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작은 기쁨
정 상 주
한 자리 (잠실)에서 35년간을 다람쥐 체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거의 비슷한 진료업무를
해오다가 이제 쉴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큰 아쉬움없이 하든 병원을 마무리하고 은퇴
를 한것이 며칠전 같은데 다음 달 (11월)이면 벌써 1년이 되어온다.
은퇴 직후 얼마간은, 그간에 싸여있던 잡다한 '스트레스(Stress)'로 부터 벗어나는 것 같
고, 틀에 박힌 생활로 부터 해방감에 마치 자유인이 된것같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선배 은퇴자들에게 자문을 받아 '새로운 삶'의 적응법(?)을 배워 두달간을 열심히 실행
(예술공연, 전시회, 박물관등 관람. 등산. 여행. 각종 모임 참여 등)해 보았으나, 성격 탓
인지 쉽지가 않더군요. 쉰다는 것도 팔자이고 기술입디다.
개업의로써 반평생의 오랜 기간 몸에 밴 생활이였기에, 한 두달이 지나갔는데도, 일정
시간이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방 구석에서 독서를 하거나 '컴퓨터'를 만지작거려
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답답해지며 무료함과 나태해 지드군요.
이렇게 3개월이 되든 지난 1월말에 조선일보사에서 "재능을 나눕시다"라는 '캠패인
(Campaign)' 기사를 보고 선뜻 '인터넷'으로 지원을 하였고, 그곳 관계자로부터 연결하
여준 곳이, 광진구에 있는 'N 공동체' 교회 '외국인 근로자 치과진료소'였다.
구정이 지난 2월 17일 직접 찾아가보니, 진료실이란 곳이 실내 넓이가 약 3평 정도에 온
통 먼지에 덥혀있고, 치료시설이라고는 1995년도 한림회사 제품인 구형 치과진료의자
(Unite & Chair) ' Grasia ' (그나마 Assembly는 거의 녹슬고 불량한 상태). 공기 압축기
(Air Compressure)는 공업용 (1/2 마력). 손잡이가 고장난 전기용 소독기 (Dry Clave)가
장비로서는 전부이며, 그외 약간의 소도구등이 있으나 워낙 노후되고 손상되어 사용하
기에는 너무나 불안한 상태였다.
날이 풀리는 3월부터 진료 시작을 약속하고 그안에 2번을 찾아가서 관계자와 함께 청
소와 장비 수선등으로 어느 정도 정리를 하였다.
3월부터 두째, 넷째 일요일에 외국인 근로자와 그 가족의 진료를 시작하여 지금껏 계속
하고 있으며, 비워두었던 첫째, 세째주일도 다행스럽게 6월부터 개업중인 젊은 치과의
사 두분이 맡아 봉사를 하여주어서 어느정도 지속적인 진료가 이루워지고 있다.
환자는 국가별로 몽골환자가 제일 많고, 그외 필립핀, 이란, 파키스탄, 인도, 이락, 우즈
비키스탄, 조선족 등이며 진료범위는 우식치아 처치(아말감. 복합레진), 발치, 신경치료,
간단한 치석제거 기타 등이며, 보철치료는 현재까지 불가능한 상태이다.
진료시 나타나는 애로사항은 우선, 장비와 기자재의 태부족으로 진료내용의 만족스럽지
못함은 물론이며, 소독 불충분으로 인한 이차감염 문제, 발치후 처방 및 후처치문제,
X-선 없는 상태에서의 신경치료와 난발치(사랑니), 혹시 발생될 수 있는 의료사고시의
책임한계 문제 (해당 구 보건소에 보고는 되어있음) 등 이다.
그중 몽골 환자들은 거의 서툴지만 한국말을 조금씩 한다. 그런데 어른, 아이 모두가 거
의 반말이다. 그저 애교로 듣는다. 그래도 의사 소통을 할 수있으니 다행이다.
