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산(조약봉)에서 시작한 금남정맥의 황룡은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의 백마강으로 기운을 펼치며 향한다...
운장산과 장군봉을 거치고는 대둔산에서 멋진 암릉꽃을 피우고는 월성봉과 바랑산에서 남은 기운을 토해낸다...
백제의 황룡은 계룡에서 기다리고 있는 숫용추와 암용추에서 승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웅룡과 자룡과 함께 하기 위해 다시 그 여력을 축적하려 서서히 몸을 낮추며 북쪽의 계룡산으로 향하게 된다...
오늘의 금남정맥은 바로 이 길을 따르게 되는데, 황룡의 여세와 기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아니하다...
오늘의 금남정맥 구간은 암릉꽃 가득했던 대둔산과 영산인 계룡산의 경관에는 못 미치나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가득한 금남정맥의 구간으로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아픈 역사들이 가득하다...
오늘의 금남정맥은 산세를 떠나 그리 편한 마음이 들 수 없는 구간인데
호남고속도로지선 아래 지하수로를 통해 지나서만은 아닌 듯 싶다...
귀에 익숙한 황산벌전투와 함박산성(황령산성) 등을 지나며 수 없이 흘렸을 병사들의 피에 숙연해진다...
천호산을 지나면서 계룡시에 들어서게 되는데, 예전에는 논산시의 두마면의 지역이었다...
두마면의 북쪽은 계룡산의 천황봉과 그 경계를 하였고, 남쪽 자락에는 신도안이라는 지역이 위치하였다...
천마산 정상부의 정자인 천마정에 오르니,
계룡산이 더욱 확연히 보이기 시작하고, 반백을 넘어선 지금 수십년전 추억들이 피어오르게 된다...
신도안(新都案)과 제자봉(帝字峰)
내가 처음으로 신도안을 맞이한 것은 1982년 7월 이십몇일 이다...
서대전역에서 호남선 기차를 타고 신도역에 내리게 되었는,
다음 역이 개태사라는 특이한 표시에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되었다..."개"자 들려도 웃을 나이 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계룡산에 들어간다 하면, 신도안에 들어가는 걸로 인식할 정도로 신도안의 유명세가 대단하였는데
무속인이 되거나 공부하기 위해 사찰이나 암자에 들어가는 이가 부지기 수 였으며, 기도하러 가는 이도 많았다...
옥황상제의 산이라는 의미의 상제산(上帝山)이나 천태산(天台山), 옹산(翁山)으로 불러왔던 계룡산은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으로 부른다는 것이 통설이며,
조선 개국 당시 무학대사가 이곳에 와서 보니
이 곳의 지형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과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의
두 가지 모양을 갖추고 있음에 계룡(鷄龍)이라 하여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기도 한다...
계룡산 남쪽으로 능선 자락에 제자봉(帝字峰) 이라는 봉우리가 위치한다...
제자봉은 봉우리의 모양이 한자 제(帝)자와 같이 생겼다 하여 제자봉으로 부르게 되었다...
제자봉(帝字峰)을 중심으로 동서로 암용추(雌龍)와 숫용추(雄龍)의 양추(兩湫)가 있으며
제자봉 서쪽 숫용추 일대는 대궐터라 부르고 있으며, 그 남쪽은 종로터라 부르고 있다...
양추(兩湫)에는 용신(龍神)이 존재한다고 여겨 수많은 암자와 절들이 두 계곡을 가득 채울 정도였으며,
종교정화운동이 휩쓴 뒤인 1982년에도 암용추 지역에만 절과 암자들이 16개가 넘게 존재하였다...
신도안은 1924년 동학의 한 교단이 시천교의 교인 2,000여명이 신도안에 자리을 잡으면서 종교촌이 되었고
일제의 핍박과 6.25전쟁을 거치며 지쳐 있던 백성들은 안식처가 정감록과 정도령신앙, 말세 및 재림사상 등이 합하여 증산교,원불교 등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들이 들어서게 된다...
1975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종교정화운동으로 계룡산 남쪽자락 일대는 미신타파 일환으로
제자봉 주변의 제단과 암자, 치성터들을 허물고 철거하였으며,
산림법 및 식품법 위반 등으로 100여개의 종교단체대표들이 구속하였다...
