로서의 변문을 서구의 구술성 이론과 함께
논한 것으로, 서구에서 변문에 대한 연구의 물꼬를 튼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는
아래의 다섯 작품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目連緣起Mu-lien yuan-ch’i: “The Retribution Story of Mu-lien.”
前漢劉家太子傳Narrative of the Crown Prince of the House of Liu During the
Former Han Dynasties
漢將王陵變 The Pien on the Han general Wang Ling
降魔變文畵卷Śāriputra and the Six Masters of Heresy7)
王昭君故事Wang Chao-chün
3) 빅터 메이어(Victor H. Mair): 《돈황 민간서사(Tun-huang Popular Narra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서구에서 변문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빅터 메이어의 변문 번역 선집이다. 주석
이 2/3 가량을 차지할 만큼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였고, 글자 하나하나, 단어, 구절, 문장
등의 의미 파악에 심혈을 기울여 난해한 변문의 의미 파악에 큰 도움을 주는 역주서이다.
특히 <오자서변문>의 藥名詩에 대한 해석은 고대 중국어의 발음, 동음이의어, 약명이 가지
는 이중 이미 등의 지식과 자료를 총동원하여 영문으로 옮겨 놓고 있어 원문 해석과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이처럼 상세한 주석과 해설 때문에 상당히 긴 편폭에도 불구
하고 아래의 작품 네 편만 번역되어 있다.
降魔變一卷 Transformation on the Subduing of Demons, One Scroll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幷圖一卷幷序 Transformation Text on Mahāmaudgalyāyana
Rescuing His Mother from the Underworld, With Pictures, One
7) P.4524 <항마변문> 그림두루마리 뒷면의 시를 번역한 것이다.
58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Scroll, With Preface
伍子胥故事 The Story of Wu Tzu-hsü
張議潮變文 Transformation Text on Chang I-ch’ao
위 네 작품의 영문 제목은 1차적으로는 원문 그대로의 제목을 따르고, 다음으로는 내용과
형식을 고려하여 단 것이다. 이 중 앞의 두 작품은 제목에 ‘變’ 혹은 ‘變文’이라는 표시가 있는
전형적 형식과 내용의 변문 작품이며, 네 번째 <장의조변문>은 따로 제목이 있지는 않지만
빅터 메이어가 나름의 기준에 따라 협의의 변문으로 규정한 작품이다. 즉, 제목에 ‘變’이나
‘變文’이라는 글자가 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변문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에
‘변문’으로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은 ‘transformation’(변) 혹은
‘transformation text’(변문)로 제목을 번역했다. 반면 흔히 <오자서변문>이라고 임의로 명
명하여 변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곤 하는 세 번째 작품은 변문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이야기’ 혹은 ‘고사’(story)라는 제목만 달았다.
4) 구오슈윈Crossland-Guo, Shuyun 박사논문: 《변문의 구술 전통: 그 특징과 중국 서사
문학에 미친 영향(The oral tradition of bianwen: Its features and influence on
Chinese narrative literature)》, University of Hawai'i, 1996.
부록: Wang Ling Bian(王陵變) 번역
이 논문은 구술적 특징에 초점을 맞춰 변문을 분석하였다. 돈황 변문 중에서도 <왕릉변>
은 산문과 운문의 적절한 조화, 운문을 시작하기 전의 상투어, 그림을 사용한 흔적 등 변문
형식의 전형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며, 빅터 메이어가 가장 좁은 의미의 변문으로
규정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저자 구오슈윈은 <왕릉변>이 변문의 구술 전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판단하여 부록으로 영문번역을 첨부한 것이다.
3. 구술적 특징에 따른 번역 어투의 구분
번역은 동일한 작품을 놓고 서로 다른 언어로 무게를 다는 작업이다. 번역을 마친 후 원래
의 언어가 주는 무게와 번역어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번역은 잘된 번역이라고 할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59
수 없다. 결국 두 언어라는 저울추가 수평을 이룰 때까지 반복해서 무게를 다는 작업이 곧
번역의 과정이 된다. 여기에는 직역, 의역, 오역, 적합한 단어와 문장의 선택,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 작가의 의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번역 과정
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할 문제들 중에서 어투의 문제 역시 문학작품을 번역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중국 고대문학의 번역과 관련해서는 어투 관련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고도 볼 수 있
다. 흔히 ‘번역 어투’라 하면, 원문의 언어 사용방식이 번역문에도 그대로 드러나면서 도착언
어, 즉 해당 번역작품의 독자가 직접 접하게 되는 언어의 습관과는 배치되는 어투를 가리키
며, 이런 번역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번역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번역에 대한 고민과
논의의 대부분은 직역과 의역의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며, 원전 텍스트와 번역문의 관계 설
정 역시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원문의 분위기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어투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며, 심지어 이 어투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에 대한 독자의 느낌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서양 희곡작품의 어투 문제를 논하긴 했지만, 이와 관련한 권오숙의 주장은 중국
고대 문학의 번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세기 유미주의
문학의 대표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Salome)》의 한국어번역이 어투 면에서 등
장인물의 특징, 저자의 의도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면서, 문학텍스트이면
서 동시에 공연대본이라는 이중성을 가지는 희곡의 번역에서는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냐 원
작으로부터 자유로운 번역을 지향할 것이냐의 문제 뿐 아니라 읽기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공연하기 좋은 번역이냐의 문제(performability)가 또 하나의 중요한 비평의 잣대가 된다고
주장한다.8) 문학 번역 특히 희곡의 번역은 직역과 의역의 문제를 넘어서서 희곡이라는 장
르적 특성을 고려한 번역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문학의 번역 역시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어떤 문학보다도 장르적
다양성이 강한 중국 고대문학은 그 다양성에 맞는 번역 어투에 대한 고민을 장르마다 더
나아가 작품마다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본 논문에서 다루는 돈황 변문은 작품과 독자와의
거리가 가까운 희곡과 공연 문학의 특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번역 시에도 어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서 권오숙이 말한 어투는 와일드의 희곡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번
역하는 어투를 말한다. 따라서 보통 1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책임지는 형식이었을 것
으로 추정되는 변문의 어투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희곡 번역의 어투 문제와 다른 차원
8) 권오숙, <희곡 번역 시 알맞은 어투 선정의 중요성―와일드의 <살로메> 번역을 중심으로 한 고
찰>, 《통역과 번역》, 12(1), 2010년, 4쪽.
60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위 ‘변’이라는 공연은 그 1인의 연행자가 관객들 앞에서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 여러 인물의 특징들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
에, 변문 텍스트 속 화자의 서술, 등장인물의 독백, 대화 등을 번역할 때 일반적인 희곡 텍스
트와 마찬가지로 다양하면서도 분위기에 어울리는 어투를 고려해야 한다.
