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의 마음에 병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신상인 교수
어떠한 경우라도 우울이라는 정서에 지배되어 있는 양육자로부터 돌봄을 받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어렵다는 것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육아 현장에서 만나는 양육자들의 상당수가 크고 작은 마음에 병을 앓고 있는 상태로 대수롭지 않게 여전히 영유아를 양육하고 있는 위태로운 경험을 자주한다.
또한 TV 뉴스에서 아동 관련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건의 배경으로 양육자의 우울이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필자는 양육자의 우울은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이므로 양육자 스스로가 우울증이 의심이 되면 조기에 적극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가족이나 주변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상담 및 심리치료를 제공하는 등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울증 판정 여부를 떠나 우울한 양육자가 영유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울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문제에 대해 극복하려는 의지와 의욕을 집어삼키고 스트레스 상황에 굴복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울에 빠져 무기력한 부모는 첫째, 강압적, 통제적 양육 태도를 취하기 쉽다. 왜냐하면 우울로 인해 자신에게만 몰입한 상태인 탓으로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여 아이가 보내는 다양한 도움의 신호에 따뜻하고 세심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손쉬운 통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안정한 만큼 양육자로서의 권위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적대감을 갖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영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는 정서불안, 적대적, 반항적, 공격적 행동, 과잉행동, 위축된 태도 등 광범위한 문제 행동을 보이고, 그 여파는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큰 문제가 된다.
둘째, 우울에 빠져 무기력한 부모는 자녀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고 거부하는 양육 태도를 취하기 쉽다. 왜냐하면 무기력으로 인해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 에너지를 덜 쓰는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영유아기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발달하는 시기다.
유아가 또래 관계에서 사용하는 미소 짓기, 협동, 나누기, 배려, 공감 같은 사회적 기술은 양육자로부터 배우는데, 양육자가 보이는 무기력한 태도와 거부는 별도 학습과정 없이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그래서 이후 발달 과정에서 사회적 기술 부족으로 인한 왕따, 부적응, 또래 거부 같은 부정적 문제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울한 부모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영유아들은 발달적 문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셋째, 우울에 빠져 무기력한 부모는 일관성 없고 비판적이고 감정조절이 안되는 혼란된 양육 태도를 취하기 쉽다.
왜냐하면 우울감 때문에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 보니
아이를 직접 해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불안, 죄책감, 무력함, 무관심, 적대감, 무표정, 비판적 태도 등을 자녀에게 스스럼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때 짜증,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 행동양식이 전달되면 유아는 그것을 문제행동으로 표출하게 된다.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러한 유아의 문제행동은 아동,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고 하므로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에 의하면 “크면 다 괜찮아진다고들 하지만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며 “아이는 최선을 다해 잘 키우려고 애써야 잘 크는데 양육자가 우울하면 마음에 여력이 없어 그렇게 할 수 없어진다.” 고 하였다.
따라서 영유아를 돌보는 양육자의 우울이 자신을 손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머뭇거릴 수 없는 문제이므로 어떠한 경우보다도 신속하게 전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치료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활용하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신의 우울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않고 심리적 건강을 유지해야 건전한 양육이 가능하다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