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렸던 훈련소 1
시우쇠 탄피는 깨어지기 때문에 북한군의 기본 화기이었던 소련제 모시나강 총의 탄피는 질기라고 얇은 철판을 말아서 만들었었는데 지금 미국의 탄피는 시우쇠 합금으로 만들어진것도 있다. 위의 왼쪽 것은 쏘고난 후의 시우쇠인데 구리로 코팅을 해놓았으며 격침이 때려서 쏘고난 빈 탄피이니 뇌관이 쏙 들어가 있다. 놋쇠로 만든 위의 M-1총의 실탄 같은것은 308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 숫자는 M-1총알보다도 약간 더 굵다.
소제장총은 노획했거니 전리품으로 획득한 미제 M-1총알을 사용할수있지만 M-1총은 소제총알을 사용하지못했다고 한다. 총알의 구경은 같지만 소제의 탄피가 약간 더 굵기때문이다. 지금도 중동국가나 북한사진에서 본적이 있는 중국산 AK-47 소총을 미국에 수입했는데 고장이 적다고 했으며 신품을 약 200불에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한국전쟁때 사용을 했던 M-1총의 실탄과 비슷하다 직경 308/1000인치. 총알은 놋쇠로 코팅이 되어 있는데 끝이 납 그대로 인것은 목표물에 부딛혔을 적에 버섯모양으로 퍼지면서 더 넓게 구멍을 내기 위함이다. 위의 복판이 패인것은 빈탄피가 되는데 내가 타깃사격 연습용으로 사용을 한다. 내가 애용하는 90에이커가 넘는 미국인 멤버쉽 100야드 롸이플사격장. 10명이 동시사격이 가능하며 년중 무휴. 무제한. 멤버fee는 1년에 120불. 10시부터 해가 질때까지. 비영리단체[None profit organization]가 된다.
22구경 경쟁[competition]용 총과 50야드 타깃 탄착구멍을 확인하는 40배의 스코프. 거리가 워낙 머니 콩알만한 총알구멍은 보이지를 않지만 스코프를 통해서 보면 보인다. 앉아서 모래주머니위에 왼손을얹고 편하게 쏠수가 있으며 바람이 없는 날은 보이는 타깃의 흑점속에다가 50야드거리에서 육안[naked eye]로 죄다 넣을 수가 있다.
쏘고 난 탄피는 980명 멤버스스로 수거를 하여 통에다가 담는데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질서를 잘지키고 있으며 비가 온 후이어서 물이고여있다. 모든 탄피는 약실속의 갈퀴가 빈 탄피를 제거할수있게 뒷부분에 홈이 파여져 있다. 미국은 독립을 하기전 230년 전 민병대시절부터 개인이 총기를 휴대해서 지금에 이르는데 2억8천만정이란다. 장총은 실탄을 멀리까지 보내야 하기때문에 화약통이 권총에비해서 더 크다.여기에 보이는 검은것은 놋쇠가 아니어서 녹이 쓴다.
나는 대구의 서쪽에 위치한 성서의 50예비역사단의 훈련소에서 육군의 기본 6주의 훈련을 받았다. 군대의 훈련소에서는 고된 훈련에 밥은 조금씩만 주니 배고픔은 더해가고 잠이 들면 잊지 만 눈만 뜨면 먹는 생각으로 머리는 가득 차니 화재는 뇌리에는 동물의 기본적 관심사인 먹을거리로 바뀌는데 푸티아린을 아끼려고 타액조차 분비가 되지를 않아 주보(酒保,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에가 산 건빵을 입에 넣으면 가루만 입 속에 하나 가득 차있어서 물 없이는 삼킬 수가 없었다.
돈은 입소를 하기 전에 팬태의 고무줄 옆으로 돈을 꼬깃꼬깃 접어서 넣었는데 입소를 한 첫날 사회복은 모두 개어서 봉투에 넣은 후에 본가로 부치고 퇴소를 한 선배들이 벗어놓은 군복으로 바뀌게 되지만 돈은 몰래 챙기고 있었다. 훈련장에서 한여름 황토 흙 위를 기고 나면 땀과 진흙이 범벅이 되어 제복은 누렇게 되는데 소낙비로 모인 누런 저수지의 황톳물에 헹구어서 다시 몸에 걸치게 된다. 나는 동작이 남보다 조금 더 빨라서 먼저 내무반에 들어가 보니 총 진열대에는 40정의 M-1총이 있는데 어떤 것은 흰색이고 어떤 것은 검정색이어서 망설이며 잠시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아버님의 사냥총의 이름은 'ケリナ(구리나)'라는 것이었는데 일본인들이 두고 간 것을 다른 사람이 허가를 내어서 사용하던것을 그분으로 부터 사셔서 스포츠 용으로 사용하셨는데 도금이 벗겨지니 무광인 검정색으로 다시 코팅을 하셨다. 사냥에 운동을 겸했으니 그 당시의 남자오락으로는 최고이었었다.