그 후 1983년 8월부터 시행된 계룡대 이전사업으로 신도안의 모든 민간인들은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이곳 제자봉 자락에 어쩌다 들어선 1982년 여름에는 이곳 신도안이 북한의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지역이고
곧 군부대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었다...
□ 산 행 개 요
○ 산행위치 : 충남 논산시 양촌면,벌곡면,연산면 / 충남 계룡시 두마면,엄사면
○ 주봉(主峰) : 깃대봉 394m, 함박봉 404m, 천호산 371.6m, 천마산 287m
○ 산행일시
: 2020.03.14.(토)
09:40∼15:46
○ 이동거리 : 19.77km ○ 소요시간 : 6시간06분 ○ 이동시간 : 5시간45분
○ 산행코스 : 물한이재~363.9m~덕목재(지하도)~깃대봉~함박봉~황령재
~332m~대목재~천호산~천마산~양정고개~엄사초~엄사리 금남정맥 입구
○ 산행주체 : 기분좋은산악회 ○ 기상상황 : 바람에 맑은 날씨 ○ 난이도 : 1, 2, 3, 4, 5
물한이재(勿汗峙)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에서 양촌면 반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반암리에 물한리라는 부락이 있다...
이
고개를 넘을 때면 한 겨울에도 땀을 흘려야 하는 험한 고개라 하여 물한(勿汗)이재라 하며, 물한티라 부르기도
한다...
전 구간에서 만났던 이정표와 헤어지고...
물한재터널 위로 지나게 된다...
논산의 양촌 반암리는 생각보다 깊은 산골이다...
급된비알의 360봉의 오르게 되는데, 오늘의 산행길이 그리 수월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363.9m
삼각점이 세워져 있는 363.9봉에 누구인가 물한산이라는 표식을 나무가지에 매달아 놓았는데, 정식이름이 아니다...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보이는 대부분이 산들로 채워져 있다...
황룡의 감추어진 기운이 잠시 흘려지고...
양촌자연휴양림과 방향을 달리하여 우틀을 한다...
옛 산성의 흔적들이 가득한 봉우리에 오르고는 좌틀을 하게 되는데, 웅치산성의 일부로 보인다...
내리막을 내려서며 임도길과 만나는데, 곰치재이다...
다시 황룡은 잠시 머리를 치켜 세우는데, 350m에 오르게 되고 좌틀을 한다...
미끄러운 등로를 급히 내려서면, 산수유 가득한 과수원에 이르게 된다...
올해 제대로 된 산수유를 만난다...
잠시 산수유꽃에 젖어 넋을 잃고는 금남정맥을 따른다...
호남고속도로지선에 금남정맥은 갈길을 찾아 땅속으로 향하게 된다...
저 건너가 금남정맥이 이어지는 곳이다...
시궁창 냄새 가득한 하수도이다...
지금도 냄새가 나는 기분이다...
덕목재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에서 양촌면 산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방도로와 호남고속도로지선이 지나고 있으며, 고속도로 아래의 수로를 지나 금남정맥의 덕목재를 이어가는 아픈 구간이다...
언덕으로 오르고...
끊어진 금남정맥을 잠시 내려다 본다...
아슬아슬 뭉개진 금남정맥길을 따르고, 중간의 송전탑이 있는 깃대봉으로 향한다...
이름모를 산성터를 지나는데, 산직리산성의 일부로 여겨진다...
급된비알을 올라서면, 394.1m의 깃대봉으로 삼각점이 세워져 있는데, 삼각점은 393m를 표시하고 있다...
이곳 깃대봉에서는 국사봉과는 3.4km,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함박봉과 1.84km의 거리이다...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을 논산의 연산 들판이다...
함박봉의 모습이 웃음꽃을 함박 피어 오르게 하고...
그 아래로는 연산들판이 황산벌전투를 연상시킨다...
잠시 임도와 만나고, 함박봉으로 오르게 된다...
398봉이 먼저 반기고...
산불감시초소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두팀이 반긴다...
함박봉(咸朴峰 404m)
산의 모양이 함박처럼 생겼다 하여 함박봉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던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 함박산 북쪽 황령재에 위치한다...
패러글라이딩장인 함박봉은 시야가 활짝 열리는데...
