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42]아름다운 사람(2)-한문漢文국역학자 이강욱
어느 사람을 칭할 때 ‘아름답다’는 수식어는 쉽게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제 시각장애인 송경태 박사를 ‘아름다운 사람’이라 소개한 까닭은, 그가 20대 초반 두 눈을 잃고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인공여서가 아니고, 세계 4대 극한마라톤을 완주해서만도 아니다. 2001- 2004년 문자文字를 음성音聲으로 변환하는 ‘보이스 프로그램 기술’을 개발하고, 국내 최초로 음성인터넷도서관을 개발한 특허-저작권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템인데도 미련없이 사회에 무료로 환원시켰다는 데 있다. 그는 그 공로로 행자부로부터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아무튼, 어제 졸문을 쓰다 문득 떠오른, 지금 소개하는 <한문국역학자 이강욱> 역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다. 이강욱(64) 역시 20대초 부산의 전자제품공장에서 일하다 동료 실수로 유압프레스에 두 팔이(거의 팔꿈치까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후 닥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다. 송박사 역시 젊어서는 자살을 수도 없이 시도했다지만, 이강욱 역시 그런 고비와 유혹이 무릇 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갈고리형 의수義手에 붓을 끼워 서예연습을 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독학사獨學士 1호로 대학 국문과도 졸업했다. 그는 머리와 입, 발을 이용해 평생을 투자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초지일관. 전주의 유명한 훈장선생님으로부터 한자와 한문을 제대로 배우고, 서당을 열기도 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성균관 한림원 4년과정을 마치며 사서오경 공부에 몰입했다.
그렇게 한문학자, 한문국역학자가 되어 국사편찬위와 한국고전번역원 등에서 전문위원 등으로 활약했으며, 조선조 정사正史인 『일성록日省錄』 번역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고전번역원에서 처음 만난 그와 악수를 할 때 의수의 ‘찬 느낌’이 섬뜩하게 여겨졌으나, 그의 성품을 겪어보면서 반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그의 고향도 내 고향의 지근지처(임실 오수 주천리)여서 더욱 반가웠다. 40대초 공부하는 과정에서 멋진 아주머니도 만나 송박사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결혼을 했다. 아주머니 역시 한문에 조예가 아주 깊었기에 같은 길을 걷는 금실부부가 되었다. 너무나 겸손해 인터뷰를 거듭 거절하는 데도 ‘고전번역’을 대중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응해달라는 나의 요청을 결국은 받아줘, 2015년 1월 17일 동아일보 한 면 전체에 대문짝만하게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로 그의 휴먼스토리가 처음으로 실리기도 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117/69132927/1
신체적 장애(두 팔 의수)는 약간 불편할 뿐, 그와 그의 부인에게는 하등 불행할 건덕지가 아니었다. 양평에 대궐같은 한옥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고, 막걸리도 빚으며, 지인들과 한문의 세계를 얘기하고 전수하기도 부족해 <한국승정원일기연구소>를 차려 제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도 정상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유롭기까지 그의 성공적인 재활훈련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문번역의 세계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전문지식이 총합되어야 하는 분야인데, 그처럼 빠른 속도로 번역을 하는 인재는 대한민국에서 손꼽을 정도인 것을. 그가 그런 심오한 내공을 쌓기까지 그가 기울인 각고刻苦의 노력은 얼마나 지난했을까. 그가 양손을 한껏 펼쳐 감싸안은 일성록 국역본이 34권이며, 그중 19권은 단독번역을 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그가 지난해 저술한 묵직한 책을 두 권 보내왔다. 『조선시대 문서 개론』상,하권. 나로선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인 줄만 알지만, 그만이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분야의 독보적인 저서. 그 가치는 말로 할 수 없는 일. 아아-, 그의 높은 성취成就에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또한 그가 운영하는 <승정원일기연구소>가 무한 성장, 활성화가 되어야 할 터인데, 도무지 ‘돈’이 안되는 이 뜻깊은 연구소야말로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한 기관인 것을. 그의 전문지식과 열정을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한문국역학자의 전도前途가 그의 건강과 함께 양양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