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시 (僧市) >
- 승시 세미나와, 팔공산 승시 축제를 다녀와서 -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이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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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1. 승시세미나에 참여하다.
2. 승시란 무엇인가?
3. 팔공사나 승시 축제에 참여하다.
4. 느낀점
1. 승시세미나에 참여하다.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 반월당 근처에 있는 보현사 보광명홀에서 열리는 승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세미나라는 것에 긴장도 조금은 되었다. 지금까지 대학생활을 하면서 세미나 참석은 처음이거니와, 세미나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학자 분들이 자신의 학술적 입장을 밝히고 토론을 하는 것이란 인상이 강하게 들어서, 나같이 지식이 많지 않은 대학생이 가서 들어도 되는 자리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지게 해 주신 김 재원 교수님께 먼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대구에 쭉 살면서 물론 우리집안도 불교라 대부분 팔공산에 있는 절들을 다녀왔는데, 항상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며 지나친 반월당 근처에 ‘보현사’라는 절이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나름 시끄러운 도심 사이에 위치해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직접 가서 보니 항상 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고 있는 절만 보다가, 빌딩과 아파트 사이에 있는 보현사도 나름 운치 있어 보였다.
승시세미나 답게 정갈하게 승복을 입으신 스님들도 많이 참석하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친구와 보광명홀 입구에서 세미나 참석자들께 안내 역할을 했는데, 특히 연세가 많아 보이시는 스님들이 오시는 것을 봤을때 얼마나 진심으로 승시가 잘 되기를 바라셔서 참석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대구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축제가 많지 않음을 알기에 승시 축제가 매년 거듭 될수록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부터 개회사, 인사말, 환영사 등이 있은 뒤 사회자의 사회에 따라 발표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사실 학교에서 ‘고려사’라는 수업을 2학년때 들은 적이 있지만 ‘승시’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이번 기회가 처음이였다. 그만큼 일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생소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 사회자 분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배부된 책자도 같이 읽으니,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내용에 대해 알게 되어 기뻤고 흥미로웠다.
발표가 끝난 뒤 종합토론이 진행되면서, 몇몇 스님들께서는 발표 내용에 대해 조금 감정이 상하신 부분이 있으셨는지, 좋지 않으신 내색을 내보이시기도 했다. 물론 팔공산의 동화사, 대구광역시,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주최하는 만큼 서로의 의견과 이해를 조합하기란 힘들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열리는 축제가 3회째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참석자 분들이 참석하신 만큼 아마도 승시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염원은 같을 것이다.
이로써 승시를 통해 대구 시민 뿐만이 아니라, 대구를 찾는 내.외국인 관람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재인식 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즉 승시가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며 더욱더 대구지역의 문화 관광산업 활성화를 하는데 또다른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2. 승시란 무엇인가?
승시(僧市)는 불교 용품의 생산과 대규모 유통이 이뤄졌던 시장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민중의 삶에 동화되어 전해져 내려온 종교는 아마도 ‘불교’가 아닐까 생각된다. 즉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억압받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오랜 명맥을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다.
불교하면 사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고려시기의 사원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종교적인 기능 외에,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외침의 방어에 힘쓴다던지, 정치적 변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여러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기능을 한 것이 바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기능 이였다. 재화의 생산과 분배. 소비 등 경제활동의 여러 측면에서 사원은 고려시기 매우 높은 위상을 차지하였는데 그 예로 각종 불교 행사의 비용이나, 대부분 사원이 목조로 지어지다 보니 사원 건축물의 보수, 승려의 생활비 등에서 많은 지출이 있기도 했으며 실제 이러한 소비와 분배뿐만 아니라 사원에서는 다양한 생산 활동도 이루어 졌다고 한다. 물론 교리상 살생이 뒤따르는 농업생산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권장되지 않으므로 승려가 직접 재화를 생산하는 일이 활발하였다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사원에서의 생산 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아무래도 사원에는 승려뿐만 아니라 노비와 속인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의 승려도 있었으므로, 노비나 하급 승려가 주도하여 사원 생산 활동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사원에서는 무엇을 기반으로 경제적 활동을 수행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사원은 다양한 계기에 의해 농지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사적 소유지의 경우 사원에서 소속 노비나 승려가 경작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채소, 순채, 파, 마을, 유밀 등의 여러 작물을 재배하여 확보 하였다고 한다. 또한 특이한 점으로는 고려시기 사원에서 잉여미곡을 가지고 보존이 여의치 않아 이것으로 술을 빚는, 즉 양조활동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임야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필요한 산물을 확보하기도 하였는데, 직접 생산하거나 채취하는 방법으로 확보하였다. 사원이 산림에서 생산하는 것은 다양하였다. 연료, 재목, 과실류, 버섯, 산나물이 대표적 이였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확보감은 식사준비와, 난방을 하는데 필요한 땔나무였다. 후에는 땔나무에서 더 진전된 숯을 제작할 수도 있었고, 건축물의 조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도 하였으며,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각종 나물, 즉 자세히 말하자면 고사리, 칡, 버섯, 도톨밤 등이 재배되었고, 과일로는 배, 대추, 밤, 잣, 감 등이 많이 재배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원에는 고급 기술을 소지한 승려나 노비가 다수 보유되어 있었는데, 즉 전각을 세우거나 범종이나 반자를 제적하고, 기와를 굽거나, 탑이나 부도를 세우는 일, 불화를 그리는 일 등에는 고급 기술자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장인들이 많은 가운데 이러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생산한 물품으로는 부채, 모시, 붓 등을 확실하게 확인이 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도 자체 생산을 하여 판매하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즉 이러한 사원에서 생산해낸 물품들이 일차적으로는 사원 자체에서 소비되었겠지만, 점차 교역품으로 제공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사원의 생산 활동이 당시 전체 경제활동에 큰 활기를 불어넣는 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승시는 스님들의 시장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소재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승시를 다시 재구성하여 여는 것은 "승시"를 지역 문화관광의 콘텐츠로 개발하여 우리 지역의 경쟁력 있는 특화된 콘텐츠 활성화 시킴과 동시에, 사찰이 갖는 문화와 시장이 가지는 교류를 통해 우리의 잊혀진 전통문화유산을 발굴하자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3. 팔공산 승시 축제에 참여하다.
