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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론
교재 바깥
낭송시
불놀이 / 주요한 [1강 2′:15″]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흔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친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흔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내려다보니,물낸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흔자서 어두운 가슴.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어 던지나, 무정한 쭐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4월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牡丹峰) 높은 언덕 위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운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 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像)이 오락가락 ---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 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 구경도 인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업는 술도 인제는 싫여,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間斷)없는 장고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위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씨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읏는 울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요. 괴이(怪異)한 운음 소리도 무엇이리요.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요.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창조, 1919. 2]
교목 / 이육사 [2강 9′:00″]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피아노 / 전봉건 [2강 16′:00″]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국화 옆에서 / 서정주
[2강 19′:30″]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2강 21′:50″]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오감도 시제11호 / 이상
[3강 3′:30″]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 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여부딪는다. 내팔은그사기컵을死守하고있으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骸骨이다. 가지낫든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前에내팔이或움직였든들洪水를막은白紙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수선화 / W. Wordsworth워즈워드
[3강 11′:45″]
나는 외로이 거닐었네
산꼴짜기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문득 나는 보았네
한 떼의 무리진 황금빛 수선화를
호수가 나무 아래
미풍에 너울거리는
별처럼 빛나고 반짝이나니
밤하늘의 은하수 같아라.
물가에 끝없이 줄지어
즐겁게 춤추네
반짝이는 물결보다도
더 생기에 찬 흥겨운 춤을
이렇게 흥겨운 친구들과 같이 있음에
어느 시인들 즐겁지 않으랴.
예전엔 미처 몰랐었네
이토록 아름다운 줄은..
가끔, 침상에 누워,
쓸쓸한 느낌이 들때면
그들이 내면의 불을 밝히네
고독의 축복인..
그러면 내 가슴은 기쁨에 가득차
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네
봄은 간다 / 김억 [3강 14′:00″]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닯은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깁흔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바람에 새가 슯히 운다.
검은 돈다
죵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음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3강 15′:30″]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네 거리의 순이 / 임화
[3강 19′:30″]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그러면, 내 사랑하는 젊은 동무,
너, 내 사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누이동생 순이,
너의 사랑하는 그 귀중한 사내,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그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 나는 가난 속에 여의였지!
그리하여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 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
기계 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
언 눈길을 걷는 발자욱 소리와 더불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청년과 너의 따뜻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왔고,
언 밤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따뜻한 품속에서 안아주던 것은
오직 하나 거리에서 마나, 거리에서 헤어지며,
골목 뒤에서 중얼대고 일터에서 충성되던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정열 그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괴로움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났더냐?
그러나 이 가장 귀중한 너 나의 사이에서
한 청년은 대체 어디로 갔느냐?
어찌 된 일이냐?
순이야, 이것은......
너도 잘 알고 나도 잘 아는 멀쩌한 사실이 아니냐?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
이 눈물 나는 가난한 젊은 날이 가진
불쌍한 즐거움을 노리는 마음하고,
그 조그만, 참말로 풍선보다 엷은 숨을 안 깨치려는 간지런 마음하고,
말하여 보아라, 이곳에 가득 찬 고마운 젊은이들아!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내의 연인아!
생각해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젊은 날을 부지런한 일에 보내던 그 여윈 손가락으로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튜럭'처럼 길거리를 휘몰아간다.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예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내일을 위하여 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내를 위하여,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을 위하여......
이것이 너와 나의 행복된 청춘이 아니냐?
노동의 새벽 / 박노해
[4강 꽃다지(안치환) 노래 가사]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 다해 바둥치는 전쟁 같은 노동일
아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이 절망 벽 깨트려 솟구칠
거친 땀방울 피눈물 속에서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위로 찬소주를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오를 때까지
샘밭에서 / 마종하 [4강 14′:00″]
춘천 샘밭에서 어머니와 헤어지던 날.
구름이 펄럭일 적마다 뛰어나오는 햇빛
쨍쨍한 햇빛, 어머니
하롱하롱 붉은 흙을 내리덮는 봄눈
투명한 물빛, 어머니.
꽃신 신고 이리저리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그 자유로움이
저의 자유로움인 줄
오늘은 머리가 찡
가슴이 찡찡 갈라지며 깨닫습니다.
