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관우, 장비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중요한 인물이다. 이 세사람이 공적으로는 군주와 신하, 사적으로는 형제의 관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송, 원대 이후로 민간 문학 분야에서 세 사람의 관계 및 이들의 천하평정 과정이 문학화되기 시작했다. 즉, '삼국지평화',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관서고사' 등의 작품 속에서 미화와 과장이 첨가되었고, 이로 인하여 서서히 도원결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삼국지연의'의 작자 나관중은 원대에서 명대에 걸친 동란의 시대를 산 사람이다. 당시 농민 봉기의 대부분은 결의의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나관중 자신도 왕이 되려는 뜻을 품었었고 농민 봉기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반원기의(원나라에 반대하여 의거를 일으키는 것)에 참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이유로 그가 도원결의의 이야기를 쓸 때에도 송, 원대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도원결의의 이야기에 총괄적인 결론을 덧붙였고, 동시에 현실 사회에서 보여지는 결의의 형식을 전형화해서 이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합리적으로 연장, 발전시켜 만들어졌으며, 인물 성격상의 모습과 독자 심리가 일치한 것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수백년 동안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고, 다른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도원결의와 관계있는 역사 자료의 기술은 아주 간략하다. 이들 세사람의 형제, 군신 관계에 대해서는 정사에 약간 있을 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장비는 관우를 형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또한 유비는 두 사람을 특히 신뢰하여 세 사람은 '은혜는 형제와 같다', '은혜는 더욱이 부자지간과 같다', '의리에 있어서는 임금과 신하였다' 등의 일반적인 서술이 있을 뿐이다. 세 사람이 정식으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꾸며낸 허구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반드시 허구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사에 나오는 유,관,장의 '은혜는 형제와 같다'라는 기록과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의 이들의 관계, 그리고 역사적, 문학적 사실성의 측면, 이 세가지를 본다면 도원결의의 이야기는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민간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간주되고 있다. 하북성 탁현에는 유,관,장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는 구체적인 지점인 도장(복숭아나무가 있는 장원), 별칭으로 충의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연의에서 말하는 장비의 집 뒤뜰에 있는 도원이라는 것이다. 수백년 동안 이러한 견해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이 견해와는 달리, 오늘날 탁현에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다. 유,관,장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곳은 도장이 아니라 탁현의 남쪽에 위치한 수문구의 옆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여기에는 삼의묘가 있었는데, 건물은 삼의(세 명의 의로운 사람, 곧 유,관,장 삼인을 지칭함)를 비유하여 길이, 넓이, 높이가 모두 삼척이었다고 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연의에서 중요한 주인공들이다. 제1회에서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으며, 힘을 합쳐 재난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보은하며, 아래로는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자 맹세한 이야기, 또 동년,동월,동일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동년, 동월, 동일에 죽고자 맹세한 이야기, 그리고 제83회에서 유비가 관우, 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토벌하는 이야기까지, 작자는 전체의 삼분의 이에 가까운 지면을 할애하여 세 사람의 충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 사람은 도원결의로 형성된 의협심을 위해서는 목숨이나 사업을 희생하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았으며, 도한 그 결의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다. 바로 이런 까닭에, 도원결의에 관한 이야기가 비록 허구일지라도, 작품상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행해졌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이다.
ㅡ출처: 성진이의 삼국지홈 ㅡ
첫댓글 네이버 소년의 압박.
도원경의는 100%뻥이다..그런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