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경주 남산-/ 정일근
허락하신다면, 사랑이여
그대 곁에 첨성대로 서고 싶네.
입 없고 귀 없는 화강암 첨성대로 서서
아스라한 하늘 먼 별의 일까지 목측으로 환히 살폈던
신라 사람의 형형한 눈빛 하나만 살아,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일년 삼백예순닷새를
그대만 바라보고 싶네
사랑이란 그리운 사람의 눈 속으로 뜨는 별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저마다의 눈물로 반짝이고,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의 순금 팔찌와
아사달을 그리워한 아사녀의 잃어버린 그림자가
서라벌의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로 떠오르네
사람아 경주 남산 돌 속에 숨은 사랑아,
우리 사랑의 작은 별도 하늘 한 귀퉁이 정으로 새겨
나는 그 별을 지키는 첨성대가 되고 싶네
밤이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쌓아 하늘로 올라가
그대 고운 눈 곁에 누운 초승달로 떠 있다가,
새벽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풀고 땅으로 내려와
그대 아픈 맨발을 씻어주는 맑은 이슬이 되는...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 김현태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등나무 그늘에 누워
같은 하루를 바라보는 저 연인에게도
분명,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눈물겨운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겨울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람 안에 또 한 사람을 잉태할 수 있게 함이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나무와 구름 사이 바다와 섬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 천 수 만 번의 애닯고 쓰라린
잠자리 날갯짓이 숨 쉬고 있음을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은 서리처럼 겨울 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 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먹구름처럼 흔들거리더니
대뜸 내 손목을 잡으며 함께 겨울나무가 되어줄 수 있느냐고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에
눈 위에 무릎을 적시며
천 년에나 한 번 마주칠 인연인 것처럼
잠자리 날개처럼 부르르 떨며
그 누군가가 내게 그랬습니다
*** 끝까지 녹화가 되지않아 유감입니다 ,이후 녹화가 안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