원문 혹은 출발언어와 번역문 혹은 종착언어 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할 것인지는 어느 언어
를 막론하고 역자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바이며, 실제로 역자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
다. 다소 거친 결론일 수 있으나, 대체로 원문의 내용이 난해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라면 종착언어보다는 출발언어가 중시되고 역자 역시 그 출발언어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어야 할 것이며, 원문의 맛깔스러운 표현을 어떻게 종착언어로 표현할 것인지가 관
건인 경우는 출발언어보다는 종착언어에 중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역시 위 두 가지 경향이 적절히 조화된 번역일 것이다. 두 가지 중 택일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돈황 변문의 번역도 예외일 수 없다. 변문은 언어와
내용 모두가 상당히 난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사전 연구 없이는
번역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빅터 메이어 교수는 고대 중국어는 물론이고, 산스
크리트어와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 언어들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변문의 번역과
연구에도 실제로 이러한 지식과 언어능력을 적극 활용하였다. 출발언어에 대한 장악력을 번
역 전에 충분히 갖추었다는 말이다.
본 논문에서는 위의 두 가지 번역 방식 중 종착언어에 좀 더 비중을 두고 논의를 할 것이
다. 물론 이것이 종착언어를 더 중시한다거나 출발언어의 중요성을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결
코 아니다. 다만 독자들이 직접 접하게 되는 종착언어의 어투나 분위기를 어떻게 출발언어
와 최대한 가깝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하지만 한국어 번역의
종착언어는 한국어이고 번역의 대상은 한국어에 익숙한 독자들이다. 그리고 역자는 이 종착
언어로 원문의 느낌과 분위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한국어
의 꽤 다양한 어투와 현란한 어미들은 이런 분위기를 전달할 때 큰 장점이 된다. 그중에서
번역의 어투는 크게 경어체와 평어체로 나뉠 수 있겠으나, 실제로 쓰이는 어투는 동일한 경
어체와 평어체 안에서도 더 복잡해진다. 번역 원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런 어투를 선
정하는 건 역자가 할 일이다. 돈황 변문의 번역에도 이 점은 그대로 적용된다. 머리말에서
언급했듯이 변문의 범주 안에는 성격이 다른 여러 작품들이 뭉뚱그려 들어있다. 이들을 똑
같은 하나의 어투로만 번역할 수는 없다. 이야기보다 강의에 가까운 작품은 강의식으로, 극
적 요소가 강한 것은 극적인 언어로, 구술 이야기서사의 요소가 분명한 것은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책상 앞 독자를 위한 소설에 가까운 것은 일반적인 소설의 문체로 번역해야 한다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61
는 것이다.
번역 어투의 구분과 관련하여 이 장에서는 변문의 구술성에 따른 변문 번역 어투를 고찰
할 것이며, 그 방법으로 우선 기존의 연구에서 소개된 작품의 구술성을 살펴보고 이를 구술
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텍스트로 표현된 구술성이 현장의 연행을 온전히 대변해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구술성이 명확한 텍스트일수록 이미 현장의 구술이 아
닌 구연의 정형화된 모방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
나 언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든 아니면 구술 형식을 모방한 것이든, 구술성 자체가 현장의
연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구술 방식이 텍스트 내에서 정형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구술연행의 현장성까지 부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판소리 사설이 판소리 현장의 생
생한 분위기와 언어를 그대로 재현하진 못하지만, 그것이 구술 판소리와 가장 가까운 글 형
식인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구술성이 분명한 변문 작품은 현장의 언어로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변문의 구술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
를 참고하려는 것이다. 연행 방식에 있어서 선명한 차이를 보이는 講經文은 제외하고(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상술), 그 외의 변문 작품 중에서 구술성이나 구술연행의 근거가 선명한
작품은 어투를 바꿔주는 것이다. 여기서 구술성이 가장 농후한 작품은 판소리사설처럼 대단
히 구어적이면서도 청중이 의식되는 번역을 하고, 구술 연행의 요소가 이미 희미해지고 기
록성이 더욱 강한 작품들은 보통의 서사문학 작품처럼 번역한다. 아래는 변문 텍스트 자체
가 내포하고 있는 구술성 혹은 구술연행의 근거에 대해 한국의 전홍철, 박완호, 정병윤과
중국의 陸永峰, 富世平이 분석한 내용을 표로 옮긴 것이다.9)
◎ 全弘哲,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소명출판, 2011년 6월, 355-373쪽.
구술 특징 혹은 구술공연의 흔적 항목 대상 작품
논문 중 인용
횟수
구문의 반복적 되풀이, 상투적 표현구의 활용 舜子變2
두 텍스트 내의 유사한 구절: 설화인의 기억에 의해 구술된 것으
로 추정
晏子賦1
孔子項託相問書1
이야기꾼이 등장하여 진술 茶酒論2
일방적 진술이 아닌 문답식 대화가 전체 서술구조의 핵심
鷰子賦(二) 1
茶酒論1
공식적인 用韻法을 무시하고 구연에 편리하게 용운 鷰子賦(一) 2
암기 구연으로 인한 典故 사용의 오류 鷰子賦(二) 1
9) 이들 외에도 몇몇 논문에서 변문의 구술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나, 거의 동일한 항목으로 비슷
하게 분석한 경우가 많으며, 위 다섯 연구자가 그중에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 있어 본 논문의 근거 자료로 선택하였다.
62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구술 특징 혹은 구술공연의 흔적 항목 대상 작품
논문 중 인용
횟수
共同式: 특정 사상을 설명할 때 청중에게 익숙하고
강창자도 즐겨 사용하는 표현방법
維摩詰經講經文(一) 7
維摩碎金2
維摩詰經講經文(六) 2
維摩詰所說經講經文1
無常經講經文1
降魔變文6
阿彌陀經講經文1
維摩詰經講經文(二) 2
維摩詰經講經文(四) 2
維摩詰經講經文(五) 2
父母恩重經講經文(一) 5
壚山遠公話1
父母恩重經講經文(二) 2
難陀出家緣起2
歡喜國王緣1
醜女緣起1
太子成道經一卷1
秋吟一本(一) 2
◎ 朴完鎬, 《敦煌 話本小說 硏究》, 전남대 박사학위논문, 1996년 8월, 90-108쪽.
구술 특징 혹은 구술공연의 흔적 항목 대상 작품
논문 중 인용
횟수
설화인 특유의 어투: “說……” “是時(也)” “此時” 등
壚山遠公話5
韓擒虎話本410)
唐太宗入冥記1
설화인의 자문자답(구연자의 직접 개입): “是何人也?” “是甚人?” “爭得
知?” “是甚時甚節?”
壚山遠公話3
韓擒虎話本2
속담과 격언의 운용
壚山遠公話3
韓擒虎話本2
秋胡話本2
◎ 鄭炳潤, 《敦煌講唱文學中佛敎故事類作品之硏究》, 南京大學 박사학위논문, 1998년 6
월. 145-167쪽.
