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성요소•구성방법
(1) 터잡기
터 잡기는 상지(相地)라 하였다. 그리고 터를 가려잡고 집을 짓는 것을 복축(복축)이라 하였다. 가원이나 궁궐, 사원 등과 같이 건축물을 영조하면 필연적으로 뜰과 동산이 이루어진다. 이때에는 특별하게 뜰과 동산을 이루기 위한 터잡기는 필요치 않다. 건축의 터 잡기가 바로 정원의 터 잡기와 같기 때문이다.
건축의 터 잡기는 일찍부터 풍수지리 양택론에 따라 행하여 왔다. 그러나 풍수지리의 피해가 커서, 풍석 서유구는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 <상택지>에서 풍수가를 멀리 한다 하였다. 하지만 그가 논술한 집의 터 잡기는 양택론에서의 터 잡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환경의 이점을 두루 갖춘 집터가 바로 양택론에서 말하는 明堂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3면이 바다인 반도국이고, 국토의 3분의 2가 노년기지모(老年期地貌)로 이루어진 산지이므로 도처에 산과 계곡, 구릉이 있고, 시내, 강이 흐른다. 그리고 많은 지역이 바다를 면하고 있다.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주변 자연을 바라보고, 그속에서 살며 즐기는 데에는 景勝, 景觀, 景槪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세가지 모두를 갖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것이 새롭게 된다.
고려代 이규보는 [박추부유가당기] [태재기] [사가재기] [통재기] [손비서냉천기]에서 “경치가 아름답고 좋은 기운을 모은 곳”, “계곡이 깊숙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치가 아름답지 못하고, 본래 볼품없는 땅이라 하더라도 정운을 가꾸는 사람에 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하 하였다.
정원을 잘 가꾸고 산수를 즐길 수 있는 데에는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있고 또 부귀와 산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터잡기에는 정원을 가꾸는 사람, 주인의 마음(心匠)이 으뜸임을 알 수 있다.
번잡한 곳을 벗어나 산과 골짜기, 계류, 천연의 바위, 수림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景勝地에 터를 잡는 것이 좋다. 이런 경승지는 그 向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적절하게 이용한다. 설사 堂, 軒, 亭, 臺, 樓 등을 세우기 위해 터를 다듬는다 하더라도, 꼭 필요한 만큼만 손을 댄다. 터를 잡은 곳의 경관이 본래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곳곳에 세울 개개의 건축물의 坐向은 양택론에 따를 것이 아니라, 경승을 잘 완상할 수 있도록 잡으면 된다. 즉 景槪가 좋도록 앉게 한다. 냇가에서는 냇물을 잘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산록에서는 주변 산과 계류, 천연의 바위 등을 잘 바라볼 수 있게 向을 잡는다. <도산기>에는 터 잡기의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궁궐, 관아 등의 건축과 한양의 많은 제택들은 도성 안의 터에 자리하기 때문에 대개는 번잡한 곳이 될 수 밖에 없고, 또 이때에는 양택론에 따라 좌향을 정하게 된다. 그러나 궁궐과 제택의 일부는 대부분 뒷동산이나 산자락을 끼고 터를 잡은 것이라 본래 터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리는 정원을 이루게 되었다.
(2) 건축
정원은 뜰과 동산 모두를 말하는 것이므로, 건축이 이루어지면 정원도 함께 이루어진다. 따라서 궁궐이나 관아, 제택 등에서는 내부 공간을 이루는 건축이 主가 되고, 외부공간을 이루는 뜰과 동산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렇다하여 건축이 외부 공간없이 내부 공간만으로 이루어진다면, 건축으로서의 가치는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별서는 궁궐, 제택 등의 정원과는 달리 본체의 자연 속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하여 집을 짓게 된다. 천연의 산림, 산자락, 바닷가, 강가 등을 완산하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짓는 건축물들이 바로 亭, 臺, 樓 , 堂, 軒, 榭 들이다.
정, 누, 대 등의 건축물들이 이루고 있는 건축의 立面은 정원 속에 큰 시각적 구성요소가 된다. 즉, 기단, 초석, 기둥, 창방, 평방, 인방, 보로 구성되는 축부(軸剖), 그리고 이 축부의 표피를 이루는 벽체와 창호, 공포대(栱包帶), 축부 위의 처마, 지붕, 그리고 부차적인 난간, 단청 들은 서로 서로 관계되어, 건축의 모습(外觀)을 이루면서, 나아가 정원 구성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1) 정자
정자는 제택이나 공공건축의 한 부속채로서 짓거나, 정자 단독으로 짓는다. 전자의 경우는 강릉의 해운정(海雲亭), 船橋莊의 활래정(活來亭), 경복궁의 향원정(香遠亭)이 있고, 화성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성곽위에 세운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임실의 봉남정(鳳南亭), 안동의 삼구정(三龜亭) 등이 있다. 이들 정자들은 제택의 후원 동산이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山頂에 짓는 山亭, 들에 세우는 野亭, 연못가에 세우는 蓮亭, 시냇가나 동산안에서 폭포를 마주보는 곳에 시내를 가로질러 세우거나 시냇가에 세우는 溪亭, 바닷가에 세우는 海亭, 남새밭과 떨어진 언덕에 세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圃亭 등이 있다.
