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북한산 입구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이 비봉이 왜 비봉인지 아는 사람이 반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ㅠㅠ
아는 사람중에서도
그 비석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더라고 했습니다.
북한산 비봉에 서있는 진흥왕 순수비
학교에서 교과서에 배운 바로 그 순수비...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창령 순수비중 하나입니다.
오랜기간 풍화에 시달려
원본은 국립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이고
비봉에는 모조품을 세워 그 자리였음을 알리고 있지만
국보 제 3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진품>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져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 신라 진흥황 척경비(국보 33호)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첫댓글 http://m.blog.naver.com/kwk0509/220316461155
국보3호를 검색하면 젤먼저 뜨는 검색결과요~^^
아니 그양반은 왜
내 글을 전부 모아놨대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