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찬송 11편과 12편 사이
김항석 집사
오후 예배 시간에 종교개혁사를 공부하며,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을 배웠다. 대학살 때 시편찬송 11편을 작곡한 클로드 구디멜도 순교를 했다(시편찬송에는 1594년 별세로 나오지만). 이전에 '삶의 향기'에 구디멜에 대해 쓴적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위그노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프랑스 브장송 출신이며 리옹에서 순교했다. 구디 멜은 새로운 시편찬송 도입과 그 연습을 이끌었으며, 그의 작품은 주로 한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파리대학에서 수학하며 샹송을 작곡/편곡하고 악보를 출판했다.
1557년 메스로 이사한 후 위그노 기독교인이 되어 시편찬송을 작곡/출판하며 제네바 시편찬송 출판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라틴어 중심 찬송에서 불어와 현지 언어로 찬송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 때 리옹에서 순교하며,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프랑스와 그리스, 라틴어권 문학과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믿음이 담긴 노래와 작곡 형식은 이후 개신교 찬송에 큰 영향을 줬다…”
구디멜의 순교 이후, 교회 음악에 큰 어려움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 계획은 우리 상상을 넘어선다. 하나님은 1598년 시편 12편을 작곡한 요한 크루거를 보내주셨다. 요한 크루거는 마틴 루터 이후 세기에 와서 개혁자들이 세운 기반 위에 더 구축하며, 찬송곡을 작곡하고 찬송가집을 개발하며 교회에서 공동체 찬양을 촉진시키는 음악 지침서를 출판함으로써 공동체 찬양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요한 크루거의 작품 "Praxis Pietatis Melica"는 이러한 전통의 중요한 일부로, 17세기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찬송과 멜로디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널리 부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배 때 회중이 함께 찬송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요한 크루거의 음악적 기여는 공동체 찬양의 전통을 강화시키고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찬송가집 "Praxis Pietatis Melica"는 현재 1600년대의 가장 중심적인 교회 합창책으로 인식되며, 가장 많이 재인쇄된 찬송가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찬송가집에는 '예수, 나의 기쁨', '모두 다 감사하라', '사랑하는 예수, 무엇을 했나' 등의 찬송이 포함되어 있다. "Praxis Pietatis Melica"의 제목은 " 기독교 노래와 위로의 노래를 통한 경건의 실천"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