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와 스페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영희의 눈물이 마를때까지, 내가 함께 하겠다고 효정이와 약속했는데
영희는 ,몇달이 지나도록 도무지 울 생각을 아니하고,
저는 다시 학교에 나가 원래 담임선생님이 도망갈 정도로 말 안듣는 6학년 아그들에게
천하에 둘도 없도 독종 마귀할멈역을 맡아 한다는 핑계로
영희를 챙기지 못하는 동안 저 멀리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한국인 신부님이 영희기사를 뒤늦게 보시고, 신정3동 성당으로
"효정이 부모님께"라고 쓴 편지를 보내 오시고
영희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힘든 나날을 버텨왔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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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가족을 한번 오라고 말씀 하신 걸 기회로 삼아
고3 담임을 맡은 영희남편과 알바 학교M.T와 수강신청등으로 일정이 맞지 않는 작은딸 진영이를
대신하여 내가 가주겠다고 선심을 쓰고..
비행기만 타고 오면 관광 숙식 다 해결해주시겠다 하셨다지만 마음만 받기로 하고
2박 3일 꼬박 인터넷을 뒤지고 조사 검토한결과
사라고사를 경유하는 여행사 패키지를 선택했지요.
그리고 무조건 밀어붙이기!
그리고 모든 것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사라고사 천병규 파스칼 신부님
군대에서 영세 받으시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공동체에 들어가
10년동안 함께 사시다가, 나이가 많아 한국에서는 신학교입학이 불가하여
로마에서 신학공부를, 사라고사 신학교에서 신학 철학을 하여 서품을 받고
현재 스페인 사라고사 교구에서 본당을 맡아 사목하고 계신분이었습니다.
사제관은 프란체스코수도회 분들이 거처하는 3층 슬라브집 3층이었는데
낮최고기온 48도를 기록했던 그날 한밤중에도 35도였는데
선풍기도 없이 ....
한인 성당은 없고 한인교우는 2가족이었는데 다 한인교회로 가고
(교우 대부분이 집시인 달동네본당이고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한국 식당은 물론 가게도 없는데, 일주일 전에 차로 네시간 걸리는 바르셀로나에서
반찬거리를 사오시고 김치도 담궈 놓으시고...
마침 우리가 사라고사에 도착한 날이 신학교 동기인 친구의 (나이는 천신부님과 17살차이)결혼식
오후 5시반에 시작한 혼인 미사만 두시간
잠시 학교 운동장을 빌려 땡볕에서 (스페인은 해지는 시간이 9시?) 간식과 사진촬영 세레머니을 9시까지
초대받은 사람들만 버스를 타고 , 어린이대공원 같은 곳으로 이동하여
자기 이름이 적힌 식탁에 앉으니( 제이름은 영희가 늦게 알려줘서 마리아로,,)
사라고사 신학대 신부님들과 한자리
11시부터 저녁식사 한접시 가득 나와서, 배고픈 김에 허겁지겁 먹다가 조금 남겻는데
그건 에피타이저~( 새벽1시까지 계속되는 풀코스 정식의..)
3시에 버스로 데려다 주고, 파티는 5시까지 계속 된다고..
우리는 디저트 나오고도, 무슨 칵테일 하겠냐고 일일이 적으며 주문받으로 다니는 1시에
택시불러 신부님 댁으로 왔지요. 그런데 집이 어찌나 더운지...
잠 못이룬 밤을 보내고 맞은
주일 아침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지체부자유자 학교내에 있는 수녀원에 가서
수녀님들과 효정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내내 영희는 울지 않고, 저만 흘러 넘치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쩔쩔매었지요)
수녀님들과 담소시간을 가졌는데, 통역말씀이 대부분 너무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였지요.
그도 그럴 것이 제일 젊은 수녀님이 65세였고, 한국인은 천신부님외에 본적이 없었기에..
신부님은 본당미사 집전을 하시고 오시자마자, 앞치마 두르시고
점심상을 한상 가득 차려주시고
댓병에 들은 사라고사 맥주 (정말 일품~)한병을 다 비워내면서
대화의 시간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기차AVE( 우리로 치면 KTX)를 타고
바르셀로나 까지 ...그리고 작별.
영희가 여행 사진을 보낸 메일에
효정이가 너무 보고싶다 라고 답장했네요.
어쩌겠습니까?
그분이
사라고사의 신부님을 영희에게 보내주시어 위로와 평화를 주셨고
그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오가는 여행길 내내,
아니 효정이를 데려가신 그날부터, 앞으로도 계속
그분이 함께 하시고
그분 품안에 효정이가 안겨있을 거라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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