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태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드문 유소년 전문가이다. 2001년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디딘 뒤 23년 동안 줄곧 포항스틸러스 유스 시스템 안에서 일했다. 포항제철동초(감독, 코치), 포항제철중(코치), 포항제철고(감독, 코치)에서 모두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22년부터는 포항의 유스 디렉터로 육성 시스템을 총괄했다. 2024년에는 선수 시절부터 34년 간 근속했던 포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다. KFA 전임 지도자 계약을 맺고 17세 이하(U-17)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지난 1월 22일 2008년생의 축구 유망주들이 경주로 모였다. 31일까지 2회차로 나눠 각각 28명의 선수, 총 56명이 소집됐다. 이 열흘의 시간은 올해 U-17 대표팀 지휘봉을 새롭게 잡은 백기태 감독과 선수들의 첫 만남이었다. 만 16세인 선수들은 오는 10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아시안컵 예선을 시작으로 2025년 AFC U-17 아시안컵 본선을 거쳐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까지의 여정에 동참할 수 있다.
백기태 감독은 오랜 시간 유소년 축구에서 활동했지만 대표팀 운영에는 낯선 것이 많다고 했다. 현 시점의 난제는 소집 일자다. 대표팀 규정상 연간 총 50일을 소집할 수 있는데 국제대회와 친선대회 소화를 위한 20일을 빼면 올해는 30일 간 훈련을 위해 선수들을 모을 수 있다. 그 시간을 얼마나 의미있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백기태 감독은 “이전이라면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선수들과 훈련하고 소통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 제한이 있다는 것부터 적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유스 디렉터로 일한 2년 동안 다소 무뎌진 현장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유망주들에 대한 파악도 다시 해야 한다. 다행히 KFA의 전임지도자 시스템에서 꾸준히 관리한 리스트가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소집 명단도 그 리스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도자 시절 내내 지켜 온 성실함은 현장 감각 회복을 최대한 빠르게 되돌려줄 자산이다. “몸이 다시 바쁘게 움직일 때죠”라는 그의 담담한 말처럼.
백기태 감독은 U-17 대표팀과 함께 긴 여정에 올랐다
포항이 키운 유스 전문가, 연령별 대표팀으로
포항은 백기태 감독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다.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 부경대 시절 1년을 제외하면 선수와 지도자로서 삶의 터전이었다. 성장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제 지도자로서 또 다른 성장을 위해 집 밖으로 한발짝 나왔다. 그것이 백기태 감독이 전한 연령별 대표팀 감독 부임의 소감이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연령별 대표팀 운영에서 분위기 전환과 신선한 반향을 원했다. 기존 전임 지도자가 아닌 외부에서 유소년 전문가를 찾았다. 그렇게 시야에 들어온 인물이 백기태 감독이었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구조와 철학을 정리해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이임생 기술발위원장이 백기태 감독을 긴 시간 관찰한 것이 시작이었다.
“작년에 P급 지도자 강습회 중에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임생 위원장님이 강사로 참여하고 계셨는데 긍정적으로 봐주신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포항을 떠나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라 바로 결정하진 못했죠. 고민의 시간이 있었는데, 연령별 대표팀은 제가 하고 싶다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선수 시절 연령별 대표 한번 못해봤으니 지도자로라도 이 기회를 잡고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격려와 응원을 해 주셔서 어렵게 결정했습니다.”
선수로 11년, 지도자로 23년. 총 34년 간 근속한 포항은 편안한 곳이었다. 굳이 무언가를 더 증명하지 않아도 인정을 받았다. 반면 U-17 대표팀에서는 새로운 증명을 해야 한다는 큰 부담감이 있다. ‘익숙하고, 능숙했던 우물 밖에 나와서도 성과를 낼 것인가’라는 의문에 답을 해야 한다.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부터 증명하기 위한 도전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에 대해 백기태 감독은 개인과 지도자로서의 인생이 이어지는 접점을 찾았다.
“포항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성장시켜준 집입니다. 하지만 한곳에 머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 않을까요? 유스 디렉터로 역할이 전환된 뒤 현실적 고민이 컸습니다. 아직은우리 유소년 시스템 안에서 디렉터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대한 그리움이 슬슬 생길 타이밍에 지도자 보수교육, P급 강습회 등에 참석한 것이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그러다 이런 기회를 얻었죠. 다른 팀에 가는 건 아니고, KFA의 부름을 받은 것이니 포항 구단에서도 좋게 생각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도 역량과 경쟁력을 키우고, 나중에 다시 포항에 와서 좋은 역할 하겠다는 심정으로 결정했습니다.”
