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6.25 전쟁 74주년
○ 창업모체 '선경직물'
SK그룹은 대한민국의 5대 기업중 하나다. 주요사업 분야는 에너지, 정보통신, 기타 서비스 업종으로 크게 나눌수 있으며 창업모체는 적산기업인 '선경직물'이다.
이후 유공 한국이동통신을 잇달아 불하받으며서 에너지와 정보통신 중심으로 그룹을 형성하였다.
SK그룹은 1929년 창업자 최학배가 대성상회(大成商會)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뒤 1944년 최학배의 장남 최종건이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선경직물에 입사하였는데 8.15 광복후 미군정이 선경직물을 적산기업(敵產 일본인 재산)으로 지정해 관리인을 최종건에게 맡기면서 선경그룹 설립의 기초가 된것은 적산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1973년 최종건 회장이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 최종현이 승계하여 1975년 제2창업을 선언하며 석유 산업뿐만 아니라 건설(선경종합건설), 목재(선경목재), 금속(선경금속), 기계(선경기계), 화학(선경화학), 관광업(워커힐호텔) 등에 진출하였다.
최종현 또한 형처럼 폐질환으로 70세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최태원이 2004년(당시 44세)에 그룹회장을 승계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은 일찌기 기업가로서는 드물게 처세술이 좋아 방위산업에 뛰어 듬으로해서 정치권의 두터운 신임을 쌓았으며 그로인해 선경화학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또 최종현의 조카 '최예정'은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3남 이동욱과 결혼을 하여 사돈관계을 맺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맏아들 최태원을 노태우 대통령의 딸(노소영)과 결혼을 시킴으로해서 살아있는 정권과의 끈끈한 인연을 맺어 왔다.
특히 1973년 워커힐이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민간에 이양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당시 여행이나 운송에 앞장섰던 한진그룹이 1순위 였으나 이때 최종현의 사돈인 이후락의 입김으로 SK그룹(당시 선경)이 불하를 받게 되었다.
SK그룹은 힘있는 정권으로 부터 수많은 혜택을 입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은 1972년 석유산업(유공), 1973년 관광산업(워커힐 불하), 1996년 이동통신 등 이다.
○ Walker Hill HOTEL
서울 광진구 광장동 언덕위에 위치한 '워커힐 호텔'은18만평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텔이다. 이 호텔은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김일성의 남침으로 인해 자유를 지키고자 참전한 유엔군 장병들의 휴양소로 만든것이다.
피 비린내 나는 6.25의 3년 전쟁이 휴전협정으로 끝을 맺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강압으로 많은 주한미군과 유엔군은 철수를 못하고 계속 남아있게 되었는데 폐허가된 남한 땅에는 이들이 잠시 휴가를 받아 편히 쉴만한 휴양시설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으로 휴가를 떠나야 하는 불편을 느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미국의 협조를 받아 이곳에 주한미군과 유엔군의 휴양시설를 만들게 되었는데 3년여의 공사끝에 지금의 워커힐이 완공되어 개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직하나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세계16개국의 연인원 180만명이 참전하였으며 이중 10여만명이 우리 조국수호를 위하여 장열히 산화 하였다.
그뒤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전쟁은 끝났지만 이중 5만여명은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자신의 나라로 철수하지 못하고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유엔군 사령부와 우리 정부는 이들이 편히 쉴수 있는 주한 유엔군 장병들의 전용 휴양시설을 만들게 된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 유엔군에 대한 보은책의 일환으로 이들이 편히 쉴수있는 공간인 만큼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건설하였는데 한국 최초로 극장식 나이트 클럽이 개설되었고 패션쇼가 열릴수 있도록 고급시설로 지어 졌으며 실내 수영장 까지 마련되었다.
훗날 이 실내수영장은 우리나라 수영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유서깊은 곳의 이름을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의 언덕(워커힐)"이라 명명 하였다.