10) 박완호 논문 92-93쪽을 보면 92쪽의 예문 (나)와 (다)에 대한 93쪽의 설명이 서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인용된 횟수에는 변함이 없다.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63
十吉祥講經文1
固定式: 다른 작품 내에 같은 문구, 고정된 상투어
사용
溫室經講唱押座文2
阿彌陀經押座文(四) 2
維摩詰經押座文1
太子成道經一卷5
八相押座文2
三身押座文1
無常經講經文1
破魔變文2
頻婆娑羅王後宮彩女功德意供養塔生天
因緣變
1
八相變1
悉達太子修道因緣1
問答式: 강창자가 청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기 위
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방식11)
維摩詰經講經文(一) 2
金剛般若波羅蜜經講經文1
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講經文4
阿彌陀經講經文(二) 2
維摩詰經講經文(二) 1
維摩碎金1
太子成道經一卷2
降魔變文1
難陀出家緣起1
壚山遠公話212)
說話式: 강창자의 서술 중 이야기속 인물의 말이 섞
인 경우
維摩詰經講經文(五) 1
維摩碎金1
降魔變文3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1
歡喜國王緣1
醜女緣起1
壚山遠公話1
用誤式: 내용과 전고 사용의 오류
太子成道經一卷1
破魔變文213)
維摩碎金1
降魔變文2
維摩詰經講經文(二) 1
11) 저자는 같은 문답식이라도 강경문에서는 ‘問’과 ‘答’이라는 글자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변
64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구술 특징 혹은 구술공연의 흔적 항목 대상 작품
논문 중 인용
횟수
敍事時間: 서술의 도치, 삽입 등을 넣지 않고 철저하
게 시간 순서에 따라 장면을 차례대로 배치
伍子胥變文
작품의 전반적인
성향
李陵變文
漢將王陵變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
破魔變
醜女緣起
敍事角度: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사건의 내막과
인물의 심리까지 묘사하고 시각을 자연스럽게 전환
王昭君變文1
降魔變文2
李陵變文1
敍事結構: 情節 중심의 직선형 서사 구조, 하나의 주
제로 일관하며 다른 주제와 고사의 개입은 불허
伍子胥變文
작품의 전반적인
성향
李陵變文
漢將王陵變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
破魔變
王昭君變文
降魔變文
敍事干預
指示性話語: “∼處, 若爲陳說” “當爾
之時, 道何言語?”14)
전형적인 형식의 변문 작품에 반복적으로 출현
評價性話語: 청중과의 심리적 공감
을 위한 연출자의 평가성 담화
李陵變文2
王昭君變文3
張淮深變文1
舜子變1
破魔變2
降魔變文1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1
說明性話語: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연행자의 현장 설명
伍子胥變文2
舜子變1
破魔變2
降魔變文1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1
自問自答: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
한 연행자의 자문자답
降魔變文2
八相變1
◎ 陸永峰, 《敦煌變文硏究》, 巴蜀書社, 2000년 5월, 241-259쪽.
문에서는 아예 이런 글자를 쓰지 않고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그 이유를 속강
(강경문)은 여전히 불전의 영향이 깊지만 변문에서 점차 종교적 내용이 사라지고 역사나 사회
문제로 내용이 바뀌면서 이런 글자들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한다. 정병윤 논문,
157쪽.
12) 정병윤의 논문에서 인용한 <壚山遠公話> 두 곳은 박완호의 논문 ‘설화인의 자문자답’과 겹친다.
13) 인용횟수로만 따지면 총 5회이나, 이 부분은 앞과 뒤의 내용이 다른 점을 서술하고 있으므로
뒤의 내용이 잘못된 것만 따져 2회로 인용횟수를 정했다. 정병윤 논문, 162쪽 참고.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65
구술 특징 혹은 구술공연의 흔적 항목 대상 작품
논문 중 인용
횟수
작품 서두의 패턴: ‘昔’ 혹은 ‘憶昔’의 사
용16), 4언구로 시작
漢將王陵變2
韓朋賦1
前漢劉家太子傳1
壚山遠公話1
伍子胥變文2
시간의 신속한 흐름을 묘사하는 패턴: 不經,
不逾, 不逕, 之間, 中間 등
漢將王陵變7
張議潮變文1
張淮深變文2
舜子變4
壚山遠公話9
葉淨能詩13
太子成道經1
悉達太子修道因緣1
目連緣起1
捉季布傳文3
董永變文1
秋胡變文1
韓擒虎話本7
降魔變文3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6
伍子胥變文3
八相變1
破魔變1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1
醜女緣起1
人物腔調的模倣: ‘∼道’ ‘∼言’ 등의
대화 앞 지시어를 생략하고 인물의
말투를 모방
漢將王陵變1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1
李陵變文1
◎ 富世平, 《敦煌變文的口頭傳統硏究》, 四川大學 박사학위논문, 2005년 3월, 131-163
쪽15).
14) “∼處, 若爲陳說”과 “當爾之時, 道何言語?”는 “∼한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와 “이때는 어떻게 말
할까요?” 정도로 해석된다. 변문에서 긴 운문이 나올 때마다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공식구이며,
이 장면을 그림과 함께 이야기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5) 富世平은 변문의 구술적 특징을 분석할 때 사용해 온 기존의 ‘套語’(상투어 혹은 공식구) 개념은
구술성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단어나 문장, 플롯이 가지는 건설적 역할을 정확히 반영
하지 못하므로 ‘套語’ 대신 ‘程式’(패턴)이라는 개념을 쓸 것을 주장한다. 아울러 그가 말하는 변
문의 ‘程式’은 변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정된 표현수단(형식)과 고정된 이야기플롯(내용)을 가
리킨다. 富世平의 논문, 131-132쪽 참고.
66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難陀出家緣起3
維摩詰經講經文(一) 1
維摩詰經講經文(三) 3
盂蘭盆經講經文2
頻婆娑羅王後宮彩女功德意供養塔生天因緣變1
不知名變文(一) 1
解座文滙抄1
妙法蓮華經講經文1
슬픔, 비통, 기쁨 등의 정감을 표시할 때 상
투적 패턴이 반복됨: 哽咽聲嘶, 肝腸寸斷, 龍
顔大悅, 大怒 등
伍子胥變文11
漢將王陵變7
韓朋賦4
太子成道經5
太子成道變文1
降魔變文1
長興四年中興殿應聖節講經文1
雙恩記1
父母恩重經講經文(一) 2
盂蘭盆經講經文1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7
歡喜國王緣3
八相押座文1
董永變文1
金剛醜女因緣4
悉達太子修道因緣1
壚山遠公話8
目連變文1
八相變(一) 1
李陵變文3
前漢劉家太子傳1
韓擒虎話本9
唐太宗入冥記1
葉淨能詩4
秋胡變文1
維摩詰經講經文(四) 4
張議潮變文1
서사나 묘사를 다음
으로 넘기거나 다음
에 이어지는 내용을
소개할 때 쓰이는 패
턴
∼處, 若爲陳說
漢將王陵變7
降魔變文16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幷圖一卷幷序18
頻婆娑羅王後宮彩女功德意供養塔生天因緣變1
伍子胥變文117)
李陵變文6
王昭君變文6
張議潮變文2
張淮深變文4
當爾之時, 道何言語? 八相變16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67
破魔變文4
醜女緣起4
目連變文118)
경물이나 장면 묘사 앞의 패턴: 是時, 是時
也, 是日也 등
張淮深變文1
壚山遠公話4
百鳥名1
維摩詰經講經文(五) 1
維摩詰經講經文(七) 1
太子成道經2
蘇武李陵執別詞2
서로 다른 작품에 전형적인 장면의 반복 출현
伍子胥變文2
前漢劉家太子傳1
太子成道經2
韓朋賦1
舜子變1
壚山遠公話3
董永變文2
李陵變文1
孟姜女變文1
王昭君變文1
韓擒虎話本2
漢將王陵變2
捉季布傳文1
위의 표가 구술성의 정도를 논하는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인용 횟수의 경우는 각 작품의 편폭이 크게 다르고 어떤 작품은 일부만 남아 있다는 점에서
위의 숫자 그대로를 통계로 내서는 안 될 것이다. 편폭이 긴 작품은 반복되는 구술적 특징이
많고 그만큼 논문에서도 자주 인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술성을 명확하게 판단
할 수 있는 항목이 이미 정해진 것도 아닌데다, 저자마다 구술성 항목의 기준이 다르고 대상
으로 한 작품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통계
숫자는 특정 작품의 구술성 정도를 어느 정도는 증명해줄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번역 어투를
16) 현존 변문 중 ‘昔’, ‘昔者’, ‘憶昔’ 등의 패턴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伍子胥變文>, <漢
將王陵變>, <捉季布傳文>, <韓朋賦>, <前漢劉家太子傳>, <孔子項托相問書>, <晏子賦>, <目連緣
起>, <目連變文>, <不知名变文>(S.3050).
