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신년 부흥회 / 임현수 목사(캐나다 큰빛교회 원로목사)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 / 1월 3일(수) 새벽
말씀 : 창세기 45:1-11
제목 : 형제여 내 형제여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할렐루야~!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고난의 민족으로써 역사의 맥락을 같이 하는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봐도 아주 비슷한 점이 많고,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를 한 번 상상해 보면
그 팔레스타인 땅의 북쪽에서 일어났던 제국이 바벨론, 페르시아, 앗수르, 심지어 로마 제국까지
그 북방의 세력들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이스라엘을 공격을 해서 갈릴리 지방은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피가 섞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사마리아라는 곳도 마찬가지이고, 그러 가운데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요.
심지어 남방 애굽으로부터도 그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다가 노예 생활을 400년 동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강대국 사이에서 갈라져서 나라가 분열되고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됩니다.
통일 왕국의 시대도 잠깐 있었지만, 결국은 다 다시 죄를 지어서 앗수르의 노예로 붙잡혀 가기도 하고,
바벨론의 노예로 붙잡혀 가기도 하고 결국은 예수님 때를 지나면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을 하게 되고
그리고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서 2천 년 동안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45년 5월 14일에 소위 말하는 시오니즘 시대가 오는 거지요.
그래서 다시 통일시대를 다시 또 맞이하고 있지만, 금방 또 중동 전쟁이 일어나 세 차례나 큰 전쟁을 치르고
육일 전쟁을 치르고 나라를 지켜오다가 지금 현재 또 다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시작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참 신기한 민족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흩어져 있던 소수민족, 우리 나라에 비하면 1/4도 안되는 1/5 정도가 되는 작은 민족 이스라엘이
지금 사실 전세계를 다 장악을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개스스테이션, 그 큰 회사 메인 회사 다섯 개 가운데 네 개가 다 유태인 것이고,
인류가 먹고 사는 식량, 메인 식량 회사가 다 유태인 것이고, 할리우드를 정복을 했고, 세계의 교육을 정복하고,
노벨상을 1/3을 휩쓸고, 거의 100개 되는 노벨상을 다 유대인들이 가져 갔습니다.
미국의 대학 교수 가운데 최고의 실력 있는 교수의 90%는 다 유대인들입니다.
여러분, 이 숱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그 민족을 세계의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세우신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 중에 가장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는 것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이 두 가지를 지켰기 때문이다.
첫째는 가정을 지키고, 둘째는 교회를 지켰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회당을 지킨 거지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신적 기관은 두 곳 밖에 없는데, 가정과 교회입니다.
국가라고 하는 것, 왕,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도 간청을 해서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가정을 창조하셨고, 교회를 창조하셨어요.
저와 여러분이 가정과 교회만 지키면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처럼 똑같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펴봐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반만 년, 5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았어요.
여러분, 중국에서 일어나는 나라마다 청나라의 여진족이 쳐들어오고, 몽골제국이 쳐들어오고, 명나라가 쳐들어오고,
역사를 보면 중국한테 우리가 공격을 당한 것만 200번 공격을 당합니다.
조공을 갖다 바치기도 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심지어 저 남방에 있는 일본의 침략을 받고 임진왜란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나라까지 빼앗기고 36년 동안 굴욕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참 고난이 많은 민족입니다.
오죽하면, 우리가 한민족이라 했어요. 한이 맺힌 민족, 그래서 한이 맺혔다는 한이라는 단어가 영어에서는 번역이 안됩니다.
영어로는 표현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HAN 그렇게 씁니다. 그리고 옆에다가 설명을 붙여요. 한국 사람들은 한이 맺혔어요.
우리가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 이제 드디어 나라가 분열까지 되어서
북한과 남한으로 갈리어진지 지금 73년 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화해가 가능할까? 어떻게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복음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복음 통일을 말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통일을 말할 때는 반드시 복음 통일을 말해야 합니다.
그냥 통일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통일이 돼서도 안 돼요.
1990년대 이제 사회주의가 다 붕괴되면서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러시아에 들어갈 수가 있었고
저 죽의 장막이라고 하는 중공 땅에도 들어갈 수가 있었고, 그래서 이제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간 곳이 바로 연변 땅을 찾아갔어요. 왜냐하면, 거기에 우리 동족들이 살았기 때문에,
중국 전역에 한 350만의 조선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연변은 조선족 자치제라고 했어요.
