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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 푸코의 웃음
브라카주 추천 0 조회 325 04.02.15 16:40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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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4.01.09 10:31

    첫댓글 일종의 intro이군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푸코는 마르크스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이것은 니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고 하신 건, 특이하면서도 좀 의아스러운데, 흔히 프랑스의 니체주의자로서 제일 먼저 꼽는 인물 중의 하나가 푸코가 아닌지요? 아시다시피, "니체, 계보학, 역사" 도 있고...

  • 작성자 04.01.09 10:36

    사실은 이전에, <말과 사물>을 읽으면서 매 챕터마다 내용을 일종의 노트식으로 정리하려던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인트로만 쓰고 말았습니다. 쩝~ ^^

  • 작성자 04.01.09 10:39

    김상환 교수에 따르면,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통으로 묶고, 이들을 근대적 사유로 집입해 들어가는 사유의 대가로 언급한 최초의 사람이 푸코와 리쾨르라고 합니다. 즉, 푸코는 니체도, 맑스도, 프로이트도 다 중요한 인물들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04.01.09 10:42

    그런데, 제가 좀 특이(?)하다고 본 것은 니체의 경우도 그렇지만, 맑스에 대해서도 그의 저작 전체를 통틀어서 몇 군데 밖에 언급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좀 특이한 것입니다. 나중에 맑스주의 진영의 학자들이 푸코를 해석하면서 혼란을 느낀 것이 이 부분인데요~

  • 작성자 04.01.09 10:52

    니체에 대해서도 '니체'라는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글이나 책은 몇개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를테면, <광기의 역사>라는 책은 니체, 맑스라는 이름만 나오지 않을 뿐이지 전체가 니체의 영향아래에서 쓰여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만. ^^

  • 작성자 04.01.09 10:49

    이런 것이 푸코의 특이점이라고 해야 할지?~ 결국 푸코가 보다 자세하게 니체, 맑스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후에 푸코를 읽는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게 돼버렸습니다.

  • 작성자 04.01.09 10:57

    그리고 '니체주의자'라는 명칭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이들을 비꼬기 위해서 갖다 붙인 명칭인데요(형식주의자라는 명칭처럼) 저는 개인적으로 '니체주의자'라는 호칭에 별로 이견이 없습니다마는, 정작 푸코는 니체에 대해서 그다지 적극적인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말과 글>에 혹시 새로운

  • 04.01.09 10:59

    직접적인 '언급'이 영향관계나 계보를 이해할 때 핵심적인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한 대담에서, 푸코는 자신이 하이데거로부터 받은 감화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하는데, 다만 그것을 언표를 통해서 공식화하지 못했을 뿐이죠. 사실, 하이데거야말로 푸코 문헌에서 정말 찾아보기 힘든데 말입니다...

  • 작성자 04.01.09 11:01

    언급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71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취임하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사람은(이건 물론 의례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요) 장 이폴리트이고, 나아가 헤겔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헤겔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스승 이폴리트(그래봐야 고등학교 때 두 어달 배운 것밖에 없는데)와의

  • 작성자 04.01.09 11:03

    관계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이데거... 푸코가 하이데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 그러면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 푸코는 아주 희한합니다. ^^

  • 작성자 04.01.09 11:07

    제가 주목한 것은, 푸코가 하이데거로부터 영향을 더 받았냐, 니체로부터 영향을 더 받았냐 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그 '직접적인' 언급이었습니다. 이건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지만, 그가 '쓰고 말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푸코는 니체주의자라기보다는 블랑쇼의 영향이 더 커 보입니다.

  • 작성자 04.01.09 11:10

    푸코가 원채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썼기 때문에(<말과 글>이라는 책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푸코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의 글의 분량과 맞먹는 '미발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푸코 전체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 작성자 04.01.09 11:15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제 글에는 원래 다양한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서 각주들을 다 지웠습니다. 푸코는 각주 쓰는 것에 반대했지요~ 리플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 04.01.09 17:00

    사상사적 영향을 이야기할 때, 직접적인 언급 유무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비판(부정)했다고 해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푸코가 마르크스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르트르(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통설입니다. 즉, 문제는 영향 유무가 아니라

  • 04.01.09 17:02

    영향의 정도와 그 영향이 어떤 식으로(긍정적으로/또는 부정적으로) 해당 사상가의 사상적 발전에 작용했는가죠. 즉, 푸코가 마르크스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푸코 사유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04.01.09 17:04

    그리고, <말과 글>은 어디까지나 잡문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글모음입니다. (최근 프랑스에선 이와 비슷하게 들뢰즈 잡문이 편집되어 출판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존 저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지, 이 글들이 주요저작의 주장을 크게 뒤엎을 정도로 위력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그리고, 각주는 필요합니다. ~

  • 작성자 04.01.09 17:14

    '직접적인' 언급 유무가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지적인 오만입니다. 사르트르의 영향 때문에 맑스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통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견해'만이 있을 뿐입니다. <말과 글>에서 '잡문'이 아주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 작성자 04.01.09 17:19

    <말과 글>의 내용들이 위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말 아닐까요? 쿤데라 님은 다 읽었나요? 그리고 각주는 필요하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이 각주를 일일이 달았다면 저도 물론

  • 작성자 04.01.09 17:21

    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에 지운 것 뿐입니다.

