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지도 8년이 지났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세월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를 강원도에서 탔다. 아마 동해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천장이 높은 테플로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조식에 따라나온 매우 커다란 숟가락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조식은 여느 조그만 호텔처럼 빵,소세지,차 등이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가게에 가서 여러 종류의 토마토를 보았고 쥬스를 한 병 사마셨는데 무슨 쥬스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근쥬스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 후에 블라디보스톡에 한 번 더 갔다. 그때는 잠수함인가 군함인가에도 가보고 북한식당에서 음식도 먹었다. 러시아에서 가본 북한식당은 이르쿠츠크의 평양식당과 블라디보스톡의 고려관이다. 거기서 김치찌개, 생선구이, 김밥 등을 먹었다. 김치찌개도 남한 것과 맛이 달랐다. 맵지도 않고 맛이 부드러웠고 일본음식같은 느낌이 났다. 김밥도 남한 김밥과 다른 모양이었고 재료도 좀 달랐다. 오무라이스를 닭알씌움밥이라고 적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공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난 기억도 있다. 중국에서 북한식당이나 북한 사람을 본 기억은 없다. 중국의 칭다오, 청두, 충칭, 광저우, 주하이, 상하이, 베이징을 다녔지만 북한식당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정도밖에 안갔는데 북한 식당을 두 군데나 방문했다. 한번은 러시아 버스 정류장에서 북한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한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던 기억이다. 거의 일주일 동안 머리도 못감고 기차 안에서 먹고 자며 9000키로미터 이상을 달렸다. 그때는 겨울이라 시베리아 벌판 한가운데 있는 역에서 잠시 쉬면서 영하 30도의 혹한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기차에서 만나 함께 모스크바까지 갔던 슬라브족들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다냐, 리안나, 빅토리아, 이구아르 등이 있다. 남자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침대는 이층에 있었는데 테이블을 밟고 올라갔다. 침대는 천장이 낮아서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잠잘 때만 올라갔고 거의 일층 의자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중국의 침대기차도 타 보았고 중국의 침대버스도 타 보았다. 그리고 미국의 암트랙기차도 타 보았다. 각기 장단점이 있지만 러시아 기차는 매우 실용적이고 실제 장거리여행을 편하게 하도록 되어있다. 무엇보다 뜨거운 물을 무제한 공짜로 제공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기차에서 빌려주는 컵에 홍차나 커피를 타 마신다. 하지만 미국의 암트랙에는 공짜 물이 없다. 비싼 물을 사먹어야 한다. 기차 자체는 매우 세련되고 의자나 화장실도 러시아 기차보다 훨씬 좋지만 말이다. 정수기가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무도 물을 받아먹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인들과 기차여행을 할때 제일 아쉬웠던 점은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인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영어를 잘 할 줄 몰랐다. 심지어 우유가 밀크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러시아 말이라고는 인사밖에 모르는 내가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러시아인들과 앉아서 어떻게 여행을 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도 얼굴만 쳐다보고 음식만 나눠먹어도 그저 알아지는 것들도 있다. 자기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주는 아저씨도 있고 사탕 몇 개를 주는 사람, 무슨 열매를 먹으라고 주는 이도 있었다. 저마다 가져온 소세지나 고기, 빵,비스킷 등을 시시때때로 먹었다. 한국의 팔도라면에서 만든 도시락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러시아, 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좀 먼 나라인데 한국에서 만든 도시락 컵라면과 초코파이가 대인기라니 신기했다. 하긴 캄보디아에서는 박카스가 국민음료수라고 한다. 그들은 박카스를 명절에 선물한다고 한다. 아무튼 러시아인들은 도시락이 한국라면인지 몰랐다고 했다. 내가 어찌어찌해서 한국라면이라고 했더니 듣는 아주머니가 아니라고 우겼다. 러시아 라면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도시락이 러시아라면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근데 참 신기한 게 왜 하필 도시락일까. 왕뚜껑도 있는데. 아마도 직육면체의 납작한 용기 때문이 아닐까? 기차여행자들이 가방에 차곡차곡 쌓아 넣어서 다니기 편하니까 말이다.
기차를 탄 여자들 중에는 기모 레깅스를 두개 껴입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날씨가 추우니까 부츠를 신은 이들도 있었고 두껍고 질좋은 양말을 신은 사람들도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어떤 이들은 형편이 어려운 것 같았다. 러시아에는 그때만해도 가난한 사람이 꽤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한국의 중산층 정도 되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옷차림, 먹는 음식, 웃는 모습, 들고 다니는 물건 등을 보며 내가 짐작해보는 것이다.
기차에는 머리가 노란색이고 얼굴이 흰 백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 인종인 황인종도 많았다. 그들은 러시아인이었지만 생긴 모습이 한국인을 많이 닮았다. 그런 이들이 기차에 타면 나는 한국 사람인가 싶어서 깜짝 놀라곤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은 내가 대학 다닐때 알던 오빠와 비슷하게 생겨서 정말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 사람은 체격이 좋고 검은 옷을 입었었는데 새끼 손가락 바깥쪽에 문신이 있었다. 또 내가 앉아있는 곳에서 잘 보이는 곳에 머리가 긴 시베리아 인종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이 러시아인인 줄 알면서도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어렴풋이 한국인이라는 착각을 하곤했다. 그처럼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처럼 슬라브족과 한국인은 다르게 생겼다. 그렇게 외모가 다른 이들이 같은 말을 쓰면서 한 나라 국민으로 묶여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러시아에는 소수민족이 거의 100종족 가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입이 쩍 벌어졌다. 러시아는 땅넓이도 대한민국의 100배쯤 된다고 한다. 한 나라가 하나의 대륙만큼 큰 나라가 러시아이다. 정말 대단하다. 북한 위, 일본의 홋카이도 위에 있는 캄차카 반도 하나가 남한보다 훨씬 크다. 거기는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곳인데 말이다. 사람이 살기야 하겠지만 화산온천지대라서인지 인구가 희박한 곳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일주일을 여행한 뒤 모스크바에서 내렸다. 중국에서는 돈이 많아서 번듯한 호텔에서 푸짐한 조식을 먹으며 지냈는데 러시아에서는 돈이 없어서 어느 좁디좁은 호스텔 같은 곳에서 장을 봐와서 식사를 했다. 하루는 어느 작은 호텔에서 묵기도 했고 뷔페식의 조식을 먹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서양에 오니(러시아가 서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먹는 문화는 그런 것 같음) 모두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빵도 손으로 찢어먹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너도나도 칼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테이크를 자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도 칼질을 해야하나?'
뒤돌아보면 참 재미있는 기억이다.
오늘은 러시아 여행 이야기를 이 정도만 써야겠다. 엄마가 밥 차리라고 성화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