17) 편폭이 대단히 긴 <오자서변문>에서 “∼處, 若爲陳說” 류의 정형구가 한 번 밖에 쓰이지 않은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자서변문>에서는 이 정형구가 “楚王出勑, 遂捉子胥處若爲?” 식
으로 쓰여 있으며, 특이한 점은 뒤에 운문이 아닌 산문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
을 “∼處, 若爲陳說”류 정형구 퇴조의 사례이자 연행 형식의 잔재로 설명한 바 있다. 鄭廣薰, 《敦
煌 變文의 口演特徵 硏究》,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2, 108쪽 참고.
18) 이상 “∼處, 若爲陳說”과 “當爾之時, 道何言語?”가 쓰인 작품에 대한 정리는 陸永峰의 저서,
116-119쪽을 참고.
68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결정할 때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용된 횟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항목에 인용되었는지 혹은 몇 개의 항목에 인용되었는지가 더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항목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 구술성을 증명할 수 있
는 항목들이 산재해 있다면, 그 작품이야말로 구술적 측면이 전반적으로 농후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 근거하면 이러한 조건에 부합되는 작품으로 <한금호화본>, <노산
원공화>, <항마변문>,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아래에서는
먼저 구술성이 농후한 작품으로서 《한금호화본》을 예로 들어 새로운 번역을 시도해보고, 아
울러 변문의 다른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강경문의 한 단락을 다른 어투
로 번역하고 이를 근거로 변문과의 영향관계에 대해서도 논하고자 한다.
3.1 구술연행의 특징이 농후한 작품: 이야기체, 판소리사설체
위의 표에서 작품의 전반적인 성향이라 말한 陸永峰의 ‘서사시간’과 ‘서사구조’ 항목은 서
사성이 일관되게 보이는 모든 작품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구술적 특징을 논하는 본 논문의
연구대상에서는 일단 제외한다. 그리고 편폭이 지나치게 짧고 서사적 특성도 거의 없는 압
좌문과 해좌문도 번역 어투 논의에서 제외할 것이다. 이 작품들은 경문을 강의하면서 처음
과 끝에 자리를 정돈하거나 해산할 때 쓰인 것이므로 아래에서 소개할 강경문 운문을 번역
할 때의 어투를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편폭에 비해 인용 횟수가 적고 구
술성의 기준에 전반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작품들 중 유명한 것으로는 <오자서변문>과 <당태
종입명기>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오자서변문>은 현존 돈황 변문 작품 중 가장 편폭이
길다. 그러나 표를 보면 <오자서변문>에 해당하는 구술적 특징 중에 富世平이 말한 ‘슬픔,
비통 기쁨 등의 정감을 표시하는 상투적 패턴’만 11회로 가장 많을 뿐이며, 다른 구술 특징
들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다고 보긴 힘들다. 이는 <오자서변문>이 이미 구술성을 상당
히 벗어난 후에 기록된 작품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변문 정형구
의 잔재로 보이는 ‘∼處, 若爲’가 단 한 차례, 그것도 변문의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채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하면, <오자서변문>은 이미 공연의 특징에서 상당히 멀어진, 독서를
위한 작품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빅터 메이어는 <오자서변문>이 “변문보
다 문학적 색채가 훨씬 농후하여 마치 무슨 傳奇를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19)고 말했다. 이
미 오랜 동안의 윤색과정을 거쳐 구술적 측면보다는 문학적 측면이, 공연용보다는 독서용의
19) 빅터 메이어 저, 정광훈⋅전홍철⋅정병윤 역, 《당대변문》, 소명출판, 2012년, 90쪽.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69
측면이 훨씬 강한 작품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위와 같은 이유에 근거하여 <오자서변문>은
구술 현장의 언어가 아닌 일반 소설을 번역하듯이 정련된 평어체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리
라 생각된다. 참고로 <오자서변문>의 한 부분을 아래에 우리말로 옮긴다.
楚王太子長大未有妻房, 王問百官: “誰有女堪爲妃后? 朕聞: 國無東宮, 半國曠地;
東海流泉溢, 樹無枝, 半樹死. 太子爲半國之尊, 未有妻房, 卿等如何?” 大夫魏陵啟言
王曰: “臣聞秦穆公之女, 年登二八, 美麗過人: 眉如盡月, 頰似凝光; 眼似流星, 面如
花色; 髮長七尺, 鼻直顔方, 耳似璫珠, 手垂過膝, 拾指纖長. 願王出敕, 與太子平章.
儻若得稱聖情, 萬國和光善事.”
초왕의 태자가 장성하도록 아내가 없어 왕이 백관들에게 물었다. “누가 태자의
비로 삼을 만한 딸을 가졌소? 짐이 듣건대, 나라에 태자가 없으면 나라의 반이 허허
벌판이 되고 동해가 없으면 흐르는 샘물이 멋대로 넘치며 나무에 가지가 없으면 반
은 죽게 된다고 하오. 이렇듯 반국(半國)의 존귀함을 지닌 태자가 아직 아내가 없으
니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대부 위릉이 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진 목공
의 딸이 나이 열여섯에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하옵니다. 초승달 눈썹에 뺨은 밝은
빛이 서린 듯 하고, 눈은 유성과 같고 얼굴은 꽃빛 같으며, 머리카락은 일곱 자나
길고 코는 곧고 이마는 반듯하며, 귀는 늘어뜨린 진주 같고 무릎까지 닿는 손은 열
손가락 모두 가늘고 깁니다. 폐하께서는 칙령을 내리시어 태자와의 혼사를 논하십
시오. 성정에 흡족하다면 만국이 함께 누릴 경사입니다.”
반면 위의 표에서 구술성이 비교적 명백하게 그리고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대표적
작품으로는 <한금호화본>을 들 수 있다. 박완호의 논문에서 <한금호화본>은 편폭이 그보다
훨씬 긴 <노산원공화>와 비슷한 수준의 인용 횟수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富世平 논문의 구
술 패턴 조사에서도 <한금호화본>은 여타의 작품들보다 훨씬 인용 횟수가 많다. 그만큼 텍
스트 내에 구술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20) 따라서 이런 작품은 단순히 평어체
로 번역하기보다는 원문의 구술적 특징을 잘 살려줄 수 있는 번역이 적합하고, 한국어에서
20) <한금호화본>은 흔히 영웅고사로 분류되나, 이 작품은 이야기전체에 불교적 색채가 강한 불교고
사로도 볼 수 있다. 불교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불교 고사로 만들거나 이야기에 불교적
색채를 집어넣는 방법은 <동영고사>, <공자항탁상문서> 같은 당대 민간서사에서 자주 보인다.