울음 씻긴 눈으로
오늘도 어머니의 나라를
가벼히 화안히 들여다 보며
지금 저의 두발은
허공을 딛는 법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해설] 의미 전개상 투명한 물빛 어머니가 전반부,
전반 葬地(장지)의 모습, 후반 그곳에서 느낀 시인의 감정
전반부는 우주론적 진실 후반부는 인간적 진실
죽음과 삶은 표리 관계 대립 아니라 존재의 두 모습으로 공존
죽음을 완전한 자유로 도달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
햇빛과 물, 삶과 죽음으로 파악
수정가 / 박재삼 [5강 2′:20″]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 올 따름, 그 옆에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 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 <춘향이 마음 초>(1962) -
눈물 / 김현승 [6강 5′:10″]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초혼(招魂) / 김소월 [6강 8′:2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공존의 이유 / 조병화
[6강 16′:50″]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 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의자 7 / 조병화
[6강 18′:15″] [15강 20′:05″]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은수저 / 김광균 (82쪽 2번)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7강 4′:30″]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메밀꽃 필 무렵 -부분- / 이효석
[8강 7′:15″]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8강 17′:50″]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1969)
파도의 옆얼굴 / 허만하
[9강 2′:40″]
물은 틀림없이 전진하고 있으나 사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나 물의 위치는 틀림없이 전진하고 있다. 오르막 적설 위에서 헛돌던 바퀴와 달리 파도의 절단면은 정현곡선을 그리고 있다.
해안선 못미처에서 닿기를 망설이고 있는 갈색 술병 안에 들어 있는 양피지 조각을 꺼내 판독해 보았다. 보물선 그림 같았던 그 메시지는 의외로 간결했다.
―사라지지 않고 싶다.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첫발을 내디뎠던 것이 사라짐의 시작이었다.
발신일자는 바다 물빛과 같은 물감으로 지워져 있었으나 지구에 바다가 태어나던 바로 그날이 틀림없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2002, 솔, 48쪽.
芭蕉(파초) / 김동명(金東鳴)
[9강 16′:15″]
祖國(조국)을 언제 떠났노,
芭蕉(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南國(남국)을 향한 불타는 鄕愁(향수).
너의 넋은 修女(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情熱(정열)의 女人(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네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청노루 / 박목월 [10강 15′:00″]
산(山)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뎃상 / 김광균 [10강 16′:35″]
1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 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울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조선일보, 1939
내 마음은 / 김동명
[10강 18′:40″]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이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해설] 이미지+관념, 시인은 사랑을 간절히 소망하긴 하지만 이내 이별을 생각해야만 하는 여성적인 입장에서 그 아픔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리 / 김부용 [10강 22′:00″]
비가 온다
나의 방을 들여다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창 넘어로
열매들이 익는
노래가 들린다.
여우난곬족 / 백석
[10강 24′:00″]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40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60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모 고모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기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 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서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조광>(1935)
백석(白石, 1912~1995) 평북 정주 출생.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청산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여성>지 편집 및 영생여고보의 교사로 재직. 해방후 북한에서 문필활동을 계속했다. 최근 백석 연구를 하는 소설가 송준에 의해 1995년에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기상도(氣象圖)(세계의 아침) / 김기림 [11강 14′:30″]
비늘
돋힌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傳書鳩)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11강 16′:00″]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짖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우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세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얕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플라타너스 / 김현승
[11강 18′:40″]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십자가 / 윤동주
[11강 24′:00″] [15강 7′:40″]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 5. 31)
처용단장(處容斷章) / 김춘수
[11강 24′:40″]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처용단장 제1부 4」
이 몸이 죽어 가서 / 성삼문
[12강 5′:40″]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獨也) 청청(靑靑) 하리라.
깃발 / 유치환 [13강 8′:50″]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폭포 / 김수영 [13강 9′:45″]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낙화 / 이형기 [13강 15′:50″]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13강 21′:25″]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간(肝) / 윤동주
[13강 26′:50″]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 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진달래꽃 / 김소월 [14강 1′:25″]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풀 / 김수영 [14강 21′:20″]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14강 24′:55″]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국화(菊花) 옆에서/ 서정주
[15강 4′:40″]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십자가 / 윤동주
[11강 24′:00″] [15강 7′:40″]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 5. 31)
산유화 / 김소월 [15강 16′:50″]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의자 7 / 조병화
[6강 18′:15″] [15강 20′:05″]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15강 23′:40″]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봄바다 / 김춘수
[15강 27′:25″]
모발毛髮을 날리며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눈보라도 걷히고
저 멀리 물거품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간人間의 여자女子가
탄생誕生하는 것을 본다.