제천군의 관란정(觀瀾亭)은 산정에 터를 잡아 서강의 굽이굽이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고, 청주 추월정(秋月亭)은 강가에, 예천 초간정(草澗亭), 함양 거연정(居然亭)은 시냇가에, 영암 영보정(永保亭)은 들 가에, 고성 청간정(淸澗亭)은 바닷가에 지은 정자들이다.
대나무 숲 울타리 옆에는 대나무를 얽어 죽정을 만드는데, 여섯 모나 여덟 모로 만든다. 또 늙은 측백나무 네 그루를 심어 회백정(檜柏亭)을 만든다. 화장죽(化粧竹)을 사용하여 새끼로 묶어 지붕을 만들어서 정자를 완성한다. 묘정(笷亭)은 산속에서 자라는 껍질을 가진 늙은 종려나무 가지 네 개로 기둥을 만들고 흰 띠로 지붕을 얹거나, 종려나무 껍질 조직으로 지붕을 덮는다.
소박한 정자는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운 민도리집 구조이다. 지붕은 홑처마 초가지붕이나, 기와지붕을 이루고, 평난간과 띠살 들어열개 창호를 주로 택한다. 화려한 정자는 다듬은돌 바른층쌓기 기단, 다듬은돌 초석, 네모기둥, 두리기둥, 익공식 구조를 이룬다. 평난간은 물론 계자난간과 띠살, 아자, 완자살 등 다양한 살짜임의 들어열개 창호를 설치한다. 그리고 홑처마 또는 겹처마의 기와지붕을 이룬다.
亭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구성하고, 애련정(愛蓮亭)처럼 사방을 창호 없이 개방하거나, 향원정(香遠亭) 처럼 사방에 여닫이나 들어열개 창호를 설치한다. 또 체화정(棣華亭)에서 처럼 온돌방과 우물마루를 다 함께 들이고 사방에 창호를 설치하여 여름과 겨울, 사시사철 머물러 쉴 수 있게 하기도 한다
2) 누
수려한 자연경관이나 인공경관을 이루고 있는 山頂이나, 언덕, 냇가, 강가, 바닷가 등에 건립한다.삼척의 죽서루(竹西樓)는 바닥이 廳으로만 이루어진 강가에 세우 江樓이고, 남원의 광한루(廣寒樓)는 廳과 온돌방 모두를 갖추어 연못가에 세운 것이다.
樓는 보통 이층집 모양을 이룬다. 일층 바닥은 자연 상태로 남겨두거나, 토단이나 장대석 기단을 쌓고, 막돌초석, 네모뿔대의 초석이나 장주형 초석을 놓고, 누하주(樓下柱)를 세운다. 누하주는 네모기둥이거나 두리기둥이다. 누하주 위에 설치하는 바닥은 장방형 평면으로 우물마루 바닥의 청이거나 청과 함께 온돌방을 설치하여 추운 겨울을 나기도 한다.
익공식 구조로 팔작지붕을 이룬다. 평난간보다 계자난간을 더 선호한다. 창호 없이 개방될 때가 많다. 창호를 설치할 때에는 띠살 들어열개 창호가 일반적이다. 도성, 읍성, 궁성의 성문에는 누문을 짓는다. 아래로는 출입하고 위의 마루에서는 성의 밖과 안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한다. 숭례문, 장안문, 돈화문 등은 문루로 지은 것이다.
한편 궁궐의 전각에서도 부속된 누를 세워 휴식을 취하게 한다. 경복궁 대비전 자경당의 청연루(淸嚥樓)가 있고, 궁궐의 독립된 건물로 지어 외국 사신을 맞이했던 경회루(慶會樓), 그리고 주합루(宙合樓)처럼 규장각을 두어 도서관 기능과 휴식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사찰 건축에도 樓門을 건립한다. 봉정사의 樓門, 부석사(부석사)의 안양루는 모두 樓아래에서 위의 마당으로 올라서는 누하진입 형태이고, 해인사의 구광루(九光樓)는 樓안으로 진입하여 밖으로 나가는 樓門이다. 화엄사의 보제루(普濟樓)는 樓앞을 돌아 대웅전 마당으로 진입하는 樓門이다. 사찰의 樓에는 종과 북, 목어, 운판의 사물(四物)을 매달고 예불을 인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누를 종루(鍾樓) 또는 고루(鼓樓)라 한다.
