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방어백골부대전적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자 서울 삼각지에 주둔해 있던 제18보병연대(백골연대)는 전선으로 출전하였고, 제3중대(중대장 중위 김상덕)는 연대본부를 지키고 있었다. 6월 28일 적이 서울까지 침공해오자 제3중대는 삼각지에 진지를 급편하여 시가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포를 거쳐 영등포로 철수하여 한강 제방에 진지를 구축하고 도강을 기도하는 적과 대치하였다. 다음날 전선 시찰을 위해 내한하여 한강변의 지형과 국군의 방어 상태를 살펴본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미군의 지원을 약속함에 따라 사기가 고양된 이 중대는 7일 동안 단독으로 영등포를 방어하여 이후 미 지상군 투입 및 아군이 지연전을 펼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에 50여 년이 지난 2003년 10월 1일, 당시 조국수호를 위해 열세한 병력과 장비로 분전한 백골연대 장병들의 투혼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백골전우회에서 양화인공폭포공원 내에 전적비를 세웠다. 현재는 월드컵대교 공사로 인해 여의도한강공원(여의나루역 2번 출구)으로 이전되어 보존되고 있다. (2020년 6월)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LG트윈타워
(영어: LG Twin Towers)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여의도동)에 있으며, LG그룹의 본사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지상 34층, 높이 143.87m의 쌍둥이 빌딩이다. 구분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뉜다.역사여의도에 신사옥 건립 추진이 있었다. 1978년 3월에 지상 54층 규모의 싱글 타워의 개발 계획이 있었고 1978년 6월에 부지 매입이 완료되었다. 고도제한 및 국내외 정세 불안으로 인해 1979년 4월 규모 20층 트윈타워로 변경되고 1981년 4월에 지상 34층의 쌍둥이 빌딩 계획이 최종 확정이 되었다. 1983년 4월 본공사에 착수함으로써 연인원 103만 명이 투입되어 1983년 6월에 착공하여 1987년 준공 당시 명칭은 럭키금성트윈타워였다. 1995년 럭키금성트윈타워에서 LG트윈타워로 명칭을 변경했고 14여년이 지난 트윈타워의 노후설비 교체와 업무환경 고도화를 위해 2009년 9월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왔다.[1] 리모델링은 2010년 10월에서 2011년 11월까지 완료되었고 LG전자 서관은 2011년 4월 공사가 마무리되어 LG전자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구성
서관과 동관으로 구성되는 빌딩은 건물 전체가 사무실이고 수용인원은 10000명에 이르고 36대의 엘리베이터, 2대의 에스컬레이터로 구성된다.
사용처
서관은 LG전자가 단독으로 사용하고 동관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LG그룹이 각각 사용한다.
노동조합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과 엘지그룹은 계약을 맺고 엘지 소유 건물, 시설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자회사이다. 그 중 건물관리, 청소업무를 에스앤아이로부터 수급받는 지수아이앤씨가 엘지트윈타워분회 노동자들 사용자이다. 회사에서 선전전을 할 경우 회당 200만원을 지불하도록 하라는 간접 강제 신청도 포함됐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선전전을 하는 엘지트윈타워 건물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곳이고, 엘지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 엘지도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하여 어느정도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결성 전, 청소노동자들은 정말 힘들게 일하였다고 말하였다. 노조원들 설명은 노동조합 가입 전에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격주 토요일마다 무급으로 일하여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회견을 열고 9개월 이상 단체교섭을 체결하지 않는 지수아이앤씨를 규탄하고 있다. 또 이들은 선전전을 업무방해로 고소하는 등 노조활동을 탄압하는 사측의 행위를 비판했다. 그러나, 21년 4월 30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 중이던 청소노동자들이 136일만에 농성을 끝내고 엘지 마포빌등으로 옮겨서 근무를 하게 됐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는 "조합원 전원 엘지 마포빌등으로 옮겨서 일하기로 엘지와 합의하였다" 라고 밝혔다. 트윈타워로의 원직 복직을 요구해왔던 분회는 이날 “원래 일하던 곳으로의 고용승계와 원직 복직을 양보한 대신 일정 수준의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해고기간 임금 보전 등을 약속 받았다”며 마포빌딩으로의 복직안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합의안에는 현재 만 60세인 청소노동자들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고, 만69살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동안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은 연대와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분회는 "누가 보아도 결과가 뻔하던 집단해고 사태가 4개월 투쟁을 거쳐 오늘처럼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연대 힘 덕분" 이라고 감사 인사를 밝혔다.
출처:위키백과
여의도순복음교회[汝矣島純福音敎會]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의 교회.
연원 및 변천
1958년 5월 18일 전도사 조용기(趙鏞基)와 최자실(崔子實)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천막교회로 개척한 뒤 1961년 10월 서대문 로터리에 순복음부흥회관을 설립하여 이전하였다. 이때 신자는 400명에 달했으며 이듬해인 1962년에는 조용기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고, 교회명도 순복음중앙교회로 바꾸었다. 1964년에 신자수가 2,000명으로 늘어났으며, 1969년 여의도에 새 교회건물을 착공하여 1973년 완성하였고 신도는 1만8000명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교세는 급성장하여 1981년에는 20만 명, 1986년에는 51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교회로 성장했으며, 1984년 1월여의도순복음교회로 교회명칭을 변경하였다. 1981년 10월 소속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에서 탈퇴하여 1985년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라는 새로운 교단을 창설했으나, 1991년 12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와 재통합을 추진했다. 이런 통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교단 내의 통합 반대파를 중심으로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서대문)가 형성되었고,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순복음)에 소속되어 있다.
교리
순복음이란 성령충만의 복음이라는 의미로 오순절(五旬節)의 신앙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용어이다. 이 교회의 특색은 오중복음(五重福音)과 삼중축복(三重祝福)으로 요약된다. 오중복음이란 중생(重生)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신유(神癒)의 복음, 축복의 복음, 천국과 재림의 복음으로서 성경본위의 신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삼중축복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 범사에 잘되는 축복, 강건하게 되는 축복으로 병을 치료하여 재생시키는 일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조직적 특징은 철두철미한 구역조직으로 신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급성장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현황
2009년을 기준으로 33개의 대교구, 309개의 소교구, 13,853개의 구역가 있으며, 17개의 지교회가 있다. 621명의 교역자와 등록교인 75만여명으로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또한 60여개국에 600여명의 해외 선교사를 파견하여 교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기관으로는 사회복지법인 엘림복지회와 월간 신앙계, 국민일보, 교육기관으로 순복음신학교, 한세대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국제신학연구원, 서울서적, 1993)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순복음교육연구소 편, 서울서적, 1987)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yfgc.fgtv.com)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5-0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