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의 장인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현종이 제2차 여요전쟁에서 몽진할 때 거의 유일하게 도움을 주었던 지방 유력자로
훗날 고려의 중신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부인은 인천 이씨의 시조 소성현 개국후(邵城縣開國侯) 이허겸의 딸이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모두 현종의 왕후가 되었다.
이후 모든 고려의 왕은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수주(수원시) 안산현 사람으로 성품이 근검하였다.
성종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 때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으며,
현종 초에 고려 12주목 중 공주목(公州牧)의 절도사가 되어 안절군(安節軍)을 지휘했다.
현종이 거란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에 머물게 되자,
김은부는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맞이하면서
"성상께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온갖 고생을 겪으시며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실 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 고려사 김은부 열전 中.
라고 위로하고 의대와 토산물을 올렸다.
현종은 그제서야 옷을 갈아입고 호종하는 관리들에게 받은 토산물을 나누어 주었다.
왕이 파산역(巴山驛)에 도착했지만 역리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고 수라간에 먹을 것조차 없자,
김은부가 다시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받들었다.
왕이 파산역에 도착했는데 역리가 모두 달아나 버려서 어주에 음식이 갖추어져 있지않자
김은부가 또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받들었다.
<<고려사>> <김은부 열전>
거란군이 퇴각한 후 왕이 상경 길에 다시 공주에 유숙하게 되자,
김은부는 맏딸을 시켜 어의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이로 인해 현종은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는데, 그가 바로 원성왕후이다.
이후 맞아 들인 원혜왕후, 원평왕후 또한 김은부의 딸이다.
근친이 성행했던 고려 왕실의 풍습 때문에 현종의 아들인 덕종과 문종이 그에게는
손자임과 동시에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덕종이 문종의 친누이인 효사왕후와 결혼하고,
문종이 덕종의 친누이인 인평왕후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3. 경력[편집]
고려사에 기록된 김은부의 사후 추증 관작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