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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사랑문학회 제2회 문학기행
일본 오사카 (2019.4.24~26)
도혜 김혜진
일본으로 출발
작년 중국 청도 문학기행을 다녀온 뒤 벌써 두번째 문학기행 가는날이 다가왔다.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광양에 살고 있어 다른사람 보다 하루전에 집을 나서야만 일행들과 제시간에 미팅을 할 수 있다.
얼마전에 친구들과 말레시아, 싱가폴 여행을 다녀온지 2주 밖에 지나지 않아 가족들 눈치가 조금 보였다.
가지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하나 뿐인 손자도 딸에게 부탁해야하고, 옆지기 기분좋게 잘 구스르고 아무튼 여러가지 신경써서 집안을 다독이며 여행 준비를 해 두고 4월 24일을 기다리며 달력에 적어 두고 알람도 하루 전,저녁시간에 미리 맞춰서 잊어 버리지 않도록하고 하루 빨리 문학기행 가는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23일 밤,조금 이른 저녁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작은딸 집에서 먹고, 손자가 학교 다니며 입을 옷도 여벌로 몇벌 챙겨주고 잘 부탁한다고 말해 두고 집으로 내려와 여행 가방을 다시 점검하고 공항으로 가는 고속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사위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대로 순천 고속버스터미널로 출발 하기로 했다.
밤 9시에 집에서 나와 사위,작은딸, 손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터미널에 여유있게 도착해서 차를 기다리며 손자에게 말 했다.
"지훈아!할머니 다녀올께 고모랑 고모부 말씀 잘 듣고 학교 잘 다니고 있어 빨리 갔다 올께"
하며 꼭 안아 주고 애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 30분이다 버스가 출발 하려면 1시간 30분 기다려야 한다.
남은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매표소 아가씨에게 돌아오는 공항버스가 있는지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하지만 어플을 아무리 검색해도 없었다. 나는 다시 창구로 가서 물었다.근데 고속버스 어플은 안된다며 일반버스 어플을 다시 다운 받아서 해 보시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매표소 아가씨 말대로 일반버스 어플을 다운로드 받고 검색을 해보니 문학기행에서 돌아오는 4월 26일에 딱 한대가 동광양으로 가는 것이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작년 중국 청도 문학기행 때 고속버스를 놓치고 이순희 부회장님과 모텔에서 하룻밤 자고 집에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하루 한 대 뿐인 버스가 구세주 같이 느껴졌다.
먼저, 버스 시간을 보니 저녁 7시 10분에 출발하는 차가 있었다.
오사카 문학기행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오면 3시,입국심사,수화물 찾기 등을 해도 시간이 충분했다.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도 해결 되었고,
아직도 심야버스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기다리는 동안 충주에서 오시는 이순희부회장님 차편이 걱정되어 충주로 내려가는 공항버스도 있는지 검색해보니 시간대별로 버스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집으로 가시는 차편은 어떤지 여쭈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그만두고 공항에 먼저 도착해서 여유있게 하기로 하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새벽 3시 58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끌고 탐색을 한뒤 F카운터를 찾아 확인 해 두고 모바일 티켓을 승차권으로 바꾸기 위해 승차권 발매기를 찾아 보았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공항직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몇 명 보이질 않았다.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고나서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옷도 다시 갈아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충주에서 오시는 부회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지금 반 정도 오고계시단다.
버스표 예매를 하셨냐고 여쭤보니 아직 못했다고 하시기에 오후 6시 50분 버스로 모바일 예매를 해두고 승차권 발매기를 찾아 나섰다.
현재 내가 있는곳이 3층 출발층 F카운터 앞이다.
한번도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간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아두어야겠다.
다음에 버벅거리고 해매는 일이 없도록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한 층 한 층 찾아보다 막 출근한 젊은 여직원을 만났다.
나는 모바일티켓을 보이며 광양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처음이라 승차권으로 출력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었다.