거기 참 좋은 크리스찬들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는 일을 먼저 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한국 땅에서 수십 만 명의 사기꾼들이 들어가서 사기를 치는 바람에
제가 1998년 어느 날, 길림성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 길림성 신문을 봤는데,
그 신문에 나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그 몇 년 사이에 남한 사기꾼들한테 사기 맞은 조선족 가정이 3만 가정이 넘었고
그래서 100명이 자살을 했고, 800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이런 기사가 쭉 났더라고요..
왜냐하면, 남한에 한 번 와서 취직하면 그 당시로는 10년 20년 벌 돈을 일 년에 다 버니까 다들 남한에 가려고 애를 쓰는데
브로커들한테 돈을 주는 거예요. 중국에서는 어마어마한 큰 돈을 주고 친척들이 돈을 다 모아서 주고,
그러다 사기를 맞았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사기를 맞으면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제가 물어봤더니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90%가 사기를 맞지만 그래도 10%는 가지 않습니까..' '10%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렇게 한국으로 오고 싶어 했지요.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사기꾼들이 연변을 다 더럽혀 놨어요.
생긴 것은 술집과 노래방 같은 것밖에 없고, 소비문화 밖에 없고,
여자들은 그 당시 무신론 사회에서 살았으니까 정조개념도 없고, 가정주부도 몸을 팔고, 얼마나 더럽혀 놨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것이 통일의 모형이라면 통일 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통일이 되어서도 안 되지요.
그 중에 조선족 50만이 지금 한국 땅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간병인 하면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이 사람들 속에는 한이 맺혀 있고, 남한 사람들에게 굴욕을 많이 당해서 분노가 있습니다.
연변에서 어느 식당에서 한국 사람하고 조선족하고 밥 먹다가 다툼이 일어났는데 조선족이 한국 사람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서 시달렸던 그 분노가 폭발을 하게 된 거지요. 이런 통일이라는 것은 절대로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은 훨씬 더 사람들이 순수합니다. 북한 사람들 대개 보면, 정말 순수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더 빨리 썩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돈 맛을 알고 나면 누구나 다 부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을 할 때 그냥 통일지상론자들이 말하는 통일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북한과 남한은 상처가 깊고 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그 상처를 치유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주님을 만나는 길 밖에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용서와 화해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을 덜할지 몰라도 가족 중에 당한 사람이 많고,
천만 이산가족이 있고, 6.25 때 300만을 죽이는 그런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 상처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 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져야지만 진정한 통일이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들 입장에서 남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
저는 이 세 가지가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첫번째는, 의식의 변화 - 의식이 바뀌어야 됩니다.
두번째는, 안목의 변화 - 우리의 세상을 보는 눈, 안목이 바뀌어야 됩니다.
세번째는, 태도의 변화 -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야 됩니다.
오늘 이 창세기 45장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교훈은
통일의 한 모형으로 볼 때, 어떻게 요셉의 가정이 화해할 수가 있었을까?
열일곱 살 때 형들한테 배신을 당해서 그 아버지가 형들이 어떻게 잘 지내나 보고 오라는 심부름하러 왔다가
저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보고 형들이 서로 죽이자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걸 보고 시기가 나서 죽이자고 합니다.
여자들도 시기하지만, 남자들의 시기가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동생을 죽이기로 합니다.
거기에 양심적인 사람도 있어서 맏형 르우벤은 "우리의 혈육을 어떻게 우리 손으로 죽이냐, 그냥 구덩이에 던져 넣자"
이렇게 해서 그냥 웅덩이에 집어던져 넣었는데, 마침 웅덩이에 물이 없어서 살아나게 되었고,
지나가던 애굽의 노예장수들(인신매매단)에 팔려서 애굽 땅의 어느 집에 가서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팔려가서 죽도록 고생합니다. 그래도 성실했고
거기서 가정 총무로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요셉에게 함께 했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가 누명을 쓰고 죄도 없이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감옥에서 또, 시편에 105:18절에 보면 쇠고랑(착고)을 찼다고 합니다. 고통을 많이 당합니다.
그러다가 나이 삼십이 되어서 석방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 올리셔서
한 순간에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열일곱 살에 잡혀가서 서른 살까지 요셉이 고생한 것을 우리가 상상을 다 못하지만, 얼마나 억울한 삶을 살았습니까?
