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서안(西安)]에서 5일(4-2)
(2024년 4월 24일∼28일)
瓦也 정유순
4-2. 홍문연(鴻門宴)
서악묘를 나온 발걸음은 홍문연으로 향한다. 홍문연(鴻門宴)은 ‘홍문의 회(鴻門之會)’라고도 하는데, 이는 BC 207년 12월에 진(秦)나라가 멸망한 후 초한쟁패기(楚漢爭霸期) 직전에 진나라의 수도 함양 근처의 홍문(鴻門)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사건이며, <초한지>의 명장면 중 하나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는데, 입구에는 사기의 홍문연에 관한 원문(原文)을 게시해 놓았다.
<사마천의 '홍문연' 내용>
약간 경사진 계단 옆에는 바위에 ‘홍문연유지(鴻門宴遺址)’라고 새긴 표지석이 맞이해 준다. 그리고 입구 우측 문기둥에는 ‘초패왕도광검영홍문설연(招牌王刀光劍影鴻門設宴)’이, 좌측에는 ‘한고조절지봉생천고유명(漢高祖絶地逢生千古留名)’이라는 주련이 걸려 있다. 이는 ‘초패왕(항우)이 유방을 없애려던 번뜩이는 칼 그림자가 홍문연에 서려 있고, 한고조(유방)는 홍문연의 위기에서 목숨을 유지하여 이름이 천고에 남았다.’는 뜻 같다.
<홍문연 유지 표지석>
<홍문연 입구>
이를 뒷받침하듯 홍문연박물관 입구에는 ‘초한교웅(楚漢驕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두 영웅을 둘러싼 재사(才士)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때로는 교만(驕慢)하면서도 세상을 재미있게 엮어 가는 영웅(英雄)들이 아니던가? 홍콩에서 제작하고 출연한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대륙의 좀 따분한 역사극과 달리, 코믹하고 흥미진진해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뒷얘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는 작품이 ‘초한교웅’이었고, 보는 내내 시청자를 포복절도하게도 하고, 때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한다.
<초한교웅(楚漢驕雄)>
진(秦)나라 말엽에 봉기한 초나라의 항량(項梁)은 옛 초나라 왕실의 혈육을 찾아 왕으로 삼아서 초군의 구심점을 찾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옹립된 사람이 바로 웅심(熊心)이라는 양치기로 이 사람이 이른바 ‘초의제(楚義帝)’이자 ‘초회왕(楚懷王)’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 회왕(懷王)은 항우와 유방에게 병사를 나누어 서쪽의 진나라를 치도록 했는데 유방은 진나라의 심장부인 관중으로 바로 진격하게 하고, 항우는 북진하여 조나라 일대를 평정한 후 관중지방(關中地方)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했다.
<홍문연박물관 입구>
그리고 이 두 명 중에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咸陽)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에게 관중왕의 자리를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항우에게 대단히 불리한 명령이었는데, 거리상으로만 봐도 항우의 경로는 유방에 비해서 훨씬 멀었고, 무엇보다도 진나라의 명장인 장한(章邯)이 이끄는 진나라 주력군이 조(趙)나라 일대에서 버티면서 다른 봉기군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한 천하제일연 홍문연>
유방은 진군 도중 책사인 역이기(酈食其) 등을 얻었고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차근차근 관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거점들을 돌파하거나 항복을 받아 항우보다 한발 앞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입성했다. 유방은 이른바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발표하여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항복한 진왕(秦王) 자영(紫榮)의 목숨을 부지해 주는 등 인기 정책을 펼쳤다.
<유방(劉邦)>
약법삼장은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처음 등장했다. BC 207년, 유방이 진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후, 진의 엄혹한 형벌과 법령을 모두 폐지 시키고 세 가지만 남겨 두었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상해를 입힌 자는 죄를 물어야 하며, 재물을 훔친 자 역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행한다(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는 것이었다. 유방은 이를 시행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천하를 얻어 한왕조(漢王朝)를 세웠다.
<약법삼장>
이때 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유방을 만나고는 제발 관중의 왕이 되어달라면서, 함곡관(函谷關)을 봉쇄해 버리고 다른 제후들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스스로도 관중왕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유방은 주변 모사들과 상의 한마디 나누지 않고 이 계책을 따른다. 다만 항우가 무섭긴 했는지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보내면서 그저 지키기만 하라고 애매하게 명령을 내렸다.
