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수업 105> 인간 두뇌의 공통 특징을 이해하기
중생이란?
붓다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법法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법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만물은 다시 생물과 무생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생물을 10가지 카테고리인 십법계十法界로 구분합니다. 성인에 해당하는 사성四聖과 범부에 해당하는 육범六凡을 합하여 10가지 구분을 한 것인데, 이 사성과 육범을 구분하는 차이가 생에 대한 속박의 여부입니다.
사성은 생물일 수 있지만, 생사로부터 자유로워진 해탈을 이룬 존재인 반면 육범은 아직 생의 흐름에 묶여 있습니다. 이러한 속박에 따라 성범聖凡의 차별을 둔 것입니다. 생에 속박되어 생의 강렬한 흐름인 윤회에 쓸려다니는 범부들을 중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핵심이 생生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다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6가지로 구분됩니다. 이는 의식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 구분인데, 단 하나의 강력한 공통점은 바로 생존본능입니다. 이것이 중생 고유의 특징인 생에 대한 속박의 정체입니다.
중생의 제1목적, 생존전략
사람들은 스스로를 동물과 다르다고 착각합니다. 물론 다른면이 있지만 분명히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이 있기에 착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을 공유하고 있을까요? 중생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생존본능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신체적, 심리적 작용들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셨나요?
‘화내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게 이해하는데, 조절이 참 어렵다!’
인간이 종종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인 동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심리 작용의 계층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3층으로 표현하면 ‘생각, 감정, 본능’입니다. 생각을 바꾸기가 가장 쉬운 이유는 가장 바깥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배후에는 감정이 있고, 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본능입니다.
이를 좀 더 세분화하여 5층으로 표현하면 ‘생각, 감정, 본능, 생존본능, 자아관념’입니다. 3층의 구조에서 생존본능과 자아관념을 더했습니다. 생물 그리고 중생이라면 모든 본능들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단연 생존본능이기 때문에 특별취급하여 다른 본능과 구분을 해봤습니다. 더불어 이 생존본능의 뿌리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자아가 실재한다는 착각인 자아관념을 명시했습니다.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국 이 다섯가지를 뜻대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에서 머무릅니다. 종종 소수의 사람들이 감정을 변화시키는 도전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본능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생존본능을 극복하고 자아관념을 지워버린 아라한이 탄생하는 확률이 1,000만 분의 1정도인 이유는 그만큼 의식의 깊은 부분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전략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는 생각들의 대부분과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과 행동들은 모두 생존을 위해서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단순하게 동물이자, 인간 그리고 중생인 나의 심리작용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보려면 신체와 정신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두뇌가 어떤 상황에서 발전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호모사피엔스는 빌딩숲 도시가 아니라 야생의 숲에서 등장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현대 한국사회와는 다르게 야생의 숲을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생존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내일 숨쉬기 위해서는 사투를 벌여야 했던, 숲 속의 약자 인간의 두뇌는 그 조건에 걸맞게 진화할 수 밖에 없었는데, <붓다브레인>에서는 두뇌가 선택한 생존의 전략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둘째, 피아彼我를 철저히 구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셋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안정을 추구한 이유는 인간은 사자와 달리 약자였기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위협을 당하는 인간은 거주지를 자주 이동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되도록 한 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방어책을 마련하며 머무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두뇌는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만약 토끼가 늑대와 자신을 분별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늑대의 아가리에 스스로의 머리를 집어 넣게 될 것이고, 이런 특징은 개체의 생존이 아닌 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 역시 토끼와 같은 약자였기에, 철저하게 자타를 분멸하고, 적아를 판단하는 능력이 두뇌에 새겨지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음식물이 남아 돌아서 문제입니다. <음식물쓰레기전쟁>에서는 과일과 채소 생산량 중 45%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최악의 범죄를 고발합니다. 이를 비롯하여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아직도 기아에 시달리는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을 넘어선다고 말합니다.
