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가을까지의 런던아저씨의 소일거리 중 하나는 평일 저녁에 일 끝내고 동네 뒷산을 올라가는 것입니다.
해발 600-700미터 정도의 산들이라 중턱까지만 갈 때도 있고 정상까지 갈 때도 있는데, 6시경부터 올라가서
8시 전에는 보통 내려오지요...
어제는 거의 정상 근처까지 가서 운무에 가려 발 아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속세 풍진의 더러움들을 바람에 날려보내는 것같은 잠깐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대가 그때입니다.
살면서 그럴 때가 종종 있지요.
바둥바둥 해도 여기가 끝인가보다, 이젠 여기서 더 어떻게 아주 할 수 없나 보다, 등등,,,
그런 나아감의 욕망과 포기 또는 수용의 자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구름처럼 떠돌 때,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삶이 허무해질 때,
그러면서 막연하고 끝없는 불안이 산정을 떠도는 운무처럼 엄습해올 때,
그럴 때,
그때 늘 떠오르면서 위안이 되는 미당의 시 한편 보내드립니다.
한량님이나 몇분 지인들은 제가 여러번 보여드린 시긴 합니다만...
좋은 시들은 두고 두고 씹을 수록 계속 단맛이 우러납니다.
미당의 시들은 거의 모든 시들이 다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도 걸작 중 하나에요...
시가 기니까 해설은 두세가지만 간단하게 붙이겠습니다...
우선 '고향'의 문제인데요,
결국 실제 지리상의 고향도 당연히 관련되겠지만, 중요한 건 시인의 마음 속에 표상으로 들어와 있는 고향이겠지요.
그리고 그 고향은 '집'이 확장된 '장소'입니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세계의 중심 또는 베이스
캠프로 이런 장소가 자리잡고 있는 사람, 나아감의 욕망 뒤에 언제든 '아조 할 수 없이 되면' 돌아갈 수 있는 고향,
집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예전에 몇편 보내드린 박영근 시인의 경우나 기형도의 경우처럼 집은 모두 폐가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길'인 사람의 내면은 완전히 다를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구원의 문제인데,
그 '고향'의 마지막 안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뒤에 나오는 소녀들 얘기로 좀더 확실해집니다.
시인의 마음 속에 고향이라는 곳은 꽃송이로 문지르면 상처가 다 낳는 그런 소녀들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런 대목이 미당 시의 뛰어난 점이자 시적 황홀을 극대화하는 지점인데, 실제로 유년에 시인이 겪었을 법한 어떤
일화가 이렇듯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신화 속으로의 도피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전자쪽에 좀더 기우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훌륭한 시들이 그렇지만, 미당의 시들은 절대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여긴 오지마',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아조 가는 날' 등의 싯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구원의 장소에 대해 양가적인 면, 그리고 어쩌면 그 장소가 구원과 치유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결국 죽음의 장소일 수도
있다는 암시가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어쨌든 삶이 고단하고 피곤할 때,
그때 제가 늘 돌아가는 시적 고향은 바로 이 시랍니다..
아주 할 수 없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말이지요....
무슨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
서정주
븬 가지에 바구니만 매여두고 내 少女, 어디 갓느뇨
-吳一島
아조 할수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도라올수없는 옛날의 모습들. 안개와같이 스러진 것들의 형상을 불러 이르킨다.
귓가에 와서 아스라이 속삭이고는, 스처가는 소리들. 머언 유명(幽明)에서처럼 그소리는 들려오는 것이나, 한마디도 그뜻을 알수는 없다.
다만 느끼는건 너희들의 숨소리. 소녀여, 어디에들 안재(安在)하는지. 너희들의 호흡의 훈짐으로써 다시금 돌아오는 내 靑春을 느낄 따름인 것이다.
소녀여 뭐라고 내게 말하였든 것인가?
오히려 처음과 같은 하눌 위에선 한 마리의 종다리가 가느다란 핏줄을 그리며 구름에 묻혀 흐를뿐, 오늘도 굳이 다친 내 전정(前程)의 석문앞에서 마음대로는 처리할 수 없는 내 생명의 환희를 이해할 따름인 것이다.