고속버스는 모바일 큐알코드만 기계에 인식하면 되는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친절한 여직원을 따라가서 티켓을 뽑았다.
오전 6시가 지나자 충주에서 오시는 부회장님께서 제일 먼저 도착하셨다.
잠시후 부회장님과 함께 충주행 티켓을 뽑으러 갔다. 내가 직접해도 되지만 다음에 공항을 이용 하실때도 사용 하시라고 함께 갔다.
F카운터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기 로밍 차단 신청도하고 다시 3층으로 왔다.
시사랑문학회 일행과 미팅시간은 아직 두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이제 출국 시간만 기다리면된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까 했는데 이홍규 홍보국장님께서 연밥을 30인분 준비해서 오신다고하니 그냥 기다리기로했다.
미팅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많은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10명 이상 모이자 먼저 오신분들은 연밥을 나누어 먹기로 하고 스티로폼 박스에 따뜻하게 포장된 연밥을 하나씩 들고 김이랑 단무지를 반찬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30인분 연밥을 정성스럽게 준비 해 주신 홍보국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미팅 시간이 되자 30명 전원이 다 모였다.우리 일행은 6명씩 5개 조로 나뉘어 졌다.각조 조장은 시사랑문학회 임원진이 나누어 맡았다.
아마도 문학기행단장님 한 분이 30명을 통솔 하기에는 너무 힘들것이다.
나는 3조의 조장을 맏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차례로 수화물을 부치고 비행기 티켓을 받아들고 출발 게이트도 확인 해 두고 좌석 번호도 외워 두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대기실 앞 쇼핑센터를 둘러 보며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사시는 분도 몇몇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 1시간 남짓 날아갔다.
오사카에 가다(첫째날)
오사카는 나에게 특별한 곳이다.
나의 외조부모님께서 결혼식을 한 곳이기도하고, 어머니와 위로 삼촌 두분과 아래로 삼촌 한 분이 태어난 곳이 바로 오사카이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어머니께서 밟았을 오사카 땅을 밟고 서 있자니 가슴이 아련히 젖어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일본으로 신학문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국내 사정이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강제 징용을 피하려고 귀국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 외할아버지를 18살 꽃다운 나이에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으로 시집을 오신 외할머니, 그 시절은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었던때라 과년한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러 가곤 했다.
증외조부께서는 딸을 정신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방방곡곡을 수소문 끝에 먼 친척 소개로 일본 유학중에 있던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애지중지 하던 딸을 머나먼 일본으로 시집을 보낸것이다.
그렿게 하여 일본에 정착 하신 외할머니께서 많은 피와 눈물을 뿌린 그 땅에 문학기행을 핑계로 나는 오사카 땅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게된 것이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일본 역사를 하나하나 나열해 가며 구구절절 설명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나이 어린 새색시가 겪었을 수많은 사연들이 창밖을 스치며 빠르게 사라져 갔다.
잠시 세월을 거슬러 그당시 외할머니 얘기를 좀더 하고싶다.
사진 한 장 들고 시집온 새색시는 낯설은 이국땅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매일 같이 이곳저곳을 탐색을 하며 마을을 찬찬히 살펴 보게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제로 끌려 온 우리나라 광부들의 처참한 삶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도 않고 양이 적어 영양실조로 픽픽 쓰러진 사람들을 구덩이를 파고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고 묻어 버리는 그 광경을 매일같이 지켜보면서 눈물 흘리던 새색시는 용기를 내어 두팔을 걷어 부치고 밥 장사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김치를 담고 씨래기국을 끓이고 고등어 조림을 만들고 쌀밥을 가마솥에 가득지어 노무자들에게 재료비만 받고 팔았다.
먹고 남은 밥은 동동주를 빚어 고향을 떠나온 그들의 향수를 달래게 해 주었다.