총들이 검정색을 띠는 것은 적군이나 산짐승들에게 노출을 꺼리기 때문인데 신문기자가 사용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로 검정색이다. 나의 짧은 생각에 이 “M-1총들도 6.25사변 때부터 사용을 한 총이며 검정색은 너무 늙어서 다시 맥기를 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덜 늙은 흰색을 가지자” 하고 결정을 내렸다.
가진 후 곧 바로 내무반장 병장이 이총은 훈련소를 떠날 때 까지 자기의 소유이고 책임을 져야하니 총신에 찍힌 일련번호를 적어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정색은 닳은 부속은 버리고 새 부속으로 갈아 끼운 것들이었다. 무거운 M1총은 도금이 벗겨져 매일 닦아도 손바닥을 흐르는 땀의 소금기 때문에 녹이 쓸고 총구는 닳아서 총알을 앞쪽에 끼고 흔들면 꼭 끼어야 할 것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 말은 총구가 총알 보다 더 크니 정확도가 없는데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닌 것이다.
300m저쪽 타깃의 흑점은 버킷 크기의 검정색 원이 된다. 통제관이 한 줄로 늘어선 훈련병을 향해서 스피커를 통해서 구령을 내린다. “좌선 사격준비 끝, 우선 사격준비 끝, 전 사선 사격준비 끝, 준비된 사격선수로부터 사격개시!”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여러 개의 총으로부터 콩을 볶는 소리가 나게 된다.
좋은 총은 탕탕탕... 쏘면 되지만 정확도가 없는 총은 기계가 헐거워져 헛김이 새어 재장전이 자동으로 안 되니 구식의 총처럼 노리쇠를 후퇴했다가 재장전후 다시 눈에 대고 겨냥하여 한발씩 쏘다보면 쏘노라면 약 5배의 시간을 소요하고 위아래 옆 등 경황없이 맞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귀마개가 없으니 폭음 때문에 한동안 이명증이 생겼었는데 미국에 온 후에 사격장에 가보니 안경과 이어플러그는 필수적으로 사용을 해야 했다.
“사격 끝!” 이라는 구령이 스피커로부터 나오면 총을 땅에 놓고 뒷걸음질하여 딱 멈추어서야 되니 주어진 시간에 다 쏠 수가 없어 실탄은 남게 되고 타깃에는 구멍이 몇 개 안 되어 불합격을 맞게 된다. 자기가 쏜 탄피와 남은 실탄은 주워 모아 개수를 확인한 후 반납해야하는 것은 자살이나 하극상 방지의 목적이다.
상추쌈에 된장이 따르듯 불합격자에겐 으레 기합이 따라 와룡산(용이 누워있는 모양의 산)중턱봉우리 까지 총을 들고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조교는 몽둥이를 들고 뒤를 따르며 꼴찌를 달리는 훈련병의 엉덩이를 치게 되는데 한번 맞으면 무리 속으로 들어가 꼴찌를 면 하게 되고 다른 꼴찌가 또 맞게 되어 최고의 속도로 달리게 되며 먼지가 일게 되는데 숨이 차서 입을 벌리고 뛰면 모래가 입속으로 들어가 자그러우며 서부극에서 보는 흡사 목장에서 소 떼를 모는 것 같은 광경이 된다.
한국전쟁 휴전 후 11년을 훈련병들이 거의매일 가지고 다녔으니 총은 도금은 벗겨져 소금기가 섞인 땀에 새빨간 녹이 쓸어 갈색의 고물 총이 되어 있는데 샌드페이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닦을 것이라곤 걸레조차도 없어서 바늘로 긁적거리니 바늘은 길이가 짧아지는데 그의 매일 부내무반장 이민건 상병이 저녁 취침이 있기전의 점호때 녹이 쓴 내총을 쳐다보고는 "병기 수입(sweep;청소)지극히! 지극히! 불량!!" 이라고 하면 나도 거듭 강조 복창(復唱)을 해야 했었다.