청소년 시절에(제일 예민할 때) 학교도 못 다니고,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친구들도 없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고,
또 감옥에 들어가서 그렇게 고생하고, 누가 이 인생을 보상해 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의 특징은 원망이라는 것이 없어요. 요셉은 항상 감사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만났을 때, 가나안에 하나님이 기근을 보내니까 야곱이 굶어 죽게 생겼으니까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냅니다.
"애굽에는 쌀이 있다 하더라 가서 양식을 사 와라" 형들이 와서 쭉 앉아 있는데,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딱 보고 형들인 줄 알았지만, 형들은 요셉인 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겠지요.
그때, 오늘 창세기 45장 본문에는 요셉이 형님들인 걸 알아보고
(2절)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그리고 내려가서 형님들 앞에 가서 "형님들, 제가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어요. 자기들이 죽이려고 했던 그 동생이 자기들 앞에 엄청나게 큰 사람으로 나타났으니까
이제 죽었겠다 해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요셉이 그 모습을 보고
"형님들, 한탄하지 마소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낸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는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지요..
여기서 요셉의 답변을 우리가 먼저 살펴보면, 제일 먼저 요셉은
(야, 이 천하에 몹쓸 놈들아. 이 악마같은 놈들아. 철천지 원수야)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첫마디는 형님들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자기를 아우라고 고백을 해요.
요셉의 마음 속에 변하지 않고 있었던 이 골육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화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은 싸우다가도 금방 화해하지 않습니까..
애들 막 싸우고 난리 치다가도 또 조금 있으면 헤헤 거리고, 밥 먹고, 장난 치고 그러지요..
잠언 17:17절에 보면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라는 말이 있어요.
가장 어려울 때는 형제 밖에 없다는 말이고, 형제가 서로 도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누가 암이 걸려서
지금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세 달 밖에 못 산다고 하면, 그 일이 우리 집에 닥치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그러면 세 달 동안 식구들이 꼼짝 못하고 돌아가면서 그 형제를 돌볼 수밖에 없지요.
마지막까지 병상을 지키는 사람은 가족, 형제 혈육 밖에 없습니다.
지금 북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처럼 된 사람들입니다.
누가 돌보겠습니까? 밉다고 못 낫다고 챙피하다고 버려 두겠습니까?
온 세상이 북한을 다 버렸는데, 우리마저 버릴 수는 없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혈육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 만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반도라고 하는 땅에서 오천 년 동안 한 형제로 한 혈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70년 전에 이상한 사상 하나가 김일성이라고 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나타나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해서 불법 집단으로 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우리의 형제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같이 바라보는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의 거의 99%가 다 우리의 형제들이고 우리의 골육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앞으로 기도할 때도 '저 공산당, 괴뢰군' 그러지 말고
(그것은 극히 소수의 악의 축들만 그런 겁니다. 나머지는 거기에 붙잡혀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에서 고생하는 우리 형제들, 우리 골육들, 우리 형제들을 하나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우리들 속에서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요셉 같은 마음을 가져야지만, 화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요셉의 얘기를 통해서도 우리가 알 수 있지만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 야곱과 라반의 관계, 가인의 이야기, 많은 관계들이 나오는데,
제일 처음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보면 가인은 자기 동생을 동생으로 보지 않아요.
가인과 아벨은 형제의식이 없어서 가인이 동생을 죽이잖아요.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어요. 최초의 살인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시니까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대들고, 그러다가 죄와 저주를 받고 방황하는 가인의 삶을 보세요.
그러나, 그런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같은 경우를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 말씀 따라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우상을 버리고
창세기 12장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가는 곳마다 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조카 롯이라는 사람이 따라오는 바람에 아주 골칫거리가 된 거예요.
롯이라는 사람은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르고 항상 자기중심적이고
아브라함 덕분에 출세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이제 재산이 증식되었을 때
목축을 하는데, 땅이 한계가 있으니까 종들끼리 싸움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먼저 양보를 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할 것이다. 네가 좋은 곳을 차지해라"(창 13:9)
그러나 아브라함은 양보를 했지만, 롯은 욕심을 부립니다. 이런 모습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소돔과 고모라로 이사 가는 장면도 나오고,
또 그 지역 연합군들에게 포로로 잡혀가서 다 죽게 되니까 아브라함이 돌아와서
자기가 사병으로 길렀던 318명을 데리고 가서 구출해 오기도 하지요.