워커라는 이름은 미8군 초대 사랑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월턴 워커(Walton H.Walker)장군의 이름인데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한 워커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은 `전쟁영웅'을 추모한다는 뜻도 있지만 주로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 휴가장병 유치시설인 만큼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을 붙임으로 존경심과 친근감을 느낄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라 한다.
워커 장군은 1889년 12월 3일 텍사스주 벨튼에서 출생하였으며
1912년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3기갑사단장으로 참전해 승리를 거듭했으며 특히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독일군의 롬멜 부대와 맞서 공훈을 세우고 중장으로 승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조지 패튼 장군이 가장 아꼈던 부하로 평가받았으며 ‘패튼 장군의 불독’이란 별명을 이때 얻었다.
그는 이후 48년 맥아더 장군의 부름을 받아 일본에 본부를 둔 미 8군 초대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가 50년 6.25전쟁이 터지자 7월 13일 낙동강 지역에 파견돼 “버티느냐 죽느냐(Stand or Die)”라며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서 크나큰 공적을 세웠다.
그는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철수건 전선 조정이건 어떤 것이든 단 한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생명을 걸고 진두지휘 하였다.
포항 영천 대구 창녕 마산 통영을 연결하는 이른바 ‘워커라인’의 방어작전은 국군과 연합군간 최초의 연합작전 이었으며 이것이 한 미 군사동맹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초대 주한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해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낙동강전선을 사수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워 6.25전쟁의 `영웅'으로 칭송 받았으나 북진작전 지휘 중 짚차가 전복돼 전사 하게 되었다.
1950년 12월23일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중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수훈을 세운 자신의 외 아들 워커대위에게 이승만대통령이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전달하기 위해이동중 의정부 북방 축석령 부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향년 61세의 삶을 마쳤다.
국방부는 2016년 한미동맹상을 제정하고 초대 수상자로 워커 장군을 선정했는데 “워커 장군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 방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점이 높게 평가됐다”며 한미동맹상 첫 수상자 이유를 밝혔다.
“특히 낙동강 전투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내는 등 혁혁한 전공과 함께 우리 군과 미군의 칭송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초대 수상자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워커힐에는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다.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한 그 공덕을 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워커힐 호텔 본관 정문 산자락에 세워진 비문을 읽어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6.25 전쟁영웅 미 육군중장 월튼 워커 장군은 한국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하여 장열히 산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워커힐 호텔 언덕위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분의 숭고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이 유서깊은 곳에 2018년 동계올림픽을 빙자하여 초청한 6.25 남침의 원흉 김일성의 손녀딸 김여정을 서울의 많은 호텔을 제치고 이곳에 투숙시킴으로해서 워커장군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유서깊은 워커힐 이라는 이름을 철저히 유린 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초호화 "애스톤 하우스(Aston House)"라는 것이
호텔과 떨어진 언덕위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비싼가격으로 소문이 나 있다.
배용준과 박수진 커플이 1억원이 넘는 비용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 이기도 한 ‘애스톤 하우스’는 워커힐 내에서는 초호화 별관 객실인데 5,280㎡의 대지 위에 연면적 1,413㎡짜리 2층 건물로 돼 있는 빌라다.
1층은 3개의 연회장으로 쓸수 있는 접객 공간이 마련돼 있고 2층은 침실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유리는 방탄처리가 됐다는 소문도 있다.
당시 하루밤 이용료가 1500만원에 부가세 10%와 봉사료 10%를 포함하면 1815만원을 내야 한다.
이곳을 북한 김여정이 18명의 일행과 함께 사용했다고 하는데 2박3일간 이용료가 무려 1억3천만원이라 한다.
그 외에도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을 비롯하여 많은 북한인사들의 단골호텔이 되면서 워커힐의 본래 의미를 무참히 짖밟았다.
아버지 회종현처럼 최태원 회장도 처세술이 좋아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떼돈을 버는지는 몰라도 워커힐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그 이름을 바꾸던지 하는것이 좋을듯 하다.
더 이상 워커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하는게 기우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