연산의 황산벌과 탑정호가 서쪽으로 열린다...
계백장군과 백제군을 물리친 신라군은 저 탑정호를 지나 백제의 수도 부여로 향했을 것이다...
남쪽으로는 지나온 깃대봉과 멀리 대둔산 자락이 보인다...
함박봉의 높이가 404.4m로 표기되어 있다...
동남향으로 대둔산과 월성봉,바랑산이 넘실댄다...
점심을 나누고, 북으로 향하는데, 계룡산이 머리 내어밀기 시작한다...
나무계단을 한참 내려서면, 황령재와 만나게 된다...
황령재(黃嶺)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던 황령산성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가장 작았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어색한 역사의 한 장면이 안타깝게 다가선다...
젊은 자전거동호회들이 고개마루에서 내려설 것을 준비함에 조금은 부러워 하며 좌측 비알의 능선길로 들어선다...
이정표가 대체로 잘 세워져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며,황령재와 헤어진다...
등로를 따라 오르면...
332봉으로 정자가 세워져 있으나, 이름과 현판은 찾을 수 없다...
신라군이 황산벌로 진격했을 대목재를 지나고...
353봉에 오르게 된다...
계룡산의 웅장한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고, 천호산 서쪽으로 개태사와 개태사역이 보인다...
벌목으로 잠시 시야가 열리고...
잡목 사이로 개타사와 개태사역이 지척이다...
천호산(天護山 371.6m)
천호산은 천호봉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오히려 천호봉이라는 이름을 더 부르고 있다...
산의 모양이 용마루 같이 길게 남북으로 6km 가량 뻗어 있음에 누르기재, 황산(黃山)이라 하였으나,
고려 태조가 이곳 연산에서 후백제의 신검과 전투를 벌이던 중 꿈을 꾸었는데, 인근의 꿈 해몽을 잘 하는 여인의 조언을 받아
도선국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였더니 어디선가 병사들이 나타나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왕건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왕건은 전쟁의 승리가 하늘의 보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여기고 병사가 나타났던 산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승리의 공훈을 부처의 가호로 돌리고 천호리에 개태사(開泰寺)를 지어 국립 대사찰로 부르게 하였다...
개태사는 전성기에는 1,000여명의 승려가 법회를 가지는 승려 양성 도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천호산 동쪽은 논산시의 벌곡면와 계룡시의 두마면의 경계로 이정표가 계룡시를 나타낸다...
다시 내리막길이다...
계룡시는 청룡을 캐릭터화 하였다...
개태사 갈림길을 지나고, 다시 오르면...
삼각점이 세워져 있는 304m의 천호봉이다...
천마산 두리봉이 보이는 윗대실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계룡산의 천황봉과 머리봉의 산세가 시선을 빼앗는다...
매화꽃이 봄을 알리고...
겁먹은 멍군들과 거위가 짖음으로 시위하는 윗대실을 넘으면...
임도길을 건너게 천마산으로 오르게 된다...
천마산 두리봉(278m)을 지나고...
농소리갈림길을 지나면, 천마산이다...
천마산(天馬山 287.2m)
계룡산의 조망산인 천마산의 정상부 모습이다...
천마산(天馬山 287.2m)의 돌탑...
탕건바위
암소바위 뒤의 바위로 탕건바위에는 하(河)씨들이 피난하였다는 바위굴이 있다...
송장바위
사람의 시신처럼 보이는 바위이다...
잠시 암릉길을 지나고...
동쪽으로 계룡시 신도시가 내려다 보인다...
천마산 천마정(天馬亭)...
천마산의 정상
아래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으며, 계룡신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계룡산의 모습...
호남선철로와 폐역이 된 신도역 건너로는 지금은 삼군통합기지인 계룡대가 자리한 곳이지만
한 때는 제법 큰 면소재지 같은 분위기의 신도안(新都案)이라는 종교취락지역이었으며,
집집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현판등이 걸려 있었는데, 그 집집마다 다른 종교가 놀라웠다...
그 뒤로는 옥황상제의 산이라는 의미로 상제봉(上帝峰)이라 불렸던 계룡산이
북극성에 해당하는 주봉 천황봉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8개의 봉우리가 별자리 28수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의 남방7수와 동방과 서방7수의 일부를 볼 수 있는데, 천황봉으로부터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아름답다...