소돔과 고모라 땅에 유황 불이 떨어져서 심판을 받게 됐을 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때 쯤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굉장히 성숙했을 때고, 하나님과 친구처럼 교제할 때였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또 다 들어 주셔서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 두 명을 보내서 그 가정을 다 구출합니다. 그런 위기를 다 지나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이 왜 그렇게 했을까?
성경은 딱 한 마디로 우리에게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위기 때마다 아브라함이 한 얘기가 "너와 나는 골육이라 우리가 서로 싸우지 말자"(창 13:8, 공동번역)
그러면서 아브라함(삼촌)이 먼저 양보하는 거예요. "너와 나는 골육이라" - 형제란 말이예요.
이 골육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아브라함과 롯의 아주 위험한 인간관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골육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주 극적인 장면은 야곱과 라반의 관계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은 조금 사기성이 있잖아요.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그래서 그 엄마하고 짜고 그러다가 들통이 나니까
에서가 막 화가 나서 죽이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엄마가 외삼촌 집으로 보냅니다.
밧단아람이라는 곳에 와서 20년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때 만났던 사람이 외삼촌 라반입니다.
이 사기 7단은 사기 10단을 만나게 돼 있습니다. 야곱이 삼촌을 만나 보니까 야곱보다 훨씬 수가 높습니다.
야곱이 삼촌을 만나서 고생하는 장면이 창세기 안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삼촌이 처음에는 반기더니, 나중에는 시간이 갈수록 야곱이라는 젊은 청년의 그 힘을 이용해서 자기 재산을 증식시키고
딸 라헬을 주기로 하고 7년을 일하라고 하더니 7년을 일하고 났는데 라헬이 아닌 레아를 주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속은 걸 알고 야곱이 화를 냅니다.
삼촌 라반은 우리 집에서는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면 다시 7년을 일하라고 합니다. 라반은 조카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 머리를 쓴 겁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왜 옆에 누워 있는 여자가 레아라는 사실을 아침에 알았을까?
계속 품삯을 주지 않고 몇 번이나 변형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서 또 죽도록 일을 합니다.
삼촌은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을 위하여 2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근거도 없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고 하였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창 31:41)
야곱이 어느 날 삼촌의 집을 탈출하기를 작정하고 삼촌의 집을 떠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삼촌이 군대를 조직해서 추격을 합니다. 라반은 7일 길을 쫓아와서 야곱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야곱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드라빔을 훔친 것만 추궁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훔쳤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결국 라반은 끝까지 아버지를 속이는 라헬로 인하여 드라빔을 찾지 못하였고, 야곱은 그런 라반을 호되게 책망하면서
자신이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수고한 것을 나열하며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삼촌은 화가 엄청 많이 났어요. 드라빔이라는 자기 우상단지를 훔쳐간 것을 알고 그래서 죽이려고 하는데, 죽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평화조약을 맺고 손주들을 하나 하나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장면이 후반부에 나오지요.
이때, 라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 바로 골육의식이었습니다.
"너와 나는 골육이라, 그러니 우리가 싸우지 말자"
여러분 형제의식만 회복을 해도 화해가 가능합니다.
이제부터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생각할 때, 다 우리 형제라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제가 90년대 중반에 북한 땅에 처음 들어갔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이 뭐냐면,
어쩌면 그렇게 말이 우리하고 똑같은지, 말이 통한다는게 신기하더라고요.
다른 민족은 말이 안 통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와 똑같이 말하고 틀리는 말은 몇 마디 없습니다.
북한에 가면 오징어를 낙지라고 합니다. 낙지를 또 오징어라고 합니다. 그런 건 몇 개 안되고 나머지는 다 통합니다.
우리가 이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감정이 통하고 음식이 통하고, 또 옛날부터 내려온 우리 문화, 명절 등 내 민족이라고 하는 의식이 오니까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다 우리 형제 자매들인데, 이 공산당이라는 잘못된 사상 하나가 들어와서...
북한의 사상의 근본은 무신론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패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상 하나가 잘못 들어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납니다.
