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의 인수봉 초등루트를 따라서
아처는 북면-고독의길-영자크랙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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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가운데서 인수봉을 최초로 오른 사람은 누굽니까?"
예전에 열린 경기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결선까지 진출한 바 있었던 김운형씨의 질문이었다.
외국인이 인수봉을 처음 올랐고, 그의 등반기가 크게 다루어진 것이
영 마땅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특전사 클라이밍 부대에 입대 예정인
이 미남형의 젊은 클라이머가 인수봉에 대해 갖는 관심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미 아처의 인수봉 등반기를 상세히 읽어본 모양인지 인수봉 북면에서 등반이 가능할 것 같은 크랙을 금방 골라냈다.
언뜻 보기에도 북면 우측의 크랙은 중간중간에 잡목이 많이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수봉 북면 크랙을 찾아서
"등반기록에만 의존해서 루트를 찾는다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아처 기록에 정작 등반 루트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은 한 페이지도 안되잖아. 66년 전의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둬야하는 거야. 아처 일행이 인수봉 북면을 오르자면 당시의 장비와 등반 기술 수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루트는 가장 쉽고 짧은 것이 맞아. 슬랩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못되고 크랙 아니면 침니야."
이용대씨는 굵은 나무에 슬링을 단단히 걸고서 김운형시의 확보를 보았다. 그러나 김씨가 선등하는 크랙은 아처는 커녕 스포츠클라이머가
올라가기에도 벅찬 곳이었다.
위에서 한참 끙끙거리며 힘쓰는 소리가 들렸다. 잡목이 무성해서 무난히 오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크랙은 20미터쯤 올라간 곳에서 부터
급경사에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어서 더 이상 등반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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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취나드 A?"톱을 서던 김운형씨의 팔에 펌핑이 날 정도로 어려운 곳이었다. 물이 흐르지만 않아도 통과할 수 있는 크랙인데, 장대와 갈고리에 의존한 당시 아처 일행의 등반 기술로는 전혀 불가능한 곳임이 판명됐다.
밑에서 확보를 보던 이용대씨와 상의 끝에 일단 자일을 나무에 걸고 하강해서 출발지점까지 내려간 후 다른 루트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내려가서 보니 겨울철에 빙설벽을 이루는 이곳 일대 크랙과 페이스는 원정대의 믹스 클라이밍 훈련자인 듯 했다. 암벽 표면에는 아이젠과 피켈에 찍힌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탐사팀이 출발지점에서 왼쪽으로 삼사십미터쯤 가파른 경사의 잡목지대를 횡단하는 도중 제법 모양을 갖춘 크랙이 나타났다.
"아니, 아처 선생은 왜 루트 개념도 같은거 하나 그려놓지 않았대? 그래서 이 고생 하는 거 아니야. 만장봉은 사진에다가 점선으로 등반했던 루트를 표시해 놓아서 쉬웠는데 말이야."
이씨는 지난 1986년, 아처의 만장봉 등반기를 토대로 하여 산서회원들과 함께 당시의 장비와 복장으로 아처의 1930년 만장봉 등반을 재현한 바 있었다.
침니에서 낙석에 맞을 뻔하기도
조금 오르니 크랙은 칠팔미터 가량의 침니로 연결됐다. 오른쪽으로 누운 침니인데다 낙석의 위험성가지 있어서 잡목지대로 벗어나려는 순간 앞장서 오른던 이한구 기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낙석!" 이기자는 막 굴러떨어지려는 오륙십센티미터 가량의 길쭉한 바위를 붙잡고 있었는데 팔을 조금 다친것 같았다. 정통으로 맞으면 헬멧도 소용없는 바위였다.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침니를 우회해서 올라섰지만 잡목지대가 끝난
지점 부터는 등반이 불가능한 페이스였다.
"여긴 지금 수준으로도 볼트 연타해야 가능한 곳인데, 어렵겠지?"
탐사팀은 그 지점에서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횡단해서 내려가 등반 가능한 크랙을 찾기로 했다. 이씨가 앞장서서 방향을 잡고 잡목지대를 내려가던 도중 멈췄다. 60도 이상 경사에 폭 사오미터 정도의 슬랩이 가로막고 있었다.
바위는 생각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암벽화 밑에서 조금씩 부스러졌다.
그만큼 마찰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 정도 경사에서는 추락할 위험성이 컸다.
그러나 톱을 선 김운형씨는 유연한 동작으로 슬랩을 횡단했다. 중간에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군데군데 발달한 밴드가 비교적 단단해서 좋은
홀드가 됐다.