감독으로 돌아오기 전 경험한 유스 디렉터는 지도자 백기태에게 더 넓은 사고와 시야를 심어 준 시간이었다. 현장 지도자는 선수들의 교육과 육성에 집중하다 보니 더 나은 환경과 지원을 기대한다. 지도자의 요청을 구단이 다 받아주길 바라는 심정도 컸다. 디렉터로서 구단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다 보니 다른 시야를 갖게 됐다. 재정 규모에 대한 파악,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고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선수의 이적 목적, 전체 예산과 운영비의 상관 관계, 그에 따라 유소년에 투자하는 것이 어떤 방향의 성과로 돌아와야 하는 지도 이해했다.
“현실적인 감각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집안 살림을 이해하게 된 거죠. 지도자가 계속 보채기보다는 그 현실을 이해하고 최선의 방법을 빠르게 찾는데 집중하고, 그 목적을 갖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KFA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펼쳐질 거라 봅니다. 전임지도자 계약을 하고 KFA에 들어온 지 한 달 가량 됐습니다. 빨리 흐름을 이해하고, 대표팀 운영을 위해 필요한 소통에 더 신경써야 할 거 같습니다.”
포항에서만 34년 간 근속하며 유스 전문가가 됐다
어린 선수를 관찰하고 성장시키는 노하우
백기태 감독은 긴 시간 동안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 선수들은 한국 축구를 단단하게 만드는 주역이 됐다. 오범석, 황진성을 시작으로 신진호, 이명주, 김승대, 손준호, 황희찬, 고영준, 홍윤상, 김용학 등이 대표적이다. 유스 전문가라는 표현이 쑥스럽다고 말한 그는 자신의 성과가 아닌 포스코 교육재단의 지원과 포항 구단의 체계화된 시스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 많은 이들의 헌신이 담길 결과라며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한 것은 어린 선수들의 완성되지 않는 재능을 발견하고, 함께 완성해 나가는 데 백기태 감독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10대 초중반의 변화무쌍한 시기를 잘 넘기고 성인 단계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한 방법론과 노하우에 대해서는 백기태 감독을 넘을 지도자가 많지 않다.
“변수가 정말 많은 나이대의 선수들이죠. 좋은 선수가 되려면 그 변수 속에서도 태도와 집중력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재력이 있어도 꾸준하지 못하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10년 이상의 성장 시간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가정에서 부모님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좋은 태도와 집중력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그 나이대의 특출난 선수들, 예를 들어 연령별 대표팀을 다녀온 선수들이 팀에서 으쓱댈 때 어떤 방향을 잡을지 고민합니다. 지금까지 본 무수한 선수들의 사례를 종합하면 그 빛나는 순간은 언제든 뒤집힙니다. 그런 얘기를 해줍니다. ‘좋은 걸 가진 네가 친구들을 이끌어줘야 한다. 왜 친구들이 이렇게 느리냐며 답답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요. <거북이와 토끼>의 토끼가 돼선 안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역전당합니다. 토끼는 토끼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게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초등학교 때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게 도와야 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중 어느 시기에 잠재력이 터질지 모릅니다. 그 의욕에 좋은 자극을 줘야 합니다.”
“10년이 넘는 성장의 레이스를 보면, 지금 당장은 실력이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하는 선수들을 결국은 못 당합니다. 부족한 걸 인정하고 오히려 한발 더 뛰고 적극적으로 하려는 선수들이 나중엔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구라는 종목은 팀이 다양한 역할을 원하는데, 거기에 맞는 선수도 나와야 합니다.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조연도 언젠가 주연이 됩니다. 그래서 성장할 때 옆에서 귀찮은 소리를 해줘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그래야 좋은 방향으로 갑니다. 코치들과 같이 케어해야 하고요. 제가 혼내면 코치들이 가서 달래주고요. 그 역할이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나쁜 쪽으로 빠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장은 감독 혼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잘 협업해야 하고 축구팀에서는 감독, 코치가 그래야 하죠.”
수백명의 제자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백기태 감독은 바르게 성장한 선수들보다, 굴곡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선수들이 더 생각난다고 얘기했다. 그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2023년 K3리그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제갈재민이다. 제갈재민은 2021년 K리그1 대구FC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이후 K3리그를 거쳐 지난해 FC목포에서 맹활약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제갈재민은 포항제철동초 감독 시절 백기태 감독이 함께했던 선수다.
“재민이가 왜소했어요. 결국 포항제철중으로 진학을 못했지요. 하지만 빠르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도 차분한 선수였어요. 다른 팀으로 갔지만, 재민이는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빛을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많은 선수들의 귀감으로 꼽히죠. 이번에 상무에서 제대하고 포항으로 돌아온 김륜성도 생각납니다. 포항제철고 감독 시절 동계훈련 중에 갑자기 축구를 하기 싫다며 그만두겠다고 한 겁니다. 본인이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작가나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해요. 분명 축구도 곧잘 하는데 고2 때 고민이 온 시기였나 봐요. 그래서 한달 간 아무 말 안할테니 동계훈련을 해 보라고 했는데 그러고도 본인 확신이 안 섰던 거 같아요. 마침 그때 김정수 감독님이 U-17 대표팀에 소집했어요. 거길 다녀오더니 마음이 정리됐고, 지금은 선수 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죠. 그런 외부 요소도 어려운 시기를 넘는 힘이 됩니다. 요즘은 제가 장난으로 시 한편 써달라고 해요.”