님의 침묵 / 한용운
[16강 15′:25″]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황금의꽃가티 굿고빗나든 옛맹서는 차듸찬띠끌이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추억은 나의운명의지침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얼골에 눈멀었슴니다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녀하고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깨치는것인줄 아는까닭에 것잡을수업는 슬븜의 힘을 옴겨서 새희망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 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침묵을 휩싸고돔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16강 21′:0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7강 14′:50″]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1958년 월간『현대문학』등단시
세상 초록빛을 다해 / 정현종
[17강 26′:10″]
서커스 구경은 새처럼
나는 말한다 ―
아니다
날으는 새 보는 곡예사처럼
나는 말한다 ―
밥 먹고 있는 사람 밥 많이 먹어요
놀고 있는 사람 잘 놀아요
걷고 있는 사람 어서 걸어요
............
말한다
거지 꼴인 꿈을 다해
세상 초록빛을 다해
안개 / 기형도 [17강 18′:35″]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지
쓸쓸한 가축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문득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얼마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 입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먼 후일(後日) / 김소월
[17강 21′:10″]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추천사(鞦韆詞) / 서정주
[17강 25′:40″]
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香丹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뎀이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조 내어 밀듯이, 香丹아
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香丹아.
강촌(江村) / 두보
[18강 12′:10″]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堂上燕 (자거자래당상연)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徵軀此外更何求 (징구차외경하구)
맑은 강의 한 굽이 마을을 안아 흐르니
긴 여름 강촌의 일마다 그윽하도다.
절로 가며 오는 것은 집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하며 서로 가까운 것은 물 가운데의 갈매기로다.
늙은 아내는 종이를 그려 장기판을 만들거늘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고기 낚을 낚시를 만든다.
숱한 병에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약물이니
이 보잘 것 없는 몸이 이것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구우(久雨) / 정약용(丁若鏞)
[18강 17′:10″]
窮居罕人事 궁거한인사
恒日廢衣冠 항일폐의관
敗屋香娘墜 패옥향낭추
荒畦腐婢殘 향휴부비잔
睡因多病減 수인다병감
秋賴著書寬 추뢰저서관
久雨何須苦 구우하수고
晴時也自歎 청시야자탄
궁벽하게 사노라니 사람 보기 드물고
항상 의관도 걸치지 않고 있네.
낡은 집엔 향랑각시 떨어져 기어가고,
황폐한 들판엔 팥꽃이 남아 있네.
병 많으니 따라서 잠마저 적어지고,
글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 보네.
비 오래 온다 해서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날 맑아도 또 혼자서 탄식할 것을.
박효관 시조
[18강 20′:10″]
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흉(凶)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가곡원류]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
[19강 21′:30″]
벌레먹은 두리기둥 빛단청(丹靑)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쳤다. 큰나라 섬기다 거미줄친 옥좌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밑 추석을 밟고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국경의 밤 5장 / 김동환
[19강 27′:00″]
아하, 밤이 점점 어두워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간다.
함박눈조차 다 내뿜은 맑은 하늘엔
별 두어 개 파래져
어미 잃은 소녀의 눈동자같이 감박거리고
눈보라 심한 강 벌에는
외가지 백양이
혼자 서서 바람을 걷어안고 춤을 춘다.
가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妻女)의 마음을 핫! 핫! 놀래놓으면서 -
신선 재곤이 / 서정주
[20강 05′:40″]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 이라는
이름을 가지 앉은 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人精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甲戌年이라던가 乙亥年의 새 無窮花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 무거운 모습만이 산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天罰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天罰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農事도 딴 마을 만큼은 제대로 되어,
神仙度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수염의 趙先達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 생긴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虐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千年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 살이를 하러 간거여.............. 」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맷돌을 단단히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감겨 나오지 안는 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趙選達 영감님 말씀이 마음的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
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해바라기의 비명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 함 형 수 [20강 10′:30″]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 11.
바다와 나비 / 김기림
[20강 16′:20″]
아무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닥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 온다.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첫댓글 이렇게 많은 시를 언제 다 올리셨어요??
좋은 시 많이 감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