기간병 부내무반장이 나의 명치를 지휘봉으로 쿡 찌르면 쓰러질 듯 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지 만약 않으면 가슴에 구멍이 뚫릴 판이다.
용광로 속으로 진작 들어갔어야 할 총을 지급한 후에, ‘사격과 청소’ 이 2가지의 불합격을 나무라는 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 아닌가? 훈련소는 50사단 작년인가 뼈만 찾아낸 대구의 성서에 있는 개구리 소년실종 (혹시 군이 개입 된 사건?)으로 잘 알려진 와룡산 밑 훈련소에서 받았는데 불도저로 갈아낸 평지는 청석(靑石)바닥이다.
포복 훈련 중 어떤 얄궂은 하루는 바닥을 M1 총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두 무릎과 팔꿈치(elbow)로 기는데 총의 무게와 체중 때문에 뾰족한 팔꿈치는 얇은 피부와 맞닿은 곳의 뼈가 하얗게 튀어나오고 피가 제복의 소매 속에 고이는데 고인 후에는 굳어져서 소매가 뻣뻣해지며 그 때의 아픔을 필설(筆舌)로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감내 할 수 밖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아파서 속도가 느리게 되면 “원 위치(原 位置)!” 라는 구령(口令)한마디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제자리로 돌아간 후 나는 다시 한번 더 기어야 하니 이것이 훈련이라는 것인가? 하고 내 자문자답도 해보건만 메아리조차도 없고 아무 도움 될 일은 없는데 사람을 벌레나 깨어져 흩어진 도자기 정도로 취급하니 그때의 감정은 형언 못할 사례임이 틀림이 없다.
바쁜 낮이면 잊지만 조용한 밤이면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너무도 무겁게 짓누르고 지금도 꿈에 가끔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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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여러가지로 많은 경험 역사가 대단
하십니다 늘 잘보고 물러 갑니다
한국과 14시간차이의 거리에서도.... .
인터넷은 가히 세게적이네요
살기좋은세상이긴 한데 코빋-19 쯧쯧즛!
감솨요
좋은 정보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행복한 아침이 되세요.
글에 보니까
50사단 이야기가
보이네요.
1978년 50사단 신병
교육대 교관 시절이
생각납니다.
24살 풋풋한 유군 소
위 시절이 추억으로
떠 오릅니다.
사시던 곳이 경상도이셨나요?
지금 생각하는것 개구리소년 5면살해사건은 성에굶주린
군인이 연관이된 사건이아닐까요?
범인이 5명이상이어야 가능한일같네요.
민간인 5명이 산에 있을리도 없을것이고,
저의 사견임니다.
댓글 감솨요!!
다들 힘들었던 시절의 군복무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놀라운 기억력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써내려가신 글 잘 읽고 갑니다. ^^
78년 안동훈련소에서 6주간 훈련교육을 받는데 가장 어러운 점은
10월에 입대해서 재주없게시리
1.김장 담그는데 불러가서 배추찬물에 씻는것 (강추위에 한데서 배추씻고 김치 안담아
보았으면 얘기도 하지마라요 눈물 콧물 다 떨어지고 불알이 떨어지는 느낌 이더라고요)
2.사격후 불합격해서 M-l 거꾸러 세워서 오리걸음 걷는것은 그래도 참을만 했어요
10명이 다리를 상대 목에 감고 통닭구이를 하는데 서너바꿔 굴러는데 가슴이 다
찢어지는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도 군화발로 차고 막데기로 두디리고 날씨는
춥고 정말 울려고 내가 왔나 웃을 려고 내가 왔나 노래는 시키조 한마디로 18
3.저녘먹고 쨉싸게 식판에 세척하고 밥먹은 식판에 물뜨서 세수하고 총알가치 살알짝
PX에서 보름달빵 5개 사서 번개가치 화장실로 잠입해서 벼락가치 입으로 넣는데
어느새 5개 껍데기는 낭떠러지 같은 변위에 쌓이고 그 힘으로 34개월15일 병장으로 전역 했답니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총관련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의 이야기 참 잘읽고 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