“한 명 더 추가하면 부천FC의 김선호. 아픈 손가락이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자신이 당연히 경기를 뛴다 생각했어요. 노력이 아쉬웠죠. 결국 금호고로 전학을 갔어요. 나갔을 때는 저를 원망할 수 있지만, 옆에서 관찰하는 사람은 그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게 터닝포인트가 된 거 같아요. 다행히 선호가 그 순간을 잘 이겨내고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잘 안 된 제자들이 더 많이 생각나요. 그 선수들이 저와 함께 하진 못했어도 다른 팀에서 포기하지 않고 성공하면 더 고맙고 대견스럽죠. 목적지는 같아요.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조금 느린 거죠. 그 과정에서 지겨울 정도의 일관성을 지켜야죠. 그걸 성실함과 집중력, 적극성으로 이겨내야 해요.”
좋은 자질을 지닌 선수를 성장시키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순간을 백기태 감독은 ‘감전’과 ‘파도’라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설명했다. 지도자가 선수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거나 작은 성과에 들뜬 순간마다 새로운 자극을 줘야 한다는 차원의 의미다. 자극을 주는 것 외에도 지도자 역시 끈기를 갖고 그 선수가 좋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것이 감독 백기태의 원칙이다.
“선수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결심과 노력, 그걸 지도자가 끌어내야죠. 저는 그 순간의 계기를 ‘감전이 된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확 바뀌는 타이밍이 있어요. 밖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중요한 것은 선수가 내부에서 파도가 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파도가 치려면 바람이 불어야죠. 지도자는 그 바람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수도 더 크게 움직입니다. 지도자의 끈기도 필요합니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고, 가끔은 자존심을 눌러주기도 하고요. 선수 성향마다 접근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일종의 촉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정답이라고 정립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아, 이 선수는 될 거 같다. 이것만 바꾸면 될 거 같다. 그러면 불러서 그 안에 나무를 심어줘야죠. 그 나무가 크는 동안 나쁜 가지는 쳐 주고요. 제 품을 떠나더라도 그런 동기부여를 갖고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클 수 있게 해야죠.”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17세 전후의 선수들은 어떤 연령보다 변수가 많다. 기술, 피지컬, 멘탈이 급성장하며 성인 수준에 근접한다. 그러나 완성이라 표현하긴 어렵다. 성숙하는 만큼 예민한 시기다. 육체의 성장 속에 부상 빈도가 늘어난다.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과신하다 몸과 마음이 다치기도 한다. 감정 조절과 심리적 상태에도 어려움이 있다 보니 경기력이 일관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스스로의 원칙과 믿음에 혼란이 오는 시기. 백기태 감독은 이 때를 ‘미온적 시기’라고 설명했다.
“여물기 직전입니다. ‘중2병’에서 탈출해 철이 들긴 하는데요.(웃음) 그래서 선수들에게 말을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진 않아요. 되도록이면 둘이 있는 상황에서 말을 하고, 모두 앞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선수도 자아가 굉장히 많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지도자와 선수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거기서 이기기 위해 간극을 점점 좁혀가는 거죠. 선수들은 감독보다 코치, 의무 트레이너 선생님들과 대화하기 더 편할 수 있어요. 그분들을 통해 지금 저 선수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이해하고, 그걸 제가 긁어주는 방식도 있습니다.”
U-17 대표팀의 방향, 그리고 백기태호의 역할
한국 축구는 U-20, U-23 연령에서는 괄목성장을 이뤄냈다. U-20 대표팀은 2019년 U-20 월드컵 결승 진출, 2023년 U-20 월드컵 4강 진출을 달성했다. U-23 대표팀은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고, 최근 두 대회에서도 모두 8강에 올랐다. 반면 U-17 대표팀은 성과의 고저 차이가 크다. 역대 세 차례 월드컵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8강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조별리그 탈락과 본선 진출 실패도 많았다. 성인 단계의 연결 고리인 U-17 대표팀이 더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한국 축구 전체의 과제기도 하다. 백기태 감독이 보는 해당 연령대의 고민은 무엇일까?
“국제 경험이 중요한 시기인데 U-17 연령대에 공백이 많은 편입니다. 해외에 나가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문이 좁잖아요. 고등학교 안에서는 연령별 대표팀에 뽑혀도 해외 친선대회 한번 나가기 어렵죠. 우리는 고교, 대학까지는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성보다는 ‘축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틀 안에 가두죠. 반면 해외의 선수들을 보면 17세 정도 되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도전합니다. 축구가 훨씬 주도적입니다. 우리는 19세는 넘어야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오죠. 그 타이밍의 차이에서 우리가 고전한다고 봅니다.”