"만약 아처가 기록한대로 크랙으로 올라갔다면 바로 이 부분이지. 더
이상 왼쪽으로는 갈 수가 없는 페이스야. 자일 하강도 안되고.... 이쪽부터 훑어나갈 걸 그랬어. 하여튼 인수봉 오르면서 항상 이쪽이 궁금했는데 오늘 원없이 뒤져 보는군. "
이용대씨의 지적대로 탐사팀은 인수봉 북면의 왼쪽 가장자리에 와 있는 셈이었다. 방금 횡단한 슬랩은 아래쪽으로 십여미터 더 뻗어있고,
이 슬랩의 왼쪽으로 붙어서 등반 가능한 크랙이 나 있었다. 아처가 얘기했던 '가파르고 좁은' 크랙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잡목이 많기 때문에 자일을 묶을 필요없이 탐사팀은 각자 크랙을 따라
올라갔다.
앞서가는 이용대씨의 주력은 20대 청년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적인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다른 탐사대원들 역시
나름대로 익힌 등반기술을 활용하면서 인수봉 북면을 종횡으로 누빈다는 게 기존의 루트 등반보다 대단히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임이 분명했다.
하긴 평일인데도 쉽사리 꾸려진 탐사팀이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두번 하면서 탐사팀은 어느새 인수봉 북면을 거의 횡단했다. 귀바위 천장이 보이니 고도도 꽤 높아진 셈이었다.
잡목지대를 오르다 보니 니콘 카메라 렌즈 캡이며, 초크통 등이 발견됐다. 아마도 귀바위쪽에서 떨어뜨린 것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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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길과 만나는 북면루트
"아, 북면 루트가 여기서 만나는구나, 빨리들 올라와 봐."
먼저 올라선 이용대씨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곳은 바로 고독의 길이었다. 탐사팀은 드디어 아처가 66년전 오른 인수봉 북면의 크랙과 잡목지대를 확인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단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김운형씨의 질문에 이용대씨는 아처의 등반기 중에 바로 명백한 근거가 나옴을 제시했다.
"아처는 북면 루트를 통해 인수봉을 오른 후 몇 차례 더 등정하면서 바로 이 지점 '아래쪽에 재미있는 자연 동굴루트'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잇지. 바로 그 기록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루트들'이 '위쪽'도 아니고 '아래쪽'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야. 아래쪽은 북면 루트와 고독의 길이 만나는 지점의 아래쪽을 의미하지."
"그렇다면 아처는 나중에야 지금의 취나드 A코스 출발지점에서 시작하는 고독의 길의 존재를 알았다는 얘기가 되네요. 고독의 길은 처음 와보는데 정말 동굴이 있어요?"
탐사팀이 잠시 쉬면서 90퍼센트의 성공을 자축하는 사이, 아래쪽에서
누군가 올라오는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동굴 위쪽으로 난 바위틈을 통과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초행길인 모양이었다.
"처음 오신 모양이죠? 길 다라서 쭈욱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부터 길은 오로지 외길이니까."
이용대씨의 훈수는 가장 정확한 것이었다. 탐사팀이 서있는 북면 루트
합류점부터 귀바위 밑까지 올라가는 도중 다른 탈출로는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럼 동굴도 가서 한 번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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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영씨가 개척한 FM1길 역시 전시가 첫눈 오름을 시도했다. FM1은 등반길이 25미터에 왼쪽방향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바윗길이다. 모두 여덟개의 볼트가 있다. 첫번째 볼트는 110도 가량의 오버행 위에
있어 팔힘으로 꺾고 여기에 퀵드로를 걸어야 한다.
고빗사위는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볼트 사이다. 120도 가량의 오버행이 가로막고 있는 부분에서 언더크랙의 측면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여기서 시간을 좀 지체하던 전씨는 레이백 동작을 취하면서 오버행을
통과해 일곱번째 퀵드로를 거는 데 성공했다. 지켜보던 가족과 일행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다.
거기서 전씨는 여덟번째 볼트가 너무 가까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생략하고 마지막 아홉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었다. 마지막 볼트와 하강 피톤 사이는 오버행이긴 하지만 언더크랙이 있어서 슬링을 쉽사리 잡을 수 있다.
전씨가 FM1길을 완등하기 까지는 불과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열두시 경이 됐는데도 여주와 원주 합동팀은 점심 먹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빵과 과자, 딸기를 간식으로 들면서 계속 바윗길에만 몰두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탐사팀은 계속해서 고독의 길을 통해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다. 설교벽과 인수리지가 보이는 지점에 올라서자 석양이 비껴들었다. 아차가 처음 시도했던 인수리지의 설교벽 루트는 지난 달 한그루산악회의 박정수, 신준일씨등과 함께 탐사를 마친 바 있었다.
"아처가 얘기하는 '이빨 모양의 바위'가 바로 저거겠군. 설교벽으로 올라가다 보면 그 밑에도 동굴이 하나 있지."
인수리지의 '이빨 모양 바위'는 아처가 인수봉 등정의 실마리로 삼은 부분이기 때문에 지난 번 탐사 때 그 아래쪽의 크랙을 뒤졌고, 쉽사리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아처 자신은 인수리지의 등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더군요. 정상에 오른 다음 인수리지가 아니라 후면으로 하강하면서 바로
그 일대 크랙이 다른 팀들의 인수봉 등정 루트임을 확인하기도 했구요."