<함곡관(函谷關)>
한편 항우는 회왕이 군통수권자로 임명한 상관 송의(宋義)를 살해해 구원군의 지휘권을 탈취한 후 거록(鉅鹿)에서 장한의 진나라 주력군을 섬멸하는 등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인 후에야 관중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함곡관(函谷關)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해 처음엔 진나라 군대가 버티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순식간에 함곡관을 돌파하고 함양 근교에 진을 쳤다.
<동쪽으로 가는 함곡관 외길>
이때 유방의 좌사마(左使馬)인 조무상(曹毋傷)이라는 사람이 항우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패공(유방)이 관중왕이 되고 자영(子嬰)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보물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모함하면서 자기가 제후가 되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이 항우에게 ‘유방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없애야 한다.’고 진언했고 항우도 유방을 죽일 기회만을 벼르고 있었다.
<초패왕 항우>
발등에 불 떨어진 유방은 “난 항우 장군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사사로운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었소. 병사들로 하여금 함곡관을 막은 것도 도적들을 경계할 뿐이니 제발 항장군께 잘 말씀해 주시오”라고 항백(項伯)에게 싹싹 빈다. 항백은 잘 말하겠다고 하면서 유방에게 다음날 직접 항우의 진영까지 와서 사죄할 것을 권했고, 유방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때 유방과 항백은 술잔도 나누고 혼담까지 나눴다고 한다.
<초한쟁패(楚漢爭霸)>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걸고 자웅을 겨루던 와중에 항우가 유방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말이 잔치지 항우의 책략가 범증(范增)이 유방을 죽이기 위해 꾸민 음모였다. 하지만 유방은 호위무사 번쾌(樊噲)의 용맹과 책사 장량(張良)의 기지 덕분에 자객의 칼날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잔치가 열린 곳은 산시성 홍문으로,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고사를 ‘홍문연(鴻門宴)’이라고 일컬었다. 홍문연은 이렇게 음모와 살기가 가득 찬 연회를 의미한다.
<한나라 때 화장실 터>
홍문연 연회석에는 중앙에 항우가 자리하고 항우 우측에는 유방이, 좌측에는 범증이 앉아 있고, 연회장 중앙에서는 두 장수가 마주보며 칼춤을 추면서 한쪽은 칼로 유방을 찌르려 하고, 다른 한쪽은 검무(劍舞)를 추며 그 칼 끝을 교묘하게 막아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두 영웅의 숨 막히는 마지막 장면이 2천 년 이상의 세월을 정지해 놓았다.
<연회장면>
‘초한쟁패(楚漢爭霸)’라고 쓰인 문을 지나면 그곳에는 장기(將棋)를 두는 장면이 나온다. 장기판에는 중간에 뚜렷한 금이 그어 있다. 초(楚)와 한(漢)이 천하의 패권(覇權)을 두고 대치한 전쟁 국면(局面)이다. 그 중간을 지나는 선이 홍구(鴻溝)로, 원래 황하(黃河)와 회하(淮河)를 잇는 운하(運河)였다.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일 때 이곳을 경계로 대치(對峙)했다. 이를 초하한계(楚河漢界), 즉 초나라와 한나라의 경계라는 뜻이다. 그 옆으로는 죽순(竹筍) 하나가 지표를 뚫고 삐죽이 나와 세상을 염탐한다.
<장기>
<바닥을 뚫고 나온 죽순>
초한(楚漢)의 전쟁에서 항우는 우미인(虞美人)과 여러 장군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한군(漢軍)의 한신(韓信)의 모략으로 유인된 항우의 초군(楚軍)은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묻힌다. 항우는 “초나라는 이미 망한 것인가.”라고 애마(愛馬)를 어루만지며 장탄식하였고, 우미인은 작별의 시간이 왔을 때 칼을 들고 춤을 추며 패왕별희(霸王別姬)를 부르다 자진(自盡)한다. 혼자 탈출한 항우도 오강(烏江)에서 자결하며 초한쟁패는 끝이 난다.
<패왕 항우와 우미인>
홍문연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가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왜 삼촌인 항백이 조카인 항우를 속인 이유는 무엇인가? 범증의 훌륭한 계략을 항우가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항우는 왜 유방을 보내주었을까? 결국 자신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만회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뻔한 일인데…, 여러 가지 의문점은 홍문연에 대하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인가? 결국은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를 믿으라는 이야기다.
<홍문연 터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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