실제로 대구 팔공산의 ‘씨네 80 자동차 극장’에서는 2012년 10월12일 금요일부터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까지 4일간 ‘팔공산 승시 축제’가 개최되었다. 4일중 개인적으로 어머니와 10월 13일 토요일에 동화사도 찾아가 볼 겸 들리게 되었다.
대구 성서에서부터 팔공산의 동화사 방면까지 실제 ‘급행1번’버스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여러 시민들도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올라가는 길에 차가 굉장히 많이 막혔는데, 아마도 팔공산에 단풍 구경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과연 사람들이 많이 올 정도로 홍보가 잘 되었을까? 라는 걱정도 되었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즉 대구시에서도 함께 후원해줘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대구의 길거리 마다 걸려있던 현수막이나, 버스 승강장의 홍보물코너에 소개되어 있던 것을 실제로도 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보고 많이들 왔나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외국인들이 이러한 곳에 와보면 더 재미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외국인들을 많이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승시 축제는 크게 ‘대구지역의 특화된 불교음악, 풍물 등 공연예술 프로그램’, ‘합창, 법고연주, 찬불가 경연대회’, ‘선(仙)과 불교 관련 기획전시 개최’, ‘승시(전통불교장터) 재현 및 각종 민속행사’와 ‘사찰음식, 해외 불교문화 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승시가 이루어지는 행사장 안에서 ‘승시통보(엽전)’만 사용 가능하게 하여 환전하도록 한 것이 참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였다. 또한 아이들이 씨름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열려있거나, 목각인형 체험 등 여러 체험의 장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오히려 전통과 많이 동떨어져 있는 젊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4. 느낀점
개인적으로 이러한 승시를 새롭게 다시 열어 보이고자 하는 것에 나는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싶다. 외국만 하더라도 5일장 등의 시장들이 많이 서기도 하고, 플리마켓( flea market – 벼룩시장)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잘 열리고 있다. 이러한 시장을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는 정도이니, 시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문화 관광적으로 가치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는가하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점차 우리나라는 현재 시골에 열리고 있는 소수의 장터도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특히 승시가 다른 일반 장터와 차별화 둘 수 있는 하나는 바로 스님이 주체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만약 방문하였을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에 얼마나 신선하게 비춰질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 팔공산 승시 축제를 찾았을 때, 물건을 팔기 위한 상업적인 가게 단체가 자리를 잡아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즉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오히려 옛 고려 시대때 주체자였을 스님들이 축제에서 하신 것은 의자에 앉아 계시거나, 돌아다니시거나, 그저 유일하게 한 부스에서는 “00 스님의 명상체험” 이란 현수막과 함께 명상체험을 하도록 해둔 것 밖에 없었다. 물론 고려시대때 실질적으로 생산활동을 펼쳤을 인물은 사찰에서 노비나 하급 스님들이라고 세미나에서 언급이 되기도 했고, 예전 시대와 같이 너무나 비슷한 것을 현대에 바랄 수는 없겠지만, 사전에 승시를 개최하고자 했다면 실제 최소한 예전 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재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식물이나 약초 등을 재배해오거나 직접 만드신 물품들을 진열해 두는 등의 준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즉 기대한 예전의 고려시대의 승시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름만 승시이고 현대 시장 장터와 별 반 다를 것이 없어 고유한 승시의 모습을 하나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또한 ‘해외 불교문화 체험’이라는 제목을 홍보물 책자에서 미리 들어가기 전에 읽었었는데, 사실 인도 악세사리 등을 파는 부스와, 인도, 태국, 라오스 등의 국가에 불교사원등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파는 부스 등 의미 있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즉 승시가 시장의 일부인 점은 맞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대적인 상업화에 의한 것들만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두고 세미나에서 몇몇분의 역사학자 교수님들이 발표하고 제의한 것에 반대하는 스님들의 태도가 보였기도 하지만, 의견 조합이 잘 이루어져서 내년, 그리고 내내년의 승시축제는 더욱더 성공적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