"아프세요?" " 아니" "안아파" . "누우세요" "여기?". "한국말 잘하시네요" "조금" "잘 몰
라" 등이다. 물론 형용사, 부사가 많은 한국어를 쉽게 읽히기는 어럽겠으나, 아예 경어
(敬語)는 배우지 않았나보다. 끝에 "~요" 한마디만 달면 될텐데...
그렇다고 나까지 반말로 물어 볼 수가 있겠나. 기타 나라 환자는 영어이나 이도 서툴다.
아예 말이 없드라도 눈짓. 손짓으로 충분이 치료가 가능하다.
여기서도 가끔은 기분 언잖은 수진태도의 환자가 있기 마련이다.
본인은 마치 당연히 치료받을 특권이라도 있는 듯한 불손한 태도,
" 이 기구 .(컵) 소독되었어요?"
"이것은 이렇게 하고 또 이것은 저렇게 하세요" 치료 지시형,
" 나 바쁜 사람이니 오늘 한꺼번에 모두 치료해주세요" 일방적인 과다요구형, 등 이다.
이럴 경우, 상당히 불쾌하나 대다수는 너무나 고마워하고 순종하는 자세들이다.
내 생각에 조금 아플것이라 하며 눈치보는데, 끝까지 잘 참아 주는 오히려 내가 고마운
환자, 자기의 치료순서를 어린아이에게 양보해 주는 등, 대부분이 착한 사람들이다.
올 여름 얼마나 더웠나. '에어콘(Air Coditioner)'은 물론 없고, 좁은 방 한구석에 서있는
옛날 금성 선풍기(자동회전 불가능) 한대가 억지로 돌아가고 있다.
시작 전부터 땀이 난다. 찜질방이다. 갈아입은 '까운'이 몸에 들러 붙을 정도다.
나, 진료보조자, 그리고 환자 모두가 땀 투성이다. 방금 진료가 끝난 진료의자의 등받이
에도 땀이 흥건히 젖어있다. 거기에다 계속되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공기압축기가 부
하(負荷)에 벅차 쉴 사이없이 낄낄대며 돌아가는 엄청난 소음 등이 짜증을 증가시키고
머리를 욱신거리게 만든다, 여기에다 환기가 않되는 좁은 진료실은 한 여름이라 퀴퀴한
냄새까지 보탠다. 요지음 서울시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4~50년전 영화 세트 장면 같다
마치 학생시절 '무의촌 진료 봉사' 때가 떠오른다. 요지음 찾기 어려운 이곳이라, 오히
려 더욱 매력을 갖게되나 보다.
잠시 쉴 사이도 없는 진료가 약 1시간 반 정도되면 몸이 그야말로 녹초가된다.
옆에서 돕고있는 치과위생사(역시조선일보 '재능 캠패인' 동참자)도 힘들고 덥기는 마찬
가지일텐데, 기구준비, 교환, 약재준비, 타액 ?g입(Suction)하랴, 조명등 조절하느라 나
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그 고운 얼굴 한번도 찡그리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요지음 젊은 사람같지 않고 참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커피' 한잔 마시며 15분간 잠시 쉬었다가 진료가 다시 계속된다. 약 3시간 동안에
평균 12 ~ 16명의 환자 진료로 일과가 마무리하게 된다.
녹초가된 몸은 천근 만근인데 기분은 이상스러히 너무 좋아진다. 마치 고된 종교의식을
치른 기분이며, 혼자만의 흐믓한 자위(自慰)를 한 기분이다, 은퇴 후 오래간만에 갖는 진
정한 기쁨이다 .
아마 훨신 더 좋은 환경에서의 그동안 긴 세월을, 나의 진료실에서 월등한 좋은 조건에
서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가며 느끼는 만족에 비할 수 없는, 은퇴 후에 스스로 찾아 선택
한 기쁨이며 부듯한 보람이다.
새삼스러히 이런 재능과 남다른 건강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한달에 고
작 두번의 작은 수고이지만, 은퇴 후에 이런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조그마한 이곳을 좀
더 오래 지켜주고자 한다.
Dr. sangjou.chung
첫댓글 제 3의 인생을 개척하 듯 살아가는 은퇴자의 모습에서 저의 앞길을 찾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