  • 04.01.09 17:49

    "<말과 글>의 내용들이 위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할 수 있는 말 아닐까요?"라고 하신 건 일리가 없지는 않아도 여러 형태로 번안될 수 있는 '경험론적' 오류입니다. "네가 내 인생을 살아봤어? 어떻게 날 이해한다는 소리를 해!" 같은 것이 그 통속적인 버전입니다. 그러한 식의 전면적인

  • 04.01.09 17:56

    이해는 가능하지도 않고 필수적인 것도 아닙니다. 푸코를 말하기 위해서, 푸코의 전집을 읽어야 한다면, 헤겔과 들뢰즈와 마르크스 등등은 어떻습니까? 보다 원초적으로 원전이 아닌 번역본으로 읽은 것도 '읽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요? '잡문'의 중요성은 그것을 통해서 전혀 다른 '푸코'를 그려보일 때 입증되겠죠..

  • 작성자 04.01.09 17:56

    글쎄요~ ^^ 뭐 그건 입장 차이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말과 글>이라는 것에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쿤데라 님은 '거 뭐 별 내용이 있겠어'라는 식의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푸코를 아직

  • 작성자 04.01.09 18:00

    다 이해되지 않고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서 <말과 글>이라는 책을 우선 읽을 필요가 있다(다른 저작과 동일한 위상으로)는 생각을 피력한 것입니다.

  • 작성자 04.01.09 18:02

    푸코를 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능한 범위에서 그의 전집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읽었다면 그 범위 내에서 발언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 작성자 04.01.09 18:05

    번역 문제는 로쟈 님이 전문가시니까~ ^^(이전에 저는 로쟈 님의 번역의 견해에 동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 번역본이 있다면 번역본을 읽는 것도 물론 존중되어야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나는 번역본을 읽고 이 견해를 말하노라~고 분명히 밝히면 됩니다.

  • 작성자 04.01.09 18:09

    한 국가의 번역 수준은 전체 학문적 위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가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을 '분명히' 구별해서 좋은 번역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길이 엉터리 번역을 몰아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04.01.09 18:14

    가장 큰 문제는, 번역서를 보고 인용을 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제대로 원서를 보지도 않으면서 마치 '나는 번역서는 읽지도 않는다'는 식의 엉터리 같은 태도입니다. 번역서가 나와도 나쁜 번역의 경우 그것을 분명하게 의도적으로 인용하지 않아 버리면 번역 문제가 좀 고쳐지지 않을까요?

  • 작성자 04.01.09 18:19

    기존의 '모든 번역'을 무시하는 태도는 지적인 오만이면서 정직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우리의 사유의 많은 부분은 번역서를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다음에 번역의 수준이랄까 뭐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할 거라고 봅니다. 일본학계가 시간이 남아서 번역에 그렇게 공을 들이겠습니까?

  • 04.01.09 19:19

    '바둑에 대한 수수께끼에서 언급되서는 안되는 말은 무엇인가?'라고 보르헤스가 물었던 작품이 아마 -베르톨루치의 <거미의 계략>의 원작으로 쓰였던-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일 겁니다. 바따이유에 대한 푸꼬의 중요한 글은 누구에게나 헤겔에 뒤덮여있어 보이던 바따이유를 단번에 칸트와 연결시킴으로써

  • 04.01.09 19:28

    니체가 '인용'되지 않는 자신의 니체적인 글쓰기라는 수수께끼의 답을 의뭉스럽게 제시한 바 있습니다. 기실 푸꼬와 헤겔의 관계는 이뽈리트가 아니라 바따이유를 통해 '변태적으로' 즉,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블랑쇼와 더불어 그를 니체로 이끈 이 역시 바따이유입니다. 후자가 제공해주지 못한 하이데거와의 접점은

  • 04.01.09 19:35

    블랑쇼가 대신해주었구요. (블랑쇼는 헤겔과 하이데거라는 기이한 짝패의 흉물입니다) 무엇보다 '맑스에 대한 푸꼬의 언급'은 <Remarks on Marx>라는 명백한 제목을 가지고 가장 집요하게 이루어진바 있습니다. 이 중요한 대담집이 다소 덜 알려진 것은 그것이 영어와 프랑스어권 그 어디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쓰여졌

  • 04.01.09 19:47

    다가 1991년에야 영역되었기 때문일겁니다. 꼬리말들을 보니 이는 그의 '전저작'에 포함이 안되고 있는 모양인데 (푸꼬의 인터뷰는 그의 사유의 정당한 일부분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얘기한 것은 들뢰즈입니다) 이 책에서 개진되는 푸꼬의 견해에 대한 님들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저 역시 푸꼬가 다 이해되지 않고 있고,

  • 04.01.09 19:55

    또 그럴 수도 없다는데 동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직 구하기 어려운 <말과 글>을 '우선' 읽을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나와 있는 글들조차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있다면 다시 읽어야 할 것은 그 글들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존재를 이집트 역사가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푸꼬의 말은

  • 04.01.09 20:03

    이를 푸꼬 자신에게 되던져 김현선생이 '스스로' 읽으려 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가능하다면 방학 전에 바따이유에 대한 글을 하나 써볼 생각인데, 여기서 언급된 푸꼬와의 연관과 쿤데라님이 올리신 글에서 별 진전없이 반복된 사르트르의 유명한, 즉 고루한 바따이유론을 다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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