즉 <한금호화본>은 민간서사의 창작 방식이 충실히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작품
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구술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불교고사로서의 <한금호화본>에 대해
서는, 鄭廣薰, <敦煌本《韩擒虎话本》的写卷制作方式和文学特点>, 《艺术百家》, 2009年 第2期 참
고.
70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는 그것을 판소리사설체 혹은 좀 더 구어적인 이야기체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는 <한금호화본>의 일부를 한 번은 일반적인 서술체로, 한 번은 구어적인 면을 가미한 이야
기체로 번역해보았다.
法華和尙見龍王去後, 直到隨州衙門. 門司入報, “外頭有一僧, 善有妙術, 口稱醫
療, 不感(敢)不報.” 使君聞語, 遂命和尙昇廳而坐, 發言相問. “是某乙悴(猝)患生腦疼,
檢盡藥方, 醫療不得. 知道和尙現有妙術, 若也得敎, 必不相負.” 法華和尙聞語, 逐袖
內取出合子, 已(以)龍仙膏往頂門便塗. 說此膏未到頂門, 一事也無, 才到腦蓋骨上,
一似佛手捻却. 使君得敎, 頂謁再三, 啓言和尙: “雖自官家明有宣頭, 不得隱藏師僧,
且在某乙衙府迴避, 乞(豈)不好事.” 法華和尙聞語, 億(憶)得龍王委囑, 不感(敢)久住.
啓言使君: “限百日之內, 合有天分. 若有使臣詔來, 進一日亡, 退一日傷. 若也已後爲
君, 事須再興佛法, 卽是貧道願足. 且辭使君歸山去也.” 使君見和尙去後, 心內由(猶)
自有疑, 遂書壁爲記.
법화화상은 용왕들이 떠난 후 곧바로 수주의 관아로 갔다. 문지기가 들어가 아뢰었다 “밖
에 승려가 한 명 와 있는데 묘술을 잘 부린다 합니다. 치료를 해 주겠다 하기에 감히 아뢰옵
니다.” 사군은 이 말을 듣고 화상에게 대청으로 올라와 앉도록 하고는 물었다. “내가 갑자기
두통이 생겨 갖은 약과 처방을 다 써봤으나 도무지 낫지를 않소. 화상께서 묘술을 잘 쓴다
하니 만약 효과를 보게 해 주면 그 은혜는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다.” 법화화상은 이 말을
듣고 소매에서 갑을 꺼내어 용선고(龍仙膏)를 정수리에 발랐다. 이 고약이 정수리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더니만 두개골 위에 닿자마자 마치 부처의 손이 비트는 것 같았다.
사군은 효과를 보자 여러 번 크게 절을 올리고서 화상에게 말하였다. “천자의 뜻이 확고하여
사승(師僧)을 숨겨둘 수는 없을 터이나 그래도 우리 관아에 피해 있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
까?” 법화화상은 이 말을 듣고 용왕의 당부가 생각나 더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사군에게 이렇
게 말하였다. “앞으로 백일 내에 천명이 있을 것입니다. 한 사신이 황제의 조명을 가지고
올 터이니 하루라도 먼저 가면 죽고 하루라도 늦게 가면 다치게 됩니다. 이후에 임금이 되시
거든 꼭 불법을 다시 일으켜 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빈승은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 사군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산으로 돌아가렵니다.” 사군은 화상이 떠나고도 의심스러운
생각이 가시지 않아 벽에 글로 써서 기억했다.
용왕들 다 떠나고 법화화상 곧장 수주 관아로 가니, 문지기 들어가 아뢰기를 “밖
에 와 있는 승려 하나가 묘술을 잘 부린다 하고 병까지 낫게 해주겠다 하여 감히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71
아뢰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군이 화상을 대청으로 올려 앉히고는 묻되 “내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갖은 약에 온갖 처방을 써 봐도 도무지 낫지를 않소.
화상께서 묘술을 잘 쓴다 하니 차도가 있으면 그 은혜 절대 잊지 않으리다.” 법화화
상 이 말을 듣고 소매에서 갑을 꺼내 용선고(龍仙膏)를 정수리에 발라주니, 정수리
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던 고약이 두개골에 닿자마자 부처님 손이 비트는
것 같더라. 사군은 차도를 보고 여러 번 큰절을 올리고는 화상에게 이르기를, “천자
의 뜻이 확고하여 사승을 숨겨둘 수는 없을 터이나 그래도 우리 관아에 피해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이 말 들은 법화화상이 용왕의 당부에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생
각하고 사군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백일 내에 천명이 있을 테고, 한 사신이 황제의
조명을 가지고 올 터이니, 하루 먼저 가면 죽고 하루 늦게 가도 다칩니다. 훗날 임금
이 되시거든 불법을 꼭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빈승은 더 바랄 것이 없나이다. 이제
사군께 하직인사 올리고 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였다. 사군은 화상이 떠나고도
의심이 가시지 않아 벽에 글을 써서 기억해두었다.
<한금호화본>의 초반, 수 문제 양견이 황제가 되기 위한 천명을 받는 부분으로 서사가 다
소 거칠면서도 긴장감 있게 이어지고 있다. 앞의 번역보다는 뒤의 번역이 조금 더 긴박하게
느껴지며, 실제 한국어 번역문의 길이도 뒤의 번역이 약간 짧아졌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전
체를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한국어 번역문의 편폭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는 이야기 서술
자를 공연의 실제 구연자로 상정하고 불필요한 접속사나 조사를 생략하여 구연자가 눈앞에
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번역한 것이다. 또한 위의 번역문에서 두 문장 이상이
연결되는 복문을 아래 번역문에서는 최대한 단문으로 줄여 좀 더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시켰
다. 구술성의 요소가 농후하게 나타는 <한금호화본>의 경우는 두 번째처럼 번역하는 것이
작품의 원래 분위기와 번역의 어투를 함께 고려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3.2 강의 중심의 강경문: 경어체, 강의체
변문에서 강경문은 매우 특수하다. 강경문을 읽으면 어떤 이야기나 문학작품을 읽고 있다
기보다는 강경 법회의 현장에 있거나 법사의 강의를 그대로 옮겨놓은 스크립트를 보고 있다
는 느낌을 자연스레 받게 된다. 작품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강경문의 기본적인 목적은 제
목 그대로 강의이다. 경전을 강의하는 글인 것이다. 講과 唱을 섞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다른
변문들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한국어 번역 어투도 강의 형식에 맞는
특수한 어투가 되어야 할 것이며, 필자는 가장 적합한 어투를 경어체 혹은 강의체로 본다.
