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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샘솟는 글 스크랩 ■ 25년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역사. <1> 82년 원년.[퍼옴]
허종권 추천 0 조회 386 13.08.23 14: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25년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역사. <1> 82년 원년.

 

 

 

 

<프로야구 개막전 입장권>

 

===★프로야구 그 역사의 시작★===

 1982년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창단 된 팀은 총 6개 구단이다. 각 구단은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연고지는 각 기업의 회장의 고향으로 정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MBC 청룡은 서울, OB 베어스는 대전,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 삼성 라이온즈는 대구,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을 각각 연고지로 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있던 해에 인천의 공설운동장을 경기장으로 사용하였기에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을 떠나 춘천에서 개막전을 치룬 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하다가 인천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 프로야구은 1982년 3월 27일 MBC 청룡 VS 삼성 라이온즈로 시작되었다. 경기장은 MBC 청룡의 홈구장인 서울 동대문구장. 이 경기는 1회 득점으로 시작하여 9회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경기가 끝난 명승부였다. 헐크 이만수 선수는 이 경기에서 한국프로야구 첫안타, 첫홈런을 기록한 주인공이 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끝내 MBC 청룡의 편이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이 이루어졌다. 만루 상황에서 삼성은 마무리로 좌투수 이선희가 나왔고, MBC의 타자는 이종도였다. 이종도는 이선희의 공을 받아쳐 역전 만루홈런을 치며 첫 끝내기홈런을 기록하게 되었다.

 

<MBC청룡의 홈구장 동대문 구장의 개막전 당시 모습>

 

===★원년의 우승. 불사조 박철순과 OB 베어스★===

 1982년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창단되었으며 그 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1982년의 오비라면 누가 뭐라해도 박철순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최다연승기록인 22연승의 소유자. 미국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트리플A에서 오비로 스카웃 된 박철순은 그 당시 한국에서는 접하지도 못했던 너클볼이나 팜볼 등의 신구질 등을 선보이며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4월 10일부터 9월 18일까지 161일간 30경기에 등판하여 22연승을 기록해내며 시즌을 24승 4패 7세이브로 마감하였다. 그 외에도 한가지 진기록을 세웠다. 특정구단 상대로 최다연승 기록을 세웠다. 삼미를 상대로 16연승 무패의 기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OB는 전기리그를 우승하였고, 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과 맞붙게 되었다. 삼성은 오비보다 한수 위 전력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1차전은 3:3으로 연장 15회까지 가는 바람에 무승부가 되었고, 2차전은 삼성이 승리하였다. 3차전부터는 오비가 연승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4차전에서는 4-4로 동점이던 상황에서 포수 이만수와 황규봉의 충돌로 인해 결국 역전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6차전에서는 박철순과 이선희의 맞대결이었다. 두선수 모두 완투를 해나가던 중 9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이선희 투수가 밀어내기로 1점을 실점한 후 김유동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여 결국 원년 우승은 OB베어스의 차지가 되었다. 이 해 한국시리즈 MVP는 만루홈런의 주인공 김유동 선수의 몫이 되었다.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우승>

 

<OB베어스 원년 멤버들>

 

===☆아쉬운 2위. 아직 삼성 라이온즈는 성장중?☆===

 원년 우승에 실패하였지만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삼성은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 경기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의 시합을 시작으로 프로야구에 이름을 올렸다. 개막전이었던 이 경기는 이만수 선수의 전설을 쓰기 시작한 경기였다. 한국 프로야구 첫 안타, 첫 홈런의 주인공인 이만수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1회 2루타, 5회 홈런을 치며 헐크 전설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하지만 9회말 이선희 투수가 이종도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결국 패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삼성의 오대석은 프로야구 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 사이클링 히트란 한경기에서 1,2,3루타와 홈런을 순서와는 상관없이 모두 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몇 없는 진기록이다. 여기서 사이클링 히트는 일본식 표현으로 요즘은 점차 Hit For The Cycle 이란 표기로 사용되고 있다. 이날 경기는 삼미를 상대로 삼성이 20:6로 이긴 날로 원정경기 최다득점을 기록한 날이기도 하였다. 전기리그는 OB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후기리그에서 우승한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참가하게 되었다. 1무, 1승 처음엔 좋은 분위기로 시작하였으나 3차전부터는 계속 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결국 6차전에서 끝내기 만루홈런과 함께 아쉬운 2위에 머물게 되었다.

 

 

 

<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1차전 준비중인 삼성 선수들.>

 

===?꺼지지 않을 4할 대의 타격. MBC 청룡?===

 프로야구 역사상 4할 대의 타자는 유일무이하다. 바로 MBC 청룡의 선수 겸 감독인 백인천 감독이다. 백인천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해오던 선수로 원년에 프로야구가 새로이 시작되면서 한국으로 복귀한 선수이다.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크게 이름을 떨쳤던 백인천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대기록인 0.412 의 타율을 이루어냈다. 선수이기도 하였지만 감독이기도 했던 백인천감독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몰수패가 되는 불명예도 가지게 되었다. 1982년 8월 26일 대구 구장에서 MBC의 2루수 김인식 선수와 삼성의 유격수인 배대웅 선수 간의 싸움이 팀간 싸움으로 격화되면서 발생하였다. 병살 위기에 삼성 배대웅이 병살 저지를 위해 슬라이딩을 한 것이 2루수 김인식 선수를 차고 만 것이다. 화가 난 김인식 선수는 배대웅 선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고, 이를 본 양팀 덕아웃의 선수들은 달려나와 집단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용하게 넘어갈 듯 하던 싸움이 주심이 김인식 선수만 퇴장명령을 내리자 그동안 지켜보던 백인천 감독이 발끈하여 심판에게 싸움의 발단이 배대웅인데 왜 김인식만 퇴장시키냐면서 진행에 불만을 품고 MBC 선수진의 철수를 전했다. 결국 게임은 9-0 몰수패로 결정되게 되었다. 다행히 이날 싸움에서 김인식 선수는 출장정지 처분을 받지 않았고, 606경기 연속출장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4할대 타자 백인천>