그러자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져 몰려든 노무자가 300명이 넘어서자 밀주를 담가서 판다고 몇번이고 일본 경찰에 잡혀가서 벌금을 내고 풀려 나고는 했다.
외할머니는 여장부다 어떤일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하루라도 노무자들이 밥을 굶을까봐 노심초사 했다고 한다.
관광버스로 1시간 가량 달리는 동안 일본에서 지켜할 주의사항 을 들었다 일본인 조용하고 소박하며 세네살 짜리 유치원생도 지진발생 대비훈련을 받는다고한다. 지진경보 발령이 울리면 두꺼운 방석을 뒤집어 쓰고 책상 밑으로 숨는단다.조기교육이 참 잘 되어있다.우리나라도 전쟁대비 후년이나 지진대비 훈련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일행이 점심을 먹게 될 한 식당 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여러가지 상품들이 질서 정연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좀더 깊숙히 들어서자 30인분의 음식이 깔끔하게 차려져 우리들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가깝지만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음식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는 나라다 잠시 식단을 소개 하고자 한다.
식탁위에는 작은 램프형 불이 켜져 있고 그 위에 종이로 만든 냄비에 닭고기와 야채 칼국수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맑은 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밥 한 공기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작은 소반에 소꿉살이 같은 작은 접시에 단무지 네 조각 새콤한 해초무침 두어 젓가락 일본식 반찬을 조금씩 담은 작은 접시들,반찬은 간단하지만 깔끔하게 준비되어있다.
하지만 불은 너무 약하고 국물은 적어서 그속에 들어 있는 고기덩어리가 잘 익지 않았다.
안그래도 오후3시를 넘긴 늦은 점심이라 다들 시장한데 참으로 난감하다 나는 어리저리 둘러보다 가위로 고기를 잘라서 읶히면 조금이라도 빨리 익을거 같아 식당 점원에게 가위를 빌려 고기를 잘게 잘랐더니 빠르게 읶기 시작했다.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반찬도 턱없이 부족하고 여기저기 다른팀에서 단무지가 부족하다며 점원에게 추가로 부탁했지만 안된다며 단무지 네조각에 우리돈으로 1,100원 내고 각자 사서 먹으란다.
참 야박한 인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있을수 없는 인심이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몇번 들었지만 설마했는데 단무지 한 조각도 덤이 없다니 정말 대단한 나라다.우리나라였다면 그 식당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을 것이다.
일본은 반찬이 턱없이 부족해 접시가 구멍이 나도록 싹싹 긁어 먹어야하니 음식쓰레기는 전혀 없고 반찬이 더 필요한 사람은 먹을 만큼 각자 사서 먹으라고하니 우리도 그점은 배워야겠다.
점심 식사후 옛날 일본의 수도가 교토 에서 동경으로 이전 하기전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거쳐간 일본식 절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하니 절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절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사슴들을 방목해서 기르고있어 관광객에게 가까이 다가와 과자를 얻어 먹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슴의 숫자가 많아 여기저기 불쑥 불쑥 나타나서 때로는 놀라기도 한다.
공원내 푸른 녹지를 차지하고 자유로이 무리지어 다니며 사람들과 마주해도 도망치지 않는 사슴들 마치 숨 죽이며 걸어 다니는 일본인의 모습을 닮아있다.
몇 세기를 거쳐오는 동안에도 옛것을 고수하고 있으며 화려한 단청 색깔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하지않고 고풍스러운 멋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에서 일본인의 소박한 삶을 고스란히 엿볼수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 또한 수수하고 무난한 무채색을 즐겨 입는것 같았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처럼 떠돌며 하하거리며 웃지도 안았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 숙이고 다닌다.가는곳마다 넘쳐나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자국민이다. 교복을 입은 남여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모습이 수학여행이라도 온 모양이다.우리나라 였으면 학생들이 뛰어 다니고 호호 하하 시끌벅적 할텐데 일본 학생들은 무척 조용하게 이동한다.
그점은 우리도 배워야겠다.