그 아래에는 제자봉(帝字峰 400.1m)이 있는데, 예전에는 천단을 세워놓고 수도했던 곳으로
신도안 대궐터의 주봉으로 봉우리의 모양이 한자 제(帝)자와 같이 생겼다 하여 제자봉으로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제자봉은 제차봉으로 부르고 있는데, 왕으로부터 차였음을 의미하는 듯 하다...
제차봉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암용추폭포(음)와 서쪽의 숫용추폭포(양)가 숨어 있으며,
제자봉 남서쪽 중턱에는 암용추에서 제차봉을 거쳐 천황봉을 오르다가
길 잃은 사람들의 발길과 무속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는 이도 없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단으로 된 하얀 바위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에서
쏟아내리는 시린 폭포수에 몸서리치며 즐거워하던 한여름의 목간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자정 무렵이 되면 고통스러움이 시작이 된다...
숫용추 방향으로부터 어김없이 들려오던 꽹과리,징,장구소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치게 되는데,
그 무속인도 힘이 부치는지 시간이 갈 수록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약하게 들려오곤 했다...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굿은 처음에는 그 소리들이 무서워 밖에 나가지도 못했으나,
점점 익숙해져 새벽녘에는 얼굴도 모르는 그 무속인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곤 하였다...
지금도 귓전에서 무속인들이 두드려대던 그 타악기의 소리들이 울리는 듯 하다...
계룡산의 주봉 천황봉과 정도령의 머리가 우뚝한 머리봉...
계룡산 천황봉과 황적봉...그 아래 서울의 북악산에 해당하는 제자봉...
천마산의 암소바위(금암 金岩)...
계룡시민들이 즐겨 찾아 오르는 천마산...
아기자기한 바위들을 지나고...
삼각점이 세워져 있는 248.3m 봉우리...
248봉에서는 계룡산의 천황봉 아래 신도안의 북악산 제자봉과 남산에 해당하는 중봉이 보인다...
자동차소리와 양정삼거리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양정고개(羊丁峙)
양정고개는 충남 계룡시의 금암동으로부터 서쪽 엄사면 엄사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예전 진잠면(鎭岑面)에서 두마면(豆麻面)을 지나 연산이나 논산으로 고개로 내 기억에 엄사리는 두마면에 속했었다...
양정고개는 정감록의 예언에서 신도안에 정씨가 나타나 세상을 평정한다면 그는 이 고개를 넘어서 갈 것이며,
이 고개에서 두 사람의 정씨(鄭氏)가 왕 자리를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양정고개는 백제의자왕 때 백제군과 신라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양정삼거리, 양정과선교 등의 이름들이 양정고개의 기억을 도와주고 있다...
계룡지구대의 등산로 안내도...
신도과선교를 지나고...
엄사초등학교를 지나며, 금남정맥을 이어간다...
금남정맥 계룡산 구간 들머리에서 오늘의 금남정맥을 마무리 한다...
제자봉을 제차봉도 아니고, 세차봉으로 표기하는 아쉬움을 안고 하산주 자리를 찾아 나선다...
추억속의 신도역(엄사과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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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뫼바람님의 기억을 부여안고,
계룡산과 신도안...
황산벌까지 타임머신타고 갔다왔습니다.
그 꿈 많았던 시절이 아쉬움 가득하네요~~
지금은 쭈삼을 안주 삼아 맛있게 먹었던 시간이 더 소중하네요~~ㅎ
멋진 사진과 자세한 설명에 다시금 복기가 됩니다,고맙습니다.담구간 모습도 그려지네요
산행 종종 만남의 시간들이 잔잔하게 즐거웠습니다~~ㅎ
해박한 산행기 즐감했습니다.
언제가 역사 드라마에서 개태사라는 이름을 들어본것 같는데 이지역의 유명 사찰인듯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한때는 개태사에 1천명을 넘는 승려들이 도를 닦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고려시대의 인구를 250만~300만으로 추정하는데 당시에 1천명의 승려라면~~헐!
이것저것 모은 글입니다~~ㅎㅎ
화창한날씨에 행복한 산행을 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후부터 흐린 날씨를 예보하던데~~
기분좋은산행의 의지 앞에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덕분에 더욱 즐거운 산행과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