세계 축구는 점점 평준화하고 있다. 아시아 축구도 마찬가지다. 일본, 중국, 중동은 물론이고 최근 동남아 국가와의 맞대결도 한국이 우위를 잡기 쉽지 않다. 축구의 전반적인 인프라, 환경, 시스템 수준이 올라간 탓이다. 선수를 배출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인구 수도 잠재력이 된다. 거기서 나오는 재능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백기태 감독은 “그런 것을 감안하면 한국 축구는 지금 상당히 잘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연령별 대표팀은 과정이 돼야 하는 동시에 스스로 성과도 이뤄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안고 있다. 올바른 과정을 좇아 결과를 낸다는 도전이다. 백기태 감독은 그것이 자신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싶죠. 그런데 그것만 쫓아가면 안 됩니다. 결국 한국 축구를 위한 선수의 성장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게 되면 성적도 나옵니다. 성인으로 가는 과정이기에 성장과 발전에 중점을 두고, 그리고 성과를 내기 위해 모두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력을 해야죠. 사실 결과는 보너스라고 생각해요. 이기는 것에 치우치면 안 되고, 여기서 나온 선수들이 상위 연령별 대표팀에 많이 올라가는 게 진짜 성적이 아닐가요? 4~5년 뒤 이 선수들이 어느 지점에 가 있는지가 제 성과인 거죠. 포철고 감독 시절 지도한 선수 중 5명이 황선홍 감독님이 이끄는 U-23 대표팀에 가 있어요. 그런 게 저의 성과이고, 자부심이라 생각합니다. U-17 대표팀에서도 그걸 지향하려고요.세계 축구와의 경쟁을 통한 발전도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선수들에겐 정말 좋은 기회예요. 빠르고, 용감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경기가 KFA의 축구 철학입니다. 그 철학을 따르며 승리하는, 효율적인 축구를 하고 그걸 통해 새 역사를 쓰는 게 목표입니다. 일단 올해 있는 아시안컵부터 잘 치르고 세계 무대로 가야죠.”
경주에서 진행한 첫 소집 훈련에는 새로운 코칭스태프와 함께 했다. 김현준 코치, 조용형 코치, 양영민 GK코치, 정현규 피지컬 코치가 각자 역할에서 백기태 감독을 도왔다. KFA 전임지도자의 인력풀 안에서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다 보니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됐다. 백기태 감독은 “허물없이 소통하고, 일한 것을 공유해야 한다”면서 “코칭스태프끼리도 (관계가 무르익기까지)시간이 필요하니까 쉽진 않겠지만 전문성을 갖고 채워주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수 선발 과정에는 KFA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U-17 대표팀 뿐만 아니라 모든 전임지도자들이 가진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FA에서 환경을 잘 만들었습니다. 선수 선발은 기술만 보고서 하는 건 아니죠. 그 선수의 캐릭터와 태도도 알아야 하니까 그걸 잘 파악하고 짚어야죠. 이 나이대는 3~4개월 만으로 성장의 속도가 다릅니다. 예비 명단에 있는 선수들의 성장도 휴식기에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얼마든지 역전하는 선수들이 있으니 전임지도자들께 부지런히 묻고, 저와 코치들이 돌면서 확인할 겁니다. 중도에 전학이나 이탈이 발생해도 계속 추적하고, 관찰해야 합니다. 저 혼자만의 눈으로 다 채울 순 없기 때문에 연령별 전임지도자 분들의 데이터를 활용할 겁니다. 그렇게 뽑은 선수를 원팀으로 만들어야죠.”
백기태 감독 개인을 넘어 한국 축구 전체에서도 중요한 도전이다. 스타플레이어와 거리가 멀었지만 부지런히 외길을 걸어온 축구인이 성공하는 것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더 큰 등정을 바라는 대다수 지도자에게 용기와 도전 의지를 심어줄 수 있다.
“저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지도자를 시작한 분들이 훨씬 더 많죠. 제가 잘 되든 못 되든, 이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게 그런 노력을 하는 분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하는 것도 있고요. 그게 제가 이 자리로 오는 결론의 중요한 배경이 됐죠. 아직은 돌아가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뭔가 사고의 회로가 엉켜 있습니다.(웃음) 과부하로 폭발할 거 같아요. 포항에서 수십년간 만들었던 익숙한 회로가 그립기도 합니다. 이 힘든 시간이 저를 더 성장시켜 줄 거라 믿습니다. 늦깎이 전임지도자지만, 뭔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하고 감사합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2월호 ‘LEADERSHIP’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서호정
사진=이연수,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