우리일행은 문학기행 이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인증샸을 단체로 찍은 다음 관광버스로 이동했다.
몇 해전만 해도 우리나라도 줄줄이 이어 달리는 수십대의 관광버스 행열을 봄 가을이면 자주 볼수가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보기 힘들다.
잦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단체 수학여행을 금지하고 있기때문이다.
늦은 점심에 관광까지 했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1시간 남짓 달려서 우리가 묵을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의 번화가로 안내되고 저녁 식사를 개인적으로 사서 먹어 보라며 일본돈 앤화 1,000원 가이드가 일일이 나누어 주고는 약1시간 30분 뒤에 버스 내린 곳으로 다시 모이라고 신신당부 하며 가이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 일행은 몇몇 분들이 짝을 지어서 각자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나는 충주에서 오신 부회장님과 같이 다니며 음식점이 즐비한 번화가를 천천히 걸었다.
초밥집 간판도 보이고 커다란 대게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간판도 보였다.
복잡한 거리에서 마트 직원들이 15%쿠폰을 나누어 주고 있기에 나도 한장 받아 넣어두고 다시 식당을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며 걸었다.
잠시후 우리일행 30명이 다 모여서 식사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전갈이 왔다.
우리 두사람은 그곳으로 이동했다.
회장님, 고문님, 사무총장님, 부회장님,이사님 몇분이 먼저 자리하고 계셨다.
일본식 중화요리집이였다.
우리일행 30명 중 12명이 함께 식사를 주문했다.
낮에 먹은 점심이 조금 부족했기에 저녁은 넉넉하게 여러가지 요리를 주문을 해서 먹어 보려고 메뉴판을 보고 연세가 있으신 분은 밥 종류를 주문하고 조금 젊은분들은 면요리를 나는 볶음밥과 소고기 야채볶음을 주문해두고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30분이상 기다리자 요리가 하나씩 테이블로 나왔다.
상상 이상으로 요리양이 적었지만 부실한 점심보다는 푸짐하게 나왔다 서로 다른테이블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먹기도했다.
가이드와 미팅장소로 가기전에
작은딸이 부탁한 물건을 사려고 근처 마트에 가보았다.
식사전에 거리에서 받은 쿠폰으로 화장품 몇개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가니 한국 유학생 알바가 약간의 힌트를 주었다.
여권과 쿠폰을 동시에 보여주면 20%할인 받을수 있단다.
나는 인터넷 구매가격보다 20%저렴하게 선물을 구입했다.
일본땅까지 와서 알바 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무척 대견했다.
잠시후 가이드 안내로 숙소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 방을 배정 받고 열쇠와 이틀치 식권도 함께 받아 호텔에서 주의 사항을 가이드로 부터 들었다.
호텔방에 정수기와 식수는 없으며 간단한 녹차는 준비되어 있다고했다.
아시아 어디를 가도 물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곳이 많은데 일본은 물 한 병도 공짜가 없다니 근검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고 하겠다.
또 한 가지 정수시설이 잘되어 있어 수돗물을 바로 먹어도 된다며 가이드가 덧붙였다.
충주에서 오신 부회장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호텔방 아주 작고 수수하다
욕조는 다행히 있었다.
나는 준비되어 있는 커피 포터에 녹차 를 끓여 보온병에 넣고 다니며 생수 대신 마시기로 하고 내일 일정을 위해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본에서 (둘째날 )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따뜻한 물로 반신욕을 한 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호텔
근처에서 사진 몇장을 찍었다.
일본인들의 출근시간대라 이리저리 둘러보니 다들 편안한 신발 수수한 옷차림에 바쁘게 살고 있다.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다.다만 옷 색깔의 차이라고나 할까 거의 비슷비슷 하다.
잠시후 우리일행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1시간 넘게 달려야 한단다.달리는 버스에서 간단하게 문학행사를 진행 하기로하고 가이드에게 마이크를 달라고 하자 약간의 마찰이 생겼다 가이드는 자기가 맡은 관광 안내를 계속해야 된다며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았다.
