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은 근대사의 흔적을 가장 많이 간직한 도시 중 하나다. 금강 곡류부 오른쪽 기슭에 있는 강경은 북쪽의 옥녀봉과 동쪽의 채운산 말고는 대부분 야트막한 평야 지대다. 군산, 강경, 부여, 공주를 잇는 뱃길 가운데 강경이 있었다. 금강 유역 대표적인 관문도시로 많은 배가 강경을 지나쳤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모든 이야기가 강경포구를 통해 강경으로 흘러들었고, 옥녀봉이 그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옥녀봉은 하늘에서 봐도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옥황상제의 딸이 아비의 명을 어기고 내려와 놀다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다는 전설 때문에 ‘옥녀봉’이라 이름 붙었다는 말이 있다.
<옥녀봉은 높지 않은 암산이지만, 서북으로는 휘돌아가는 강에 발을 대고 동남간으로는 너른 벌판을 사이에 둔 채 계룡의 준령들과 대둔산에 뻗대어 있어, 그곳에서 보는 정경은 모난 데 없이 늘 원만하고 부족한 데 없이 언제나 풍요로웠다. > - 박범신 소설 <소금> 中
“지금 이 시간에는 사람 많아서 앉아 있덜 못했어. 에어컨 나오기 전까지는 여가 최고 좋은 피서지였지. 여름엔 얼마나 좋은 명당인데. 지금도 봐바. 바람이 시원하게 불자녀. 일제강점기엔 우리나라 사람은 있도 못했지. 여가 젤 가는 명당인게. 일본 사람들 다 차지하고, 우리나라 사람은 있을 데도 없었어.”
여든 해 넘도록 이 동네에 살았다는 김종원 할아버지는 여름이면 이곳에 오른다. 일본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그 수많은 것 중 하나가 이들에게는 ‘바람’이기도 했다. 옥녀봉에 서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한여름에도 차다. 시원한 바람마저도 일본인에게 빼앗겼던 그때가 떠오르자 김종원 할아버지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나 보다.
옥녀봉 자락에서 발길을 붙잡는 것은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둘, 내려다보이는 강과 강경 읍내가 근심을 잊게 한다. 230년 동안 자리를 지킨 느티나무도 말없이 서 있다.<펌>
제가 이 계단을 오르면서 세어봤어요
몇계단인가 하고
....
120계단이더군요
ㅎㅎ
첫댓글 계단이 나지막
힘들지는 않겠네요.
혼자서도 잘도 다니는
친구가 많이 부럽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