72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강경문과 변문 형식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한다면 둘의 번역 어투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가지 형식이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
담하기 힘들며 학자마다 의견도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潘重規는 《大唐慈恩寺三藏法師
傳》 권9에 언급된 ‘報恩經變’이 강경문과 변문의 밀접한 관련성을 말해준다고 본다. 그러나
둘의 연관성에 대해 빅터 메이어는 철저히 부정한다. 그는 변문과 동일한 범주에 넣곤 하는
작품들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강경문이라고 보면서, 이는 경문의 해석일 뿐이므로 절
대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 ‘보은경변’에 대해서도 자체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것이 그림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강경문과 변문 사이의
관련성을 부정한다.21) 조명화는 돈황 사본과 관계되는 구술연행의 형식을 ‘講經’과 그 후신
이라 할 수 있는 ‘轉變’의 두 형식으로 나눈 후 돈황 사본을 다음의 7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1)사원의 강경을 기록한 사본 2)압좌문과 해좌문 3)강경 의식이 유지된 經變의 강설을 기록
한 사본 4)강경 의식과 유리된 전변을 기록한 사본 5)唱詞를 기록한 사본 6)‘說話’를 기록한
사본 7)小品의 강창을 기록한 사본.22) 이 분류에 따르면 강경문과 변문의 영향 관계는 직접
적이고 분명하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강경문이 변문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하더라도 변문의 성행이
강경문에 타격을 주진 않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둘은 영향 관계는 있되 실제로는 독립적으
로 발전하고 유행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자 당대에도 크게 유행한
<王昭君變文>은 변문의 형식적 특징이 가장 잘 갖추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운문과 산문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고, 운문 앞 공식구가 규칙적으로 들어가 있으며, 특히 원문의 “上卷立鋪
畢, 此入下卷(상권에서 그림 세우는 건 다 끝났고 이제 하권으로 들어갑시다)”라는 일종의
삽입구가 그림을 썼다는 결정적 근거라는 점에서 대단히 전형적인 변문 작품이라 할 수 있
다. ‘변문’이라는 제목은 없지만, 만약 원본 두루마리의 머리 부분이 잘 보존되었다면 원래
제목에 ‘변’ 혹은 ‘변문’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왕소군변문>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품의 대략적 창작연대를 알려주는 기록이 전한다.
故知生有地, 死有處, 可惜明妃, 奄從風燭, 八百餘年, 墳今上[尙]在.
예부터 태어남에도 정해진 땅이 있고 죽음에도 정해진 곳이 있다 했지. 가련하구
나 명비여, 문득 바람 속 촛불이 된지 8백여 년에 지금도 그 무덤은 남아있다네.
21) 빅터 메이어 저, 정광훈⋅전홍철⋅정병윤 역, 《당대변문》, 소명출판, 2012년, 312쪽 이하.
22) 각 범주에 대한 해설과 해당 작품에 대해서는, 조명화, 《불교와 돈황의 강창문학》, 2003년, 이
회문화사, 266쪽 이하 참고.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73
왕소군이 변방으로 떠난 때가 漢 元帝 시대이므로 그로부터 800여년이면 대략 당대 후기,
연대로 따지면 서기 800년 전후가 되겠다. 이 기록은 연행자가 <왕소군변문>을 이야기하던
당시의 시점에서 고대의 유명한 이야기를 공연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아울
러 전형적인 변문 형식의 작품에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은 변문 형식의
민간문학이나 공연이 최소한 어느 시대까지 유행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강경문에도 연대가 명확히 기재된 작품이 있다. 제목에 ‘講經文’이라고 명시된 유
일한 작품인 <長興四年中興殿應聖節講經文>(이하 <응성절강경문>으로 약칭)이 그것이다.
이 제목은 사본 두루마리에 기재된 그대로이다. 여기서 ‘長興’은 後唐 明宗 李嗣源의 연호로
‘長興四年’은 932년이 된다. <왕소군변문>과 <응성절강경문>의 창작 연대를 고려하면 변문
이 형식적으로 완벽해진 상태에서 한창 유행한 이후에도 강경문은 계속 창작되고 연행되었
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강경문은 변문에 의해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고, 변문은 변문대로
나름의 형식을 발전시켜가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강경문과 변문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존 강경문 중 일부
는 변문의 형식이 농후하여 변문에 넣을 수 있지만, 그밖에 서사성이 확실히 떨어지고 전체
가 강의 위주인 강경문은 변문의 범주에서 빼야할 것이다.
이에 근거하면 번역 시에도 작품의 목적과 형식에 따라 어투를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작품 자체의 형식과 특징, 창작 배경 등을 고려해서 그에 맞는 어투를 선택하면 된다. 강경
문의 경우는,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강의인 만큼 한국어의 특성상 적합한 번역 언어는 역시
경어체가 될 것이다. 특히 <응성절강경문>의 경우에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이 황제의
탄신일에 궁궐에서 황제와 황후들을 축하하며 강경을 한 내용이며, 실제로 본문 안에는 황
후, 숙비의 기원문도 등장한다. 강경이라는 문체뿐 아니라 강경의 장소, 배경, 상황 등을 고
려하면, 이 강경문의 경우 평어체 번역은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어는 한국어만큼 경어체가
발달되어 있지 않으므로 한국어 번역에서는 작품의 의도, 분위기, 미묘한 어휘의 차이 등에
근거하여 경어체와 평어체를 구분해야 한다. 이는 한국어가 갖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며,
번역자에게는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강경이 행해지던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대부
분의 강경문은 경어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경어체로 번역을 해서 충분히 어울리면, 그만
큼 청자와 화자가 가까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강의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이야기일 때는 평어체가 적합할 것이다. 강의는 귀에 심어주는 것이고 이야기는 들려주는
것인 만큼 둘의 번역 어투는 분명 달라야 한다. <응성절강경문>과 <父母恩重經講經文》(一)
의 예를 들어보자.
74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將釋此經, 大科三段: 弟一, 序分; 弟二, 正宗; 弟三, 流通. 三分之中, 且講序分.
序分之中, 依<佛地論>, 科爲五種成就. ‘如是我聞’, 信成就; ‘一時’兩字, 時成就; ‘佛’之
一字, 敎主成就; ‘住王舍城鷲峰山中’, 處所成就; ‘與大比丘衆千八百人俱’, 聽衆成就.
且弟一‘如是我聞’信成就者. 如來說法, 分付信心, 或談億劫之因緣, 動說河沙之功行.