"그걸 보면 아처가 등반에 대한 욕심도 꽤 많았던 것 같지요?"
제대 후 유럽쪽의 암벽을 순례하는게 꿈이라는 김운형씨의 관심은 아처의 등반실력에 모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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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팀의 앞을 높이 15미터에 60도 경사의 슬랩이 가로막자 김씨는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처는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을까요?"
그렇다. 암벽화를 신은 기자로서도 선뜻 붙어볼 마음이 안나는 슬랩인데 아처는 어떻게 여기를 통과했을까? 그러나 슬랩 왼쪽에는 암벽과
나란하게 크랙이 뻗어 있었다.
그나마 뾰족한 암벽화 끝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랙이니 손가락이 들어간다고 해도 그렇게 쉬운곳은 아니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아처가 준비한 장대와 갈고리가 위력을 발휘했을 거야. 크랙에 갈고리를 끼우고 로프를 잡고 올라갔겠지. 슬랩은 엄두도 못내는 거고. 크랙도 이 정도면 당시의 등산화로는 불가능한거야."
기자의 기억으로도 70년대말 겨울에 혼자 고독의 길을 오를 때 크레타 신고 이크랙 오르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크랙 속으로 끝이 쏙쏙 들어가서 전혀 미끄러지지 않고 달라붙는 암벽화를 신은 다음부터 그정도 크랙은 문제 될 게 없었다.
귀바위뒤 슬랩이 아처의 고빗사위
"그 위로 우리는 빠르게 올라 금방 개구리 귀 근처에 이르렀다."는 아처의 기록대로 북면 루트가 끝나는 동굴 위 680미터 지점에서붵 귀바위 뒤, 대침니와 만나는 지점까지 탐사팀 역시 자일을 쓰지 않고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그러나 귀바위 뒤, 언더크랙과 칠팔미터 높이의 슬랩이 있는 바로 그
지점은 인수봉 등정에서 아처가 가장 어려웠다고 기록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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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는 이 곳을 "약 7.6미터에 70도 경사의 매끈한 슬랩"이라고 하면서 오른쪽에 있는 나무에 갈고리를 걸고 올라갔다. 실제로 탐사팀이 측정해보아도 슬랩의 길이와 경사를 묘사한 아처의 기록은 거의 일치했다.
"아처가 슬랩의 길이를 25피트 정도라고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15피트(약 4.5미터)짜리 장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갈고리를 나무에 걸려면 몾라는 나머지 10피트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처의 등반기 중에 포함된 사진을 보더라도 그의 키는 약 180센티미터(6피트) 이상 돼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키와 팔길이까지 합쳐도 여전히 삼사피트(약 1미터)가 모자란다.
"그건 간단해. 우리나라에서도 육칠십년대에 숄더 클라이밍(shoulder climing)이라는 등반 방식이 있었어. 암벽등반 도중 키높이 이상 되는 곳의 홀드만 잡고 일어서면 통과할 수 있는 바위일 경우 일행 중 한명이 무등을 태워 올리는 것이지. 아처 역시 마찬가지 방법을 쓴거야. 장대만 가지고는 1미터 정도 모자랐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슬랩 왼쪽의 언더크랙
등반에 대한 가능성이었다.
"기록에는 없지만 아처가 저 크랙을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텐데요?"
"물론 생각은 했겠지. 1930년대 이이야마 다쯔오의 금강산 집선봉 등반사진 가운데 언더크랙을 오르는 것이 있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이야. 그러나 여기 언더크랙은 프릭션이 필요한데 당시의 등산화로는 무리야. "
아처는 인수봉 북면루트 초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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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씨의 지적은 기자로 하여금 대학산악부 시절 바로 그 언더크랙의 손잡이만 믿고서 등반하다가 맥없이 추락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크레타를 신었지만 제대로 프릭션을 주지 않으면 백발백중 바닥가지
떨어지는 곳이 바로 이 크랙이었다. 그 후로 기자은 뭉특한 크레타를
신고 좀 힘들기는 해도 가운데 수직으로 뻗은 소위 '영자크랙'으로 더
많이 올라 다녔었다.
"이 나무가 바로 66년 전 아처가 갈고리를 걸고서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자일을 걸고 하강한 바로 그 나무야. 이제부터 '아처의 소나무'라고
불러줄까?"
선등을 선 이용대씨는 이처의 등반기에 나온 마지막 고빗사위를 너무도 십게 통과했다.
그것도 언더크랙이나 영자크랙이 아닌 오른쪽 슬랩으로 올라 40년 후배인 김운형씨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정상 직전의 3미터짜리 바기지슬랩도 장대와 갈고리가 없었더라면 아처 일행의 당시 등산화로는 어림없는 곳이었다.
인수봉 정상의 바위에 오르자 멀리 서해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66년 전인 1929년 9월 이 곳에 올랐던 클리프 휴 아처. 그는 인수봉 초등자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인수봉 북면 루트 초등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자료출처: 오케이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