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표 다큐멘터리~

[기분좋은(+01.28)]

	최 근 소개되어 화제에 오른 ‘메이드 인 코리아’표 다큐멘터리들은 이제 우리도 NHK의 <실크로드>(30부작) 못지않은 명작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 소개하는 8편의 국내 다큐멘터리는 그 가능성과 뿌듯함을 화면 가득 증거한다.

오 랫동안 몰두하던 ‘미드’도 시들해지고, 더불어 기세등등하던 드라마 열풍도 잠잠해지고, 쏟아지는 버라이어티쇼 역시 똑같은 인물이 등장해 비슷한 웃음만을 남발한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은 다큐멘터리에 눈을 돌릴 때이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TV 시청’을 고급 취미라고 당당히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청량한 산소 같은 명품 다큐멘터리를 골라 볼 만한 취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쏟아진 명품 다큐멘터리가 이런 ‘고품격 취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지난달 말에 방영한 MBC <북극의 눈물>은 무려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 웬만한 미니시리즈 드라마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한번 빠져든 논픽션의 매력은 최근 방송법 개정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백 마디 말보다도 더 절실하게 전해준다.


1 <북극의 눈물> 녹아가고 있는 빙하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고픈 배로 힘없이 새끼를 품은 북극곰의 모습은 지난 연말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한껏 자극했다. 20억 원을 들여 만든 MBC의 작품은 오랫동안 귀언저리를 맴돌기만 하던 ‘지구 온난화’ 문제를 사람들의 가슴속에 ‘쿵’하고 던져놓았다. 북극 지방의 원시 자연과 그곳에서 자연과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누이트의 삶 등 구경거리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동물원에서만 보던 바다사자와 북금곰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모습을 통해 소중한 생명의 터전을 폐허로 만든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을 뒤돌아보게 했다. 올해 90분 버전으로 제작해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니 놓친 분들은 참고하시길. 2008년 12월, MBC

2 <누들 로드> BBC나 NHK 등 외국 다큐멘터리만 부러워하던 이들에게 “우리에게도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작품. 매일 먹는 국수라는 작은 소재를 아이콘 삼아 뒷면을 파헤치면 그 속에는 무려 2500년에 걸쳐 동서양을 가로질러온 문명사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옛 실크로드의 교하고성을 찾아 국수와 함께 매장된 미라에서 시작해 중국 위진 시대의 최초 국수 수인병, 일본, 태국과 아시아를 넘어 이탈리아의 파스타 등 세계를 넘나드는 국수길을 향한 여정이 각종 기록을 통해 고증되고 재현되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국수를 즐기는 ‘맛 여행’의 눈요기와 함께 일상생활의 소품을 통해서 인류 문명의 공통점과 발달사라는 탐구의 묘미까지 만끽할 수 있다. BBC 유명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퓨전 요리사인 켄 홈이 진행을 맡았다. 12월부터 방영을 시작해 1월 초에 3, 4편이 방영됐고, 앞으로도 주말 저녁 <인사이트 아시아>를 통해 총 6편이 방영될 예정이다. 2008년 12월~, KBS


3 <한반도의 공룡>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다시 그것들의 생애를 추적해나가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8000만 년 전 지구의 산하와 그곳을 누비던 공룡을 스펙터클하게 재현한 이 다큐멘터리는 BBC의 명작 <공룡대발견>에 비견할 만하다. 티라노사우루스만 알고 있던 어린이 공룡 팬에게 ‘타르보사우르스’, ‘부경고사우르스’, ‘해남이크누스’, ‘테리지노사우르스’ 같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공룡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시켜줄 기회이다. 주인공 공룡 ‘타르보사우르스’를 내세운 드라마 형식을 취해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성장하고, 또 시련을 겪는 ‘외로운 공룡 제왕의 슬픈 꿈’을 주제로 이 땅에 살았던 공룡의 흔적을 더듬어나간다. BBC 다큐멘터리의 10분의 1정도인 제작비 16억 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감나는 그래픽으로 공룡에 관한 상상과 꿈을 펼쳐낸 놀라운 작품. 지난해 11월에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으며,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재방송했고, DVD로도 출시됐다. 2008년 11월, EBS