淺根難湊, 深信方明. 聞半偈而捐捨全身, 求一言而祇供千載. 若生信敬, 方肯受持,
信爲入法之初機, 智爲究竟之玄術, 亦如我皇帝翹心眞境, 志信空門, 修持三世之果因,
敬重十方之佛法. 若不然者, 曷能得每逢降誕, 別啓御筵. 玉階許坐於師僧, 金殿高懸
於䆸像. 躬瞻相好, 自爇香煙. 都由一片之信心堅, 方得半朝聞法坐
이 경문을 풀이하자면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서분(序分), 두 번
째는 정종(正宗), 세 번째는 유통(流通)입니다. 세 단락 중 서분을 강론해 보겠습니
다. 서분에서는 <불지론(佛地論)>에 의거하여 다섯 가지 성취(成就)를 나누었습니
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함은 신성취(信成就)요, ‘일시(一時)’ 두 글자는 시성취
(時成就)요, ‘불(佛)’ 한 글자는 교주성취(敎主成就)요, ‘왕사성(王舍城) 취봉산(鷲
峰山)에서 머무셨다’ 함은 처소성취(處所成就)요, ‘대비구(大比丘)의 무리 천 팔백
인과 함께 했다’ 함은 청중성취(聽衆成就)입니다. 첫 번째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는 신성취입니다. 여래의 설법에서는 신심(信心)을 나누어주며 억겁의 인연을 말하
기도 하고 항하사(恒河沙)의 공적과 덕행을 늘 설하곤 하지요. 얕은 뿌리는 물을
모으기 힘드나 믿음이 깊으면 곧 밝아집니다. 반게(半偈)를 듣고자 온몸을 버리고,
한 마디 말씀을 구하려 천 년 동안 바치기만 한답니다. 이리하여 믿음과 공경이 생
기면 이를 받아 지키려 하니, 믿음은 불법에 입문하는 첫 기틀이요, 지혜는 진리를
궁구하는 오묘한 법술이라, 또한 우리 황제폐하 같은 분은 진경(眞境)을 숭상하고
공문(空門)을 정성으로 믿으며, 삼세(三世)의 인과를 닦아 지키고 시방(十方)의 불
법을 무겁게 공경하십니다. 만약 그러지 않으셨다면 어찌 능히 매번 탄신일마다 따
로 어연(御筵)을 열 수 있겠습니까. 옥계에서 사승(師僧)에게 자리를 허락하고 금
전(金殿)에는 부처의 화상을 높이 걸어 몸소 상호(相好)를 우러러보시고 스스로 향
연(香煙)을 사르시니, 모두가 한 조각 신심(信心)의 견고함으로 반나절의 법좌(法
座)를 들을 수 있답니다.(<응성절강경문>)
經: “月滿生時, 受諸痛苦, 須臾好惡, 只恐无常, 如煞猪羊, 血流洒地.” 此唱經文,
明産相貌也. 孩子未降, 母憂性命逡巡; 及至生來, 血流洒地. 渾家大小, 各自忙然, 只
怕身命參差, 急手看其好惡. 經: 月滿生時, 受諸痛苦至徹.
경: “달이 차서 아기를 낳을 때는 온갖 고통을 받으며, 잠깐 사이에 좋았다가 싫
어져 오로지 덧없이 죽을까만 걱정되며, 돼지와 양을 죽인 듯 피가 흘러 땅에 뿌려
지느니라.” 이 경문은 아이를 낳을 때의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아이가 아직 내려오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75
지 않으면 어머니는 숨이 금방 다할까 두려워하다가 아이가 나오면 피가 흘러 땅에
흩뿌려집니다. 대소를 막론하고 집안사람들 모두가 각기 바빠지며, 목숨이 잘못될
까 두려워 급히 좋은지 나쁜지를 살피지요.(<부모은중경강경문>(一))
위 내용들을 평서문으로 번역해보면 금방 어색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응성절강경문>에
서 밑줄 친 “三分之中, 且講序分”이나 “亦如我皇帝翹心眞境, 志信空門, 修持三世之果因, 敬
重十方之佛法. 若不然者” 부분은 특히 그렇다. 글의 목적 자체가 이야기의 서술이 아닌 강의
이며,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에서도 이야기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위의 표를 보면 강경문의
구술적 특성이 다른 이야기 작품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미약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강경문이
구술로 연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성격 자체가 이야기의 연행이 아니기 때
문인 것으로 보인다. 위의 표에서 불교 고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정병윤의 논문을 보면, <응
성절강경문>은 전혀 인용되지 않았고, 역시 강의의 성격이 농후한 <금강반야바라말경>은 1
회만 언급되어 있다. 인용횟수가 5회 이상인 작품 중에 <유마힐경강경문>과 <부모은중경강
경문>은 기본적으로는 강의이나 앞의 두 강경문보다는 이야기성이 더 있는 편이다. 그러나
두 작품의 긴 편폭을 고려하면 이 역시 구술성이 농후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태자성도경>과 <항마변문>은 그 자체가 이야기작품으로서 앞에서 소개한 강경문들과는 상
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항마변문>은 변문의 전형적 형식이 가장 잘 반영된 불교 고사이
며, 실제 원본 두루마리에도 ‘변문’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이 정병윤 논문에서 논
의한 다섯 개 구술성 항목 중 네 항목에 인용되어 있는 점 또한 두 작품의 강한 이야기성을
대변해준다.
다음으로 陸永峰과 富世平의 분석을 보면, 陸永峰은 아예 강경문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富世平의 논문에서도 강경문이 인용된 경우는 아주 적다. 陸永峰의 책은 전형적인 변문 형
식을 위주로 설명하여 강경문 자체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 그러나 富世平은 강경문을
포함한 돈황 변문 전체를 고르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구술적 특징에 대한 富世平
의 분석에서 강경문의 인용횟수가 적다는 것은 그것이 구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구술
이야기작품들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필자는 이야기보
다는 아닌 강의 위주의 구술이라고 보고, 강경문의 어투가 다른 변문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
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76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4. 나오는 말: 번역 도구로서의 돈황사본 원본
이상으로 번역 어투를 중심으로 변문의 올바른 번역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래에서는
변문의 번역 시 돈황사본의 원본을 참고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며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
다. 이는 작품 자체로 돌아가자는 본 논문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당대 돈황 사본은
번역이 무척 까다롭다. 이체자, 벽자, 빠진 글자, 깨진 글자도 많고 사본의 일부만 남아 있어
내용 파악이 힘든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당시에 민간에서만 쓰이던 표현과 동음이의어, 가
차자 등은 전문 주석서가 없이는 번역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러나 돈황 변문의 번역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한 가지는 바로 원래 그대로 모습의 사본이 지금까지 전해질 뿐 아니라
그중 많은 사본들을 누구나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돈황
사본들을 ‘국제둔황프로젝트(IDP)’ 홈페이지에서 검색 후 다운받을 수 있다.23) 더구나 이
사본들은 연구용으로 쓸 수 있을 만큼 해상도가 높다. 위에서 언급했던 <長興四年中興殿應
聖節講經文> 실제 사본의 첫 부분을 보면 ‘念佛’이라는 작은 글자들이 쓰여 있다. 이 부분에
서 법사와 청중이 모두 염불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도강이 창하는 ‘經’
이라는 글자도 다른 글자보다는 작게 쓰여 있다. 그리고 황제의 생일에 행해진 강경임을 보
여주는 ‘皇帝萬歲’ 글자 다음에는 12개의 점이 찍혀 있다. 이는 뭔가를 생략한 표시임에 분
명하다. 項楚는 이에 대해 “황제를 찬양하는 문자일 것이며, 필사자가 상투적인 찬양어라
따로 쓰지 않고 작은 점으로 생략어를 표시했을 것이다”24)라고 했다. 黃征과 張涌泉이 편찬
한 《敦煌變文校注》 원문을 보면 ‘皇帝萬歲’ 앞의 ‘經’ 다음에도 6개의 점을 찍어두었다.25) 여
기에도 글자가 생략되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항초 역시 다음에 나올 경문의 제목이
생략되었다고 보았다.26) 그러나 실제 사본을 보면 ‘經’ 다음에는 생략부호가 없다. 다시 말
해 원래 이 부분은 경문의 중국어 제목이 들어가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경문을 적지 않
은 이유에 대해 위의 의견 외에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도강이 창하는 경문은
중국어가 아니었다는 것, 즉 강경문의 필사자는 도강이 창하는 불경 원어 그대로의 經題를
23) 현재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IDP 웹페이지는 한국어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고려대학교 민족
문화연구원 IDP SEOUL은 2010년부터 IDP 한국어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다
(http://idp.korea.ac.kr/).