복음으로 통일 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은 이런 고통을 겪고 있지만,
형제의식을 회복하면 그런 것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기도하실 때는 북에 있는 우리 골육들을, 형제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시는
그런 의식의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야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약의 대표 되는 모세도, 신약의 대표 되는 바울도 그렇고, 자기 동족들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이 진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 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을 막아서서 말하잖아요.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출 32:11)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십시오"(출 32:32)
눈물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시고 심판을 다 유보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기도하는데,
그렇게 자기를 핍박하고 돌멩이를 던지던 그들의 회당에 들러서 자기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거에요.
로마서 9장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하나님,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원합니다."(롬 9:3) 이렇게 말하잖아요.
우리 마음 속에 이 형제의 사랑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느헤미야를 비롯해서,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잖아요..
이스라엘 좀 보세요.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전세계에서 다 보따리 싸가지고 돌아오잖아요.
애굽(이집트), 중동 사람들은 다 도망가기 바쁘고,
지금 러시아에 전쟁이 일어나니까 러시아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한국에 도망나온 사람이 15만명입니다.
우리 목사님들 설교하실 때, 종종 듣는 얘기 가운데 이런 말이 있지요.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어요. 모든 걸 다 초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내가 사랑해야 될 내 조국이 있고,
내 땅이 있고 내 민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기 민족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인간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가족들 챙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안 되지요. 당연히 가족들을 우리가 돌봐야 되는 책임과 의무가 있지요.
우리가 골육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예비하고 계시는데, 위기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품고 사랑할 줄 알고 적대시만 하지말기 바랍니다.
그들의 정권은 타도하고, 그 정권이 멸망하도록 기도해야 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그 땅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우리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됩니다. 우리들의 안목이 바뀌어야 됩니다. 역사를 보는 눈이 열려야 됩니다.
요셉이 지금 형들을 보고 말합니다. "형님들, 제가 아우 요셉입니다."(창 45:4) 그러잖아요.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형제의식, 그것 때문에 화해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북한의 감옥에 3년 가까이 잡혀 있다가 나온 뒤로,
지금 전 세계가 저를 부릅니다. 북한에서 나온 1년 동안 캐나다 전국을 다녔어요.
미국과, 전 세계 곳곳이 저를 부릅니다. 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신기하니까, 듣고 싶은 거예요.
오하이오주에서 '순교자의 소리' 총회를 하는데, 저를 초청해서 가 보니까
거기는 주님을 위해서 감옥생활 한 사람만 강사로 초청을 하더라고요..
나는 지금까지 다녀 본 가운데 '순교자의 소리'라고 하는 그분들처럼 신앙이 좋은 사람을 못 봤어요.
정말 목숨 내놓고 선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요셉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니까 원망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남한과 북한을 생각해 보면 먼저 남한, 북한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잘 사는 것을 아십니까?
남북이 갈라지고 삼팔선이 놓여 있으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지하자원도 없어요.
어떻게 손바닥 만한 땅에 북한에만 지하자원이 있고 남한에는 없어요. 우리나라엔 대리석도 안 나요. 우라늄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고, 새마을운동을 했지요.
독일에 간호사들이 가서 시체 닦으면서 돈 벌어서 조국에 보내 줬지요.
월남전에 가서 목숨을 잃으면서 돈 벌어와서 경부고속도로 닦고, 다행히도 하나님이 나라의 경제부흥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지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형들에게도 원망을 하지 않아요.
역사를 보는 눈이 열려야 됩니다. 역사를 통치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모든 민족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고난의 역사,
남북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역사는 전 세계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북한은 전 세계에 소문난 독재국가, 우상숭배의 나라 사이비 종교집단이 되었고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다 압니다.
남한은 가장 강력한 기독교 국가이고, 세계 최대의 교회, 한 때는 26개 교회가 다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 주안교회도 들어갔을 겁니다. 전 세계가 와서 배워가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와 저 사이비 무신론자를 대비해소 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자체가 세계 선교이고 전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외쳐 보겠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 "누가 할 것인가?" - "내가!"
여러분이, 다시 한번 부흥을 일으키는 부흥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 앞에 빈 손으로 나오지 않고
주 앞에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그 마음을 축복하셔서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도록
늘 하나님의 공급하심 속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고, 이웃과 나눌 때에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도로 되어 주리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신 말씀을
체험하는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절대로 인색하지 않게 하시고, 즐겁게 섬기고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나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요셉처럼 살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살게 하셔서
남북통일의 시대를 앞에 두고 기도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다 부정적으로 말할지라도
우리는 복음화 된 통일조국의 비전을 가지고 그렇게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도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가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