4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 2006년부터 매년 가정의 달 5월이면 방영되는 이 시리즈 다큐멘터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다. 해마다 서너 편의 사연이 소개되는데, 그중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너는 내 운명’ ‘안녕 아빠’ ‘엄마의 약속’ 등은 가족의 죽음을 가운데 놓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담담한 준비,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가족의 사랑, 끝내 떠난 자의 안타까움과 남겨진 가족의 슬픔과 그리움 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한 사람의 죽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카메라를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쉽지 않은 여정을 따라가면서 생의 한 순간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 그리고 큰 변화의 순간 뒤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인간의 삶에 대해 반추할 기회를 준다. 2006년~, MBC


5 <차마고도> 제작 기간 1년 4개월, 제작비 12억 원을 들여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외의 온갖 상을 휩쓸고 에미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다큐멘터리로서는 흔치 않게 일본 NHK 등 18개국에 판매도 됐다. 차마고도는 중국 보이차와 티베트의 전투용 말의 교역이 이루어졌던 세계 최고(最古와 最高 모두를 의미한다)의 교역로이다. 중국 남부의 윈난성, 쓰촨성에서 티베트를 거쳐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이 길은 평균 해발 고도가 4000m로,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문명로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문명로’인 이 길과 그 길의 속살을 따라가는 화면은 하늘과 맞닿은, 처연하게 아름다운 아득한 산속 풍경을 보여주고, 그 가파른 길을 오가며 구도의 길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마음에 큰 울림을 전한다. DVD로도 출시됐다. 2007년, KBS

6 <우린 액션 배우다>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어 사고를 당하고, 전투 신에서 말발굽 아래 몸을 구르는 액션 스턴트를 직업으로 삼는 전문 액션 배우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4년 서울액션스쿨 8기 오디션에서 합격한 청년들의 수료일까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처음 36명 합격자에서 한 달 만에 15명으로, 또 8명으로 줄어드는 20대의 액션 배우 지망생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출연자 중 단 한 명만이 액션 배우 일을 하고 있다. 간단치 않은 이 일을 하겠다고 뛰어든 청년들의 인생 역시 단순치 않다. 전직 미용사. 화장품 방문 판매, 호스트바 웨이터, 공장 직원, 노가다판 인부. 이른바 ‘마이너’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속의 한 점이나 혹은 스타의 얼굴 없는 대역을 해내기 위해 뛰고 구른다. 하지만 그들 삶의 애잔함을 위해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넘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신나고 유머가 넘친다. 관객들로부터 주성치 영화 못지않는 유쾌한 코미디로 추천받은 작품이다. 1월 중에는 하이퍼텍 나다와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지난해 개봉 화제작 회고전으로 만날 수 있고, DVD로도 출시될 예정. 2008년 개봉 영화


7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명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의 대표작에서 록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해 남다른 록 감성을 표출했고, 이미 1970년대 ‘더 밴드’의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라스트 왈츠>를 비롯해, <더 블루스> 연작과 밥 딜런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 등 음악 다큐멘터리 명작을 제작해 록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그런 스코세이지 감독을 록과 사랑에 빠지게 한 밴드가 바로 로큰롤의 대명사 ‘롤링 스톤즈’다. 그리고 감독은 마침내 그들의 2007년 뉴욕 공연 실황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냈다. 1964년에 데뷔해 무려 45년간이나 지치지 않고 록의 중심에 서 있는 롤링 스톤즈.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끓어오르는 열정과 에너지, 흥겨움을 발산하는 공연 실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들의 매력에 단박에 빠져들게 한다. 2008년 개봉 영화, 1월 DVD 출시

8 <워낭소리>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한국 최초로 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40년간 소 한 마리를 데리고 홀로 농사를 지어온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는 ‘우정’ 이상의 더 진한 무엇이다. 그 ‘찐한’ 관계의 마지막 1년을 카메라는 고화질 영상으로 아름답게 담아낸다.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고 다리 힘만으로 묵묵히 소와 함께 땅을 일궈온 할아버지는 병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소를 내다 팔기로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좋은 여물을 먹이려 하지만 이별을 직감한 듯한 소는 그 여물을 먹지 않고 눈물만 흘린다.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서도 사라져버린 애틋한 감정을 교류하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009년 1월 개봉 예정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