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업계 “루나-테라 사라질 것”… 정부, 디지털자산법 가속
글로벌 거래소들 “상장 폐지” 속출… 국내 최대 업비트 “20일 거래중단”
빗썸-고팍스도 “거래 지원 종료”
가상자산시장 ‘뇌관’ 우려 커지자 금융당국, 긴급 동향 점검 나서
“투자자 보호 법안 연내 마련”
“투자금 1억 원이 한순간에 4만 원이 됐다. 상장 폐지 직전 극적인 반등을 바랄 뿐이다”, “이달 초만 해도 10만 원대이던 게 0.1원에 거래되다니 코인 시장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15일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김치코인(한국산 가상자산) ‘루나’에 투자했다가 휴지 조각이 됐다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한국인 엔지니어가 개발한 가상자산 루나와 자매 코인 ‘테라’의 폭락 사태로 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전 세계 코인 거래소들이 잇달아 상장 폐지에 나섰다. 국내 금융당국도 긴급 점검에 나서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마련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1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7일부터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법정 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코인) 테라에 대한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 글로벌 대형 거래소인 OKX는 이미 테라를 상장 폐지하고 테라와 연계된 루나, 앵커, 미러 등도 퇴출했다. 싱가포르 거래소 크립토닷컴 또한 루나, 앵커, 미러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비트코인이 미국 금리인상과 루나코인 사태가 겹치며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12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2.05.12. 뉴시스
국내 코인 거래소들도 잇달아 루나와 테라를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는 20일 낮 12시부터 루나 거래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업비트는 “해외 거래소에서 루나에 대한 거래 지원이 종료되는 만큼 급격한 시세 변동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빗썸은 27일부터, 고팍스는 16일부터 루나, 테라에 대한 거래 지원을 종료하기로 했다.
15일 오후 3시 현재 업비트에서 루나는 0.8원에 거래됐다. 이달 6일까지만 해도 10만 원대에서 거래됐지만 일주일 만에 1원도 안 되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1달러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테라는 85% 추락한 0.14달러에 거래됐다.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13일 루나와 테라의 거래를 중단했다가 하루 만에 재개하자 가격이 잠깐 급반등하기도 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들 코인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한 거래소 관계자는 “루나와 테라의 거래가 재개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루나와 테라의 폭락이 가상자산 시장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긴급 동향 점검에 나섰다. 다만 현재로선 금융당국이 루나, 테라를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 등에 자료를 요구하거나 감독할 법적 권한이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코인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할 방침”이라고 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인 시장에 대한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이 커진 만큼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번 사태가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주요국 중앙은행 및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움직임을 고려해 올해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내용의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자현 기자
‘김치 코인’의 몰락
‘김치 코인’으로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던 자매 코인, 테라와 루나 거래 가격이 폭락해 상장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 루나는 일주일새 99.99%, 테라는 80% 넘게 급락했다. 가상화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 재산을 잃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이어져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 코인을 발행한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30) 자택을 찾아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났던 남성은 20억 원을 날렸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테라는 코인당 가치가 1달러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의 한 종류다. 1테라가 1달러보다 싸지면 자매 코인인 루나를 팔아 테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반대일 땐 테라를 팔고 루나를 사들인다. 이번에도 테라 가격이 떨어지자 루나를 팔고 테라를 사들였지만 매물이 쏟아지면서 가격 조정에 실패했다. 이에 루나를 대규모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하지만 신뢰를 잃은 투자자들이 루나 투매에 나서면서 테라도 급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져들었다.
▷업계에선 예전부터 다단계 사기 수법인 ‘폰지 사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다른 스테이블코인들은 준비 자산으로 달러나 금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테라와 루나는 실물자산 담보 없이 ‘알고리즘 방식’으로 코인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상승장에선 문제가 없지만 이번처럼 하락장에선 대규모 인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CNN은 이번 사건을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견줬다.
▷테라와 루나를 만든 권 대표는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렸다. 국내 외국어고를 나와 미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8년 회사를 설립해 가상화폐 거물이 됐다. 하지만 이제 피 몇 방울로 온갖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했던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스와 동급에 올랐다. 그는 코인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바퀴벌레”라는 식으로 대응하곤 했다. 작년 7월 영국 경제학자가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폰지 사기 의혹에도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이 50조 원에 달해 시총 45조 원인 네이버를 능가했다. 테라 시총도 23조 원을 웃돌았다. 흔히 가상화폐를 ‘디지털 금’에 비유하는 이도 많지만, 이번 사태는 가상화폐와 금은 변동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가상화폐 시장의 규제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어떤 투자든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 새길 때다.
배극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