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콩이의 변(辯)
정사강
내 이름은 달콩이. 나이는 열두 살. 생후 40일 만에 이곳으로 왔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나를 사달라고 조르자 아들은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사 왔다. 한 달 후 여자친구랑 헤어지자 아들은 나를 잘 돌보지 않았다. 그 후, 아들의 엄마는 나의 엄마가 되었다.
내 얼굴은 아주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사색에 잠긴 듯한 눈망울과 촉촉한 코와 뚜껑처럼 생긴 삼각형 귀가 귓구멍을 덮고 있는 정감 있는 얼굴이다. 나는 몰랑한 배와 보드랍고 윤기 있는 갈색 털을 가졌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나는 밥그릇에 사료가 부어지는 즉시 콩 볶는 소리가 나도록 급하게 먹고는 목구멍에 걸려 캑캑거린다. 물도 밥 먹듯 촵촵촵 핥아 금방 비워버린다.
나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다가도 어느새 무장해제가 되어 팔다리를 쭉 뻗고 코를 골며 잘 잔다. 자다가 깨서 문득 고개를 돌리면 흰자위가 초승달처럼 조금 보이는데 그게 엄청 매력적이라며 다들 좋다고 한다.
엄마는 함께 산책하며 내 모습을 수없이 사진에 담는다. 이젠 엄마가 핸드폰을 눈에 대기만 해도 가만히 앉아 기다리거나 원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엄마가 집을 비우고 혼자 있을 때 나는 무섭고 외롭고 싫다. 엄마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하루 중 제일 기쁠 때는 밖으로 산책하러 나갈 때다. 바깥세상이 그립고 궁금한 나는 날마다 밖에 나가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내가 경험해보고 아는 세상은 너무도 좁고 내가 가본 곳은 아주 적다. 목줄도 매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처음 바깥세상으로 나갔던 날, 얼마나 눈부시고, 신기하고, 놀라고, 두렵던지. 방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온갖 냄새들……. 풀냄새, 나무 냄새, 꽃냄새, 이슬 냄새, 그리고 흙냄새 등. 그 모든 게 어우러진 숲 냄새와 산 냄새를 맡느라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멈춰 서곤 했었다. 그리고 처음 듣게 된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못 나가겠어.”
“오늘은 볼일이 있어 안돼.”
“오늘은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
“오늘은 그림 배우러 가야 해.”
“볼일 끝나고 도서관 들려오면 좀 늦을 거야.”
“며칠 여행 갔다 와야 하는데, 집 잘 지킬 수 있지?”
혼자 집에 있는 날은 하루가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한지. 마냥 심심하고 외로워 이제나저제나 언제나 올까 기다리며, 저 아래 1층에서부터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마다 귀를 쫑긋 모으곤 한다. 그런 날은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까지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예민해진다. 뭘 모르고 종교를 전하러 와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기절할 만큼 왕왕 짖어대는 내 기세에 놀라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각종 광고지를 붙이러 오는 자들에게도 무섭게 짖어대며 겁을 주어 내가 건재하고 있음을 과시하면서 스스로 대견해한다.
엄마가 책상 앞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날. 발밑에 누워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발톱으로 그녀의 종아리를 살살 긁어본다. 미동도 안 할 때는 좀 더 절실하게 주둥이와 머리를 허벅지에 밀어 넣고 웅웅 앓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제야 웃으며 일어난다.
“알았다 알았어! 산책하러 가자꾸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엄마는 내가 흥분해서 길길이 뛰는 통에 목줄을 채우느라 애를 먹는다. 눈으로 마주하게 될 풀과 나무와 꽃들, 코로 맡게 될 온갖 냄새들, 귀로 듣게 될 그리운 소리를 생각하며 가슴이 벌렁벌렁 마구 방망이질 치는 때문이다. 드디어 문을 나서면 궁둥이를 씰룩씰룩 코를 벌룸벌룸하며 땅바닥을 힘껏 차며 엄마를 끌고 간다. 얘들아~반가워. 내가 왔어.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어둠은 내려앉는데 음~
그대 들려줄 한 줄 시도 못 쓰고
기억 속으로 차가운 안개비
안개비만 내린다.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가슴 저미는 그리움 쌓이고
세상이 온통 시들었어도 깊고 고요한
그대 품 안에서 잠들었으면
잠시라도 잠들었으면 🎶🎵”
엄마는 좋아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를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궁둥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곤 한다. 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따스한 품 안에 포옥 안겨 스르르 잠의 세계로 빠져 들면ᆢ,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개 엄마’ 품을 떠나와야 했던 날의 슬픔을 까마득히 잊게 만드는 아늑하고 포근한 나의 ‘사람 엄마’ 품.
그러나 무슨 열정이 그리도 많은지 TV 보면서도 노트에 무얼 자꾸 적는 바람에 달콤한 잠이 방해를 받는다. 불편해진 자세를 고치느라 꿈틀대면 앞에다 의자 하나를 더 가져와서는 거기에다 나를 올려놓고 두 발로 감싸준다. 품에 안기는 것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코를 골며 한숨 잘 자고 나면 행복한 기분에 명랑해지고 까불게 된다. 이때만큼은 개로 태어난 것이 즐겁기도 한데.
새벽 세 시에 알람이 울리면 드디어 오늘 나의 첫 식사 시간이다. 엄마는 내 기저귀를 처리하고 나서야 밥을 준다. 애타게 기다리느라 좀이 쑤시는데…….
“서당 개는 삼 년 안에 풍월을 읊는다는데 넌 어쩌자고 오늘도 실수하였느냐?!”며 듣기 싫은 말을 하고는 방바닥을 닦고 또 닦는다. 왜 나는 오줌 눌 때 기저귀에 정조준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하는 게 이렇게 안 될까!
“푸들은 머리가 좋다는데, 넌 아무래도 짝퉁 같다”라며 내 정체성까지 의심할 땐 정말 우울해진다.
나의 첫 끼니는 사료 반 컵이다. 아침저녁 반 컵씩 나누어 주고 외출할 때와 귀가할 때는 조금씩 더 주는데도 양에 안 차서 늘 배가 고프다. 예전에는 사료도 많이 주고 먹다 남은 것들을 아낌없이 주었는데 ‘윤 동물병원’ 원장님이 “귓병 납니다, 알레르기 있습니다.” 하면서 주의를 시킨 후부터 나의 먹방 시대는 끝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난 식사 때마다 눈을 빛내며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다린다.
엄마는 나에게 ‘껄떡쇠’라는 별명을 붙여주고는 자기는 더 껄떡대면서 먹다가 상 아래로 음식을 흘리기라도 하면 기겁하며 날래게 주워가면서, “네가 먹으면 큰일 난다.”라고 말한다. 에잇 치사하다. 하루 세끼 씩, 거기에 간식까지 다섯 차례 이상 먹으면서 나만 왜 그걸 바라보고 냄새만 맡으란 말인가?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나요?
까치발 들고 식탁에 코를 대기만 해도 불호령 하는 아들은 내 자존감을 여지없이 무너지게 만든다. 마음 약한 엄마는 사과 몇 조각이나, 삶은 달걀을 나랑 나눠 먹곤 한다. 나중에 치료비가 불어날 걸 알면서도 내 눈빛에 넘어가고 마는 엄마의 사랑 덕분에 피부병, 귓병에 시달렸지만서도ᆢ…….
사료만 먹는 요즘은 영 아쉽다. 개가 죽으면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이 죽으면 개로 태어나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비록 개꿈이어도 꿈을 꾸면서 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