 

===▷타격 각 분야 1등 해태 타이거즈◁===

 1980년대 초 마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당시 최고의 거포를 찾는다면 이만수 선수와 해태의 김봉연 선수를 말하게 된다. 1982년 원년 홈런왕 김봉연 선수는 해태에 7시즌 있으면서 총 110개의 홈런을 쳐낸 한국프로야구 초반의 걸출한 거포였다. 그리고 해태에는 이종범 선수 이전에도 매우 빠른 바람같은 선수가 있었다. 바로 중견수 김일권 선수이다. 원년 도루왕으로 총 도루 53개를 기록하며 최고의 다리임을 입증해 보였다. 거기에 김일권 선수는 한국 최초로 단독 홈스틸에 성공한 선수이기도 하다. 1982년 7월 21일. 삼미를 상대로 단독 홈스틸에 성공하였다. 홈스틸이란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할 때 달리기 시작하여 투수의 공보다 먼저 홈에 도착하는 것으로 보통 홈스틸로 인해 투수의 폼이 무너져 공이 폭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보다 사람이 빠르기란 매우 힘든 일이기에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최고 타점 선수 또한 해태가 차지하였다. 바로 김성한 선수이다. 총 타점 69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진에 비해 투수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전, 후기 통합 4위에 머물게 되었다.

 

<원년 올스타전 당시의 해태 김봉연>

 

===▶부산 갈매기의 시작. 롯데 자이언츠◀===

 1982년 원년 부산을 연고지로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 이미 일본에서 1969년부터 모기업인 롯데가 다이마이 오리온스를 인수하며 프로야구를 시작하였다. 그만큼 일본에서의 경험이 한국프로야구에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였지만 원년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실업야구 리그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우승을 차지했던 박명길 감독을 중심으로 시작된 롯데는 1982년 3월 28일 부산 홈경기에서 해태를 상대로 14-2 라는 큰 점수차 승리로 한국프로야구의 시작을 알렸다. 롯데에는 원년 당시 2명의 쌍포가 존재하였다. 바로 김용철과 김용희 선수. 이 중 김용희 선수는 올스타전 3차전에서 만루홈런을 치며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투수진에서도 탈삼진 1위인 사이드암 노상수 선수가 마운드에 버티고 있었다.. 조명 시설을 갖추게 된 부산 구덕야구장의 첫 야간경기는 프로야구 올스타전 1차전이었다. 하지만 경기 최종 순위는 아쉽게도 5위. 비록 6위와는 큰 차이를 보였지만 아쉬운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원년 당시의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도깨비 방망이? 물방망이? 삼미 슈퍼스타즈◆===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주인공 감사용 선수의 팀. 삼미 슈퍼스타즈.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도 여럿 세운 팀이었다. 특정 구단을 상대로 (OB베어스) 16연패 무승. 12연패의 투수 감사용. 인천의 짠물야구의 시초가 된 삼미 슈퍼스타즈는 아쉬운 성적들을 만들며 시작하였다. 세계선수권대회로 인해 인천구장을 사용하지 못한 삼미는 우여곡절 끝에 개막전을 1982년 3월 28일 대구에서 치루게 되었고, 삼성전인 이 경기에서는 5:3 승리를 거두며 좋은 시작을 보였다. 춘천을 비롯한 다른 여러 구장을 전전하며 돌아다녔던 삼미는 이후 계속되는 부진 속에 한시즌 동안 감독을 3번 바꾼 팀이 되었다. 하지만 도깨비 방망이라는 별명을 가진 삼미팀은 가끔 강호팀들을 상대로 무서운 실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OB, 삼성, MBC 모두 삼미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들쑥날쑥하며 고르지 못한 팀의 경기력을 비꼬면서 만들어진 별명이 도깨비 방망이였다. 삼미는 특출난 스타선수가 없는 만큼 ‘노스타즈’라는 별명도 얻기도 하였다. 그래도 삼미에는 3명의 선수가 있었다. 인천의 적자라는 별명을 가지며 인천 야구역사에 획을 그은 양승관 선수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이혁재가 열연한  금광옥 포수. 그리고 빠른 발을 이용한 야구를 펼치던 유격수 조흥운 선수이다. 결국 삼미는 82년 원년 승률 0.188이란 기록을 세우며 아쉬운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 1982년 3월 28일 개막전 입장 모습 >

 

<삼미의 투수 감사용을 모델로 한 영화 : 슈퍼스타 감사용>

 

 

1982년 프로야구 최종 결과.

1위 : OB 베어스 : 80전 56승 24패 승률 : 0.7

2위 : 삼성 라이온즈 : 80전 54승 26패 승률 : 0.675

3위 : MBC 청룡 : 80전 46승 34패 승률 : 0.575

4위 : 해태 타이거즈 : 80전 38승 42패 승률 : 0.475

5위 : 롯데 자이언츠 : 80전 31승 49패 승률 : 0.388

6위 : 삼미 슈퍼스타즈 ; 80전 15승 65패 승률 : 0.188

 

타율왕 : MBC 백인천: 0.412

홈런왕 : 해태 김봉연 : 22개

도루왕 : 해태 김일권 : 53개

타점왕 : 해태 김성한 : 69점

득점왕 : 해태 김봉연 : 55점 

다승왕 : OB  박철순  : 24승 4패

최다세이브 : 삼성 황규봉 : 8 구원승, 11 세이브

최다탈삼진 : 롯데 노상수 : 14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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