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꾸러기 였던 내가 전구의 밝기를 라디오 볼륨처럼 조절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 했던게 중학교 때 였던것 같다.
나는 중학교 다닐때 수학 시험에서 0점을 받은적이 있엇다.
그래서 부모님은 남성고등학교에 다니는 같은동네 중학교 선배님께(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한달간 공짜 수학 과외를 부탁 했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시험에선 수학시험 점수가 80점이 넘게 나왓다.
그 뒤에 부모님은 내가 돌대가리는 아니라고 생가 하셨는지 선생님들이 하숙을 하고 계시는 동창생 친구집에 하숙을 시키고 과외를 받을수 있게 해 주셨다.
주변에 거주하는 친구 몇명이랑 같이 하숙하는 친구 몇명이 과외를 받게 되었다.
그 친구 집에는 영어와 수학 선생님이 하숙을 하고 계셨거든요.
중학교 전경
전기가 귀할때라 하숙집 책상위에 전구가 있는데 공부를 할 때는 60W, 쉴때는 5W로 전구를 바꾸어 갈아 끼우며 전기를 아꼈다.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쩍 했다. 왜 저래야 되지 !
라디오 볼륨 조절하듯 100W에서 5W까지 조절하면 얼마나 편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학시간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그 말을 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만 받았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런 전구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내가 수학이나 물리, 화학 계통에 재능이 있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학생 이었다면,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몇개라도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우등생 이었고 3학년까지 반장도 맡았었다.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잘나서가 아니고 부모님 등쌀에 방과후에는 갇혀 있다시피 억지로 공부하고, 학교에 비품도 가져가고 그렇게 만든 작품 이었다.
초등학교 전경
그러다보니 공부가 지겨웟고 5학년 때부터 엇나가기 시작하여 중학교 내내 말썽 꾸러기로 지냇던 것으로 기억이 되며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에는 마음놓고 원서를 제출할 학교가 없을 정도로 성적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겨우 진학한 곳이 실업계인 강경상고 였고, 546명중 532등으로 입학을 겨우 하였다.
고등학교 전경
걸핏하면 수업시간에 땡땡이 치다가 걸려서 선생님들께 두들겨 맞곤 했었다.
등교 시간에 늦은날은 정문에서 체벌을 받기는게 싫어서 아예 강경 대흥시장 순대국밥 가게에서 막걸리 한잔을 하고는 한시간 끝나면 학교에 들어갓다.
그러던중 기생충 검사를 하는데, 변 검사 제출일에 깜박하고 그냥가서 안가져 온 학생은 생물 점수를 0점 준다기에 친구들을 선동하여 흙을 버무려서 넣어 제출 했다가 교육청에서 반려와 처벌 공문이 내려와서 일주일간 유기정학을 받았다.
수학, 물리, 화학책은 새책을 폐품 수집할때 제출할 정도로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으니 성적은 오죽 했겠는가?
정학이 공고되고 부모님 모셔 오라기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모시고 학교에 갓는데 선생님을 만난 어머니 왈 김두환씨처럼 일자무식인 사람도 국가를 위해서 좋은일을 많이 했는데 아직도 나이가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씀을 하시는걸 제가 곁에서 들었읍니다.
그 때부터 나는 정신 차리고 공부에 매진했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들을 3년동안에 취득할 것을 2학년 한해 동안에 모두 취득 하였다.
졸업 할때 쯤에는 학년 전체 성적도 120등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농협에 취업을 한건데, 농협직원이 되려고 그랫는지 농협에 원서를 제출하고 보름간 밤을 새우면서 공부한 참고서에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많이 출제되어 시험이 쉽다고 생각될 정도 였다.
엉뚱한 생각을 잘하면 수학, 물리, 화학을 잘해서 과학쪽에 나가야 되지만 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부잣집도 아니어서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가는 방향도 그러지는 못했어도, 농협에 취업해서 일반 직원 일때는 주로 기획 업무를 담당해 왓다.
난 그것이 내 머리가 엉뚱한 발상을 잘하는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