*
섭섭이와 서운니와 푸접이와 순녜라하는 네 명(名)의 소녀의 뒤를 따라서, 오후의 산그리메가 밟히우는 보리밭 사이 언덕길 위에 나는 서서 있었다. 붉고 푸르고, 흰, 전설속의 네개의 바다와 같이 네 소녀는 네 빛갈의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하늘 위에선 아득한 고동소리. ……순녜가 아르켜준 상제님의 고동소리. ……네 명(名)의소녀는 제마닥 한개씩의 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부구리고, 차라리 무슨 나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절을 하고 있는것이었다. 씬나물이나 머슴둘레, 그런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머언 머언 고동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는것이였다. 후회와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으리고 있는 것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잡히지 아니하는 것이였다. 발자취소리를 아조 숨기고 가도, 나에게는 붓잡히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담담히도 오래가는 내음새를 풍기우며, 머슴둘레 꽃포기가 발길에 채일뿐, 쌍긋한 찔레 덤풀이 앞을 가리울뿐 나보단은 더빨리 다라나는것이였다. 나의 부르는 소리가 크면 클스록 더 멀리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였다.
여긴 오지 마 …… 여긴 오지 마……
애살포오시 웃음 지우며, 수류와 같이 네 개의 수류와 같이 차라리 흘러가는것이였다.
한줄기의 추억과 치여든 나의 두 손, 역시 하눌에는 종다리새 한 마리 - 이런것만 남기고는 조용히 흘러가며 속삭이는것이였다. 여긴 오지마……여긴 오지 마…….
소녀여, 내가 가는 날은 도라 오련가. 내가 아조 가는 날은 도라 오련가 막달라의 마리아처럼 두눈에는 반가운 눈물로 어리여서, 머리털로 내 손끝을 스치이련가.
*
소녀여, 내가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내가 아조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막달라의 마리아처럼 두눈에는 반가운 눈물로 어리여서, 머리털로 내 손끝은 스치이련가.
*
그러나 내가 가시에 찔려 아파할 때는, 네 명(名)의 소녀는 내곁에 와 서는 것이였다. 내가 찔레 가시나 새금팔에 베혀 아파 할 때는, 어머니와 같은 손가락으로 나를 나으러 오는것이였다.
손가락 끝에 나의 어린 핏방울을 적시우며, 한명(名)의 소녀가 걱정을 하면 세명(名)의 소녀도 걱정을 하며, 그 노오란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허연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빠앍안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하던 나의 상(傷)채기는 어쩌면 그리도 잘 낫는 것이였든가.
정해 정해 정도령아
원이 왔다 문열어라.
붉은꽃을 문지르면
붉은피가 도라오고.
푸른꽃을 문지르면
푸른숨이 도라오고.
*
소녀여. 비가 개인날은 하늘이 왜 이리도 푸른가. 어데서 쉬는 숨소리기에 이리도 똑똑히 들리이는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
*
몇 포기의 씨거운 멈둘레꽃이 피여있는 낭떠리지 아래 풀밭에 서서, 나는 단하나의 정령이 되야 내소녀들을 불러 이르킨다.
그들은 역시 나를 지키고 있었든것이다. 내속에 네리는 비가 개이기만, 다시 그 언덕길우에 도라오기만, 어서 병이 낫기만을, 그옛날의 보리밭길 우에서 언제나 언제나 기대리고 있었든 것이다.
*
내가 아조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첫댓글 아..... 고맙습니다.
잘 기억하겠습니다..........
꽃잎으로 상처가 치유되는 소녀들.....
허튼 저에게 요즘 "고향"은 아주 특별한 의미인데...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수천겹의 맛과 향 잊지 않겠습니다....
음 제가 쪼곰 잘못 썼군요ㅎ 상처가 낫는 소녀들이 아니라 상처를 낫게하는 소녀들인데ㅎㅎ
네명의 소녀, 서운, 섭섭, 여긴 오지마.. 이건 정말 다른나라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특유의 향이 있네요. 향을 피워놓은것같은..