회장님을 비롯한 우리일행은 첫번째가 문학행사고 두번째가 관광이라고 설득,1시간을 달리며 시낭송,시에대한 특강 낭송을 잘 하는 방법등을 배우고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차쿠린 대나무숲
대나무 둘레가 30센치는 될법한 대나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그 속에는 군데군데 일본인의 민속신앙이 자리잡고 있었다.마치 우리나라의 서낭당 모습과 흡사하다 새끼줄에 금기시 하는 물건을 끼워 걸어두고 사당에는 검붉은 색으로 꾸며놓았다.
대숲을 지나오는 길에서 일본인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신혼부부의 행렬을 만났다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해준다.일본인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모두 친절하고 사냥하다 관광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 기모노 차림의
여학생들과 마주쳤다.
얼굴도 예쁘고 거기다 마음씨도 곱다 우리일행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고,끝까지 친절하게 미소를 잃지 않고 표정이 밝다.
청수사에 가다
절 입구에서부터 토산품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관광객들이 서로 부딛힐 정도로 몹시 북적거린다.
절의 외관은 꼭대기가 뽀족한 탑 모양이라 우리의 절과는 사뭇 낯 설다. 지붕의 가장자리도 뽀족하면서 초승달처럼 휘어진 모양새가 눈에 뛴다.
청수사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눈길을 끄는 낙수물이 보였다.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약수물 이란다.
오른쪽부터 차례로 지혜,건강,
사랑을 의미 한단다.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약수를 마시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서있다.
우리일행도 30분정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약수를 차례로 세모금 먹고 지혜,건강,사랑을 빌어보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온천에 들렀다.일본은 목욕문화 우리보다 훨씬 앞선 나라이다
온천이 많기 때문이기도하다
이번 여행에 일본의 목욕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단체로 목욕하기가 낯설고 불편했지만 온천탕으로 들어갔다.굉장히 크고 넓은 실내는 몹시 깔끔하고 정리정돈도 잘되어 있었다.
내가 언제 또 일본땅에 와서 대중온천을 이용할까 싶어 차근차근 다 이용하고 경험해 보니 물도 매끄럽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노천탕이 있었는데 공기도 시원하고 반신욕을 즐기고 나오니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신다.오늘밤은 푹 자겠구나
생각하며 호텔에 도착하니 내일 일정을 가이드가 서둘러 설명했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점심은 제공되지 않는다고한다 우리나라 도착 시간은 오후 3시가량 되는데 일행들 점심이 문제다 회원 대부분 65세 이상이고 7~8명만 젊은 분들이다 임원진은 회의를 열어 빵과 음료를 30인분 사기로하고 근체 있는 대형 식료품 마트로 사무장님과 차장님을 대동하고 나섰다.같은 종류의 빵 수량이 부족해서 비슷한 것으로 여러가지로 섞어서 준비해 두고
잠을 청했다.
오사카성(셋째날)
일본에서 마지막날이다 호텔에서 출국 준비를 한 다음 버스에 올랐다.마지막 방문지는 오사카성이다 우리의 머리속에 새겨진 그이름 '도요토미 히데요시'그가 새운 성이란다
일본인에게는 자랑스런 인물이요 성이겠지만 우리국민에게는 치가 떨리는 이름이 아니던가 우리나라를 왜구의 발아래 짖밟은 장본인,
성을 관람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항일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성을 둘러싼 간교하고 튼튼한 돌담, 성벽을 빙둘러싸고 흐르는 물줄기등을 볼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용이 어렴풋이 짐작된다.그 옛날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우리 백성을 유린하고 약탈을 일삼은 침략자 그가 세운 오사카성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귀국길에 올랐다
첫댓글 부회장님! 유익한 자료이며 학회의 역사의 자료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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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