야생의 인류는 음식이 여유로운 지금과 달리 항상 모자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보면 무조건 먹어둬야 했습니다. 이것이 먹는 것에 대한 쾌락추구의 성향을 남기게 됩니다. 더불어 유아 사망률이 극도록 높았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종의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종족번식을 위해 섹스에 대한 쾌락의 보상 시스템도 강렬했을 것입니다. 이런 쾌락 추구 시스템은 수면과 소유물 획득, 새로운 정보의 추구 및 집단 내 명성을 얻는 것을 부추겼는데, 이는 모두 생존에 유리한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흔적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망 원인은 질병, 그 중에서도 암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현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호모사피엔스 전체를 놓고 본다면 암으로 죽은 인간은 극히 소수입니다. 대다수의 인간 즉, 99.99%의 인간은 네 가지 원인 때문에 사망했음을 <인스타브레인>에서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99.9%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 우리 선조들은 기아, 살인, 탈수, 그리고 감염증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생존을 위한 전략 중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위험 회피 전략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면, 이것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생존률은 급격히 높아지니까요. 기아와 탈수 그리고 살인과 감염증이라는 사망 원인을 피하기 위해서 두뇌는 두 가지 감정을 연결시켰습니다.
첫째는 기아와 탈수의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한 쾌락 추구이고, 둘째는 살인과 감염증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거부하는 안정 추구입니다. 이러한 인간 두뇌에 남은 생존 전략의 흔적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전략과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 모든 특징들이 결국은 자아관념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생에 대한 집착이고, 이에 속박되어 있는 중생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심리적 특징은 결국 배고픔과 두려움 그리고 기다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도록 만드는 배고픔, 낯선 사람과 상황을 피하고 싶어하는 두려움 그리고 이를 넘어서 안심이 다가오기를 수동적인 기다림입니다. 왜 추구하지 않고 기다리냐구요? 말했다시피 우리 두뇌는 본능을 역행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본능에 순응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내가 -> 뇌가 -> 조건이
신체와 정신 그리고 두뇌에 대해서 배우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역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을 넘어 감정을 변화시키고, 본능에 역행하여, 자아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의 여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완성할 때 자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죽음은 유일한 진짜 죽음입니다. 환상에 불과한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죽기 위해서 온 삶을 다 걸고 수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모든 고통의 순환 고리를 끊어버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와 관계 없이 결국은 터지게 될 고통의 시한 폭탄 신세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조마조마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쳤다면, 목숨 걸고 자아의 죽음의 길을 걷는 한판 승부를 해볼만 할 것입니다.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려운 수행의 원리는 설명을 마쳤으니 가장 쉽게 연습할 수 있는 언어 수행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호칭을 바꿔보는 것입니다. 남들과 대화할 때 적용하면 미친 사람 보듯이 할 수 있으니, 속으로 생각할 때 먼저 적용해보시기를 권장합니다.
대부분 ‘내가’라는 말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이를 ‘뇌가’라고 바꿔보세요. 사람들은 흔히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가 느끼고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분명해지는데, 나는 멀쩡하다고 느끼지만 뇌가 병적인 현상을 일으켜 당황하도록 만드니까요. ‘뇌가’로 바꿨다면 다음으로는 ‘조건이’로 언어를 바꿔보세요. 뇌 역시도 단독으로 경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뇌에게 주어지는 조건이 화합하여 경험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어를 ‘조건이’로 바꾸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붓다가 말씀하신 연기의 진리대로 생각하고 말을 하는 연습이 된 것입니다. 말을 바꾼다고 생각이 온전히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감정이나 본능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말을 바꾸면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불어 감정이나 본능에도 작지만 영향을 미칩니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라도 반복해서 떨어지면 바위를 뚫어냅니다. 언어를 바꾼다는 작은 영향력을 반복한다면 행복한 삶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면에 대한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ㅣ 수면혁명ㅣ 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https://youtu.be/WYsFZkXZZ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