24) 項楚, 《敦煌變文選注》(下), 中華書局, 2006, 1120쪽 주2.
25) 黃征⋅張涌泉 校注, 《敦煌變文校注》, 中華書局, 1997年, 617쪽.
26) 項楚, 같은 책, 1120쪽 주1.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77
알아듣지 못하여 중국어로 옮기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응성절강경문> 앞부분을
보면, 도강이 경제를 창한 후 강경법사가 “適來都講所唱經題, 云<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序
品弟一>者”(방금 도강이 창한 경제는 ∼이라 합니다)라고 설명을 해준다. 항초가 근거한 바
로 그 부분이다. 이는 강경법사가 도강이 창한 경제를 그대로 반복했다기보다는 친절히 중
국어로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에서 도강이 창한 부분은 청중도 알아듣지 못하고
필사자 역시 알아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S.6551 <佛說阿彌陀經講經文>(의제)
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上來所唱阿彌陀經, 唐言無量壽, 卽是無量壽佛國中, 行萬行, 六波羅密, 及至果位,
遂得壽命無量, 卽是從果爲名.
앞서 창한 아미타경은 당나라 말로 무량수이다. 즉 무량수불국토에서 만 가지 행
(行)과 육바라밀을 행하여 과위(果位)에 오르고 마침내 무한한 수명을 얻게 되어
그 과(果)를 따라 무량수불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上來所唱’은 앞서 소개한 원문의 ‘適來都講所唱’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강경법사는 앞의
예처럼 도강이 창한 바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唐代의 언어로 다시 풀어주었다. <응성
절강경문>에서 경문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 전에 작은 글씨로 ‘經’이라 쓴 이유는, 이 부분이
강경법사가 말한 바가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도강이 원어로 된 창을 먼저 하고 강경
법사가 그것을 풀이하되, 필사자는 강경법사의 풀이만 옮겨 적고 도강이 창한 경문은 ‘經’이
라는 글자로 작게 표시한 것이다. 이는 번역의 과정에서 원문 사본을 확인하던 중 생각하게
된 하나의 가정이다. 이 사례가 다른 사본에도 꼭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순 없다. 이건
당시 필사자의 습관이었을 수도 있고 같이 공동으로 작업했던 사람들의 내부 편집규정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미 텍스트로 옮겨진 기존의 변문집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 이런 특수 경우
에 대한 해석과 번역이 잘못되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위의 사례 외에 지문으로 보이는
‘側’, ‘吟’ 등의 글자와 ‘佛子’, ‘念菩薩佛子’ 등 본문과는 다소 다른 형식으로 적혀 있는 말들에
대해서도 원문 사본을 확인하고 그것의 의미와 기능을 고찰한 후 적당한 우리말로 옮겨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변문의 정의, 특징 그에 따른 범주화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선명한 두루마리 원본이 인터넷을 통해 점차 공개되
면서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글자나 편집 방식, 문헌학적 정보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
78 / 中國小說論叢 (第 42 輯)
다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 어울리는 변화된 연구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번역 역시 마찬
가지다. 변문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만큼 번역자는 원본 사본을 더욱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석을 통한 연구와 해석뿐 아니라 변문을 하나의 온전한 작품으로 보고 원본 사본이
주는 정보들을 해당 작품의 번역에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參考文獻>
[宋] 李昉 編, 《太平廣記》, 北京: 中華書局, 1961年.
王重民⋅王慶菽 外 主編, 《敦煌變文集》,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57年.
黃征⋅張涌泉 校注, 《敦煌變文校注》, 北京: 中華書局, 1997年.
鄭炳潤, 《敦煌講唱文學中佛敎故事類作品之硏究》, 南京大學 博士學位論文, 1998年 6月.
陸永峰, 《敦煌變文硏究》, 巴蜀書社, 2000年 5月.
富世平, 《敦煌變文的口頭傳統硏究》, 四川大學 博士學位論文, 2005年 3月.
項楚, 《敦煌變文選注》, 北京: 中華書局, 2006年.
鄭廣薰, <敦煌本《韩擒虎话本》的写卷制作方式和文学特点>, 《艺术百家》, 2009年 第2期.
方廣錩, 《敦煌遺書散論》,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10年.
朴完鎬, 《敦煌 話本小說 硏究》, 전남대 박사학위논문, 1996년 8월.
정광훈, 《敦煌 變文의 口演特徵 硏究》, 한국외대 석사논문, 2001년 2월.
조명화, 《불교와 돈황의 강창문학》, 서울: 이회문화사, 2003년.
권오숙, <희곡 번역 시 알맞은 어투 선정의 중요성―와일드의 <살로메> 번역을 중심으로
한 고찰>, 《통역과 번역》, 12(1), 2010년.
전홍철,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서울: 소명출판, 2011년.
빅터 메이어(Victor H. Mair) 저, 정광훈⋅전홍철⋅정병윤 역, 《당대변문》, 서울: 소명출
판, 2012년.
Arthur Waley, Ballads and Stories from Tun-huang: An Anthology, George Allen
and Unwin Ltd, London, 1960; New York, Macmillan, 1960.
Eugene Eoyang, Word of Mouth: Oral Storytelling in the Pien-wen, PhD
dissertation, Indiana University, 1971.
Victor H. Mair, Tun-huang Popular Narra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Crossland-Guo, Shuyun, The oral tradition of bianwen: Its features and influence
敦煌 變文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고찰 / 79
on Chinese narrative literature,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Hawai'i,
1996.
‘국제둔황프로젝트(International Dunhuang Project)’ 웹페이지 제공 돈황사본 자료:
idp.korea.ac.kr
우석대 전홍철 교수(유통통상학부·사진)가 중국 고전 소설과 희곡의 발생에 끼친 불교의 영향에 대해 논한 「당대 변문(T'ang Transformation Texts, 唐代 變文)」(Victor H. Mair 저, 정광훈·전홍철·정병윤 공역, 소명출판사)을 동료 중국학자 2인과 함께 번역 출간했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학자인 펜실베니아대학 빅터 메어(Victor H. Mair) 교수의 하버드대학 박사논문을 번역한 이 책은, 중국 왕조 중 국제 문화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당(唐)나라 시대 동서양 문명 교류의 십자로였던 돈황에서 발견된 ‘변문(變文)’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전 교수는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돈황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남경대학, 산동사범대학 특별 초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남경사범대학 겸직교수를 맡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동아시아적 소설론의 모색」, 「중국 민간문학의 문학사적 자리」, 「돈황 강창문학의 이해」, 「돈황과 동아시아문학」, 「중국통을 향해 걷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