향교와 서원에서도 樓를 건축하고, 樓밑으로 출입하고, 樓밑에서 시를 짓고, 휴식을 취한다. 관아,객사 건축에서도 樓를 건립한다. [탁지지(度支志)] <호조본아전도(戶曹本衙全圖)>를 보면 후원 연못가에 누정이 건립되어 관원들이 휴식을 취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밀양 영남루(嶺南樓)는 객사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樓이다. 또 강릉 동헌인 칠사당(七事堂)의 동쪽에도 누가 건립되어 있다. 구례운조루(雲鳥樓)는 사랑채 대청옆에 세운 樓이고 이 제택의 宅號가 되었다.
또 누와 정이 하나의 채로서 건립되어 공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월성 양동마을의 심수정(心水亭)은 ‘ㄱ’자형 평면으로 ‘ㄱ’자로 꺽이는 곳에 樓를 달고 함허루(涵虛樓)라 편액하고 있다. 또 안동의 광산 김씨 종가의 탁청정(濯淸亭)은 일층 바닥을 지면에서 높게하여 樓처럼 세웠으나, 亭이라고 하였다.
3) 각
閣은 樓와 비슷한 모양새로 혼용되는데, 여기서 누각이라는 용어가 나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樓가 장중한 맛을 갖고 있다면, 閣은 날렵한 모습을 이루게 된다.
궁궐 건축에서 한 채의 건물 속에 閣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 <동궐도>의 문화각(文華閣), 학몽각(鶴夢閣)이 그 예이다. 또 閣은 때로 閤이라 이름 짓는 경우도 있다. 연영합 속에 세 개의 편액 ‘연영합(延英閤)’, ‘천지장남지궁(天地長男之宮)’, ‘학몽합(鶴夢閤)’이라 하였다. 각은 일반적으로 장방형 평면의 익공식 구조로 팔작지붕을 이룬다.
4) 당
堂은 당당한 집채를 말하는 것으로 별서의 중심 되는 곳에 남향으로 지어 정원 전체를 완상하도록 한다. 또 주택, 궁궐, 향교, 서원, 관아 등에서 중심되는 건물로 세워 그 건축의 주된 기능을 다함과 동시에, 그 건축 앞에 구성된 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할 수 있도록 한다.
소쇄원의 제월당은 정면3칸 측면1칸 중 1칸은 온돌방이고, 2칸은 대청인데, 일반저택의 집채와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때로 亭이라 편액되기도 한다. 때문에 주택의 堂과 구별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이를 ‘화당(畵堂, flower hall)이라 불러왔다.
대부분 장방형 평면의 민도리집 구조이나 때로 익공식 구조를 이루며, 주로 팔작지붕을 이룬다.
5) 헌
軒은 堂처럼 주택, 궁궐, 관아, 서원 등에서 건립되어 몸채로서의 기능을 다하면서, 한편 단독으로 별서에 건립한다.
서유구는 동산 안에서 훤히 터 밝고 상쾌한 곳을 택하여 송헌(松軒)을 짓고, 창 여덟 개를 영롱하게 내고, 좌우에는 푸른 솔 몇 그루를 심되 가지와 동아리가 검푸르고 예스러우며, 구불구불하여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나무를 골라 심는다 하였다.
강릉의 오죽헌(烏竹軒)은 본래 권씨가의 별당 건축이었고, 안동 임하면의 지례동 오류헌(知禮洞 五柳軒)은 사랑채의 편액명으로, 이 주택의 택호이다.
창덕궁의 애련지 북쪽 산등성이 아래, 높은 터에는 기오헌(奇傲軒)과 의두합(倚斗閤)이 자리 잡고 있어 애련지 주변 풍광을 완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방형 평면의 민도리집 구조이나, 익공식 구조의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룬다.
6) 대
돌이나 흙으로 높고 평평한 바닥을 형성하여 樓처럼 건물을 세우고 ‘OO臺’ 라 편액한다. 경승지에 세운다. 또 궁궐 내에 건립하기도 하고 성내의 높은 지역에 세우기도 한다. 강릉의 경포대는 경포호 호숫가에 지은 臺이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守御將臺)나 수원화성의 동장대, 서장대들은 성 안에 세운 臺이다. 이는 군사들을 독려하고 주변을 살필 수 있게 세운 건물들이다. 일반적으로 장방형 평면의 익공식구조로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룬다. 그러나 때로 작은 亭子처럼 짓고 이를 臺라 이름하기도 한다. 양양의 의상대(義湘臺)는 의상대가 있었던 터라고 추정되는 곳에 1925년 건립한 것이다.
7) 사
높은 臺 위에 지은 집을 말한다.
물가나 꽃밭가 등 경관이 수려한 곳에 짓는다. 창덕궁 후원의 폄우사(貶愚榭)는 장방형 평면의 민도리집 구조로, 겹치마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참고 동영상> 밀양 영남루
첫댓글 기존의 나와있는 책들 중에 전통건축물 종류에 대한 정의가 제일 명확한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