걸그룹이 연상되는 저의 얄팍함에 절망하고 있네여...;;; ㅠ
ㅎㅎㅎ네, 사실 그런 면이 서정주의 시들에 있어서의 토속성 문젠데, 나중에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서정주 시들의 특징 중 하나가 그런 토속성이 강한 시들에서조차 토속적인 느낌보다도 오히려 상당히 모던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죠...
@journey ㅍㅎㅎㅎㅎㅎㅎ상상력의 풍부함을 얄팍함이라고 생각하실 필욘 없을듯요...ㅋㅋㅋ...말씀 듣고 나니,,,네 명의 걸그룹이 계속 문질러만 준다면 온종일 자해를 해서 온몸에 상처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은...ㅋㅋㅋㅋㅋ
동네산에 오르신다고 하셨나요? 두시간 넘게 산에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지요?신경숙이란 작가가 자기고향이 시골이어서 좋다지만 벌레생각만하면 싫어지기도 한다고해서욤^^샘 미당신 정말 다 좋으네요~시를 좋아하는 샘도 좋은걸 마이 지니신 분이실것 같구욤~
상처라는 단어가 떠올랐구요~또 따뜻한 시선,어여뿐 젊은 엄마?ㅋ , 외로움, 여성에 대한 기대가 시전체를 휘돌아서 좀 유아적인 느낌이 ~~에라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 말씀하시고서는 '에라 모르겠다'는 뼁끼(?)인가요..ㅋㅋㅋ...산에는 올라가는데 50분, 중간중간 그리고 위에서 잠깐 앉아서 바람 맞는 시간이 한 30분, 내려오는 시간 30분 정도요...ㅎㅎ
@런던아저씨 등산이 등산복차려입고 트레킹화신고 모여서 가자고 하셔서 부담되고 해서 안갔었거덩요~몰랐어요~이건 진짜 제슈 좀 없죠~ㅎ ㅎ 제가 좀 경계가 확실한푠이라 ~ㅎ
@초록별 ㅋㅋㅋ뭐, 동네 뒷산 가는거라...근데 저는 뭐, 그냥 잘 늘어나는 신축성이 좋은 바지만 갈아 입고 다른 건 그냥 출근한 그대로 입고 올라가긴 하는데, 갠적으론 산은 작은 산이라도 절대 무시 말고 갖출건 잘 갖추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임다...ㅋ
아~ 좀 찬찬히 더 찬찬히 읽어보아야 할것 같은...^^;
근데...
이런 시집을 들고 뒤산에 오르시나요? ^^
왠지 런던아저씨는 이름과 다르게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향... 아니 유배되신 건 아니죠? ㅋㅋ
ㅎㅎㅎ글쎄요, 시집 들고 갈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들고 가서 읽고 와야겠어요..ㅋㅋㅋ
@낑낑이 저번에 런던아저씨가 어느 대자보에 올려주셨던 '어느 신사가 산 정상에 올라 지팡이 짚고 서있는 그림'...
더 설정샷으로 보였어요...ㅋㅋㅋ
뭐 시집 옆에 끼고 산 중턱에 앉아 시 한수...
음.. 좋은데요...^^
@낑낑이 ㅎㅎㅎ평일 저녁은 시간이 좀 어렵고, 주말같은 때는 산에 책 들고 가서 한두 시간 보고 와도 갠차나여...북한산처럼 큰 산은 좀 힘들겠지만요...ㅋㅋ
......결국 상처를 입지 않으면 그 소녀들은 결코 내 옆에 오지 않는군요
내가 피를 흘리고 다쳐야 비로소 상처난 곳을 싸매주러 내 옆에 오는군요
삶이란 다치지 않고 살수는 없는거
다쳐도 아파도 누군가가 옆에 와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아픔을 견딜 수 있겠네요^^
앞으론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네요
내 옆에 누군가가 날 치료해 줄테니까요^^
오~댓글이 오나전 시적이네요...ㅎㅎ
@런던아저씨 아~~~그래요?
그럼 한 번 시 좀 써볼까요? ㅋㅋ
@나그네 ㅋㅋ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